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284화
721화
“알았어. 바로 갈게!”
라미아의 말을 전해 들은 이드가 파티장을 떠났다.
이런 큰 파티는 새벽까지 진행되는 것이 보통인데, 주인공이 겨우 자정이 넘은 시간에 돌아가니 여러 사람이 아쉬워했다. 그러나 다른 이들이 가볍게 파티를 즐길 수 있도록 황제와 황녀도 빠진 이상, 이드를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쯧, 주인공이 이렇게 빨리 가다니. 예의 없는 사람이군.”
“우리도 이만 돌아가지.”
이드가 빠지자 그를 보기 위해 파티에 참여했던 사람들도 하나둘 발길을 돌렸다. 주인공과 중요 인사들이 빠진 파티는 빠르게 열기가 식었다. 그러나 파티는 의외로 금방 끝나지 않았다.
“으악! 올해 들어 가장 큰 파티인데 이렇게 끝난다고?”
“여기 오려고 빚을 내서 옷과 장신구를 샀단 말이야. 억울해서 그냥은 못 가!”
“그래. 우리끼리라도 놀자!”
밤을 새워 즐길 각오로 파티에 참가한 처녀, 총각들이 파티의 열기를 놓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쳤기 때문이었다.
결국・・・・・・ 오래가진 못했지만 말이다. 셀럽들이 빠진 자리는 그들의 젊음으로도 도저히 채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시각. 자신이 불타는 젊음에 찬물을 뿌렸다는 사실을 알 길 없는 이드는 수도의 지붕 위를 스치듯 날고 있었다. 당연히 실제 비행은 아니고 뇌령전궁보의 경공이었다.
희미하게 사라졌다 멀리서 나타나는 모습은 유령을 빼다 박았다. 달밤에 체조하러 나온 사람이 있다면 백이면 백 유령이라고 소리칠 것이 분명했다. 그렇게 속도를 낸 덕분에 이드는 금방 라미아와 합류할 수 있었다.
“너, 너! 그 모습은 어떻게 된 거야?”
이드는 어두운 그림자 아래 숨어 손을 흔드는 라미아의 모습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 중간에 라미아의 요청으로 정신력이 소모되기는 했지만, 그건 소량이었다. 결코 지금과 같은 인간의 모습을 할 수 있는 양이 아니었다.
[어때요? 이쁘죠?]
“이쁜 건 당연하고, 무슨 수를 쓴 거야? 내 정신력 없이 인간의 몸을 회복할 방법을 구한 거야?”
이드는 궁금함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라미아가 입고 있는 로브를 들추었다.
[아잉! 길에서 부끄럽게~]
그 행동에 라미아가 몸을 꼬며 이드의 머리를 퉁퉁하고 때렸다. 오랜만에 인간의 모습을 해서일까. 골렘의 몸이지만, 로브가 치마처럼 느껴져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드는 그 충격도 느끼지 못하고 타이즈를 입은 듯 검은 라미아의 몸을 살피고 있었다. 살짝 만져 본 손가락 끝에서는 인간의 것이 아닌, 도자기처럼 매끄럽고 단단한 감촉이 느껴졌다.
[우~ 그만 봐요.]
이드가 하염없이 자신의 다리를 바라보자 라미아가 그의 머리를 밀어냈다. 이드는 그제야 정신이 들어 들추었던 로브를 바로 하고는 한 발 물러났다.
“미안, 네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깜짝 놀랐어. 그런데 이제 보니 인간의 몸은 아니네. 그래도 이상하지. 네가 가져간 정신력으로는 인간의 몸을 만들기에 턱도 없잖아.”
라미아는 쉽게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이드의 모습에 손가락으로 브이를 만들어 보였다. 의기양양하게 웃어 보인 라미아는 골렘의 몸을 빌려 도둑 길드에 다녀온 사실을 이야기했다.
[이런 걸 바로 발상의 전환이라고 하는 거죠.]
“발상의 전환까지는 모르겠지만, 대단하잖아. 왜 더 빨리 그런 생각을 못 했지? 그럼 편하게 같이 다닐 수도 있었을 텐데.”
라미아가 작은 새의 모습을 하고 있어서 애정 표현 등에서 소홀할 때가 많았던 이드가 아쉬워하며 말했다.
[그렇죠? 진작 알았으면 파티의 파트너 자리를 황녀에게 넘기지 않아도 됐는데. 하지만 분명 알아 둬야 할 건 골렘을 이용한 방법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이라는 거예요. 노 페인 노게인. 편하게 골렘만 사용하다가는 평생 인간으로 돌아가지 못해요. 그러니 게으름 피우지 말고 열심히 해요.]
뭐, 파티 전에 알았어도 가면무도회가 아닌 이상 라미아와 입장하기는 여러모로 곤란했겠지만.
잔소리 같기는 하지만 하나도 틀린 말이 없어 이드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오랜만에 네가 인간 형태로 있으니까 좀 더 의욕이 나. 그래도 인간의 모습은 정말 오랜만이다. 기분이 묘한걸?”
말과 함께 요리조리 뜯어보는 이드의 모습을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던 라미아가 피식 웃으며 손을 벌렸다.
[그건 나도 그러니까. 이리와봐요. 오랜만에 한번 안아 보게.]
“안아 보긴. 내가 안아 줘야지.”
두 사람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를 안았다. 비록 골렘의 딱딱한 몸이었지만 오랜만의 포옹은 가슴에 따뜻하게 녹아들었다. 그러다 이드가 말했다.
“그런데 오랜만이라서 그런가? 가슴하고 허리, 엉덩이 크기가 미묘하게 다른 느낌이 나는데?”
[당연히 오랜만이라서 그런 거죠. 사소한 일은 두고 이거부터 봐요.]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드를 밀어낸 라미아가 두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딱 봐도 억지로 그 주제를 피하는 것 같았지만, 이드는 그냥 모른 척하고 그녀가 내민 종이를 건네받았다. 어쩐지 자신이 느낀 미묘한 차이를 파고들면 위험할 거라는 본능의 경고 때문이었다.
대신 이드는 종이의 내용에 집중했다.
“발터 경에 대한 정보네?”
[맞아요. 이 두 장에는 그의 가장 최근 행적에 대해 적혀 있죠. 여길 읽어 봐요.]
곁으로 다가온 라미아가 종이의 한 부분을 긴 손가락으로 짚어 보였다. 거기에는 발터가 과거에 도합 3차례 방문했던 수도 외곽의 저택에 대해 적혀 있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그 정보 아래 기입된 도둑 길드의 분석이었다.
“해당 저택의 소유주는 마스의 상인으로 확인되었으나, 발터 경과의 연관 관계를 확인할 수 없다. 그런데도 발터 경이 해당 저택을 은밀히 삼회 이상 방문한 것으로 보아 해당 저택은 초인 기사단 또는 초인 연맹의 비밀 거점 중 하나일 가능성이 의심된다.”
적혀 있는 내용을 모두 읽은 이드가 종이를 반으로 접으며 라미아를 돌아보았다.
“확실히 여기 적힌 대로일 가능성이 커 보여. 가 볼 필요가 있겠어.”
[이드가 보기에도 그렇죠?]
“응. 도둑 길드를 찾은 건 정말 잘한 일인 것 같아.”
이드의 칭찬에 라미아가 ‘에헤헤’하고 웃었다.
“그럼 바로 이 저택부터 가 보자.”
목적지를 정한 이드는 즉시 라미아의 허리를 감았다. 플라이 마법을 사용하는 것보다 이드가 그녀를 안고 뛰어가는 것이 발각될 위험이 낮기 때문이다.
[유후~ 오랜만에 안겨 보는걸요.]
라미아의 장난스러운 말과 함께 두 사람이 건물 위로 날아올랐다. 아름답지만 백오십 킬로그램으로 무거운 골렘의 무게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가벼운 움직임이었다.
어느 저택의 지하 밀실.
탁자와 소파를 제외하곤 아무런 가구도 없는 그곳에 라미아가 놓쳐 버린 세 남자가 있었다. 소파에 나란히 앉은 그들의 앞에는 다양한 종류의 술과 안주가 펼쳐져 있었다.
모두 라울이 준비하고 꺼내 놓은 것이었다. 재미있는 구경거리에는 먹거리가 필수라면서.
그러나 발터에게는 술을 들이켜는 모습이 여간 못마땅한 것이 아니었다.
“쓸데없는 짓 말고 빨리 영상이나 연결해. 그럴 생각 없다면 난 저택으로 돌아가 쉬겠다.”
발터가 짜증 난 목소리로 말했다. 어지간해서는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에게 라울은 천적이었다. 중요한 작전을 관전하면서 술과 안주라니. 정말 볼 때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알았으니까 조르지 마라. 그렇지 않아도 시작할 생각이었다고. 돌아라!”
하지만 라울은 그런 발터의 기분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허공에 커다란 황금색 수레바퀴를 만들어 회전시켰다.
화르륵.
그러자 수레바퀴 안쪽에 희미한 영상이 나타나며 수레바퀴가 급격히 작아지더니 성인 손바닥 두 개 크기로 줄어들었다.
“왜 이렇게 작아?”
“어쩔 수 없어. 여기에 서포트해 줄 비서들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어차피 안 보이는 것도 아니잖아. 그냥 봐라. 마침 이제 막 움직이는 것 같으니까.”
아닌 게 아니라 누군가의 시야를 빌린 듯한 화면의 움직임이 은밀해지고 빨라졌다.
그 모습에 투덜거리던 발터와 칸의 머리가 라울의 옆으로 모여들었다.
다 큰 남자 세 명의 머리가 한데 들러붙은 모습은 수레바퀴 안의 영상 이상으로 볼 만한 것이었다.
[이 저택이에요.]
라미아가 멀리 보이는 한 저택을 가리켜 보였다. 서류에 나와 있던 저택이 분명했다. 이드는 그녀를 안고서 저택의 대문 앞에 내려섰다. 깊은 밤 어둠이 내려앉은 저택은 을씨년스러웠다.
“아무리 밤이라지만 너무 조용한 거 아냐? 마치 빈집 같은데?”
[그러게요. 정보대로라면 발터와 상관없이 살고 있는 사람이 있을 텐데.]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본 이드와 라미아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무공과 마법, 각자의 전문 분야를 이용해서 저택의 내부를 탐색했다. 그러나 결과는 밖에서 보이는 그대로였다. 아무런 기척도 없이 텅 비어 있었다.
[심지어 거미줄까지 생겼어요. 집이 빈 지 최소 일주일은 넘은 거 같아요. 아무래도 한발 늦었나 봐요.]
저녁부터 연이어지는 허탕에 라미아가 의기소침해졌다.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니까 안에 들어가서 좀 더 찾아보자.”
이드는 그런 라미아를 안고서 저택의 담을 넘었다. 대문은 잠겨 있었지만, 저택의 문은 따로 잠겨 있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저택 안으로 들어서고 바로 알 수 있었다. 저택 안은 생명체 뿐 아니라 가구나 장식물 하나 남아 있지 않고 텅 비어 있었다. 도둑의 신이 와도 훔쳐 갈 물건이 없을 정도였다.
“아하하, 참 알뜰하게도 챙겨 떠났네.”
비밀 거점이란 단어와 어울리지 않게 세간살이를 살뜰히 챙기는 모습을 상상한 이드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에 라미아가 속이 상한 듯 가슴을 두드렸다.
[지금이 웃을 때예요? 무작정 넓은 수도를 이드와 나 단둘이서 뒤져야 하는데.]
도둑 길드에서 저택에 대한 정보를 얻은 것처럼, 저택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았으면 그걸 단서로 찾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것도 없으니 이젠 정말 발로 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드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정말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면 마음이 급했으리라. 하지만 쉽게 끊어 버리기 힘든 발터라는 굵은 꼬리를 잡았으니 급할 것이 없었다. 오늘 밤 그들이 무슨 짓을 할지 궁금하긴 했지만, 몰라도 상관은 없는 일이었다.
“차라리 오랜만에 밤 산책 나왔다고 편하게 생각해.”
[칫, 혼자만 기분 내고 있어요. 아, 난 더 이상 모르겠으니까 이드가 알아서 해요.]
“알았어. 아, 나가기 전에 혹시 모르니까 지하도 살펴보자.”
지하실로 향하는 계단이나 통로를 발견하지는 못했지만, 지하실이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드는 말과 동시에 발을 굴렀다. 쿵!
가슴을 두드리는 묵직한 진동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 진동에는 이드가 미세하게 뿌려 둔 내공이 담겨 레이더의 초음파처럼 땅속의 정보를 알려 왔다.
그리고 이드는 그 진동으로 뜻밖의 흔적을 찾을 수 있었다.
“어라? 여기 지하실의 흔적이 있는데?”
[지하실이요?]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분명 무너지고 부서지긴 했지만 깨진 돌의 흔적이 건물의 형태를 이루고 있었다.
“이거 밤 산책이 아니라 땅굴 탐험을 하게 생겼는데? 노움, 나와 볼래?”
이드는 말과 동시에 노움을 소환했다. 그리고 땅굴을 파 무너진 지하실을 발굴하게 했다.
꾸드드드득!
하급의 정령인 노움은 강력한 소환자의 힘을 빌려 순식간에 지하로 통하는 통로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한발 앞서 지하로 내려가 지하실을 발굴했다.
정말 순식간에 일이 끝나 버렸다. 이런 모습을 볼 때면 정령술의 대단함을 새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럼 내려가 볼까?”
이드가 라미아의 손을 잡고 땅굴에 발을 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