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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81화


618화

절망에 찬 빅터의 얼굴을 확인한 에단의 입술이 음흉하게 벌어졌다. 

“끌끌끌. 꼴좋다. 요놈!”

빅터의 생각 따위 마르텔의 질문에 대답하는 순간 빤히 들여다보였다. 트와이스에서 구른 경력이 얼마인데 고작 수련생 애송이의 꿍꿍이 하나 읽지 못할까?

놀기 좋아하는 애송이의 생각쯤이야 손바닥 보듯 환했다.

그래서 놈이 마르텔에게 꼬리를 흔드는 순간부터 단단히 찍어 놓고 있었다. 아직 기사 서임도 받지 못한 애송이 따위가 엉뚱한 머리나 굴리는 모습이 심히 못마땅했다.

그래도 바로 이드가 대결에서 승리하면서 빅터의 결정에 재를 뿌려서 기분은 좋았다.

‘정의가 집행되었다! 역시, 마스터는 위대하시다니까!”

에단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빅터 놈의 얼굴에 주먹을 박아 넣어도 지금과 같은 얼굴은 보지 못할 것 같았다.

사실 에단도 대결을 보며 마음을 졸였다. 이드를 믿고 있기는 해도, 지금까지 그의 마음속에 만들어진 삼검왕이라는 존재들이 워낙 대단했기 때문이었다.

마인드 마스터가 전설 속의 인물이기는 했지만, 아무래도 이야기로 듣는 것과 실물을 앞에서 보는 것은 차이가 컸다. 덕분에 이제는 삼검왕 위에 이드가 확실히 자리 잡았다.

현재 에단의 마음속에서 이드와 검후는 동급이었다.

빅터의 반응에 만족한 에단은 다른 사람들도 살폈다.

수련생들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지 현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애쓰고 있었다.

세상에 삼검왕이 패배하다니!

블러디 혼 마르텔 켈로이드가 두드려 맞아서 기절했단 말이야!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에게 소드 팰러스의 블러디 혼이 처참히 꺾였다!

이런 거짓말 같은 사실을 어떻게 믿어!

에단의 눈에는 소리가 되지 못한 수련생들의 혼돈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그에 이어 마침 수련생들 앞을 지키고 있던 스폴과 데일리가 눈에 들어왔다. 두 사람의 표정도 심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사실은 그 이후의 일까지 생각해서 그런 것이지만 에단이 그 속까지 알 수는 없었다.

‘어허. 저 두 분도 놀라신 모양이군. 뭐, 당연한가? 마스터의 진짜 정체를 모르면 확실히 세상이 뒤집힐 일이기는 하지.”

당장 이번 일이 저택 밖으로 나갔을 때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기대감에 벌써 심장이 벌렁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놀라신 두 여기사분에 대한 위로를…………?’

에단이 흐뭇한 생각으로 레이디를 지키는 기사도에 충실하려는 순간 이드의 손짓이 눈에 들어왔다.

“에?”

까딱까딱. 콕콕 쓰담쓰담. 휙휙.

에단은 얼굴을 찡그렸다. 간단한 네 가지 손동작이지만 말로 할 때보다 이드가 전하고자 하는 것이 더 확실히 전달된 까닭이었다.

‘마르텔에게 가서, 살피고, 상태를 확인한 후, 정리해라.’

‘아, 싫다. 언제 마스터와 내 마음이 이렇게 잘 통하게 됐지?’

다른 때라면 기뻐하겠지만, 지금은 좀 아쉬웠다. 이 철혈의 여기사들이 놀라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상황은 정말 희귀했다.

남자로서 여자의 마음을 파고들 절호의 기회가 아니겠는가! 비록 비겁하다는 말을 들을지는 몰라도. 남녀 관계에 납치와 세뇌와 사기 등의 불법적인 일을 제외하고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는 게 정의라는 것이 에단의 생각이었다.

그런 열정이 없다면 수도에서 여러 명의 애인을 사귈 수 없었을 것이다!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지. 마스터의 명령인데………………’

에단은 아쉬운 표정을 숨기고 마르텔에게 다가갔다.

‘생각해 보면 이것도 나쁘지 않아. 싸움에 진 개 꼴로 처박힌 블러디 혼의 얼굴을 언제 보겠어? 내가 그 흉한 몰골을 대대적으로 소문을 내 주겠어!’

그러나 아쉽게도 마르텔의 모습은 에단의 기대보다 많이 멀쩡했다.

입과 코에 출혈이 있지만, 거품을 문 것도 아니고, 눈물범벅이 된 것도 아니었다.

대신 전신에 크고 작은 검에 의한 자상이 있었고, 특히 오른손의 경우 손가락과 손의 뼈가 박살 나고, 팔꿈치까지 뼈에 금이 가 있었다.

“아쉽네. 이건 굴욕적인 모습이 아니라 처절한 전투의 흔적이잖아?”

에단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 내며 말하는 순간 에단의 눈에 불쑥 낯선 신발 하나가 나타났다.

“자네의 평가를 들으면 마르텔이 좋아하겠군.”

·철벽의 검왕 존 워스……”

갑자기 나타난 남자를 알아본 에단의 말에 워스의 눈이 번뜩였다. 그러자 에단이 황급히 한 마디를 더했다.

“님!”

“그래. 알아보는군. 난 또 자네가 날 만났다는 사실을 잊은 줄 알았지.”

“아…….”

에단은 눈앞이 깜깜해졌다.

“뭐, 워낙 대단한 분이시니. 자네 맘대로 되는 것은 아니겠지. 이해하네.”

“감사합니다.”

“그래서 내가 직접 만나러 왔네. 그런데 마르텔이 나보다 먼저 왔을지는 몰랐군. 시간이 좋지 못했다고 해야 할지, 덕분에 좋은 구경을 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군.”

워스는 마르텔의 얼굴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들었다.


이드가 그와 눈을 마주쳤다.

그의 얼굴을 본 것은 이번이 세 번째지만 서로 마주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속을 알 수 없는 애매한 표정과, 차가운 욕망. 그리고 뜨거운 열정이라는, 묘하게 서로 어울리지 않는 눈빛을 가진 남자였다.

“저 남자가 존 워스.”

–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천천히 이야기를 나눌 때가 아니니 조만간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오러텅으로 말을 전한 워스는 티 나지 않게 살짝 고개를 숙이고는 쓰러진 마르텔을 안아 들었다.

그때서야 정신을 차린 수련생들은 또 다른 삼검왕의 출현에 다시 소란을 떨었다. 하지만 워스는 그에 눈도 돌리지 않고 마르텔을 안고서 사라져 버렸다.

“자기 할말만 하고 가네.”

“어떻게 할까요?”

마치 무서운 괴물 옆에서 도망친 듯한 표정으로 에단이 물었다.

“어떻게 하라면 할 수는 있고?”

“……마스터를 믿습니다!”

“왜, 또 마르텔처럼 막지그래?”

“그런 똥배짱은 삼 년에 한 번으로 충분합니다.”

에단은 과연 마르텔을 막아선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능글거리며 말했다.

피식.

이드는 익숙한 표정에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그래. 삼 년에 한 번 정도면 적당하겠다. 아무래도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 해야겠다. 수련생들은 돌려보내.”

“그렇게 하면 지금 일이 바로 펴져 나갈 텐데요?”

“훗. 그럼 수련생들 입을 모두 막을 자신은 있고?”

·차라리 철벽의 검왕님과 싸우는 쪽이 확률이 높을 것 같은데요.”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는 말이나, 살인멸구라는 말이 괜히 생긴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의 입을 막는 것도 어려운데 수십의 입을 완전히 막아 두는 것은 지금 에단으로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렇지. 그러니 그냥 둬. 클라인 백작이 말한 것도 있으니, 이 기회에 나름대로 내 명성도 조금 올려놔야지.”

“….절대 조금 오르고 끝나지는 않을 텐데요.”

에단은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그 때 수련생들 사이에 있던 빅터가 손바닥이 터질 듯 열렬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수련생들은 깜짝 놀라서 그를 바라보았다.

그들이 생각하기에 지금 빅터가 박수를 칠 때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빅터는 이드 앞에서 이드를 무시하고 마르텔에게 붙었다. 그는 이곳에 남지 않고 사라진 마르텔을 쫓았어야 했다.

그런데 박수라니? 설마 빅터가 마음이 솔직하고, 결과에 초연한 대인배였단 말인가! 소수의 수련생이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빅터의 입에서 고함이 터졌다.

“이드 님 만세! 블러디 혼의 뿔을 뽑으신 이드 님 만세! 만세! 만세!”

..헐!”

누구 할 것 없이 모든 사람의 입이 떡 벌어졌다.

설마 이렇게나 얼굴이 두꺼울 줄이야! 마르텔 뒤에 줄 설 때는 언제고 마르텔이 기절하니 바로 딴소리다.

수련생들은 본능적인 거부감으로 한 발 뒤로 물러서 버렸다. 그 눈은 마치 오물을 보는 것 같았다.

그러나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무엘 백작이 그랬다. 그는 자신보다 행동이 빠른 빅터를 눈여겨보았다.

‘싹수가 있는 놈이로구나. 저런 놈은 절대로 성공하지. 하지만 아직 멀었다! 하려면 나처럼 제대로 해야지!’

사무엘 백작은 빅터를 평가하고는 바로 그를 따라 박수를 치며 수련장에 뛰어올라 두 손을 들어 보란 듯이 큰소리로 이드의 승리를 찬양하고, 찬미했다.

과연 그는 빅터보다 더 대단했다. 자신의 행동이 부끄러운 줄 아는지 얼굴이 터질 듯 붉어진 빅터와 다르게 그의 얼굴에는 감동에 의한 것처럼 보이는 눈물까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드는 연기대상급의 연기에 진저리를 쳤다.

그리고는 수련생들과 함께 바로 사무엘 백작을 저택에서 내보내 버렸다. 저택을 나가지 않으려던 수련생들이었지만, 이드의 명령이라는 말에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부서진 수련장의 돌을 하나씩 들고 저택을 나갔다.

그 모습에 이드가 고개를 갸웃했다.

“저 돌은 왜 들고 나간 거죠?”

“기념이죠. 자신이 전설의 한 장면 속에 있었다는 증거기도 하구요.”

“전설까지는…………….”

“소드 팰러스에서 삼검왕은 살아 있는 전설이니까. 전설이 맞아요.”

스폴이 똑 부러지게 말했다.

그녀는 지금까지와 완벽히 다른 눈으로 이드를 살폈다.

“저도 오늘 이 자리에서 전설의 한 장면을 볼 줄은 몰랐어요. 이드 님이 이렇게 강하신 줄도 몰랐구요. 진짜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가 맞으셨군요.”

“글쎄요. 제가 아직 정식으로 인정을 받지 못해서 말입니다.”

“블러디 혼을 꺾은 사람이 할 말은 아니네요. 그가 패한 이상 삼검왕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이드 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걸요? 장담해요.” 

“그렇겠죠.”

이드도 그럴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클라인이 명성을 얻어야 한다고 했고, 삼검왕이 먼저 찾아올 수도 있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설마 그도 이런 일이 벌어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일단 저희들도 돌아가서 쉴라 님께 오늘 일을 보고하겠습니다. 그리고 악수를 부탁드려요.”

이드는 스폴의 요구에 그 얼굴을 한 번 보고는 그녀의 손을 잡았다. 작고 햐얀 손이 담담히 이드의 손을 마주잡았다.

“소드 팰러스의 네 번째 검왕이 탄생한 모습을 직접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이드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

“검왕이라니. 전 그런 거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이 지나기 전에 분명 모두 그렇게 부를 거예요. 내기를 해도 좋아요.”

마르텔이 나타난 순간부터 차갑게 가라앉아 있던 스폴의 눈에 장난기가 감돌았다.


스폴의 예상은 예언처럼 정확했다.

‘내기하지 않아서 다행이네!’

그녀의 말대로 날이 저물기 전에 이드를 네 번째 검왕이라고 부르는 목소리가 높이 울렸다.

마르텔과 이드의 대결과 그 결과는 수련생들에 의해서 바람처럼 소드 팰러스에 퍼져 나갔다. 이드의 만검수련에 대한 소식보다 정확히 15배 이상 빠른 속도였다.

그로 인해서 소드 팰러스는 완전히 뒤집어졌다. 소드 팰러스에 적이 쳐들어와도 이보다 혼란스럽지는 않을 것 같을 정도로 난리가 났다. 소드 팰러스의 모든 업무가 그대로 마비되어 버렸다. 평소 검을 들고 엄한 표정으로 서 있던 자들도 수다쟁이가 되어서 수련생들의 이야기를 전하기 바빴다.

“거짓말! 내가 직접 확인하겠어!”

그중에는 결국 믿지 못하고, 직접 확인하기 위해서 이드의 저택으로 달려가는 자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이 인정하건 부정하건 진실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결국 날이 저물기 전에 침묵하는 소드 팰러스를 대신해서 은색 기사단이 대결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스폴과 데일리의 이름으로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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