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1047화
1482화
자신이 모르는 다른 전투를 말하는 것일까.
“존 워스 때의 전투에 대한 복기였죠.”
“…..”
그런데 아니네? 당시 현장에 있었던 쉴라는 혼란스러웠다. 당시 이드의 전투는 눈으로 좇기 힘들 정도로 빠르고 강렬하지 않았던가.
“제 기억과는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만?”
“그야 복기니까요. 똑같을 수가 없죠.”
복기란 한 번 지났던 길을 되짚는 것. 그러나 단순히 되짚는 것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속에서 자신의 실수를 찾고, 더 나은 수를 모색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그러니 똑같을 수가 없다.
“그렇긴 하지만…….”
그럼에도 쉴라는 납득한 모습이 아니다. 차이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역시 아직은 이드의 수련에 숨은 뜻을 꿰뚫어 볼 수준은 아니라는 것일까. 그렇게 고심하는 쉴라의 모습에 이드는 말없이 미소 지으며 수련장을 나섰고, 그 뒤를 그녀가 말없이 뒤따랐다.
***
쉴라가 함께 하게 된 아침 식사 자리.
모두가 그녀를 반겼다. 특히 검후는 익숙한 듯 고기를 잘라 덜어 주었는데, 그 모습이 퍽 익숙해 보였다. 아무튼, 그런 가운데 검후가 빵 한 조각을 입에 넣으며 말했다.
“그래서 이번엔 단장이 수련장을 찾은 건가?”
“기사단 내에서 감히 그런 말이 새어 나왔으니까요. 단장으로서 그냥 넘길 수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쉴라는 수련장의 일을 떠올리고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오늘 이드 님의 아침 수련을 지켜보니, 기사들의 마음이 이해가 되더군요.’
이드에게 수련을 받는다는 의미를 모르진 않았다. 아니, 어쩌면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 중 하나가 바로 그녀였다.
이드는 아니지만 일리나에게 직접 무공을 전수받았으니까. 그리고 이후에도 간간이 이드에게 가르침을 받을 기회도 있었고. 그렇기에 발전하고 싶은 기사들의 마음을 결코 모르는 바는 아니다.
하지만 당장 그들의 불만이 이드의 귀에 들어갔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정말로 처참한 기분이었다. 아무리 편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해도, 이드가 어떤 사람인가. 감히 그런 분께 불평불만을 늘어놓다니. 그렇기에 아침 일찍 수련장을 찾았던 것인데.
웬걸.
이드의 수련을 지켜본 쉴라는 기사단에 속한 기사들의 마음을 십분 이해하고 말았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불평불만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그래.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아. 무에 대해 그 정도 욕심도 없다면, 오히려 그게 문제겠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만.”
기사들을 편드는 검후의 말에 쉴라가 작은 목소리로 항변했다.
그에 이드가 물잔을 들며 웃어 보였다.
“자자, 다 지난 일이니까. 그 이야기는 그만하죠.”
“음! 마침 할 말이 있었는데, 잘 끊었어요.”
그러자 그런 이드의 말을 반기는 검후였다.
할 말이라니? 밤사이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그런 마음에 다음 말이 이어지길 기다리는 중에 들려온 말은 조금은 뜬금없는 그런 것이었다.
“라일론으로 가세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야?”
난데없이 라일론으로 가라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말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드의 눈빛이 순간 진지해졌다.
“라일론에서 혹시 혼돈의 파편에 대한 어떤 단서라도?”
그렇다면 갑자기 라일론으로 가라는 말이 이해가 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그렇게 쉽게 꼬리를 밟힐 놈들이었다면 지금 이렇게 고생하지도 않았다.
당장 검후도 평생을 속아 오지 않았던가.
그와 같이, 이어지는 답은 예상대로였다.
“그건 아니구요.”
“나도 말해놓고, 이건 아니지 싶었어. 그럼 라일론으로는 왜 가라는 건데?”
“삼 제국 중 하나잖아요. 어차피 이번 외유 중에 들르실 생각 아니었어요?”
질문에 질문으로 돌아온 대답.
이드는 그게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긴 한데. 그냥 조용히 지나갈 생각이었지. 그런데 지금 네 말은 그런 게 아니잖아. 그렇지?”
“맞아요. 정확히는 사신으로서 방문해 보라는 의미죠.”
사신이란 결코 가벼운 직책이 아니다. 어쨌든 상대 국가에 보내는 자국의 대표인 만큼 그 무게나, 입지는 특별하다.
당장 사신이 향하는 국가의 국력에 따라 사신으로 선정되는 인물이 극적으로 달라질 정도. 그런 면에서 볼 때 라일론 제국으로 보내는 사신이 된다는 것은 상당한 혜택이라고 할 수 있었지만.
“사신이라. 하지만 난 제국의 신하가 아닌걸?”
정작 그 당사자는 시큰둥할 뿐이었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이드가 어디 사신으로 움직일 급이던가.
또한 그 말처럼 이드가 아나크렌으로부터 명예 작위를 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제국의 신하가 된 것은 아니었다. 그러니 굳이 귀찮은 사신의 임무를 맡아야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귀찮다!
이드는 이런 기색을 숨길 생각이 없었지만, 검후의 반응은 달라지지 않았다.
“괜찮아요. 어차피 공식적인 사신도 아니니까.”
“그럼?”
“아나크렌 제국이 아닌, 제가 개인적으로 보내는 사신이죠.’
“그런 일이라면 굳이 내가 아니라도, 더 어울리는 사람이 많지 않아?”
개인적인 사신이다.
평범한 귀족이 감히 제국에 사신을 보낸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 권위가 황제에 버금가는 검후라면 가능하다.
그리고 이때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라면 이드의 말처럼 더 적당한 사람들이 많다. 당장 식사에 함께한 쉴라 단장이 그렇고, 언변이 좋은 클라인 백작도 있다.
이들은 모두 오랜 시간 검후를 모셔 온 인물로서 각국에 유명했으니까.
그럼에도 굳이 이드에게 임무를 맡기려 한다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뜻.
이드가 말없이 대답을 기다리자, 아니나 다를까 검후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 아나크렌과 라일론 간에는 맹약이 있어요.”
“맹약이라면 나도 한가지 알지. 동맹을 약속함은 물론이고, 상호불가침의 맹약을 맺었잖아.”
이드가 그레센으로 돌아온 직후.
오랜 시간이 지났음을 아직 알지 못할 때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는 중에 알게 된 사실이었다. 검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있죠. 그리고 그 외에도 수많은 협정과 약속들을 주고받았죠.”
6
같은 땅을 딛고 살아가는 입장에서 각국은 서로 교류가 없을 수가 없다. 또 그 속에서 크고 작은 수많은 사건 사고들이 발생한다. 사람이 별로 없는 작은 시골 마을도 매일매일이 떠들썩한데, 수많은 국민을 가지고 있는 국가들의 관계가 조용할 리가 없지 않은가.
덕분에 이런 사건 사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각국은 서로 수많은 약속을 주고받고, 협력과 충돌을 반복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상호불가침의 맹약도 이런 과정에서 나온 것이었다. 또 세간이 알 정도로 유명하다는 점이 특이한 맹약이기도 했다. 덕분에 두 제국은 긴 시간 동안 크고 작은 사건 사고가 있었음에도 결정적인 충돌은 발생하지 않았다.
“사실 이 불가침의 맹약은 이드가 사라진 후 혼돈의 파편을 견제하기 위해서 이루어진 맹약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일 뿐이에요.”
“그 말은 이거 말고도 더 있다고?”
“많죠. 덩치가 큰 만큼 크고 작은 부분에서 하나하나 다 따져야 했으니까요. 모르긴 몰라도 관련된 서류만 수백 장은 넘을 걸요?”
“하하.”
그 서류들이 자신의 탓인 것 같아 미묘한 웃음을 터트린 이드는 전력으로 말머리를 돌렸다.
“그럼 라일론으로 가라는 것도 그 맹약 관련인 모양이지?”
“맞아요.”
“당연히 맹약은 혼돈의 파편 관련일 테고?”
“그것도 맞아요.”
“그럼 왜 이제 와서 그 일을 꺼내는 거야? 훨씬 더 빨리 해결해야 했지 않아?”
이런 이드의 의문에 검후는 새로운 탄산음료를 따며 고개를 저었다.
“틀려요. 상황이 되었으니까, 이 이야기를 꺼낸 거예요. 곧 드래곤들이 돌아오고, 세상을 뒤져서 혼돈의 파편을 찾아낼 거잖아요? 그 말은 곧 최후의 결전이 머지않았다는 거구요.”
“그런데?”
“그런데가 아니라 전력을 하나라도 더 모아야죠. 저렇게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가 멍청하게 우리 일을 방해라도 하면 어쩌게요?”
확실히.
아주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래서 그에 관련된 맹약을 발동하겠다?”
“그렇죠. 사실 발동한다기보단 재확인시킨다는 쪽이죠. 너무 오래전 일이기 때문에 지금 황제가 과연 그 맹약을 알고 있는지조차 모르겠거든요.”
사실 고백하자면 검후도 혹시 모를 라일론의 멍청한 짓을 걱정하던 차에 우연히 기억해 낸 사실이었으니, 라일론의 황제도 제대로 기억하고 있지 못할 가능성이 컸다.
“그런 일이라면 사신을 보내는 것이 옳지만 말이지. 아는지 모르겠는데, 난 아니, 우리는 라일론하고 좀 껄끄러운 상황이거든.”
몇몇 라일론에 속한 얼굴을 떠올린 이드가 찝찝한 표정이 되었다.
그러자 검후가 다 안다는 듯 손을 흔들었다.
“저도 대충 알아요. 라일론 제국이 이드를 포섭하려고 애를 쓰다가 벌어진 사건들. 하지만 따지고 보면 별것도 아니잖아요? 라일론이 좀 많이 질척대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시작이 악감정도 아니었고.”
“그랬지. 나도 처음엔 나쁜 감정은 없었지. 피해를 봤다고 할 것도 없었고.”
강아지가 좋다고 달려든다고 해서 분노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현상금을 건 부분에선 짜증이 좀 난단 말이지.”
그것도 무려 귀족 살해 혐의로 현상금을 걸었다. 자신이 하지도 않은 일로 누명을 씌워 협잡을 꾸미는 짓은 당하는 입장에서 제법 불쾌한 것이었다. 그때부터 없던 악감정이 생겼다고 할까.
“아, 그거. 제가 알아봤는데, 다 오해에요. 라일론이 움직인 게 아니었어요.”
“라일론이 현상금을 건 게 아니라고? 그럼?”
“드레인이요. 어부지리를 노렸던 모양이더라고요.”
의외의 이름에 이드와 라미아의 눈이 동그래졌다. 설마 그 현상금이 드레인의 음모였을 줄이야.
“허! 작은 나라가 용감하네.”
“용감보단 오만이죠. 뒤늦게 사실을 안 라일론에서 당장 관세부터 손보기 시작했으니까요. 경제적 피해가 적지 않을 거에요.”
“무슨…….”
그야말로 이런 병신 짓이 없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벌인 것일까. 설마 라일론이 끝까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 것일까?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어때요. 그럼 이제 라일론에 가지 못할 이유는 없는 거죠?”
“아니, 그게 왜 그렇게 되는 건데? 꼭 내가 사신이어야 할 필요가 있어?”
“이드가 아니면 안 돼요. 이번에 발동해야 할 맹약은 그만큼 크고 강력한 것이니까요.”
“그래서 내가 가야한다?”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은 아니다.
맹약의 발동만으로 자국에 피해가 발생할 정도의 일이라면, 상황을 잘 알지 못하는 입장에서는 맹약을 부정하거나, 파기할 수도 있는 일이니까.
제국 내에 혼돈의 파편에 대한 기록이야 남아있겠지만, 그 위험을 직접 눈으로 본 게 아닌 이상 당장의 피해를 더 크게 생각할 수도 있는 일이다. 어쩌면 라일론은 자국이 받을 피해액과 혼돈의 파편을 함께 저울에 올리는 멍청한 실수를 저지를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