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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187화


624화

클라인은 상상만 해도 즐거운지 크게 웃었다.

이전 이드를 보겠다는 황제의 말에 차마 거부하지는 못해 싫은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던 삼검왕이다. 그래도 당시에는 토벌대가 조직될 때까지 이드와의 관계를 정리할 시간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번 대결을 계기로 황궁에서 이드를 기다리지 않고, 사람을 보내 적극적으로 이드와 새롭게 관계를 짜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삼검왕 입장에서는 결코 반갑지 않은 사태였다.

“지금쯤 섣부르게 이드 님을 도발했다고 땅을 치고 있을 겁니다.”

“하하하. 어쩌면 이드 님께 패한 마르텔을 탓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진짜 그럴지도 모른다네!”

이드는 죽이 맞아 신나게 삼검왕을 씹어 대는 두 사람을 어이없다는 듯이 보았다.

신랄한 클라인의 입담에는 삼검왕에 대한 존경이 한 치도 남아 있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는 검후의 실종에 삼검왕이 관련되었다고 확신하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그에게 삼검왕은 검후의 실종에 관여된 최우선 용의자, 곧 적이었다.

‘그런데 황궁에서 사람이 오면 삼검왕과는 어떻게 되는 거지?’

이드는 떠오른 생각을 바로 물었다.

클라인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그 일 말입니다만, 황제께서 적극적으로 나온다면 그분의 이름을 빌리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하고 생각합니다.”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에 대한 인증을 황제에게요? 소드 팰러스가 아니라?”

이드는 의외라는 표정으로 클라인을 바라보았다. 그는 일전에 황궁으로 가기 전 최대한 유리한 상황에서 삼검왕과의 관계를 정리하자고 했다. 이드의 명성을 높여야 한다면서 수업을 적극 권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컷 명성이 높아진 상태에서 황제를 택하라고?

“예. 아무래도 소드 팰러스보다는 황제 폐하의 그림자가 이드 님께 더 도움이 될 듯합니다.”

“지금이라면 소드 팰러스와 이야기해도 손해 볼 게 없을 것 같은데요.”

사검왕이라고 불릴 정도로 높아진 지금의 인지도라면 삼검왕을 상대로 유리한 정도가 아니라, 갑의 위치에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클라인의 생각은 달랐다. 소드 팰러스의 이름으로 이드가 인정을 받아 봤자 손해 보는 것도, 얻는 것도 없을 것이다.

“저들은 이드 님께 내어 줄 것도 없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내어놓을 생각이 없을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시간에 쫓겨 황궁에 밀리지 않기 위해서 이드님을 인정하긴 하겠지만, 그 후에는 분명 다시 잡아먹을 기회를 노릴 테지요. 그러나 황제 폐하는 다르십니다. 제국의 주인으로서 이드 님께 줄 수 있는 것이 많으신 분이지요. 이번 토벌전도 황궁이 주도권을 가지고 있으니, 당장 그 부분에서도 상당한 편의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제 생각에는 이드 님을 지휘관 중의 하나로 세울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힘이 실리면 이후 검후님을 수색하는 데 분명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분명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황제의 인정을 받은 만큼 황제가 자신 아래에 있는 귀족처럼 생각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 분명했지만, 클라인은 레오날도 후작이 있는 한 정도를 넘을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황제가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로 인정하게 된 이드의 힘도 결코 가볍지 않으리라. 마인드 마스터의 이름은 황제도 함부로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을 정도로 큰 것이기 때문이다. 차라리 다른 꿍꿍이를 숨기고 이드를 이용하고 버릴 생각이 가득한 삼검왕보다는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이드는 막힘없이 이어지는 클라인의 말에 의문을 표했다.

“흠, 너무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가요? 황궁이 그렇게 만만한 곳은 아닐 텐데요.”

“맞습니다. 황궁이 얼마나 살벌한 곳인데!’

황제가 거론되면서 조용히 목을 움츠리고 있던 에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감을 표했다. 트와이스에 있을 때 황실에서 직통으로 내려온 임무들 중 평범하거나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입니다. 그러나 그만큼 조심하면 될 일입니다. 황제 폐하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부분이지요. 혹시나 이드 님께서 소드 팰러스를 원하신다면 모르겠지만……”

이드는 슬쩍 눈치를 보는 클라인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등을 기댔다.

“그럴 리가요.”

클라인이 마주 웃었다.

“그러니 말입니다. 비록 소드 팰러스가 기사의 성지로 국경을 초월한 듯 보이지만 엄연히 제국의 땅에 뿌리내리고 있으니 제국의 영향력이 아주 없을 수는 없습니다. 그 힘을 빌려 삼검왕을 견제하고 조사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드는 희망에 번쩍이는 클라인의 눈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나쁘지는 않네요. 하지만 황제는 초인파와 가깝지 않습니까? 초인파는 검후의 실종과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크고요.”

“지금도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일에 황제 폐하는 관계가 없을 것입니다. 검후님은 황제 폐하의 가장 큰 힘이었으니까요. 오히려 이드 님이 등장하면 초인파가 조심할 것입니다. 만에 하나 그들이 검후님의 실종에 관여된 증거가 드러나면 황제 폐하의 분노를 살 테니까요.” 

이드는 과연 그럴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클라인이 적극적으로 황제 아래로 가길 권하는 이유도 알 수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은 검후님을 위해서!’라는 이유다.

“하지만 그 생각에 허점이 있지요. 검후의 실종에 황제도 관여되어 있을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으니까요.”

“검후님의 실종에 폐하가 관여되어 있을 리 없습니다.”

클라인이 미간을 모았다. 그가 아는 한 검후는 황제의 가장 든든한 지지자이자 제일 날카로운 검이었다.

반대로 이드는 영원한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럼 제가 묻지요. 클라인 백작님은 황제를 위해서 검후를 버리시겠습니까, 검후를 위해 황제를 버리시겠습니까?”

“황제 폐하를 버리겠습니다.”

즉답이다! 그렇게 소드 팰러스보다 황궁이 좋다고 열변을 토하더니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다.

이드는 가볍게 웃으며, 그러나 서늘한 눈으로 말했다.

“그런 겁니다. 클라인 백작님이 망설이지 않으셨듯이, 황제도 검후와 다른 무언가를 저울에 걸고,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쪽을 택했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 황제가 초인파와 가까운 이상 의심하지 않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지만 황제 폐하와 검후님입니다. 제국의 황족이십니다. 그렇게 될 수 없는 분들입니다.”

클라인은 일단 부정했다. 소드 팰러스에서는 머리가 좋다고 유명한 클라인도 이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알지만, 부정하고 싶은 말이었다. 삼검왕과 초인파와 황제가 검후를 버렸다? 그 말은 곧 제국 전체가 그녀를 원하지 않는다는 말과 같았다. 이 무슨 꿈도 희망도 없는 말인가! ‘그래서는 검후님이 살아 계신다고 해도, 돌아가신 것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클라인은 그런 가능성을 애써 부정했다.

그러나 그를 보는 이드의 눈은 차가웠다. 잔머리도 잘 굴리는 사람이 검후만 관련되면 바보가 된다.

“제가 살아 보니 세상에 절대란 절대 없더군요.”

중원에서 살다가 그레센으로 떨어져 드래곤과 여러 종족을 만나고, 혼돈의 파편을 만나고, 시간을 뛰어넘은 이드다. 절대 불가능할 것 같은 일을 겪은 그에게 절대란 말은 책 속에만 있는 말이었다.

“……”

“그리고 실제 최악의 가정이 사실이라면 또 어떻습니까? 검후가 꼭 소드 팰러스에서 살아야 하는 것도 아닌데. 그녀가 쉴 수 있고, 클라인 백작님이 있고, 쉴라 경의 은색 기사단이 있으면 그곳이 검후의 검성이 아닙니까?”

“하지만 소드 팰러스는 검후님께 특별한 곳입니다.”

“클라인 백작님도 검후가 쉬던 숲속의 별장을 기억하신다면 소드 팰러스가 더 이상 그녀에게 특별하지 않다는 것 정도는 아시겠죠.”

“끄응.”

클라인은 머릿속에 스치는 일기와 불타 버린 별장 터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숙였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무언가를 놓아 버린 듯 허탈한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

“만약, 만약 정말 최악의 경우에 그렇게 된다면, 이드 님이 처리해 주시는 겁니까?”

“제가 소드 팰러스에 온 이유가 실종된 검후를 찾기 위해서지 않습니까. 그녀가 어디에 있든지 말입니다.”

클라인은 이드의 말에 머리를 긁적이더니 누굴 향하는지 알 수 없는 욕설을 허공에 중얼거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길 바라십니까? 원래대로 삼검왕과 인증에 대해서 조율을 할까요?”

클라인은 이드가 자신의 말에 반대 의견을 표한 것을 생각해 물었지만, 이드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황제도 소드 팰러스도 필요 없습니다.”

“그건 무슨 말씀이십니까? 두 곳 말고 이드 님이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라고 확인해 줄 곳이 또 있습니까?”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 그 칭호가 필요 없다는 겁니다. 그걸 확인해서 뭘 하겠습니까?”

할 수 있는 거 많다. 마인드 마스터의 이름은 결코 가볍지 않다. 그러나 클라인은 대답하지 않고 이드의 말을 기다렸다.

“인정을 받아도 고작 소드 팰러스의 차기 주인으로 확정되는 정도가 끝일 텐데요.”

“크흠.”

에단이 민망함에 헛기침을 했다. 실제 소드 팰러스에서는 이드를 게일과 같은 선에 두고 누가 더 차기 소드 팰러스의 주인으로 어울릴지 저울질 중이었다.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사검왕이라고 하면서 어떻게 게일과 비교를 하냐고. 수련만 하느라 머리가 모두 돌대가리로 변한 거 아냐? 들을 때마다 얼굴이 화끈거려 죽겠다. 왜 그놈들의 멍청함이 내 부끄러움이 되어야 하냐고!’

이드는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에단을 이상하게 보고는 말을 이었다.

“그보다는 차라리 사검왕이 좋지 않겠습니까? 소드 팰러스의 차기 주인보다 당장 소드 팰러스를 손에 쥐고 주무르는 검왕 중의 하나 말입니다.” 

‘으음. 확실히 나쁘지 않은 생각이다.’

클라인은 내심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번 토벌전에서 이드님이 활약하시면 사검왕이라는 별명은 확실히 굳어지겠지요.”

“바로 그겁니다. 다른 세력이 검증한 후에 내려주는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보다 확실히 그럴싸하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토벌전에서 정말 제대로 놀다 보면 검왕들 중 하나가 아니라 독보적인 호칭, 검황으로 불릴 수도 있겠지요.”

“검황! 검후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름이군요.”

클라인은 검황이라는 단어에 짜릿한 느낌을 받았다.

단어 속에 들어 있는 힘도 힘이지만, 그 단어만으로도 검후를 향해 불어오는 삭풍을 막아 줄 든든한 방어막이 생긴 느낌이 들었다. 클라인에게 그만큼 확신을 주는 느낌은 없었다.

“좋습니다. 검황! 그걸로 가시죠. 그쪽으로 길을 잡겠습니다.”

탁자를 탕탕 두드린 클라인이 말했다.

이드는 그의 결정에 만족하고는 물었다.

“그런데 황궁에서 오는 사람은 누굽니까?”

“벤 벨튼 자작입니다. 레오날도 후작 아래 있는 사람으로, 황제파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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