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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신 – 34화


세월은 여삼추라고 하지만 시간을 종리추처럼 빨리 보낸 사람도 드물 것이다. 중원에는 춘하추동이 있다. 봄이 오면 어느새 여름이고, 여름이다 싶으면 낙엽이 졌다. 또 낙엽을 주워 냄새를 맡을라치면 하늘에서 하얀 눈송이가 펄펄 날렸다. 중원에서의 일 년은 그렇게 지나갔다. 하지만 남만에서의 일 년은 다르게 지나갔다. 살아 있는 것들을 모두 태워 죽일 듯 태양이 작열하는가 싶으면, 보기 싫은 것들은 떠내려 보내겠다는 듯 폭우가 쏟아졌다. 며칠이고 몇 날이고 폭우가 내렸다. 그리고는 다시 태양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중원에서 여름과 가을에 해당하는 유월에서부터 시월까지가 남만에서는 폭우가 쏟아졌다. 남만에서의 일 년은 건기, 우기, 그리고 다시 건기… 이렇게 지나갔다. 지난 일 년 동안 종리추는 부쩍 성장했다. 이제 겨우 열네 살에 불과한데 키는 어른만했고, 뼈마디도 굵어졌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열일곱이나 여덟쯤으로 볼 만큼 조숙했다. 아직 목젖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변성기를 겪는 중인지 음성도 제법 굵어졌다. 배금향은 더 이상 종리추를 껴안고 자지 못했다. 갑자기 불쑥 커버린 아들이 같이 껴안고 자기에는 부담스러웠다.

“오늘부터는 십팔반 병기를 수련한다. 십팔반 병기는 십팔반 무예라고도 한다. 시대에 따라, 문파마다 십팔반 병기를 규정한 부분이 다르거나 크게 나누면 구장구단으로 볼 수 있다. 아홉 가지의 장병기와 아홉 가지의 단병을 말하는 것이다.”

무척 빠른 성과였다. 종리추는 일 년 만에 권법 속에 숨어 있는 네 가지 호흡법을 찾아내 완벽히 소화시켰다. 낮은 곳에서 높은 곳으로 올라가며 흡기를 하는 제, 호흡을 정지하는 탁, 충권과 탄퇴 등 공격할 때는 호기를 하니 취, 높은 위치에서 낮은 곳으로 낮추면 호기 후에 잠시 숨을 멈추니 침. 모두가 완벽했다. 종리추는 어떤 움직임을 갖든 완벽하게 중심을 유지했고, 그 자세에서 가할 수 있는 최대한의 타격을 줄 수 있었다. 염려했던 투로에 매달리는 우행도 저지르지 않았다. 오히려 종리추는 초식을 버리고, 초식 속에 숨어 있는 수, 안, 신, 퇴, 보에 매달렸다. 초식 대신 각개의 수법과 보법의 변화를 터득한 것이니 놀랍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일일 백련하여 일수 만련이면 초식이 살아난다고 한다. 언제 어느 때든 마음이 일면 초식도 따라 일어나는 것을 일컬음이다. 마음이 일어서도 안 된다. 거의 반사적으로 초식이 전개되어야 한다. 일수 오천련을 해야 실전에서 한번 써먹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른다는 말도 있다. 그만큼 상대는 마음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다. 종리추는 살아 있는 무공을 익히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스스로 알아서. 기본공은 나무랄 데 없고 투로도 살아서 숨 쉰다. 내공도 급진전하여 권각을 놀릴 때면 은근히 암경이 뻗어 나온다. 모진아와의 결전도 일 년밖에 남지 않았다. 무기술을 미룰 까닭이 전혀 없었다.

“창은 변화가 무궁하여 앞으로 나아갈 때는 용이요, 움직일 때는 뱀의 형세다. 찌르고 거둘 때는 바다가 뒤집히는 것 같다. 몸은 활, 창은 화살. 나아갈 때는 바람과 같고 거둘 때는 흔적이 없다. 능히 백병지왕이다.”

종리추는 눈을 반짝이며 유심히 들었다. 종리추와 사 년여의 생활을 하는 동안 불행한 일도 많이 겪었지만 그래도 다행이라면 성격이 맑고 밝다는 점이다. 종리추는 어떤 경우에도 좌절하지 않았다. 아무리 혹독하게 몰아쳐도 싱긋 웃었다. 서운하리만치 냉담하게 대해도 대인처럼 속이 넓었다.

‘어린아이인데 이럴 수가…’

감탄을 터뜨린 게 한두 번이 아니다. 다행이었다.

“곤은 백병지조다. 구하기가 쉽고 사용하기도 편하다. 곤은 곤타일대편이라 했으니, 일타에 하늘을 두 쪽으로 갈라 버리는 기세를 지니고 있다. 맹호가 동굴에서 튀어나오는 형세로 폭발력에서 단연 으뜸이다.”

적지인살은 십팔반 병기에 대해 설명해 나갔다. 배금향은 지난 일 년 동안 무형필살 삼십육초천풍선법에 매달렸다. 모진아는 적지인살의 최절초인 비응회선으로도 상대할 수 없는 초강자다. 더군다나 남만에서는 기형월도에 집어넣을 백린을 구할 수 없다. 적지인살이나 배금향이나 모진아에게 지지 않을 방법은 청면살수의 비공인 삼십육초천풍선법에 기대를 걸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문제는 삼십육초 천풍선법이 너무 난해하다는 점이다. 비급만 보아서는 천풍선법에 가미된 묘결을 제대로 풀어낼 수 없었다. 내력은 어떻게 사용하는지, 자결은 어떻게 되는지… 내공이 그렇듯이 천풍선법도 사부의 지도가 없이는 수련이 곤란했다. 적지인살은 비급에 그려진 그림을 보고 자결을 추측해 냈다. 배금향은 비급에 적지인살이 추측한 자결을 적고, 주석을 달았다. 종리추가 좀 더 쉽게 배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려는 게다. 하지만 기인이 평생을 걸려서 창안한 절기를 일 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추측으로만 풀어낸 자결이 맞을 리 없었다. 대충 초식을 흉내 낼 수는 있어도 청풍선법이 지닌 위력은 표현되지 않을 것이다. 청면살수는 어쩌자고 자결도 적히지 않은, 그림뿐인 비급을 주었단 말인가. 종리추는 넉 달 안에 십팔반 병기를 숙달시켜야 한다. 그리고 또 넉 달 동안 적지인살의 혈염도법과 뇌인일지공을 몸에 붙여야 한다. 천풍선법을 수련하는 기간도 넉 달밖에 없다.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어도 이보다는 나을 것이다. 원래는 넉 달 동안 십팔반 병기를 수련시키고, 남은 기간 동안 천풍선법을 수련시킬 생각이었다. 하나 완성되지 않은 무공으로는 모진아를 상대하기가 너무 위험하지 않은가. 막다른 골목에 몰리는 경우에는… 아무래도 그런 경우에는 천풍선법보다 자세히 가르칠 수 있는 혈염도법과 뇌인일지공이 나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적지인살이 무공만 가르치자니 너무 부족한 것 같고… 결국은 종리추의 수련 여부에 따라 승패가 갈라지리라.

‘이건 완전히 장님이 문고리 잡기야. 휴우.’

배금향은 착잡한 심정으로 주석을 적어갔다. 천폭은 내공뿐만이 아니라 병장기를 수련하는 장소로도 적합했다. 못에 고인 물도, 못에서 빠져나가는 물도, 폭포에서 떨어져 내리는 물도 모두 수련을 도와주었다.

“타앗!”

종리추는 가슴 밑바닥에서 솟구치는 외침을 토해내며 신형을 날렸다. 적지인살의 경공인 비호무영보다. 비호무영보는 움직인다는 마음만 있으면 저절로 움직여 주는 경지였다. 적지인살은 곤법에만 십대자결을 일러주었다. 벽, 료, 발, 배, 착, 란, 솔, 붕, 무화곤, 점. 벽은 곤의 앞부분을 사용하여 위에서 아래로 내려치는 기법이다. 료는 아래에서 위로 올려 치며, 발은 걷어쳐 내고, 배는 뒤쪽에서 휘둘러오는 공격을 걸쳐 막아낸다. 착은 곤의 앞 부리로 찌르는 것이며, 란은 받아 흘리며 막아내고, 솔은 바닥까지 몸을 낮추고 지면에 스치듯이 돌리는 기법이다. 붕은 낮은 상태에서 갑자기 위로 솟구치는 것이며, 무화곤은 휘둘러 돌리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점은 곤의 끝 부분으로 점 하나를 찍는다. 곤의 이치는 권법의 이치와 같았다. 적지인살도 그렇게 말했다.

“날짜도 촉박한데 병기술을 익히라는 것은 내가 익혀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아는 무공이라도 절정고수가 펼칠 때는 막기 어렵다. 하물며 모르는 것에 부딪치면 거의 막지 못한다고 봐야 한다. 그런 연유로 무림에는 기형병기를 사용하는 사람이 꽤나 있으나 수련 정도가 떨어진다. 만약 그들이 기형병기를 분신처럼 다룰 수 있다면 사태는 달라질 게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십팔반 병기는 모든 병기의 효용을 담고 있으니, 십팔반 병기만 숙달하면 기형병기와 부딪쳐도 당황하지 않는다. 무기술을 연마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무기술과 권법의 이치가 서로 상통한다는 점이다. 무상승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반드시 건너야 할 강이다.”

종리추는 곤법의 초식도 버렸다. 곤 하나만 있으면 그만이었다. 곤이 어떤 길을 가든, 고정된 길을 가는 것보다 살아 있는 길을 가는 것이 훨씬 유용할 것이다. 무공은 멋이 아니라 목숨이다. 십대자결이 어느 정도 익숙해진 다음에는 다시 초식을 붙잡았다. 초식이란 선현의 숨결이 묻어 있는 각고의 결정이다. 초식 하나하나마다 수천 번에 이르는 수련이 있었을 터이고, 교정도 그만큼은 되었을 게고, 초식이 올바른지 알아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갔을 게다. 초식이란 완벽한 투로다.

눈이 아프면 눈을 비비는 것처럼 초식을 전개할 수 있다면, 가짓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눈이 아픈데 코를 만져야 할지, 입을 만져야 할지 모른다면 한 가지도 소용없지만. 적이 공격해 오는 데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못한다면 말이다. 밀림도 좋은 수련 장소였다. 종리추는 녹요평 싸움 이후 더욱 동물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동물들의 습성도 자세히 파악했다. 특히 이용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가를 유심히 관찰했다. 개방의 절정고수인 흑봉광괴가 한낱 쥐 떼에 눌려 무공을 펼치지 못했다. 사납기 이를 데 없는 암연족 전사들이 뱀에 짓눌려 걸음을 떼어놓지 못했다. 태초의 인간은 맨손으로 싸웠을 게다. 힘에 눌린 자가 먼저 돌멩이를 집어 들었을 게고, 다른 자는 돌멩이를 상대하기 위해 다른 무엇을 만들어낸다. 병기는 그렇게 발전되어 왔다. 권각에 눌리고 병기에 눌린다면 살아 있는 생물을 이용한들 어떻겠는가. 동물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귀가 있다면 십분 활용해야 한다.

끄르릉…!

‘표범이다. 먹이를 잡았군.’

케. 케게…

‘원숭이인데… 뭐야? 두목 자리를 놓고 전쟁을 벌이는 거야? 누군가 불쌍한 놈이 생기겠군.’

소리를 토해내는 모든 동물이 관심 대상이었다. 그중 몇몇은 당장에도 활용할 수 있었다. 뱀과 쥐는 이미 사용하는 방법을 알았고, 원숭이도 이용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원숭이가 두려워하는 놈 중 하나가 하늘에 떠 있는 독수리였다. 독수리는 쏜살같이 내려와 잘 놀고 있던 놈을 낚아채 하늘로 사라졌다. 공격이 있으면 대응이 있다. 대응을 할 수 없는 처지면 방어가 있다. 그것이 동물들의 세계였다. 원숭이들은 초병을 세웠다. 한 놈이 망을 보는 동안 다른 놈들은 편히 먹고 장난치며 놀았다. 그러다 독수리가 공격을 해오면 망을 보던 놈은 괴성을 질러댔다.

께에액! 쾌엑…!

이유가 없었다. 돌아보지도 않았다. 망을 보던 놈이 비명을 지르면 다른 놈들은 일제히 독수리가 덮쳐들지 못하는 곳으로 피했다. 그 어수선함이란… 장소가 밀림이라면 원숭이는 한 번쯤 써먹을 수 있는 동물이다.

‘원숭이를 써먹는다? 언제? 난 중원으로 돌아가야 하고… 중원에도 밀림이 있고 원숭이가 있나? 풋! 써먹지 못할 재주를 배우고 있군. 그런 면은 무공도 똑같아. 나는 지금 곤을 수련하고 있지만 이걸 언제 써먹어. 권법도 그래, 수십 가지를 익혔지만 실전에서는 그중 한두 가지로 결판날 거야. 싸움이 원래 그런 거지.’

그러나 종리추는 지치지 않고 귀를 기울였다. 덕분에 그가 밀림에서 활용할 수 있는 동물의 가짓수는 점점 늘어갔다. 창과 곤에 이어 단병이며 전쟁에서 창과 더불어 가장 많이 사용했다는 도, 외문병기이며 도의 단점을 보완한 쌍도, 송 태조가 만들어낸 반룡곤, 백병중 군자로 불리는 검… 종리추는 빠른 시간에 십팔반 병기를 습득해 갔다. 병기란 하나를 배우면 다른 병기는 쉽게 익힐 수 있다. 또 병기란 각기 다른 묘용이 있고, 각기 다른 자결이 있기 때문에 병기를 처음 배운다는 초심으로 임해야 한다. 종리추는 하루 중 태반을 무공 수련에 쏟아 부었다. 적지인살도 고개를 내저은 모진아라는 초강자가 버티고 있는 마당이라 감히 태만할 수 없었다.

‘시간이 부족하면 잠자는 시간을 줄여야지.’

수면 시간은 하루 한두 시진이 고작이었다. 다행히 종금수의 내공은 정신을 맑게 해주었다. 변검 양부의 내공은 마음을 편하게 해주었다. 하단전에서 일어난 진기는 몸을 가볍게 해주었다. 피곤한 줄을 몰랐다. 더욱이 종리추는 무공 수련이 재미있었다. 몸이 점점 강해지고, 일수에 막대한 파괴력이 깃드는 것도 재미있었지만 모르는 것을 깨달아가는 것이 더욱 재미있었다. 밥 먹는 시간도 아까워 주먹밥을 먹으며 수련을 거듭했다.

“최선을 다하면 그만이다. 무인이라면 목숨에 연연해서는 안 된다. 언제 어디서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살아야 한다. 아직 어려서 이해하지 못하겠지만.”

아버지의 말씀은 기우다. 종리추는 모진아와의 싸움을 걱정도 하지 않았다. 싸움이란 그동안 수련한 노력의 결과이지 않은가. 종리추는 더 이상 어떻게 해볼 수 없을 만큼 최선을 다했으니 싸우다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편한 마음… 그것은 중단전이 활짝 열린 효과가 컸다.

‘앞으로 남은 시간 동안도 최선을 다하면 돼.’

종리추가 시간을 아까워하는 것은 날마다 새로운 무공을 보기 때문이다. 그것이 재미있었다. 이제 막다른 경지까지 왔다고 생각하면, 무공이란 놈은 어느새 새로운 물건을 내놓았다. 한 번도 본 적이 없고 들은 적도 없는 전혀 새로운 물건을.

‘내일은 또 뭐가 발견될까?’

기대는 곧 희망이고 재미였다. 종리추는 안다. 새로운 발견이란 이미 발견된 것을 뛰어넘을 때만 나타난다는 것을. 그렇기에 촌각도 아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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