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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130화


“후훗…. 그 얘들이 새로 들어온 얘들이 맞군. 그럼…. 한번 사귀어 볼까?”

“호홋, 효정아, 어제 걔들 새로 입학한 것 맞나 본데. 있다 나하고 가보자. 그 중성적이던 얘. 남자가 맞는지 확인해 봐야겠어.”

“두 사람 자리는….”

연영은 천화와 라미아를 간단히 소개하고 두 사람이 앉을 남아 있는 자리로 시선을 돌렸다.

현재 연영이 담임을 맡고 있는 5반의 인원은 남자 17명, 여자 10명으로 총 27명이다. 정원에서 3명이 모자라는 수였다.

때문에 두 명씩 짝을 지어 5개의 줄로 하나의 분단을 이루는 세 개 분단 중 중앙에 남자들 7명이 앉아 있는 분단의 뒤쪽 3개의 자리가 비어 있었다. 따로 자리를 마련하지 않는 한 천화와 라미아는 남아 있는 3개 자리 중에서 골라 앉아야 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중앙 분단의 제일 뒤쪽에 홀로 앉아 있던 옅은 갈색 머리카락의 소년이 기대 섞인 눈으로 눈을 빛내고 있었다.

연영은 그 소년의 눈빛에 속으로 킥킥거리는 조금 짓궂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키킥… 로스야, 로스야. 괜한 기대하지 말아라. 한 명은 남자고 한 명은 이미 임자가 있는 몸이란다. 호호홋…’

하지만 그런 사실을 말해 주지는 않는 연영이었다.

자신도 영호가 말해주지 않았다면 천화를 여자로 착각했을 수도 있기에 자신이 맡은 반의 학생들도 좀 놀라 보라는, 장난기 어린 마음 때문이었다.

“두 사람은 저기 로스 뒤쪽에 비어 있는 자리에 가서 앉도록 하고, 다른 사람들은 새로 온 두 사람이 모르는 게 있으면 잘 도와주도록 하고, 오늘 수업도 열심히 하고…. 알았지?”

“넵!”

“염려 마세요.”

“그래, 아, 종친다. 천화하고 라미아도 수업 잘 하고 기숙사에서 보자.”

그 말과 함께 방긋 웃어 보인 연영은 빠른 걸음으로 교실을 나섰다.

그녀가 나서고 교실의 시선들이 천화와 라미아에게 잠시 머물렀다. 확실히 눈에 띄는 두 사람의 모습에 이것저것 묻고 싶은 게 많은 교실 아이들, 특히 남학생들이지만 이미 종이 쳐버렸기에 두 사람의 모습을 살펴보는 것으로 그쳤다.

그리고 아이들의 시선이 올라앉은 듯 잠시 후, 20대로 보이는 짧은 머리의 후리후리한 키의 남자가 들어섰다.

그가 교탁 앞에 서자 여학생들이 앉아 있는 창가 쪽 1분단에서 눈이 큰 여학생 한 명이 일어서 인사를 했다.

5반의 반장인 신미려였다.

“차렷, 경례!”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즐겁게 보내자. 그런데… 오늘 이 반에 새로운 학생들이 들어왔다고 하던데, 얼굴이나 볼까? 자리에서 일어나 봐.”

다른 아이들과 함께 인사를 했던 천화는 활기가 넘치는 그의 말에 라미아와 함께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곧 이어진 말에 한숨과 함께 천화의 얼굴에 떠올랐던 웃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5반 녀석들 부러운걸, 이런 아름다운 두 미녀와 같은 반이라니 말이야…. 응? 왜 그러니?”

두 사람의 모습에 부럽다는 듯이 너스레를 떨던 추평 선생은 천화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지는 모습에 의아해하며 물었다.

천화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보는 추평 선생의 모습에 머리를 긁적였다.

선녀옥형결이 독주를 멈추어 이제는 좀 괜찮아지나 했는데…

“후~ 저기 선생님 말씀 중에 잘못된 부분이 있는데요.”

천화의 말에 추평 선생과 반 아이들이 무슨 말인가 하고 천화를 바라보았다.

“잘못된 말이라니? 그래, 내가 무슨 말을 잘못했지?”

천화는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다른 게 아니고 그 두 미녀라는 지칭이 잘못되었는데요. 분명히 말씀드리지만, 저는 미녀(美女)라고 지칭될 수 없는 남.자.입니다.”

특히 남자라는 말을 강조한 천화의 말이 끝나자 순식간에 천화를 향해 있던 눈들이 휘둥그레지며 조용한 숨소리만이 감돌았다.

그런 선생과 학생들의 모습에 라미아는 킥하고 웃음을 터트렸고, 그 웃음소리에 정신이 든 아이들, 그중에 남자들이 비명을 질렀다.

“말도 안 돼!!!!!!!!”

“크아~~ 무, 무슨 남자 모습이 저렇단 말이야.”

“어머, 남…자래… 꺄아~~~”

“그럼… 혹시 저 두 사람 사귀는 사이 아니야? 같이 들어왔잖아.”

그런 아이들의 웅성임 사이로 추평 선생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의 얼굴도 조금 붉은 것이 꽤나 당황한 모양이었다.

“하, 하…. 이거 내가 실수했는걸. 하지만 천화 네 얼굴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처럼 실수할 걸. 하여간 오늘 진짜 미소년이 뭔지 본 것 같단 말이야… 하하하.”

말을 하면서 당황을 가라앉힌 추평 선생이 끝에 크게 웃어버리자 천화도 마주 웃어 주었다.

이어 몇 가지 이야기가 더 오고 간 후 천화와 라미아가 자리에 앉았고, 수업이 시작되었다.

추평 선생이 맡고 있는 것은 국어. 하지만 말은 할 줄 알아도 아직 읽거나 쓸 줄 모르는 천화와 라미아는 추평 선생의 수업을 흘려들으며 연영이 책과 함께 챙겨 주었던, 다른 나라에서 이곳 한국의 가이디어스로 오는 학생들이 쉽게 한글을 익힐 수 있도록 만든 한글 기초 학습 책을 펼쳐 익히기 시작했다.

그러는 동안 시간은 흘러 추평 선생의 수업 시간이 끝나고 10분간의 휴식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렸다.

이어진 반장의 인사에 추평 선생이 교실에서 나가자 반에 있던 남녀 학생들이 천화와 라미아에게로 몰려들었다.

남자들은 천화 쪽으로, 여자들은 라미아 쪽으로… 우르르 몰려들어 반짝반짝 빛나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모습에 당혹감을 느끼며 멀거니 바라보던 천화는 개중 한 아이가 입을 여는 것을 보고 그 아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반가워. 나는 우리 반 부반장인 김태윤. 너와 마찬가지로 정식 나이트 가디언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앞으로 잘 지내보자. 힘쓰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말만 해.”

천화는 호탕한 말과 함께 손을 내미는 당당한 덩치의 태윤을 보며 손을 마주 잡아 주며 생긋이 웃어 보였고, 순간 태윤이 화들짝 놀란 동작으로 잡고 있던 천화의 손을 놓으며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이어진 한 마디에 주위에 있던 아이들이 웃음을 터트렸고 너도나도 천화에게 악수를 청했다.

“너, 너…. 저, 정말 남자 맞는 거냐? 남자 손이 어떻게 여자 손보다 더 부드럽냐?”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도 별로 기분이 나쁘지 않은 천화였다.

그리고 나머지 열여섯 명의 소년들과 인사를 하던 천화에게 한 학생이 물었다.

“두 사람 오늘 같이 왔는데….. 혹시 서로 아는 사이야?”

“맞아 정말 아는 사이냐?”

그 물음과 함께 순간적으로 입을 닫아버린 아이들의 시선이 천화에게 모아졌다.

천화는 별것도 아닌 일에 열을 올리는 아이들의 모습에 웃어 버릴 뻔했지만 자신을 향하는 시선에 팽팽한 긴장이 감도는 것을 보고는 웃음을 삼켰다.

이어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으응…. 잘 아는 사인데. 원래 같이 있다가 이곳으로 왔으니까….”

그렇게 대답한 천화는 왠 바람이 부나 할 정도로 이곳저곳에서 한숨과 함께 장탄식이 터져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개중에 몇몇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었지만, 그들의 눈에도 천화를 향한 부러움의 시선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다시 천화에게 물었다.

“근데 천화 너 몇 호 기숙사에 자는 거냐? 어제 저녁 식사시간에 너하고 저기 라미아라는 얘를 보기는 했지만 기숙사에 있는 얘들은 아무도 모른다고 했거든, 대체 몇 호 실이야? 알아야 놀러라도 가지.”

“그럴 거야…. 내가 있는 방은 C-707호 거든.”

천화의 말에 다른 아이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C-707호라니? C동이라면 중앙 건물의 선생님들 기숙사잖아. 그런데 천화 네가 왜…”

“707호실… 707호실….. 야, 그 호실번호 이번에 담임 선생님이 옮긴 기숙사 호실 번호 아니야?”

707호실이란 말을 되새기던 호리호리한 몸매의 소년이 갑자기 생각났다는 듯이 말하자 주위의 시선들이 일제히 그 소년에게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때 라미아를 중심으로 해서 여자애들이 몰려 있던 곳에서 그 소년의 말에 답하는 듯한 커다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뭐? C-707호라면 이번에 연영 선생님이 옮기셨다는 기숙사 호실인데… 너 선생님하고 같이 사는 거야?”

천화는 옆에서 그 소리가 들리자마자 자신에게 쏟아지는 남자 아이들의 불길이 넘실거리는 시선에 움찔 해서는 슬쩍 뒤로 몸을 뺐다.

그리고 태윤의 커다란 목소리가 다른 아이들의 목소리를 완전히 묻어 버리며 5반을 떠들썩하게 울렸다.

“뭐야!!! 그럼 너 라미아하고 연영 선생님과 동거를 하고 있단 말이냐?”

“꺅… 야! 김태윤. 너 누가 귀청 떨어지는…… 잠깐…. 동거라니? 라미아, 너희 호실에 천화도 같이 있는 거야?”

태윤의 목소리에 라미아와 자기들끼리의 이야기에 빠져 있던 여자애들이 고개를 들었다가 라미아에게 급히 물었고, 그 기세에 놀란 라미아가 고개를 끄덕여 버리자 5반은 순식간에 일대 혼란에 빠져 버렸다.

왠지 심상치 않은 그들의 모습에 슬금슬금 자리를 떠나려던 천화는 때마침 종이 치는 소리에 안도하며 자리에 앉았고, 그때까지 발작을 일으키던 몇몇 아이들도 종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하지만 개중에 몇몇 심상치 않은 시선들이 천화를 힐끔거렸고, 그 시선을 느낀 천화는 한숨과 함께 머리를 긁적일 수밖에 없었다.

“다음 쉬는 시간부터는 일찌감치 밖으로 도망쳐야겠는걸….”

“휴~ 그때 저도 같이 데려가요. 천화님.”

천화는 아직 걸음이 조금 불안정한 라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스르륵 교실 문이 열리며 선생이 들어서는 모습에 아까 접어 두었던 책을 펼쳐 들었다.

하지만… 그런 천화와 라미아의 생각을 어떻게 알았는지 미리 도주로를 막아서며 다가오는 아이들에게 붙잡혀, 다음 쉬는 시간, 그다음 쉬는 시간에 결국은 식당 가는 길에도 휩쓸려 간 두 사람이었다.

특히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속담을 증명하듯 엄청난 속도로 퍼진 소문 덕분에 소녀들의 호기심 가득한 반짝이는 눈길과 남자들의 질투심과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한몸에 받고 있는 천화는 죄 없는 머리를 긁적여야 했다.

그리고 그런 시선은 식당에서 라미아가 천화의 옆에 붙어 앉자 더욱더 강렬해졌다.

교실에서, 식당으로 오는 길에서, 또 식당에서까지… 더우기 기숙사에서까지 떨어지지 않는다고 하니…

하지만 그런 눈빛도 식사가 끝나고 천화와 라미아가 각각 나이트 가디언 실습장과 매직 가디언 실습장으로 나뉘어지자 약해지기 시작했다.

그 대신 다른 뜻으로 눈에 빛을 더하는 아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매직 가디언의 남학생들과 나이트 가디언의 소수의 여학생들이었다.

기숙사에서 보자는 라미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여 답해 주던 천화는 자신의 어깨에 턱하니 손을 얹어 놓는 태윤을 돌아보았다.

“뭐가 아쉬워서 그렇게 바라보냐? 저녁 때 보고 기숙사에서 밤새도록 볼 수 있을 텐데…. 으~ 진짜 학원 기숙사에서 여학생과 동거라니…. 복도 많은 놈.”

“하하…. 부러운 모양이지? 하지만 너무 부러워하지 마라. 이것도 괴로운 일이라고…”

“쳇, 그런 게 괴로운 일이면… 나는 죽어 보고 싶다. 가자. 오늘은 검술 수업이라서 운동장으로 가면 되.”

“검술 수업?”

천화가 태윤의 말에 되묻자 태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운동장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미 저쪽 운동장에는 꽤나 많은 수의 학생들이 모여 북적이고 있었다.

“그래. 오늘 2혁년들은 출운검(出雲劍) 담노형(潭魯炯) 사부님의 수업이거든… 참, 그분도 천화 너하고 같은 중국 분이야…”

“담 사부라는 분이 중화…. 아니, 중국인이라고? 어떤 분이신데?”

“그게…. 정확히 중국 어디 분이신지는 잘 몰라. 담 사부님이 첫 수업 시간에 뭐라고 말씀하셨는데…. 헤헤… 옆에 놈하고 이야기하느라 흘려들어서 말이야. 하지만 그분이 쓰시는 검법 이름은 아는데 운운현검(雲雲絢劍)이라고 하셨었는데. 대단한 검술이더라. 그냥 보면 검법을 펼치는 게 아니라 유유자적 산책이라도 하는 모습이거든. 그런데 직접 검을 맞대면…. 어…. 머랄까 꼭 허공에 칼질한 기분? 나는 분명히 그분의 가슴을 찔렀는데…….”

“…. 공격이 끝나면 검은 허공이고, 그 담 사부란 분은 전혀 엉뚱한 곳에 계시지?”

결정적인 부분에서 잠시 말을 멈추던 태윤은 자신이 하려던 말을 곧바로 이어서 하는 천화의 모습에 피식 김이 빠졌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알고 있는 검법이야?”

“응. 우연한 기회에 한번 견식해 본 검법과 같은 곳의 검법인 것 같은데… 정확한 건 봐야 알겠지만, 방금 말대로라면 아마도 유문(儒門)의 검법일 것 같아.”

“어… 맞는 것 같은데…. 듣고 보니까 첫 시간에 담 사부님이 선비의 기품이 어쩌고 하신 것도 같은데… 중국의 산속에서 수련했다니… 그쪽으로는 아는 게 많은가 보지?”

“헤헷…. 이 정도는 다른 사람도 알고 있을 텐데 뭐… 그보다 빨리 가자 사람들이 꽤나 모여 있는 것 같은데…”

천화는 그 말을 하고는 태윤과 함께 운동장의 한쪽으로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자신과 같은 중화인에 유문의 검법이라… 사실 천화도 유문의 검법은 몇 번 보지 못했었다.

유문이란 말 그대로 선비들의 문파여서 그런지 특별히 문파를 세워 두지도 않고 유문의 무공을 익혔다 하더라도 특별한 상황이 되지 않으면 힘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리고 유문의 무공을 보고 싶어도 누가 유문의 무공을 익힌 사람인지 알고 청(請)하겠는가. 중원 천지에 깔린 것이 책 읽는 선비인데 말이다.

천화 역시도 우연히 누님들과 같이 갔었던 영웅대회에서 몇 번 유문의 검을 볼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때 보았던 검이 태윤이 말한 것과 같은 종류로, 선비의 글은 구름과 같이 자유롭고 서두름이 없어야 한다는 뜻의 문유검(文雲劍)이었다.

비록 그 영웅대회에서 문운검을 펼친 선비가 우승을 하진 못했지만, 흐릿해지던 유문이란 이름을 확실하게 사람들에게 각인시켰었다.

그런데 중원도 아닌 이곳 가이디어스에서 유문의 검을 다시 보게 생긴 것이다.

천화는 그런 생각을 하며 운동장의 오른쪽에 대열을 이루고 있는 앞쪽에 태윤과 같이 섰다.

하지만 대열의 오른쪽에 자리한 여학생들의 시선을 느낀 천화는 나직한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쩝…. 이거, 이거…. 저런 시선을 단체로 받는 건 상당히 신경 쓰이는데…’

그러나 그건 천화 혼자만의 생각이었는지 태윤을 비롯해 여기저기서 부러움과 질투의 눈빛들이 쏟아져 들었고, 천화는 더욱더 곤란해해야 했다.

만약 담 사부가 그때 오지 않았다면 천화는 그 눈빛들에 뚫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하하…. 전부 시선이 몰려있다니… 뭐, 재미있는 거라도 있나?”

그 말을 하는 담 사부는 한 손에 반질반질하게 손때가 묻은 목검을 든 선한 인상의 40대 중반 정도의 남자였는데, 실제 나이가 37이라고 했으니 십 년 가까이 나이가 들어 보이는 것이다.

덕분에 일부에서는 겉 늙은이라는 별명도 나돈다고 하지만, 워낙 인품과 성격이 좋아 그런 별명을 입밖에 내고 거론하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천화는 방금 전까지 자신을 향해 있던 시선을 따라 자신을 바라보는 담 사부를 보고는 고개를 숙여 보였다.

그때 천화의 뒤쪽에 서 있던 태윤이 천화의 어깨를 짚으며 말했다.

“오늘 저희 반에 새로 들어온 친구입니다. 담 사부님.”

“오… 그래. 오늘 아침에 들었지. 반갑네. 나는 가이디어스에서 검술을 지도하고 있는 담노형이라고 하네.”

그 말을 들은 천화는 그의 옛날식 말투에 얼결에 양손을 들어 포권하려다가, 이곳이 어디인지 생각하고 손을 앞으로 마주 잡고 고개를 숙여 보였다.

“많은 가르침을 바라겠습니다. 예천화라고 합니다.”

천화의 인사가 꽤나 마음에 들었는지, 아까보다 더 온화한 표정을 내보이며 담 사부가 뭐라고 하려 했으나 그보다 태윤의 말이 조금 더 빨리 튀어나왔다.

그러나 이번에도 태윤은 말을 다 끝내지 못했다.

담 사부가 알고 있다는 듯이 태윤의 말을 잘라버린 것이다.

“담 사부님. 한 가지 아셔야 하는 게 있는데요. 이 녀석은 남….”

“남자라고?”

“…. 담 사부님은 또 어떻게 아셨어요?”

태윤은 두 번이나 자신의 말이, 그것도 중요한 부분에서 짤리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분명히 두 번의 경우 모두 상대는 모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아까 낮에 교무실에서 지토 선생과 바둑을 두고 있다가 추평 선생이 어떤 반에 들어가서 남학생을 여학생으로 착각했다는 소리를 들었거든. 참, 옆에서 자네 반 선생이 자네들은 놀라지 않았냐고 웃으며 말하는 소리도 들었다네… 또 그 일이 아니더라도 검을 다루면서 그 정도의 눈썰미는 있어야지. 그런데, 그 ‘또’라는 말은 뭐지?”

담 사부의 말에 뭔가 당했다는 표정을 하고 있던 태윤이 고개를 돌려 천화를 가리키며 말했다.

“별건 아니고요. 아까 천화에게 담 사부님의 이야기를 하면서 저번 담 사부님과 대련했을 때의 이야기를 해주었는데… 제가 말하기도 전에 상황을 맞췄거든요. 담 사부님의 검법이 유문의 것이라는 것까지요. 아, 그리고 이 녀석도 담 사부님과 같은 중국이 고향이라고 했습니다.”

천화는 태윤의 말을 들은 담 사부의 눈이 반짝하고 빛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천화가 몇 개월간 쓰지 못했던 중국어였다.

“이거 반갑구나. 이곳에는 중국인은 얼마 없는데 말이야. 어디 출신이지?”

그 말에 답하는 천화의 말도 중국어였다.

참으로 오랜만에 써보는 고향의 언어였다.

“호북성의 태산 출신입니다.”

“호북성이라…. 좋은 곳이지. 그런데 유문의 검을 알아보다니 자네 견문이 상당히 넓은 것 같구만.”

천화의 말에 말을 잠시 끊고 호북성과 그곳의 태산을 생각해 보는 듯하던 담 사부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할아버지의 덕분으로 우연히 볼 수 있었던 유문의 검법 덕분에 알 수 있었습니다.”

“오… 그래, 그럼 내가 자네 할아버님의 성함을 알 수 있겠나?”

천화는 담 사부의 물음에 진혁에게 답했던 것과 같이 답해주었고, 담 사부도 아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당연한 일이었다. 꾸며낸 인물을 알고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이어 담 사부는 천화의 무공 내력을 물었고, 천화는 이번에도 진혁에게 말했던 대로 답해주었다.

천화의 대답에 다시 뭐라고 물으려던 담 사부는 주위의 아이들이 조금 따분해하는 모습을 보이자 다시 한국어로 고쳐 천화에게 말했다.

“금강선도는 내 많이 듣고 보아 알고 있네만, 금령단공은 모르겠군…. 하하하… 아직 내 견식이 많이 짧은 모양이야. 천화군, 괜찮다면 그 금령단공이란 것을 조금 보여줄 수 있겠는가? 같이 지내게 될 아이들에게 자신이 가진 제주를 보여줄 겸 또 내 견식도 넓혀줄 겸해서 말이야.”

천화는 한국어로 변한 담 사부의 말과 함께 자신에게로 쏟아지는 기대 섞인 주위의 눈빛을 볼 수 있었다.

그중에서도 자신의 옆으로 와 있는 태윤의 눈빛이 가장 강렬했다.

이건 도저히 그냥 넘길 수 없게 만드는 그런 분위기.

그런 분위기를 느낀 천화는 머리를 긁적이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그러시다면 모자라는 실력이지만 펼쳐 보이겠습니다. 하지만 담 사부님도 제게 운운현검이라는 검법을 보여주셔야 합니다.”

“물론이지. 내 운운현검은 자네들이 배워가야 할 검법이니 당연한 말이지. 그럼 이럴 게 아니라 내가 먼저 자네에게 운운현검을 보여주도록 할까?”

하지만 천화는 그런 담 사부의 말에 고개를 저어 보이고는 앞으로 나섰다.

이미 한 번 본 것보다는 새로운 걸 먼저 보고 싶다는 주위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담 사부보다 어린(?) 자신이 먼저 무공을 시현하는 게 예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이드의 모습에 담 사부가 슬쩍 웃어 보이며 아이들을 뒤로 물러서게 해 천화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었다.

“지금까지 알려진 적 없는 새로운 무공이니, 모두 눈 크게 뜨고 잘 봐야 한다.”

담 사부는 자신의 말에 크게 대답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고는 천화에게 시작하라는 듯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천화는 그 모습에 잠시 머리를 긁적이더니 한 손을 부드럽게 내리고 반대쪽 손을 가슴 앞에 가볍게 쥐어 보이는 난화십이식의 기수식을 취해 보였다.

금령단공은 극상의 내공심법이고 강기신공이긴 하지만, 강기를 이용한 초식을 제외하고는 지금처럼 손에만 약하게 금령단공을 시전하며 보여줄 만한 초식이 없었다.

때문에 진혁에게도 한 번 보여준 적이 있는 난화십이식에 따른 검결을 짚은 것이었다.

그리고 이어 펼쳐진 난화십이식에 따라 천화의 몸 주위로 은은한 황금빛을 띤 손 그림자가 아른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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