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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043화


1478화

과일 한 조각을 입에 넣은 참이었다.

“있죠.”

“음?”

고개를 들자 노릇노릇 잘 구워진 고기 한 점을 씹어 삼킨 검후의 포크가 자신을 가리키고 있었다.

“편애는 나빠요.”

이어 나온 말은 뜬금없는 것이었다.

영문을 알 수 없는 이드는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편애가 나쁜 건 알겠는데, 밥 먹다 말고 갑자기?”

“조직에서의 편애는 질투의 원인이 되어 분란과 균열을 일으키고는 하죠.”

“조직 관련이면 나하고는 관계없는데?”

이드는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편애 이전에 자신에겐 그로 인해 분란이 일어날 조직이랄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에단을 중심으로 일부 따르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도 제대로 된 조직이라고 보기는 어려웠으며, 심지어 이조차 현재는 이드 대신 클라인 백작 아래서 오색 기사단과 함께 활동하고 있는 중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런 대답에도 검후의 엄한 눈길은 변하지 않았다.

그녀의 눈은 선명할 정도로 네가 범인이라고 말하는 듯했다.

아마 다른 사람이었다면 없는 죄라도 만들어 용서를 빌었을 것이다. 무려 상대가 검후였으니까.

하지만 이드는 아니었다.

“그렇게 노려봐도 난 모른다고. 그리고 분위기를 잡으려면 일단 입가에 묻은 소스부터 좀 닦아. 다 큰 어른이 칠칠치 못하게.”

입에 소스를 묻혀 가며 고기를 뜯는 검후 따위 전혀 무섭지 않았다.

말과 함께 무심하게 소스를 닦아 내는 이드에 드디어 검후의 눈길도 슬그머니 풀어졌다. 이젠 기억도 아련한 아버지와 오빠의 손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스스로가 수줍었는지 괜히 툴툴대는 검후다.

“맛있게 먹다 보면 묻을 수도 있는 건데.”

물론 이드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 반응이었다.

이드가 속내를 들여다본 듯 키득거리자 입술을 삐쭉거리는 검후, 저대로 뒀다간 폭발한다는 생각에 이드는 즉시 식탁 위로 화제를 돌렸다. 

“그・・・・・・ 조직은 둘째치고 말이지. 일단 다른 사람은 몰라도 당신은 편애를 논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데? 여길 보라고. 도대체 며칠째 꼬치냐고.” 

이드는 길쭉한 접시 위에 수북이 쌓인 꼬치 꼬챙이를 흔들어 보였다.

대충 눈에 보이는 것만 서른 개가 넘어 보인다. 거기에 끼어 있던 고기와 야채들은 모두 검후의 배 속에 있다.

절대 적지 않은 양인데. 매끼 이 정도 양을 해치우는 것을 보면 정말 입맛에 맞았던 모양이다. 다만 문제라면 그녀가 이외에는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것에 있었다.

“애도 아니고, 편식이라니. 쉴라 단장이 걱정한다고!”

“그 아이는 원래 잔걱정이 많아요. 그리고 편식은 성장하는 아이들이나 문제지, 저는 다 컸으니까 괜찮단 말이죠.”

“어른이라고 괜찮으면 성인병이 없겠지. 하긴, 검후가 성인병이라니. 어이없는 이야기이긴 하다.”

이드는 당뇨로 고생하는 검후를 상상하고는 피식하고 웃고 말았다.

아무래도 상상이 되지 않아서다. 지고한 무공의 경지 이전에 제국의 황녀다. 작은 상처만 생겨나도 고위 마법사와 대신관이 달려온다.

당뇨 따위!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신경이 쓰이지 않는 건 아니었다.

쉴라의 걱정도 걱정이지만 현재 검후의 편식을 만든 것이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었다. 이드는 꼬치 옆에 놓여 있는 탄산이 보글거리는 음료를 보며 후회했다.

‘그날 저 조합을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었는데.’

뭐,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에 앞서도 말했지만 며칠이 아니라 몇 년을 저것만 먹어도 건강에 이상이 생기지는 않을 검후가 아닌가.

다만 그렇다고 문제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었다.

다름 아닌 검후가 말했던 편애가 문제다.

“지금 성안의 꼬치 가게가 줄줄이 문을 닫고 있다는 건 알아?”

“어째서요?”

“검후의 최애 가게가 생겼거든. 덕분에 너도나도 그 가게만 찾으니까.”

맛도 맛이지만 가장 큰 원인은 유명세였다.

명예 후작에 이어 검후의 입맛까지 사로잡아 매일 내성의 하인이 직접 꼬치를 사러 오는 가게.

사람들의 호기심과 관심이 몰리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길게 줄을 늘어서는 가게가 이 일을 계기로 매출이 폭발해 버렸다. 성에 사는 거의 모든 이들이 가게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렇게 사람들이 오직 한 가게의 꼬치만을 원하자 자연스럽게 꼬치를 팔고 있는 다른 가게들은 손님을 잃었다. 그나마 소문이 난 첫날에는 그래도 몇몇 있던 손님들이 둘째 날부터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덕분에 그날부터 지금까지 매출은 0.

가게 주인들은 절망했다. 가격도 내려 보고, 홍보도 해 봤지만, 거짓말처럼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에 절망한 주인들 중에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 가게 문을 닫아 버린 경우도 있었다. 지금 상태로는 꼬치를 굽는 것이 손해였기 때문.

전부 검후의 편애 때문에 일어난 일이었다.

“상대가 검후만 아니었어도 어떻게 사정이라도 해 볼 텐데. 하필 그 검후가 좋아하는 가게라니.”

이드는 상인들의 타들어 가는 속을 생각하며 혀를 찼다.

검후가 사랑하는 가게만 아니었다면 아마 어떤 수작을 부려도 부렸을지 모른다. 어쩌면 당분간 장사를 하지 못하도록 불을 질렀을지도 모르고. 그런데 하필 상대가 검후다.

자칫 사고를 쳤다가는 자칫 수습할 수 없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검후와 티끌만큼이라도 관계가 있으면 눈이 벌개져서 달려들던 기사들이 아닌가.

평소에도 그러한데 삼검왕의 배신이 발표되고 얼마 되지 않은 지금은 어떨까. 눈치 빠른 상인들이기에 그 정도는 쉽게 계산이 섰던 것.

그 결과, 가게 문을 닫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고.

“그럼! 이 시점에서 편애로 분란을 일으킨 당사자로서 한마디!”

순간 리포터로 빙의한 라미아가 마이크 대신 포크를 내밀었다.

리포터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 검후였지만 분위기를 파악한 듯 냉수로 입안을 정리하고는 당당하게 말했다.

“장사도 결국 적자생존이잖아요? 그 집이 제일 맛있는 걸 어쩌라고요. 문을 닫고 싶지 않았다면 더 맛있는 꼬치를 만들었어야 해요. 그도 아니면 돈을 내고 레시피를 샀어야죠.”

“우와! 냉정해!”

“훗, 시장의 논리는 원래 냉혹한 법이에요.”

냉혹한 미소를 보이는 검후의 모습은 이 순간 얼음의 마녀처럼 느껴졌다. 무엇보다 무한 경쟁의 시장 논리를 꺼내 놓는 검후의 모습은 생소하기까지 했다.

그렇다고 그런 검후의 말이 또 틀린 것도 아니었다. 근본적으로 그녀의 말은 옳았다. 계기가 무엇이든 손님들이 원하는 것이 있다면 상인들도 당연히 그 방향을 쫓아야 했다.

“뭐, 그래도 사정이 그렇다니. 다른 가게의 꼬치도 먹어는 보죠.”

“이야, 역시 온화하신 검후님.”

짝짝짝.

이드는 검후를 칭송하며 손뼉을 쳤다. 그에 검후는 웃기지 말라는 듯 코웃음으로 답했다. 하지만 이드는 진심이었다.

냉혹한 경쟁을 말하던 그녀의 모습도, 온화한 영주의 모습도 결국은 검후였으니까. 이드는 그런 의미에서 비어 버린 검후의 잔에 음료를 채워 넣으며 말했다.

“그런데, 편애는 무슨 말이야? 난 그런 기억이 없는데.”

한참 돌아 다시 본론으로 돌아온 이드의 질문.

이드로서는 아무리 생각해도 딱히 떠오르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신이 무슨 판사처럼 만사에 기계적인 중립과 평등을 유지하는 도덕군자는 아니지만, 또 그렇다고 대놓고 누군가를 차별하는 사람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검후가 편애라고 말할 정도의 애정을 줄 사람의 숫자는 매우 적었다.

‘라미아, 일리나, 검후・・・・・・ 말고는 없지?’

당장 떠오르는 사람은 이 셋 정도다.

물론 환청처럼 아쉬움이 가득 담긴 한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지만, 그건 무시하자. 어차피 자신의 밖으로 나올 일 없는 속마음일 뿐이니까. 방글방글,

당연히 갑자기 기분이 좋아진 듯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은 검후의 모습은 우연일 뿐이다.

검후가 웃는 얼굴로 말했다.

“없긴 왜 없어요?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있잖아요.”

“두 사람 무공을 봐준 것? 그게・・・・・・ 편애라고?”

“당연하죠. 잠깐 봐준 것도 아니고, 삼 일 동안 연무장에서 나오질 않았잖아요. 그 정도면 충분히 특혜고 편애라고요.”

“아니, 난 딱히 그런 생각은 없었는데. 그렇죠?”

전혀 그럴 생각이 없었던 이드는 조금 당혹스러운 심정으로 그 자리에 함께했던 두 아내를 돌아보았다.

그에 라미아와 일리나도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특히 일리나는 전혀 그런 것이 아니라며 말했다.

“이전부터 두 사람은 따로 가르치고 있었는걸요. 특별히 시간을 냈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알아요. 일리나와 이드에게 가르침을 받은 것이 두 사람만 있는 것도 아니고.”

“그럼, 그럼.”

이드가 팔짱을 끼며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검후를 구출하기 전, 이드는 소드 팰러스에서 많은 수련생들을 대상으로 무공을 가르친 적이 있었다. 그리고 검후를 구출한 후에는 수도의 저택에 조용하게 머물면서 은색 기사단의 무공을 봐주었다.

분명 특별한 기회였지만, 특별하게 일어나는 일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부러웠던 모양이에요.”

“은색 기사단?”

방금 언급된 두 사람과 조직을 연결하면 나오는 것은 은색 기사단뿐이다. 이드의 미간에 자연스럽게 주름이 졌다.

겨우 그런 것으로 기사단의 막내들을 질투한다고?

그런 실망감이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그런 기색을 느낀 것일까. 검후가 서둘러 은색 기사단을 변호하고 나섰다.

“그렇다고 오해는 말아요. 기사들이 무언갈 한 건 아니니까. 진짜 질투를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금은 그저 부러워하는 것뿐이에요.”

즉, 편애나 질투는 검후의 걱정이 담긴 단어 선택이라는 말이다.

그에 이드도 표정을 풀었다. 그리고는 새삼스럽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그런 반응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처음 있는 일도 아니고. 그야말로 이제 와서 부러울 건 뭐야?”

그에 검후가 조금은 부끄러운 듯 시선을 피하며 답했다.

“그건 이드의 실력을 보기 전이니까요. 지금과 다르죠. 아, 그렇다고 우리 애들을 속물로 보진 말아요.”

“쓸데없는 걱정이야. 그나저나 존 워스와의 전투에서 받은 인상이 강했나 보네. 네가 말을 꺼낼 정도라면.”

“그걸 보고 생각의 변화가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거죠.”

그것도 그런가.

이드는 검후의 말에 내심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뭐, 그건 그렇다 치고, 걱정할 건 없어. 어차피 두 사람의 무공을 봐주는 것도 끝났으니까.”

“앗, 설마 내가 말한 것 때문은……”

“당연히 아니지.”

이드는 어림도 없다는 듯 검후의 말을 중간에 끊고는 컵에 담긴 음료를 들이켜며 말했다.

“이제 무공을 봐줄 시간이 없을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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