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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란종결자 4권 – 18화


‘그런 골골거리는 늙은이가 무슨 명장이고 구국의 영웅이 될 수 있겠어?

아무래도 그럴 수는 없을 것 같아. 칼조차 휘두를 힘이 없어 보이는데…’

호유화는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문득 다른 생각을 떠 올렸다. 이순신은해전을 치르는 수군장수라고 했다. 그렇다고 하면 직접 적과 칼을 맞대는일은 없을지도 모른다. 아니, 수군제독이 칼을 맞댈 정도가 되면 이미 싸움은 진 것이나 다름 없었다.

‘그렇다면 남을 압도할만한 기백이 있거나 출중한 기략이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해전은 배가 화 포를 놓아 적과 싸우는 것이니 몸이 좀 약하다 한들 그게 뭐 대수일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 않을까?’

호유화는 애써 이순신을 다시 생각해 보려고 애를 썼다. 그래서 이순신을 다시 살펴보려고 다시 대천 안통의 수법을 쓰려고 하는데 갑자기 단전이허한 느 낌이 들면서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호유화는 깜짝 놀랐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이지?’

호유화는 놀라 한동안 생각하다가 간신히 ? 무 슨 증상인지 알아내었다. 바로 법력이 소모되어 나 타나는 증상이었다. 호유화는 수천년의 법력을 쌓아 온 터라 법력이 소진되거나 하는 증상을 느끼지 못 한지가 이미오래 되어 잘 알지 못했던 것이다. 

‘허 참. 법력이 소진되다니. 아직도 이런 일을 겪을 줄은 몰랐는데.’

사실 호유화는 그동안 너무 무리를 한 셈이었다. 생 계로 넘어와 백면귀마와 싸울 적에 호유화는 금옥에 의해 꼼짝 못하는 상황에서 상처를 입어법력에 상당 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나서 잘 정양을 하지 않은 채 금강산까지 이동하고 인간으로 둔갑하여 법력을 사용하여 약간의 무리가 왔었다.

거기다가 은동과 사소한 시비로 아웅다웅하다가 은 동이 상처를 입는 것을보아 심기가 극도로 흐트러진 상태에서 대천안통의 술법을 몇 번이나 사용하여 이 미호유화의 법력은 상당한 손실을 입었던 것이다. 호유화는 자신의 법력이 깊다는 것만을 믿고 마음대 로 행동하였는데 그것이 오히려 재앙을 불러들인 셈 이 되었다.

‘어이쿠. 이거 야단이구나. 이거 법력이 벌써 소진 되다니, 내가 예전보다 많이 약해졌는가보다!’ 

호유화는 그러자 당장 자신의 일이 급한지라, 더 이 상 태을사자니 이순신이니 하는 생각은 지워버리고 곧 법력을 다시 재충전하기 위해 운기조식에 들어갔 다. 다행히 조금만 잘 정양하면 다시 예전의 법력을 되찾을 수는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러는 동안에 호유화는 무아지경의 상태가 되어조그마한 외부의 충격에도 큰 타격을 입게 되는 것이다. 할 수 없이 호유화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어차피 은동이는 허준이 잘 보살펴 줄 것이고, 그 때까지는 며칠 정도는 걸릴 거야. 그러니 내가 좀 쳐박혀서 쉬더라도 안될 것은 없겠지. 은동아. 며칠 동안 못보더라도 너무 서운해하지는 말아라.’ 

정작 섭섭한 것은 정신을 잃은 은동이 아니라 자신 일 테지만 호유화는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고는 곧 어디로 은신할까 하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이 근 방은 지금은 조용하지만 여기도 또 언제 왜병들이 들이닥칠지알 수 없었다. 근처에서 싸움이라도 벌어 진다면 비록 직접 창칼을 맞지 않더라도 큰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었다.

‘그러면 남쪽으로 갈까? 한양으로 간다면…’

그러나 생각해보니, 이미 왜병이 점령한 지역일지 라도 김덕령이나 곽재우 등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의병을 일으킬지도 몰랐다. 그러면 소란스럽고 싸움 이 일어나기는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가만. 이렇게 된 것 기왕이면 전라도의 이순신이 있는 곳으로 가자. 이순신은 승전을 거두고 있으니 그 근처라면 왜병들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고, 또 이순신을 조금 더 자세히 관찰 할 수 있으니 그야말로 도랑 치우고가재 잡는 격이 아닌가? 그렇게 하자. 그렇지. 그 근처의 조그마한 섬에라도 가있으면 정 말 조용할 것이다. 가는데 들이는 공력 정도야 어떻 게 되겠지.’

호유화는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묘안이라고 여기고 곧 몸을 날렸다. 호유화는 전라도가 어딘지도 잘 몰 랐으나 일단 남으로 가고가다가 바다가 보이면 전라 도 부근일 듯 싶었다. 내심 은동을 다시 한 번 보고 가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는 없을 것 같아 호유화는 몸을 솟구친 그대로 둔갑법을 사용하여 남쪽으로 쏜 살같이 내닫기 시작했다.


“어허! 이 놈들!”

흑호는 길게 고함을 질렀다. 영 생각대로 되지 않 아 기분이 찜찜했고, 다시 한 번 힘을 모으기 위해서 도 소리를 지른 것이다. 수백에 달하는 백골귀 들과 시백인들의 사이에 흑호는 정면으로 맞부딪쳐 갔다. 원래가 흑호의 성격은 그냥 정면에서 맞붙어 싸 우는 것이지, 기습을 한다거나 몸을피하면서 싸우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흑호는 그대로 몸을 한데 뭉 쳐 바윗돌처럼 백골귀 들을 무자비하게 깔아 뭉개 부수면서 놈 들의 한 복판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 고나서 흑호는 한참 신바람나게 주먹질 발질에 꼬리 와 머리까지 동원하여 놈들을 닥치는대로 쳐 부숴댔 다. 물론 더러운 녀석들이니 물어 뜯을 생각은 없었 고 싸울 때는 짐승의 방법을 주로 사용하는 흑호로 서는 그것이 좀 아쉽기는 했다. 하지만 놈들은 흑호 의 생각보다훨씬 끈질겼다. 흑호의 엄청난 힘이 실 린 주먹을 맞은 놈들은 예외없이 온몸의 뼈에서 부 서지는 소리를 내며 마치 걸레조각처럼 저만치 나가 떨어졌다. 사람이었다면 한 방에 즉사했을 것이다. 하지만 놈들은 그 정도로는잠시 후에 다시 흐느적 거리며 일어나 지치지도 않고 다가왔다. 놈들을 완 전히 없애려면 완전히 박살을 내어야 하는데 흑호의 주먹이 아무리 힘이새도 전신이 박살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놈들의 동작은 느릿느릿하여 아직까지는 흑호를 맞추지도 못했다. 하지만 흑호는 한참이 지 나자 조금씩온 몸이 뻐근해져 옴을 느끼고 있었다. 그리고 그때까지 흑호가 글자그대로 완전히 두들겨 부숴서 소생불능으로 만든 백골귀와 시백인은 사십 여마리 정도 밖에는 되지 않았다. 놈들은 아직도 수 백마리였고 비록 동작은 느렸지만 흑호가 조금 더 지쳐서 동작이 늦추어지면 아마 놈들의 손에 갈기갈 기 찢어질 것이 분명했다.

‘제길. 주술을 부린 놈은 나타나지도 않고.’

흑호는 원래 놈들이 있는 곳 중 가장 안전한 한 복 판에 주술사가 있을것으로 생각하고 그리로 뛰어든 것이다. 그렇지만 어디에도 백골귀와 시백인들 외에 주술을 부리는 것 같은 놈은 보이지 않았다. ‘술법을 써야 겠구먼! 한 번 시험해 볼까?’

흑호는 또 한마리의 백골귀의 뼈만 앙상한 손을 슥 피하면서 생각했다.

그리고 놈의 아랫턱을 꼬리로 후려갈겨 해골바가지 를 박살내면서 흑호는힘을 끌어 모았다. 흑호는 원 래 수행한 팔백년의 공력에다가 이판관의 묘진령에 있던 기운을 흡수했기 때문에 그 힘은 보통이 아니 었다. 그러나 홍두오공과 싸울 때에는 그 기운을 완 전히 소화하지 못하여서 다만 그 기운은 힘으로서만 발휘할 수 있었다. 허나 지난 수십일 동안 치성을 드리면서흑호는 그 기운들이 차츰차츰 자신의 것으 로 완전히 소화되어감을 느낄 수있었다. 아마도 태 반의 기운은 이미 자신의 것이 되었을 것이고 그렇 다면술법 또한 상당히 강해졌을 것이 분명했다. 흑 호는 다시 두주먹으로 또한 놈의 시백인의 양쪽 귀 부위를 마주치듯 쳐서 박살을 내면서 전에 여러번 써먹었던 영발석투의 술법을 쓰려 했다. 하지만 놈 들의 몸은 빈 곳이많은 뼈다귀들이니 돌로 두들겨보 았자 별반 타격이 클 것 같지 않았다. 그래서 흑호 는 다시 생각을 바꾸어 공력소모가 엄청나서 거의 쓸 엄두를 내지 못했던 삭풍술(朔風術)과 지진술(地 震術)을 써보기로 마음 먹었다. 흑호는 얼른 몸을 땅에 밀착시키고 뒷발과 꼬리를 팽이처럼 빙그르르 회전시켜서 대여섯이나 되는 백골귀들의 다리를 박 살내 버리고는 그 틈을 이용하여 뒤로 성큼 물러섰다. 그리고 다른 백골귀들과 시백인들이 다가오기 전에 크게 원을 그리면서 소리를 쳤다.

“어헛! 삭풍술!”

흑호가 소리를 치는 것과 동시에 흑호가 허공에 그 렸던 원에서 화악하면서 엄청난 기운의 바람이 휘몰 아쳐 나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가까이에덤벼들려던 놈들이 바람을 그대로 몸으로 받아 뒤로 휘몰아치며 날아가기 시작했다. 어린 나무들은 뿌리채 뽑히고 큰 나무들도 꺾어질 듯 휘청였다.

바닥의 돌부스러기며 주먹만한 돌멩이들까지도 바람 에 휭휭 날아가서 삭풍술의 위력은 더더욱 커졌다. 그런 허접쓰레기들과 함께 날아간 놈들은다시 다른 놈들과 부딪쳐서 박살이 났고 또 그 뼈다귀들은 다 시 바람에 밀려 그 뒤에 있는 놈들에게 부딪혀 또 박살이 났다. 그런 식으로 삽시간에오,륙십마리의 백골귀들과 시백인들이 박살난 뼈무더기로 변해서 삭풍술에 밀려났다. 흑호는 조금 몸이 뻐근해지고 탈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지만 자신이 생각했던 것 보다 삭풍술의 위력이 더 크자 신이 났다. 홍두오공과 싸울 적에 인면오공들을 해치우기 위해 자신의 몸에 돌우박을 퍼붓게했던 단순무식한 성격의 흑호 가 아니었던가? 흑호는 크게 껄껄껄 웃으며 이번에 는 공력을 극도로 끌어 모아 오른손으로 땅바닥을 힘껏 후려갈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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