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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38화


575화

“으흐흐. 어디 있기는, 다 지들 일로 정신없지. 두 놈은 별개지만.”

“뜬금없이 무슨 말이야?”

이드는 일라이져에 묻은 피를 닦아 내고는 진짜 미쳤냐는 듯이 비올라를 바라보았다.

그는 전투가 끝나자 그 성냥 같은 다리를 바퀴처럼 말아 굴려서 다가왔다. 그 모습이 마치 호러 디자인의 무선 조종 장난감 같아 보였다. 

“궁금해하던 것 아닌가?”

네 생각이야 빤하다는 태도를 보이는 비올라의 모습에 이드의 입꼬리가 씰룩였다.

“뭘?”

“마법사들 말이야. 여기 3층에 마법사들이 하나도 없는 이유.”

사실 궁금하기는 했다. 전사의 접근전과 마법사의 후방 지원은 정석이다. 그런데 여기 3층에는 마법기사들밖에 없었다. 그것도 어설픈 리더를 둔 오합지졸들뿐.

마법사 몇이 나서서 제대로 지휘하고 명령했다면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투는 정말 어처구니없을 만큼 금방 끝났다. 생각했던 시간의 절반도 채 걸리지 않고 끝나버린 것이다. 엄청난 화력의 한 방으로 한 번에 몰살을 노린 것은 아니지만, 이드와 쉴라를 상대로 등을 보인 것은 대화력의 공격만큼이나 치명적인 바보짓이었다.

아무리 무서워도 그렇지, 잔뜩 가시를 세우고 조심에 조심을 더해 죽을 각오로 싸워도 모자랄 판에 서로 살겠다고 뒤돌아 도망치는 것은 죽여 달라고 목을 내놓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얌전히 던전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전투 감각이 흐릿해진 게 아닐까 의심되는 모습이었다.

이미 살려 둘 생각이 없는 자들. 이드는 거침없이 마법기사들의 등을 찔렀다.

그 와중에 아무래도 등을 찌르는 것에 거부감이 있는지 쉴라는 마법기사들을 일일이 돌려세워 벴다. 옆에서 보기에는 황당한 짓이었지만 쉴라는 진지해 보였다.

뒤에서 이드와 쉴라가 차근차근 숫자를 줄이는데 앞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었다.

일리나가 막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냥 밀고 나갈 수도 없었다. 시퍼런 검이 눈앞에 번쩍이는데 누가 몸으로 밀어붙일 수 있을까. 무엇보다 숫자가 많아도 아무 소용이 없었다.

어차피 입구를 막고 서 있는 일리나에게 한 번에 달려들 수 있는 숫자는 한정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양수겸장이 딱 들어맞는 현장이었다. 마지막 발악을 하는 자도 있었지만, 말 그대로 발악으로 그치면서 3층이 정리되었다.

마법기사들이 모두 죽은 것은 아니었다.

쉴라가 하나하나 돌려세운 자들 중 상당수가 부상을 입고 살아 있었다. 그것도 마법기사들 중에서 실력 있는 자들만 잘도 골라 놓았다. 장보면 물건을 잘 고를 것 같았다.

그들을 어쩔 생각이냐는 질문에 쉴라는 묵묵히 답했다.

“이들은 범죄자임과 동시에 증인입니다.”

실로 짧은 대답이었다. 그러나 뒤에 남은 여운은 짧지 않았다.

이드는 그녀가 이번 일을 이 던전을 파괴하는 것으로 끝내지 않을 생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제국이 한번 뒤집어지겠네.’

이드가 알기로 초인은 국가의 재산이자 힘이다. 그런 초인이 엉뚱한 곳으로 빼돌려지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조용히는 지나가기는 어렵다. 특히 초인과 관련된 만큼 관계자는 여간한 인물이 아닐 테니까.

‘뭐, 제국이 얼마나 시끄럽든 나하고야 무슨 상관이겠느냐마는.’

그때 이상한 말을 하면서 다가온 것이 비올라였다.


이드는 턱을 살살 긁으며 비올라를 내려다보았다.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궁금한 것이 사실이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네. 마법사들은 어떻게 된 거야?”

“말했잖아. 지들 일로 정신없다고.”

“그러니까 그 일이 뭐냐고.”

“병신같이 살 궁리지 뭐겠어. 원래라면 침입자들에게 대응하도록 만들어 놓은 마법들이 작동하지 않고 있거든. 그거 고치는 데 시간은 걸리지,

침입자는 보통내기가 아닌 것 같지. 별수 있나. 지 목숨부터 챙기는 거지. 크크큭!”

그 마법들이 작동하지 않는 건 네 짓이고?”

가만히 이야기를 듣던 이드가 짚이는 것이 있어 물었다.

“내 덕이지. 마법 발동을 위한 마력 라인에 사상의념(邪像意念)을 듬뿍 집어넣어 줬거든.”

‘이래서 배신자가 무서운 거구나.’

이드는 득의양양한 발언에 소름이 돋았다. 지금처럼 내부자가 안에서 수작을 부리면 대비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때 옆으로 다가온 일리나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렇다고 해도 너무 쉽게 물러나는 것 아닌가요? 여긴 당신들의 마탑이잖아요?”

“어쩌겠어. 마음이 떠난걸. 경쟁에서 떨어지는 순간 모두 속에 다른 꿍꿍이를 키운 거지. 그때부터 마탑에서 마음이 떠난 거야.”

“그럼 경쟁에서 이긴 분들은요? 이곳 말고 다른 곳이 또 있는 건가요?”

“흐…… 똑똑한 아가씨인걸. 당신이 이 작자의 여자인가 보지?”

“아내입니다.”

“오! 이런 미인을! 이런 인생의 승리자 같으니. 이렇게 되면 난 선택 권한 없이 이쪽 아가씨를 공략하면 되는 건가?”

비올라가 놀랐다는 듯 양팔을 들다가 쉴라를 가리켜 보였다.

“카린 경이 우선이다. 그녀를 찾지 못하면 그 다음은 너의 죽음이고.”

“아이고, 무서워라.”

“지금 네 모양이 더 무서워. 엉뚱한 소리하지 말고, 그래서?”

이드는 일리나의 질문에 대한 답을 비올라에게 재촉했다.

“어떨 거 같으냐?”

이드는 질문에 질문으로 답하는 비올라의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동시에 한숨이 나왔다.

“그렇게 묻는 걸 보니 있는 모양이군. 이런 곳이 몇 개나 있는 거야?”

“거기에 관련된 정보는 좀 특별하다. 그냥 넘겨줄 수는 없지.”

이드는 내심 혀를 찼다.

어쩐지 손해 보는 기분이 들었다. 이곳에서 본 대로라면 다른 곳에 존재하는 던전에도 사람이 잡혀 있을 테니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에 대한 대가를 자신이 지불해야 할 듯해서다.

그런 이드의 눈에 마침 심각한 얼굴의 쉴라가 들어왔다.

‘그렇지. 굳이 내가 나설 필요가 있나. 국민을 지키는 것은 국가의 의무! 고럼!’

이드는 내심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원하는 게 뭐야? 이상한 것만 아니라면 제국민을 위해서 황궁이 충분히 정보에 대한 대가를 지불할 거야. 그렇지요, 쉴라 경?”

“네? 아, 네! 당연합니다!”

갑작스러운 이드의 물음에 순간 당황한 듯 쉴라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비올라는 뭔가 내키지 않는지 시큰둥했다.

“글쎄………… 난 황궁은 별로라서 말이야. 믿을 수가 있어야지.”

“무례하다. 감히 황궁을 너희 같은 자들과 비교하느냐!”

황실을 부정하는 발언에 쉴라가 발끈했다.

“아차! 내가 기사가 있다는 걸 깜빡했네. 하지만 어쩌겠어. 사실인걸. 역대로 권력을 믿어서 끝이 좋았던 경우가 있었어야 말이지. 무엇보다 난 보물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거든.”

순간 이드는 고개를 끄덕일 뻔했다. 틀린 말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특히 중원과 그레센과 지구를 겪어 본 그의 입장에서 저 말은 확고한 진실이었다. 하지만 고개를 끄덕였다간 쉴라에게 적지 않은 눈총을 받을 것 같았다.

이드는 다시 발끈하려는 쉴라를 막고는 말했다.

“그래서 나한테 받아 내겠다? 난 별로 줄 게 없는데?”

돈이야 넘쳐 나지만 무작정 손해 볼 생각은 없었다.

“나도 가지고 싶은 물건은 별로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네가 가진 그 고대의 아티팩트인 라미아………………”

“더 말하면 벤다. 뭘 원한다고?”

라미아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이드의 의념이 시퍼런 검기가 되어 비올라의 눈동자를 겨누었다.

비올라는 그 검기를 보다가 헛기침을 하고 말을 정정했다.

“큼, 나도 받아 낼 건 없다. 다만 난 정신의 관과 영혼의 관에 있는 탑주의 흔적을 가지고 싶을 뿐이거든.”

그의 말이 끝나자 무형의 검기가 연기처럼 사라졌다.

“생명과 정신과 영혼이라. 지루한 이름이네.”

“진리가 좀 지루하지. 당연하거든.”

“그럼 네가 원하는 건 나머지 두 곳을 공격했을 때 나오는 마법에 대한 정보인가?”

“그래. 지금 노리고 있는 탑주의 초고대 마법의 일부와 같이.”

이드는 복잡한 눈으로 비올라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되면 카린 경을 구한 후에 그에 대한 처리를 다시 논의할 생각은 접어야 한다. 그가 가지고 있는 정신의 관과 영혼의 관에 대한 정보를 얻자면 그를 공격하거나 자극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어쩌면 비올라도 그런 일을 짐작하고 말을 꺼낸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말을 하려면 처음부터 하지, 왜 지금에 와서 그 이야기를 꺼낸 거야?”

“처음엔 이번 일까지만 같이 하려고 했지.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네가 보통 대단한 위치가 아닌 것 같아서 말이야. 그 대단한 소드 팰러스에서 온 것 같은데 거기에 더해서 검후의 무공까지 익히고 있다니. 이런 하늘이 안겨 준 행운과 같은 인연을 잡지 않으면 바보지.”

그 말에 일리나가 이드에게 다가와 말했다.

“미안해요. 무심코 쉴라 경과 이야기하는 걸 들었나 봐야.”

“아니에요. 생각해 보니 난화십이식을 사용한 제 잘못이죠. 말하지 않았어도 아마 알았을 거예요. 그렇지?”

“맞다. 정확히는 이야기하는 걸 듣고 난 후에 생각난 것이기는 하지만. 그 꽃잎이 날리는 것 같은 무공, 마법이 아니라 관심이 없어서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검후가 그런 무공을 사용한다는 말은 들었지. 워낙 유명하거든.”

이드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무공이 태어난 이상 그 무공의 형태가 알려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무공은 상대를 제압하고 사살하기 위한 것인 만큼, 타인을 향해 사용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구경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또는 제압하지 못하고 도망간 적을 통해서 무공의 형태와 위력에 대해서 알려지게 되는 것이다.

강호무림에 존재하는 수많은 무공에 대한 정보가 바로 그렇게 흘러 다니게 된 것이다.

그게 싫다면 산속에서 홀로 허공에 칼질을 하거나 검식을 본 자를 모두 죽여 입을 막는 수밖에 없는데, 이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그러니 대단한 고수로 소문난 검후라면 그녀의 무공에 대한 정보도 상당히 자세한 부분까지 이야기가 퍼져 있는 것이 당연했다. 어쩌면 마법이 존재하는 대륙인 만큼 단순한 입소문이 아니라 영상이 존재할지도 모른다.

‘정말 시르피의 영상이 있는지 한번 알아봐야겠는데?’

이드는 그 생각을 한쪽에 담아 두고는 말했다.

“좋아. 네가 원하는 대로 거래하지. 대신, 남겨진 두 곳을 공격해서 나오는 마법이나 정보에 대해서는 같이 공유한 후에 넘겨준다. 물론, 네가 보물을 나누고 싶지 않다는 건 알지만 네가 말하는 고대 마법이 어떤 위험한 물건인지 모르는데 그냥 넘겨줄 수는 없는 일 아니겠어? 대신, 그 정보를 확인하는 일은 라미아가 할 거고, 그녀가 확인한 정보는 나와 내 아내만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하지. 어때?”

이드는 비올라의 거부감을 줄이기 위해 그가 호기심과 호감을 표시하던 라미아의 이름을 올렸다. 이드의 생각대로 비올라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드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으음………… 좋다. 그렇게 하지. 마도의 결정체인 라미아라면 허락하지.”

어쩌면 라미아를 통해 자신이 모르는 마법에 대한 정보나, 해석을 알 수 있는 기회일지 모른다고 생각한 비올라였다.

“좋아. 그럼 그동안 네 정체는 우리만 아는 것으로 하고, 그 다른 두 곳을 공격하는 일은 내가 꾸며도 되겠지?”

“황궁을 끌어들일 생각이냐?”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제국의 사람을 구하는 일에 혼자 고생할 생각은 없었다.

“황궁도, 소드 팰러스도 나서야지. 무엇보다 넌 얻는 게 있는데 나는 얻는 게 없잖아. 황궁에 정보를 넘기고 대가를 받아야지.”

그 말에 비올라가 멀뚱히 이드를 바라보다 말했다.

“뭐, 내게 피해만 돌아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도 좋다. 하지만, 조심하는 게 좋아.”

“뭘?”

“황궁이 생명의 관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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