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283화
720화
세 사람이 긴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쌍둥이 지부장이라서 그런지 책상도 회의용 탁자처럼 길었다.
“실로 아름다운 분께서 저희 지부를 찾아 주셔서 영광입니다.”
틸이 입에 발린 멘트를 날리며 대화를 시작했다.
[거리에서도 그 비슷한 말을 한 사람이 있었는데, 가면 안이 보이나요?]
이자도 밖에 있던 남자처럼 얼굴의 형태나 가면의 형태를 보고 얼굴을 짐작하나 싶었다. 당연히 가면을 꿰뚫어 본다는 추측은 없다. 만약 그런 능력이 있다면 저렇게 태연하지 못할 테니까. 심혈을 기울인 몸과 달리, 가면 안의 얼굴은 달걀귀신의 얼굴처럼 매끈하니까. 진짜 가면을 투과해서 얼굴을 봤다면 기겁을 하지, 저렇게 태연한 얼굴은 하지 못할 것이다.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볼 수 있다고 해도 절대 봐서도, 궁금해해서도 안 되는 일이지요. 그저 순수하게 가면을 말한 것입니다. 저희 지부를 찾으시는 많은 분들께서 가면을 쓰시기 때문에 저희들은 그분들의 가면을 진짜 얼굴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물론 거짓말이다. 도둑 길드에서는 고객이 찾아옴과 동시에 그들의 정체를 알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해당 고객이 특정 정보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또 다른 정보가 되니까.
하지만 라미아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가면으로 만들어 낸 얼굴이 인간의 모습일 때의 얼굴이기 때문이다.
[뭐, 기분 나쁜 말은 아니지만 별로 신뢰도 가지 않네요. 결국 가면을 쓴 사람은 모두 미남 미녀일 것이 아닌가요?]
“꼭 그렇지도 않습니다. 고객분들 중에는 오크나 늑대 등의 가면을 쓰시는 분도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미남, 미녀에, 몬스터, 동물 가면까지. 문득 궁금해서 물었다.
[마치 가면무도회 같네요. 그런 사람들의 가면도 잘생겼다고 하나요?]
“취향에 따라 드리는 편입니다. 오크의 송곳니가 멋지다거나, 털이 멋지다거나.
라미아는 센스 있는 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물었다.
[뭐, 시답잖은 이야기는 이만하고・・・・・・ 발터에 대한 정보를 원해요.]
“발터라는 이름은 수도에 여럿 있지만, 이름이 알려진 분은 한 분뿐입니다만…….”
갑자기 툭 튀어나온 용건에 반달로 휘어져 있던 지부장의 눈빛이 강렬해졌다.
[그 사람이 초인 기사단장이라면 맞아요.]
“오늘 파티에 발터 경도 참가했다고 알고 있습니다. 거기서 호감을 느끼셨나 보군요.”
아마 저 말에 대답하면 파티 참가자 중에 라미아를 찾으려 할 것이다. 낚시용 멘트라는 말이다.
‘하지만 저들이 이드 어깨 위에 엎드려 있던 날 찾을 가능성은 한없이 제로에 가까우니까.’
만에 하나 찾아낸다면? 그런 정보력이라면 억만금을 내고서라도 도둑 길드 정보지를 사 봐야지. 그런 의미에서 간단히 고개를 끄덕여 주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한 마디도 않던 텔이 서랍에서 서류 봉투를 꺼내며 말했다.
“발터 경에 대한 어떤 정보를 원하십니까? 저희는 그분에 대한 여성 취향, 자금 사정, 친분 관계 등 다양한 자료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인상도 그랬지만, 정말이지 지금 모습은 자신의 물건을 소개하는 장사꾼을 보는 것 같다. 아무리 기사들이 얕잡아 보는 도둑 길드라도, 한 지역을 관리하는 지부장의 힘과 권위는 결코 작은 것이 아니다. 그 정도의 위치가 되면 상당한 권한과 힘을 휘두르며 어지간한 귀족 이상으로 누리며 살아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이 두 지부장은 그렇지 않다. 어쩌면 그들의 말대로 안티로스를 담당하는 지부장이기 때문에 그런지도 몰랐다.
‘언제 후작이나 공작, 하다못해 놀러 나온 황녀나 황자가 가면 뒤집어쓰고 방문하는 일이 없을 거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어. 다름 아닌 제국의 수도에서 말이야.’
그리고 만에 하나 그런 귀인들에게 실수했다가는 아무리 전 대륙적인 길드라도 뒷감당이 무섭다. 아니, 무서운 정도로 끝날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이지, 까딱하다가는 동료들의 손에 가죽이 벗겨질 수 있다.
확실히 그런 위험을 감수할 바에야 도둑 길드와 좀 어울리지 않더라도 고객 감사, 고객 친절 서비스를 모토로 지부를 운영하는 것이 차라리
현명할지도.
[그에 관해서 길드가 가지고 있는 모든 정보를 원해요. 그중에서도 인간관계와 특이 사항을 최우선적으로 정리해 줘요.]
“모든 정보를 요구하시는 거라면 가격이 상당합니다. 발터 경이 유명한 만큼 만난 사람은 적지 않습니다.”
“발터 경과 관련된 사건 사고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틸과 텔이 번갈아 가며 말했다. 가만 보니 인물에 대해서는 틸이, 사건에 대해서는 텔이 담당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들이 전문 분야를 둘로 나누든 셋으로 나누든 무슨 상관인가. 라미아는 무심한 손길로 미리 준비한 주머니를 꺼내 들었다.
[자료가 많으면 많을수록 내 돈을 더 많이 가져갈 수 있을 거예요.]
살짝 벌어진 주머니에서 황홀한 보광이 피어올랐다. 발터가 중요 인물인 만큼 골덴이 아니라 보석으로 준비했다. 오로지 고객 친절을 외치던 두 지점장이 그 빛에 홀려 꼴깍 침을 삼켰다. 지부장이라지만 도둑의 본능이 꿈틀거리는 모양이다.
그러나 라미아를 앞에 두고 엉뚱한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기엔 라미아의 실력도 문제지만, 라미아의 신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보석을 본 후에는 더욱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 정도 물건을 정보료로 내어놓을 정도라면 보통 대단한 신분이 아니라는 뜻일까.
“실례지만 감정을 해 봐야 합니다.”
[당연해요. 그쪽도 가치를 알아야 계산이 가능할 테니까.]
라미아가 허락하자 틸은 그 즉시 감정사를 불러 보석을 감정했고, 텔은 지부에 있는 발터에 대한 정보를 모두 긁어모았다. 저만한 보석이라면 돈이 모자랄 일은 없기 때문이다.
서두른 덕분일까, 자료 정리가 잘 되어 있기 때문일까. 보석의 감정보다 두툼하게 쌓인 자료가 먼저 라미아 앞에 놓였다.
물론, 감정사가 몇 개의 보석을 특상의 진품으로 감정을 내린 뒤였다.
“지부에서 보유한 발터 경에 대한 모든 자료입니다.”
[그럼 지부 말고 다른 곳에 자료가 더 있다는 건가요?]
“사소한 차이가 있을 뿐입니다.”
라미아는 시간 순서에 따라 잘 정리된 서류를 한 장 들어 읽으며 말했다.
[그럼 그 자료도 준비해 줘요. 그리고 감시와 추적 의뢰도 가능하죠?]
“대상은 발터 경입니까?”
틸의 표정이 신중해졌다. 돈 되는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도둑 길드도 제국 초인 기사단장 정도면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불가능?]
라미아가 갸우뚱하며 너희도 별수 없구나 하는 눈을 하자, 틸이 즉시 고개를 저었다.
“당연히 가능합니다. 그러나 강력한 초인기를 가진 발터 경을 가까이서 감시할 수 없기 때문에 많은 인원으로 멀리서 감시해야 하는데,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일 겁니다. 또 발각될 수 있는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일에 나선 조직원의 처리 비용까지 계산하면 굉장한 액수가
나옵니다.”
즉, 가성비가 최악이란 말이다. 하지만 그런 이유에서라면 세상에서 가장 걱정 없는 두 사람이 바로 이드와 라미아다. 거짓말 없이 두 사람에게 남아도는 것이 돈이니까.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아요. 의뢰하겠어요.]
라미아가 거침없이 질렀다. 그녀의 말에 맞춰 감정을 마친 감정사가 이마의 땀을 닦으며 묵직하게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의뢰 비용이 모자라는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대신 고객님께 한 가지 미리 양해를 구할 일이 있습니다. 발터 경에 대한 고객님의 정보가 대상에게 넘어갈 가능성이 있습니다.”
[알아요. 용병 길드와 달리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가면을 쓰는 이유잖아요.]
“그것과는 조금 다른 의미입니다. 짐작하실 테지만 발터 경 뒤에는 초인 연맹이 있습니다.”
[초인파와 다른 건가요?]
초인 연맹을 아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 말하는 틸을 향해 라미아가 말했다.
틸은 라미아가 초인 연맹에 대해 알지 못하는 듯하자 초인 연맹에 대해서 우선 설명했다. 이것도 판매되는 정보지만, 거액을 뿌리는 고객에게 이 정도는 서비스가 가능했다.
초인 연맹.
초인파가 제국 내부에서 초인들을 중심으로 모인 권력 파벌이라면, 초인 연맹은 전 대륙의 초인들을 한데 묶는 거대 연맹체였다.
“이해하기 쉽게 초인들만 가입할 수 있는 길드라고 보시면 됩니다.”
틸이 더한 간단한 추가 설명이 핵심을 찔렀다.
초인 연맹은 초인들이 세상에 인정받지 못하고 박해를 받을 때 초인들이 자신들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고, 나아가 초인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힘은 모아 만든 것이었다.
연맹인 이유도 ‘초인’이라는 한 가지 이유로 뭉쳤을 뿐, 각자 출신 국가와 생각, 목표가 다르기 때문이다. 국가에 속한 초인은 기사처럼 국가의 명령에 의해 타국의 초인과 목숨, 명예를 걸고 싸운다. 하지만 초인들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는 한마음 한뜻으로 손을 잡는다.
그런 연맹의 이름 아래 뭉친 초인들의 동료 의식은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자신이 속한 곳에서 아는 초인을 해할 것 같으면 그것을 미리 알려 줄 정도라는 것이다.
“그리고 저희 길드 안에도 초인들이 제법 많이 있습니다.”
[즉, 그들이 제 의뢰를 발터에게 알릴 거라는 거군요.]
알고는 있었지만 이 정도인지는 몰랐다. 설마 정보를 파는 것도 아니고, 길드의 초인들이 먼저 나서서 발터에게 적극적으로 알린다니! 사실 알려지더라도 상관은 없다. 파티장에 갔다 왔냐는 지부장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 이유와 같이, 저들이 라미아의 정체를 알아낼 수는 없을 테니까. 다만 초인 연맹이라는 조직에는 마음이 쓰였다.
“조심은 하겠지만 아마 반드시 새어 나갈 것입니다.”
길드의 지부장이 자신의 지부에서 정보가 샌다고 확신하는 모습이라니.
[상관하지 않아요. 그런데 의외네요. 도둑 길드에서는 그런 일을 그냥 두는 건가요?]
“피해가 없으니까요. 옛 고객이 떠나간 대신 새로운 고객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정보를 넘긴 조직원들이 조직을 배신한 것도 아니니까요. 조직을 배신하지 않고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최대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이 저희 길드의 자랑이죠.
정확히는 자랑이라기보다는 어쩔 수 없는 약점이다.
[그런데 이 정보가 알려지면 발터에 대한 감시는 괜찮은 건가요?]
“문제없습니다. 발터 경에게 고객님의 존재를 알리는 것과 감시하는 조직원의 존재를 알리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입니다. 배신이죠.”
단정적인 말과 함께 두 지부장의 입가로 떠오른 미소에 피비린내가 풍기는 듯했다.
라미아가 발터에 대한 자료를 챙겨 넣자 텔이 금화가 든 주머니를 가지고 왔다.
“거스름돈입니다.”
주머니에는 백 개가 넘는 골덴이 들어 있었다. 라미아는 주머니를 챙기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의뢰 잘 부탁해요.]
“믿고 맡겨 주시기를. 그런데 자료와 감시 사항에 대한 정보는 어떻게 확인하시겠습니까?”
이야기가 잘됐다고 방심하는 순간을 노린 것일까. 또 낚시질이다. 집으로 가져다 달라고 할 것 같았으면 가면을 왜 썼겠는가.
[훗, 이틀 후 찾아오죠. 그 후 제가 원할 만한 정보를 알게 되면 지붕에 깃발이라도 올려 두세요. 달려올 테니까.]
라미아는 짧게 손을 흔들고 지하실을 나갔다. 두 지부장은 라미아가 들어올 때와 같이 허리를 숙여 보였다.
그리고 곧 허리를 편 두 지부장은 문을 열고 정신없이 명령하기 시작했다.
“황궁 파티 참석자 명단 가져와!”
“미녀 가면의 행적 역추적 시작하고, 멀리서 감시 붙여.’
“미녀 가면에 당한 멍청이 데려와서 어떤 수법에 당했는지 확인해.”
멈추지 않고 쏟아내는 명령에 지부의 조직원들이 정신없이 사방으로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크를 호출해.’
틸이 호출 명령을 끝으로 문을 닫았다.
“마크는 왜?”
“당연한 걸 왜 물어? 발터 경에게 정보를 팔아야지. 어차피 샐 거라면 돈이라도 벌어야 하잖아. 안 그래?”
삐죽이 웃는 틸의 모습에 텔이 끌끌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심전심. 이런 일은 굳이 쌍둥이가 아니라도 충분히 마음이 통하는 일이었다.
지부의 문을 나선 라미아는 블링크와 플라이 마법을 사용해서 혹시 있을지 모를 미행자를 떨구고 암흑가를 벗어났다. 두 지부장이 제법 친절하게 점잔을 떨었지만, 도둑 길드의 근본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들의 미행은 기본 사항이라고 짐작했기에 취한 행동이었다. 그리고 그 짐작대로 그 시각, 라미아의 미행자들은 지부에서 나가 보지도 못하고 놓쳐 버린 목표에 허망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 말고도 서두른 이유는 있었다.
[이드, 기쁜 소식이에요. 발터에 대해서 확인해 볼 만한 정보를 얻었어요!]
이어진 마음으로 기쁜 소식을 전하는 라미아의 손에는 미리 챙겨 둔 서류 두 장이 들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