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178화
“으와아아아아….. 뭐, 뭐 하는 거야!!!!”
제이나노는 어느새 자신의 허리를 휘감고 있는 가느다란 팔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버둥거리고 있었다.
그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순식간에 다가온 이드가 그의 허리를 한 팔로 달랑 들어 올려버린 것이다.
비록 제이나노의 몸무게와 키가 이드보다 크지만, 그 모습은 장난감을 다루는 것처럼 쉬워 보였다.
덕분에 당황한 제이나노가 반사적으로 소리를 지른 것이었다.
자신보다 작은 이드의 허리에 끼어 허우적대는 제이나노의 모습은 상당히 꼴사나웠다.
하지만 그렇게 버둥댄다고 해서 이드에게서 풀려날 수는 없었다.
내력이 운용된 이드의 팔 힘이 어디 보통 힘이겠는가.
그리고 연이어진 가벼운 점혈에 제이나노는 사지를 축 느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뭐, 뭐야. 갑자기 왜 이러는 거예요? 지금 절 점혈한 겁니까?”
사지를 축 느러뜨린 제이나노가 힘겹게 고개만 들어 이드를 올려다보며 따지듯 물었다.
한순간에 사지를 움직일 수 없게 되었으니 그럴 만도 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갑작스런 점혈에도 당황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이미 점혈이나 검기, 마법 등의 초자연적이라고 할 수 있는 수법들이 가디언이란 직업을 통해 많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거기다 제이나노 자신만 해도 리포제투스의 사제로서 높은 신성력을 사용하면 몸에 걸린 점혈을 해혈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아… 걷기 싫다면서?”
“그래서요. 설마 제가 그렇게 말했다고 절 이렇게 들고 가기라도 하겠단 말인가요?”
“훗, 머리 좋은데, 바로 맞췄어. 이대로 널 들고 마을까지 갈 거야.”
제이나노는 농담처럼 건넨 자신의 말을 긍정해버리는 이드의 말에 순간 할 말을 잃었는지 몇 번 입만 뻐끔거리더니 겨우 말을 이었다.
“노, 노….. 농담이죠. 여기서 마을까지 얼마나 많이 남았는데, 설마 이드가 경공술이란 걸 쓴다고 해도 엄청나게 멀다구요. 농담은 이만하고 빨리 내려줘요. 이런 꼴로 매달려 있기 싫다구요.”
하지만 이드는 그런 제이나노의 말에도 고개를 살랑살랑 흔들 뿐이었다.
“무슨 그런 섭한 말을. 마을까지야 가뿐하지. 아마 한 시간도 걸리지 않을 걸, 그러니까 잠깐만 그렇게 매달려 있어. 자, 앞장서, 라미아.”
“네, 잘 따라오세요. 이드님.”
그 말과 함께 라미아의 몸이 가볍게 날아올라 길을 따라 빠르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 뒤를 따라 제이나노를 다시 안아든 이드가 땅을 박차고 뛰어올랐다.
“가만히만 있어. 차앗! 부운귀령보(浮雲鬼靈步)!!”
“우어어엇….”
이드가 훌쩍 떠오르는 순간, 허리에 끼어 있던 제이나노는 몸이 땅으로 빨려들어 가는 듯한 기이한 느낌에 순간 기성을 발하며 질끈 눈을 감아 버렸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귓가를 지나치는 날카로운 바람 소리와 속도감에 빼꼼이 눈을 뜬 그의 눈에 자신의 발아래로 흐르듯 지나가는 땅과 나무들의 진풍경이 보였다.
“우와~ 정말…. 엄청난…. 속도군… 요.”
제이나노는 부딪혀 오는 바람에 중간중간 끊어 가며 말을 이었다.
하지만 정면을 향해 고개를 들지는 못했다. 너무 강한 맞바람에 눈을 뜰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 정도의 속도라면 이드의 말대로 한 시간 내에 마을에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생각과 함께 이드와 라미아, 두 사람의 실력이 상당하다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
처음엔 두 사람이 여행 중이란 말에 위험하진 않을까 생각했었지만 지금 이런 경공과 마법을 사용하는 것을 보면 자기 한 몸은 충분히 지켜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실력들이라면…. 오래 걸릴진 모르지만, 어쩌면 엘프를 찾아낼지도. 그럼…. 나도 그때까지 일행으로 이들과 동행해볼까?’
제이나노는 그렇게 생각하며 나름대로 이드와 라미아의 실력을 인정했다.
물론 두 사람의 실력 중 극히 일부만을 본 것이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이드와 라미아에 대한 신뢰가 더해질 것이다.
제이나노가 두 사람을 평가하고 있는 사이, 라미아와 이드는 중간쯤에서 각각 용언과 뇌정전궁보로 속도를 더해 해가 대지에 반쯤 몸을 담그기도 전에 지도에 ‘브릿지’라고 적힌 마을 입구 부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정말 차로도 따라잡을 수 없는 엄청난 속도였다.
마을 입구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멈춰선 이드는 아직도 눈을 꼭 감고 매달려 있는 제이나노의 뒤통수를 툭툭 두드렸다.
“어이, 어이. 너무 편해서 잠이라도 자는 거야? 마을에 다 왔으니까 이제 그만 눈 떠.”
“음? 벌써 도착한 건가요? 좀 더 걸릴 줄 알았는데.”
이드는 감탄을 자아내는 제이나노의 혈을 풀어 주고 땅에 내려준 후, 라미아에게 맡겨두었던 짐들을 건네받으며 자신들 앞에 위치한 마을을 살피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나타난 몬스터 때문에 따로 떨어져 살지 못하는 때문인지, 그 마을은 작은 소도시만큼 덩치가 컸다.
덕분에 상당히 정비가 잘 되어 있을 뿐 아니라 저녁 시간인데도 매우 활기차 보였다.
아마도 항구와 가장 가까운 만큼 사람들이 많이 지나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저런 도시급의 마을이라면, 가디언도 한두 사람 배치되어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에 맞는 편안한 잠자리도….
이드는 흔들리는 배에서가 아닌 땅에서의 편안한 잠자리를 기대하며 제이나노를 재촉해 마을 입구를 향해 걸었다.
마을 입구엔 몬스터를 경계하기 위해서인지 두 명의 경비가 서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레센의 병사들과는 달리 이드들에게 별다른 제재를 가하지는 않았다.
단지 쉽게 보기 힘든 이드와 라미아의 외모에 잠시 시선을 모았을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레센과 이 세계는 사회 체제와 개념 자체가 틀리기 때문이었다.
마을은 밖에서 보던 대로 상당히 잘 정비되어 있고 깨끗했다.
저녁 시간대인지 밖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이드들은 그중 한 사람을 잡고 물어 꽤나 질이 좋은 여관을 잡을 수 있었다.
마침 저녁 식사 시간이었기에 2인용과 1인용 방 두 개를 잡아 짐을 푼 이드들은 곧바로 식당으로 내려왔다.
여관이 좋은 때문인지, 아니면 음식 맛이 좋아서인지 식당엔 두세 개의 테이블을 제외하곤 모두 사람들이 차지하고 앉아 떠들썩했다.
그중 한 테이블을 차지한 세 사람은 각각 자신들에게 맞는 음식들을 주문했다.
이드와 라미아의 경우엔 외국에 나오는 것이 처음이라 요리 내용을 잘 알지 못했지만, 다행히 메뉴판에 요리 사진이 붙어 있어 쉽게 고를 수 있었다.
잠시 후, 워낙 사람이 많아 좀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맛있게 차려진 요리를 깨끗이 비운 세 사람은 목적지로 잡은 숲까지의 여행길을 다시 점검하기 시작했다.
“후~ 이거 상당한 긴 여행길이 되겠네….”
“당연하지. 차로도 삼일씩 거리는 거리라구요.”
이드는 자신의 말 물고 늘어지는 제이나노의 말에 입가심으로 나온 차를 홀짝이며 그를 한 번 쏘아봐 주었다.
그리고는 다시 라미아를 향해 말을 이었다.
“하지만 뭐, 오늘처럼 제이나노를 달랑거리며 달리면 좀 더 빨리 도착할 수 있을지도….. 정말 이럴 땐 세레니아가 있으면 딱인데 말이야.”
드래곤 로드인 세레니아를 단순히 교통수단으로 생각해 버리는 이드의 모습에 라미아는 약간 모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호. 호. 호… 그것도 괜찮겠네요. 하지만 그렇게 되면 엘프들이 다가오긴커녕 오히려 죽어라 도망갈걸요. 세레니아님의 기운 때문에 말이에요.”
확실히 그랬다.
그들에겐 차라는 생소한 물건보다는 드래곤의 기운이 훨씬 더 위협적일 테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의 말에 제이나노가 막 세레니아에 대해 물으려고 할 때였다.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들 중 한 남자가 이드들을 향해 호감이 가는 목소리로 말을 건네 왔다.
“험, 이야기 중인데 실례하지만 자네들 이야기하는 걸 우연히 들었네, 여행을 하는 것 같은데…. ‘미랜드’로 간다고?”
남자의 갑작스런 말에 세 사람은 서로를 바라본 후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를 향해 되물었다.
“미랜드라니요? 저희는 여기서 차로 삼일 정도 거리에 있는 숲을 찾아가는 중인데요.”
“그래, 그 숲이 바로 미랜드지. 하하… 설마 자네들 찾아가는 숲 이름도 모른 건가?”
남자의 말에 세 사람은 머쓱한 모습으로 얼굴을 붉혔다.
사실 숲의 위치만 알았지 숲의 이름은 몰랐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지도에도 숲의 이름은 나와 있지 않았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