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281화


718화

마음을 정한 라미아는 즉시 행동에 들어갔다.

다행히 저택으로 들어가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몇몇 방과 초인들이 모여 음주를 즐기고 있는 식당의 창문이 열려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미아는 그중 주인이 자리를 비운 2층의 방으로 날아들었다. 방의 주인은 아마도 1층 주방에서 껄껄 웃고 있는 자들 중 하나일 것이 분명했다. [으, 좀 치우고 살지.]

라미아가 지저분한 방, 특히 시꺼멓게 변한 속옷을 보고 징그럽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방을 정리하는 하인들이 있을 텐데도 이 정도라면, 이 방의 주인이 얼마나 정리정돈에 소질이 없는지 짐작이 갔다.

[이런 걸 보면 이드가 얼마나 좋은 남자인지 새삼 느낀다니까.]

생각 외로 이드는 집안일에 능숙했다. 어릴 때부터 누나들에게 배워 익힌 덕이라고 했다. 그 덕을 본 라미아로서는 조기 교육을 해 준 이드의 누나들이 고맙지 않을 수 없다.

불로 방 안을 정화하고 싶은 욕구를 참아 낸 라미아가 문을 열고 복도로 나섰다. 늦은 시간이라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투명 마법으로 모습을 감추고 있지만, 저택에 있는 초인 중 그것을 꿰뚫어 볼 초인기를 가진 자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일단 1층은 아무것도 없을 테고.]

라미아는 시끄러운 소리가 올라오는 1층으로는 눈도 돌리지 않고 2층을 돌아보았다. 그러나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다. 그저 비어 있는 몇 개의 침실과 회의실 정도가 있을 뿐이었다.

[그럼 역시 3층이겠구나.]

과연 3층은 분위기부터 아래층과 달랐다. 2층에서는 들리던 웃음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라미아는 최우선적으로 혹시 설치되어 있을지 모를 트랩과 보안을 탐색 마법으로 찾았다.

특별히 문제가 될 만한 부분은 걸리지 않았다. 그래서 라미아는 약간 실망해 버렸다. 침입자를 대비할 아무런 조치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은 그만큼 숨길 것도, 빼앗길 것도 없다는 뜻일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니야. 미리 포기할 일은 아니지. 어쩌면 일부러 그런 점을 노리고 아무 대비도 안 한 것일 수도 있잖아. 이런 걸 허허실실이라고 하지.] 강렬하게 반짝이기 시작하는 헛고생이라는 단어를 억지로 무시한 라미아는 다급히 3층에 있는 방의 문을 열어 보기 시작했다.

[여긴 다실(茶室)이고, 이곳은 욕실, 회의실은 아래층에 있는데 여기 또 있네? 여긴 빈방이고, 여긴 서재・・・・・・ 찾았다.]

과연 초인 기사단장의 저택답게 한 층에 적지 않은 방이 있었다. 그러던 중 라미아가 어느 방문 앞에 멈췄다. 방문을 여는 순간 이곳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책장에 가득한 책과 묵직해 보이는 책상, 그 위의 서류까지.

방에 들어선 라미아의 뒤로 조용히 방문이 닫혔다. 복도를 밝히던 빛이 사라지며 방 안이 캄캄해졌지만 라미아가 보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초 그녀의 눈은 생물의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눈으로서의 기능은 있지만, 눈으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뭔가 좀 나오면 좋겠는데. 콜 섀도우 서번트]

라미아는 작은 단서라도 나와 주길 바라며 그림자 하인을 소환해 냈다.

어둠이 가득한 방 안, 그보다 검은 그림자의 손이 유령처럼 나타났다. 담이 약한 자라면 놀라 멈춰 버린 심장을 부여잡을 장면이었다. 음차원에서 소환된 그림자이기 때문에 사실 유령이란 말이 틀리지도 않다.

[우선은 책부터 확인할까.]

책상을 힐끗한 라미아가 말했다. 그녀는 맛있는 부분은 아껴 두었다가 마지막에 먹는 타입이었다.

명령을 받은 그림자 손이 책을 뽑아 라미아 앞에서 펼쳐 들었다. 수십 개의 책이 그녀를 중심으로 파르륵거리며 넘겨졌다. 라미아는 전방위 시야를 통해 책의 내용을 동시에 읽어 들였다.

본래 신검으로 만들어진 그녀는 이해가 필요 없는 단순 작업에는 컴퓨터만큼이나 뛰어났기 때문에 책에 대한 확인은 순식간에 끝이 났다. 아쉽게도 책에서는 아무런 단서도 나오지 않았다. 라미아는 곧바로 책상 위의 서류를 확인했다. 발터와 전혀 관계없는 책과 달리, 서류는 그와 관계된 것들이었다. 그 개인과 초인 기사단에 관한 내용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분명 대외적으로 내돌릴 만한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납치범의 일당으로서의 발터의 존재에 대해서는 티끌만큼도 확인할 수 없었다. 이런 서류는 라미아가 찾던 것이 아니었다. 혹시나 하고 책상과 방 안을 구석구석 살폈지만 금고 같은 것도 없다.

[에휴~ 허허실실은 개뿔, 역시 지킬 만한 물건이 없어서 그냥 둔 거였어.]

실망한 라미아가 책상 위에 철퍼덕 주저앉았다. 결과적으로 괜히 시간만 낭비한 꼴이 되었지만, 저택까지 찾아와서 살펴보지 않을 수도 없는 노릇이기는 했다.

잠시 기운 빠진 채 앉아 있던 라미아는 아직 끝이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다른 방도 조사했다. 혹시나 비밀 공간이나 금고를 두지는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에 침실을 집중적으로 살폈지만 결과는 꽝이었다.

발터에 대해 듣고 신나서 달려왔던 것이 아까울 지경이다.

[이드에게 돌아가야 하나? 아니면 하염없이 수도를 뒤져?]

마음 같아서는 수도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탐색 마법이라도 쓰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놀라서 뛰쳐나오는 인간이 한둘이 아닐 게 분명했다. 정작 이드에게 상대가 이상하게 여길 행동을 하지 말라고 해 놓고 자신이 먼저 그런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일단 나갈까?]

더 이상 이곳에 있어도 의미가 없다. 라미아가 배의 노를 젓듯 무성의한 날갯짓으로 계단 근처에 다다랐을 때였다.

멈칫!

그러다 한순간, 갑자기 떠오른 생각에 그녀의 움직임이 딱 멈추었다. 그러더니 곧 힘찬 날갯짓으로 서재로 돌아갔다.

[그래! 굳이 범인이 남긴 흔적에 집착할 필요는 없는 일이잖아. 없으면 내가 만들면 되는 일 아니겠어? 그레센에 도감청 방지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라미아는 아공간을 뒤져 가장 작은 비디오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영상을 저장할 수 있는 아티팩트도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사용할 경우 발터에게 들킬 가능성이 있었다.

그러나 마나를 사용하지 않는 비디오카메라라면 어떨까.

라미아는 서재의 의자가 보이는 적당한 위치를 찾아 그 속을 파서 카메라를 집어넣고, 카메라의 렌즈가 향하는 부분에 눈에 띄지 않는 작은 구멍을 뚫었다.

히죽!

과연 어떤 영상이 찍히게 될까. 설치 작업을 마친 라미아의 입이 기대감에 음흉하게 벌어졌다.

[주기적으로 배터리와 메모리를 갈아 줘야 하지만 좋은 단서만 잡을 수 있다면 그 정도 수고쯤이야. 좋은 영상 부탁할게, 고양아~] 라미아는 마치 애완동물에게 하듯 벽을 살살 쓰다듬었다. 비디오카메라에 그려진 상표 로고가 고양이라서 이런 애칭을 붙인 듯했다. 일을 마친 라미아는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진 표정으로 저택을 빠져나갔다. 마치 며칠간 처리하지 못한 숙제를 처리한 기분일까.

라미아가 높이 자란 나뭇가지 위에 내려앉았다.

하지만 카메라를 설치하는 것으로 일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카메라는 어디까지나 이후를 대비한 카드이지, 지금 당장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오늘 밤 무슨 일을 하려는지도 알아볼 필요가 있어. 그렇지만 라울은 물론이고 발터에 대한 정보조차 너무 적어. 아무리 생각해도 데이터 없이 무작정 탐색하는 건 너무 비효율적이야.]

푸드드득

그때 고민하는 라미아의 옆으로 작은 새 한 마리가 날아들었다.

라미아는 녀석도 자신처럼 잠시 쉬어 가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이 아니었다.

꾸루루룩!

라미아를 이리저리 돌아보던 녀석이 목소리를 뽐내며 길게 울더니 몸을 비벼 댔기 때문이다. 라미아가 마음에 든 놈이 짝짓기 신호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푸하핫! 너 뭐니?]

그 황당한 상황에 라미아는 순간 조금 전까지의 고민도 잊고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제법 긴 시간 새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이런 경우는 정말 처음이었다.

[설마 새에게 구애를 받을 줄이야. 하긴, 내가 종족을 불문하고 매력적이긴 하지. 그런데 어쩌니? 난 이미 유부녀인데.]

꾸・・・・・・ 꾸룩?

구애 행위를 하던 작은 새는 라미아가 갑자기 인간의 말을 하자 놀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울었다.

라미아는 그런 모습이 귀여워 새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작은 새의 발목에 묶인 통이 눈에 들어온 것도 그때였다. 

[너・・・・・・ 일반 새가 아니었구나?]

꾸루룩?

라미아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작은 새가 다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흐음, 전서구라는 말이지.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라미아는 뭔가 그럴듯한 생각이 떠올라 턱을 쓰다듬었다.

[그나저나 넌 어떤 소식을 전하고 있는 거니?]

다행히 녀석의 발에 달린 통은 봉인되어 있지 않았다. 중간에서 열어 보아도 들키지 않는다는 뜻이다.

봉인되어 있는 통이라면 무시했을 것이다. 중간에 봉인이 뜯어진 통을 가져갔다가는, 제 임무를 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진 작은 새가 처분될 테니까. 과연 녀석의 발에 달린 통은 봉인되지 않을 만했다. 녀석이 배달하는 것은 음침한 비밀 정보가 아니라, 달콤한 연애편지였다.

작은 새가 라미아에게 다가온 것도 어쩌면 주인이 뿜는 분홍빛 기운에 감염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었다.

남의 연애편지만큼 재미있는 것도 드물다. 라미아는 꺅꺅거리며 편지를 끝까지 읽은 후 다시 통에 넣어 작은 새를 날려 보냈다. [그럼 나도 움직여 볼까?]

작은 새의 발에 달린 전서통을 본 순간 라미아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골렘 생성]

발터에 대한 정보가 없어서 문제라면 정보를 가진 자에게 사서 구하면 된다는 것이다.

[겸사겸사 자세한 조사 의뢰도 같이 넣자.]

골렘 생성 마법에 나무 아래 땅이 불룩 솟아오르더니 투박한 인간의 형상을 한 골렘이 생겨났다. 그 모습에 대충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라미아는 곧 이드의 정신력을 끌어와 자신의 모습을 가면으로 바꾸었다.

지금의 새처럼 섬세한 형태가 아니라서 변화는 순식간이었다. 라미아는 그 상태로 골렘의 얼굴 부위에 부착되었다.

아무래도 새의 모습으로 정보를 구매하러 갔다가는 여러 가지로 문제가 생길 것 같아 골렘을 사용해 가면을 쓴 사람인 척하려는 것이다.

골렘은 조잡한 사념체가 주인의 명령을 받아 움직인다. 라미아는 사념체를 조종하여 골렘의 명령 체계에 끼어들어 골렘의 몸에 대한 명령 체계를 온전히 자신에게로 돌렸다. 완전히 수동으로 변경해 실에 매달린 인형처럼 자기 뜻에 따라 움직이게 만든 것이다.

몇 번 손을 쥐었다 펴며 신호 계통을 확인한 라미아는 자신이 사용할 골렘의 몸을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음, 아무리 잠시만 쓸 몸이라도 예쁜 얼굴에 이 몸은 너무 안 어울려. 조금만・・・・・・ 다듬어 볼까?]

보는 사람도 없는데 주변을 살핀 라미아가 골렘의 신체를 조정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된 신체 조정에는 제법 긴 시간이 소모되었다. 적당한 선에서 끝내려 했던 것이, 도저히 눈에 차지 않아서 조금만 더 한다는 게 시간을 끌어 버렸다. 발터의 저택을 살피는 시간보다 몸을 만드는 데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공을 들인 만큼 골렘의 신체 비율은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비너스의 조각이라고 하면 누구도 이의를 달지 않을 모습이었다.

[좋아. 이 정도면 완벽해!]

인간의 모습일 때 아쉽던 부분까지 커버해서 탄생시킨 몸에 만족감을 보인 라미아가 로브를 꺼내 뒤집어썼다.

로브에 가려진 몸은 희미한 라인만 겨우 드러났다.

로브로 가려 티도 나지 않을 몸을 왜 그리 공을 들여 다듬은 것일까? 이드가 보았다면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행동에 고개를 저었을 것이 분명했다. 로브로 꼼꼼히 몸을 가린 라미아는 곧 방향을 정하고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그녀가 향하는 곳은 거칠고 음험한 암흑가였다.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