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종결자 2권 – 22화
흑호는 화들짝 놀라 잠에서 깨어나 벌떡 몸을 일으 켰다. 참으로 이상한 꿈이다. 꿈 속에서 느닷없이, 참혹한 죽음을 당했던 증조부인 호군이 나타나서 흑 호를 호되게 꾸짖었던 것이다. 꿈에서 호군이 무어 라 말하며 꾸짖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좌 우간 흑호는 섬칫한 기분에 황급히 눈을 뜬 터였다. 서둘러 주변을 살폈다. 주변에는 별 이상한 것이 없 었다. 풀숲에는마수들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았고, 바위로 막아놓은 동굴 입구도 여전히 그대로였다. 바로 그때, 야릇한 기운이 느껴졌다. 피비린내였다! 그리고 그 냄새는 바위로 막아놓은 동굴 입구의 좁 은 틈바구니에서흘러나오고 있었다.
‘어쿠쿠, 이게 어찌 된 일이냐?’
어느 사이에 이미 해는 저물어 주위는 어둠에 잠겨 있었다. 둔갑도되고 도력도 그럭저럭 사용할 수 있 을 듯했다. 둔갑한 모습으로 바위를 치우기가 훨씬 편할 듯싶어 흑호는 재주를 넘어 일단 반사람 모습 으로 변신을 하였다. 흑호가 반사람 모습으로 변신 하면 전에 태을사자와 모르고 겨루었을 때의 형상이 되어 비록 얼굴과 몸의 무늬는 호랑이지만 두 발로 서고 두 앞다리를 손처럼 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흑호는 집채만한 바위를 무쇠 같은 두 팔로 번쩍 들어 옆으로치워놓고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으앗!”
무심결에 입에서 놀라움의 소리가 터져나왔다. 동굴 안은 온통 피바다였고, 강효식이 은동의 옆에 쓰러 져 있는 것이 아닌가. 언뜻 보아도 강효식이 스스로 배를 단검으로 찌른 것이 분명하였다.
‘이…… 이 사람이 왜 죽었지? 아이구야, 기껏 살려 놓았더니만 자진을 했네그려!’
흑호는 놀라움과 더불어 안타까움이 일었다. 얼른 강효식의 몸을옆으로 약간 밀어내고 은동의 몸을 살 폈다. 떨리는 손으로 피에 젖은옷자락을 헤치자 은 동의 가슴에 길다랗게 나 있는 상처가 눈에 들어왔 다.
‘어이구, 이거 야단일세. 이 아이마저도 죽어 버린 다면 나는・・・・・・ 나는…………….’
그러나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니 은동의 상처는 그 리 대수로운 것같지는 않았다. 출혈이 심한 것이 걱 정스러웠으나 상처 자체로 인해생명에 지장은 없을 것 같았다. 흑호는 약간은 안심하였으나 그래도걱정 스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흑호는 강효식을 다시 한 번 원망스럽게 쳐다보면서 생각했다.
‘뭐 이런 화상이 다 있나. 세상에, 목숨을 살려주었 더니 자기 자식마저도 죽여? 내가 혹시 사람을 잘 못 찾은 것은 아닐까?’
그러다가 문득, 강효식이 죽기 전에 단검으로 바닥에 새겨놓은 듯한 글자가 보였다. 흑호는 몸을 떨면 서 그 글자를 보았다.
– 치욕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음을 택하노라. 이아 이 대신 죽는것이라 생각하여도 좋다. 아이는 아는 것이 없으니 반드시 놓아주기바란다. 강효식.
그 글자들을 보자 흑호는 강효식이 무엇때문에 자진 을 하였는지 이해할 수가 있었다.
‘어이쿠, 자기가 왜병에게 잡혀온 줄 알았나 보구 나. 이런 가여울데가 다 있나, 쯧쯧.’
흑호는 결국 강효식을 두 번 죽인 셈이 되는 꼴이 되고 말았다. 죽으려고 물에 뛰어든 강효식을 건져 내어 또다시 죽게 만들었으니…..
안쓰러운 마음에 강효식의 몸을 슬쩍 건드려 보니 뜻밖에도 온기가남아 있었다.
‘어라?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았구먼!’
흑호는 인간의 의술을 발휘할 능력이 없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하는 수 없이 상처 를 몇 번 핥아 깨끗이 한 후 밖으 가 주변의 풀 중 냄새가 좋은 것들을 급히 따다가 흙과 뭉쳐서강 효식의 상처에 발라주었다. 호랑이인 자신이 다쳤을 때 쓰는 임시처방이었지만 좌우간 지금은 별 도리가 없었다.
그렇게 하자 일단 피가 멎었다. 아무래도 강효식은 너무 피를 흘린데다가 배를 깊이 찔러서 살아나기가 어려울 것 같았다. 그리고 은동의 상처도 문제였다. 비록 상처는 깊지 않지만 피를 많이 흘린 탓에맥이 희미해져 가고 있었다.
‘내 피라도 넣어줄까? 아니여, 나는 호랑이고 은동 은 사람이니 잘못하다가는 더 위험하게 될지도 모르 지.’
은동 역시 자신이 만든 흙덩어리로 대강 지혈을 시 켜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은동에게 약간의 도력 을 불어넣어주자 은동의 맥이 제법 살아나는 것 같 았다. 그 방법이 효험이 있는 것 같아서 강효식에게 도 도력을 조금씩 주입해 주었다. 그러자 혼수상태에 있던 강효식이희미하게 쿨룩거리면서 약간의 피 를 입으로 토해내었다.
‘잘하면 정신을 차리게 할 수 있겠구먼. 그런데 이 빌어먹을 저승사자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여? 빨 리 와야 마지막으로 부자 상봉이라도 한 번 시켜줄 터인데………….’
흑호는 투덜거리면서 계속 강효식과 은동의 몸에 번 갈아 도력을불어넣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