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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285화


722화

통로를 통해 지하로 내려가자 바닥에 깔아 둔 돌이 밟혔다. 벽이나 천장과 달리 흙 위에 놓여 있는 돌이라서 흩어지지 않은 것 같았다. 지하실은 대략 원래의 40% 정도가 복원되어 있었다. 천장과 벽이 들쑥날쑥하고 부서진 돌과 나무가 삐져나와 있지만, 처음 상태 그대로 복구하길 바랄 수는 없는 일이다.

무엇보다 몇 분 되지 않는 짧은 시간에 끝난 발굴이다. 사람이 직접 했다면 며칠이 걸려도 끝나지 않았을 테니, 투자 시간 대비 복구 정도를 생각하면 만족하다 못해 감사해야 할 판이다.

물론 이것은 모두 충분하다 못해 넘치도록 마나를 보급해 주는 이드를 백으로・・・・・・ 아니, 계약자로 둔 노움이 신명 나게 일을 잘해 준 덕분이겠지만 말이다.

“잘했어, 노움.”

칭찬에 기분이 좋은지 노움이 갈색 미소를 지었다.

[라이트!]

주먹만 한 크기의 라이트 여러 개를 만들어 주변을 밝혔다. 빛 한 점 들지 않는 지하는 강력한 하나의 광원으로 밝히는 것보다, 작은 광원을 넓게 퍼트리는 것이 시야 확보에 더 효과적이다.

“자, 뭐가 나오려나?”

이드는 라미아와 노움을 데리고 안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멀쩡한 지하실을 무너트렸다면 이곳에 무언가 남아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기대감도 없잖아 있었다.

그러나 끝까지 살펴본 지하실은 비정상적일 정도로 깨끗했다. 한 번 완전히 무너진 지하실인데 바닥에 흙 한 점 남아 있지 않았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이드와 라미아의 시선이 노움에게 향했다.

“알았다. 네가 범인이구나.”

갸우뚱.

이드의 단정과 달리 범인이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한 노움의 고개가 의문을 담고 기울어졌다. 하기야 정령 사회에 범인이라는 단어가 있을 턱이 없지 않은가.

[복구하라고 했더니 흙과 나무를 원래 자리에 두고 나머지는 전부 다 밖으로 밀어 버린 거지?]

하지만 이어진 라미아의 보충 설명에 노움은 아기 같은 밝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 그러니 아무것도 없지.”

사실 노움을 탓할 일도 아니다. 원래 명령이 지하실 복구였으니까. 노움은 그 명령에 충실하게 따라, 지하실을 이루는 건축 자재를 제외하고 안에 있던 물건을 모두 빼 버린 것이다.

“음, 그럼 이 주변에서 땅속에 있지 않을 만한 물건을 끄집어내 달라고 해야 하나?”

[그건 좀 아니죠. 세상 물건 중에 땅에 묻혀 있지 않은 게 있겠어요? 돈부터 시작해서 사람까지. 땅속에 없는 게 없을 걸요?]

그러면서 그녀는 수도에 있는 땅만 파도 암매장된 시신 수백 구는 나올 거라고 장담했다. 이드는 그 말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노움과 눈을 맞추고 말했다.

“노움, 이 주변 오십 미터 안에 흙과 돌을 제외한 모든 물건을 가져와 줄래?”

끄덕끄덕.

고개를 끄덕인 노움은 물속으로 뛰어들듯 토벽 속으로 달려 들어갔다. 그리고는 그 안에서 커다란 상자를 가지고 나왔다. 동시에 사방의 벽과 천장에서 다양한 물건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속에는 노움이 들고나온 것보다 작은 상자와 찌그러진 냄비, 깨진 유리 조각, 그리고 썩다 만 시체 등이 있었다.

“응? 시체?”

또 칭찬해 달라고 상자를 들고 온 노움의 머리를 쓰다듬던 이드는 천장에서 떨어지는 시체를 보고는 반사적으로 손을 뻗었다.

팟!

허공섭물의 묘리가 공간을 채우자, 비처럼 쏟아져 내리던 잡동사니가 정지된 화면처럼 멈추었다. 그 속에는 과연 말라비틀어진 미라가 한 구 끼어 있었다. 이드는 시체만 자신 앞으로 당겨 왔고, 그사이 또 떨어져 내리는 세 구의 시체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후 더 이상 떨어지는 물건이 없자 허공섭물을 이용하여 잡동사니를 뒤져 살펴볼 만한 물건을 찾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다섯 구의 말라비틀어진 시체와 두 개의 상자를 찾을 수 있었다.


한참 정신없이 영상을 들여다보고 있던 라울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고개도 돌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참, 이번에 폐쇄한 거점 마무리는 잘됐지?”

“흥!”

발터는 라울의 질문에 옷깃이 날릴 정도의 강렬한 코웃음으로 답했다. 그리고 발터를 대신해 칸이 급하게 대답했다.

“확실히 처리되었습니다.”

사실 거점 폐쇄 같이 사소한 일은 발터가 신경 쓸 만한 일이 아니었다. 가끔 한 번씩 터지는 라울의 저런 질문이 친근감의 표시인지 무신경인지 헷갈렸다.

한편 질문을 받았기 때문에 반사적으로 떠오르는 생각도 있었다. 폐쇄를 명령한 것이 그였기 때문인 것도 있지만, 지하실을 흔적 없이 매몰시키기 위해 직접 나섰기 때문이었다.

그 기억에 따르면 폐쇄는 완벽했다. 지상에도 지하에도 티끌 하나 남아 있지 않았다.

‘아무렴. 지하실을 처리하러 내가 갈 걸 아는데 허술하게 일을 할 놈은 없지.’

그러나 찝찝함이 느껴지는 것은 어째서일까. 동시에 문득 거점을 폐쇄하게 만든 랜달이 굉장히 익숙하게 초인들의 가슴과 머리에 지팡이를 박아 넣고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발터는 바로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그때 시체는 분명 놈이 모두 태웠으니까. 그리고 마지막으로 확인할 때는 남은 건 없었어.’

발터는 괜히 떠오른 생각을 지워 버렸다. 거점의 이야기가 나와 기분 나쁘게 자리 잡은 랜달의 기억이 떠오른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결과적으로 발터의 감은 의외로 날카로운 것이었다. 이드가 그 시신을 앞에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크고 작은 상자에서 나온 것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큰 상자에는 밀가루가 들었었고, 작은 상자에는 백삼십오 골덴이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코 작은 돈은 아니지만, 이드와 라미아에게 있어서는 밀가루만큼이나 의미 없는 것이었다.

[그나마 돈은 이해하겠는데, 밀가루는 땅에 왜 묻어 둔 걸까요?]

묘한 궁금증에 사로잡힌 라미아를 뒤로하고 이드는 미라를 살폈다. 그리고 몇 가지 수상한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첫째는 미라가 된 시체의 상태에 비해서 옷이 너무 말짱하다는 점. 둘째는 시체가 일반적인 시체처럼 썩고 있다는 점.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시체의 심장과 머리에 뚫려 있는 구멍. 저택에 아래 묻혀 있기에는 매우 이상한 시체였다.

혹시 주인이 기묘한 취향의 연쇄 살인마라면 또 모르겠지만…….

“밀가루 그만 만지고 이것 좀 살펴봐.’

이드의 재촉에 밀가루 상자를 뒤집고 있던 라미아와 그녀를 따라 하던 노움이 다가왔다.

[흐음, 모기에게 피를 빨린 것 같네요.]

“이런 크기의 구멍을 만드는 모기라면, 그건 모기가 아니라 몬스터지.”

이드의 말에 피식 웃은 라미아가 시체를 자세히 살피고는 말했다.

[자세한 건 모르겠지만 누군가 이 사람이 가진 모든 에너지와 영혼을 빨아낸 것 같아요.]

“발터의 흔적을 찾아왔는데, 초인이 아니라 흑마법사라고?”

과연 영혼과 에너지 갈취라고 하면 대표적으로 흑마법이 떠오른다.

[글쎄요. 하지만 흑마법이 아닐 수도 있어요. 영혼과 에너지를 뽑아내는 방법은 흑마법이 아니라도 있으니까요. 반대로 흑마법 특유의 흔적이 없는 걸 보면 오히려 흑마법 계열이 아닐 가능성이 커요.]

“그럼 발터와 관련된 초인이나 다른 마법사일 수도 있다는 거네. 시체에 특이한 점은 없고?”

도리도리.

[없어요.]

“흐음.. 생명의 관 말이야. 거기 초인파에서도 투자하고 있다고 했잖아. 혹시 이 시체들을 만든 것이 마법사라면 거기하고 관련 있지 않을까?” [그럴 수도 있지만 가능성은 반반인 것 같아요.]

결국 확인하기 전에는 모른다는 소리다.

“그럼 한 구만 따로 챙기고 나머지는 태우도록 하자.”

이드는 정령을 소환하여 네 구의 시체를 연기조차 남기지 않고 하얗게 태우고, 한 구는 관에 넣어 아공간에 보관했다.

상자에서 나온 골덴도 챙겼다. 마음 같아서는 일을 잘해 준 노움에게 용돈으로 주고 싶지만, 정령이 골덴을 가지고 뭘 할 수 있을까.

“가만 안될 것도 없나? 노움, 오늘 수고했어. 이건 선물이야.”

이드는 실험 삼아 골덴 하나를 쥐여 주었다. 그랬더니 노움이 활짝 웃으며 소중하게 손에 쥐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다.

“역시…… 정령에게 돈은 소용없구나.”

[당연하죠. 계약자의 선물이니까 기뻐하지만 결국 저렇게 가지고 놀다가 땅에서 난 것처럼 땅으로 돌아갈 거예요. 지력에 조금 도움이 되려나?] 나쁠 것이 없다면 노움이 좋아하는 모습을 본 걸로 충분하다. 이드는 노움을 시켜 지하실을 다시 묻어 버렸다.

이전에는 비밀을 지키기 위한 매몰이라면, 이번엔 알 수 없는 네 사람의 무덤이 된 것이다.

[휴우~ 아무 소득도 없으니 이제 어쩌죠?]

“하하, 달밤 산책을 좀 해야지.”

노움을 돌려보낸 이드가 짧게 웃으며 말했다.

라미아가 이드의 손을 잡았다.

[전 이드하고 같이 움직일래요.]

어차피 남은 시간 수도를 모두 돌아보는 것은 불가능했다. 둘로 나뉘건 같이 움직이건 복불복이었기 때문에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우선은 이 저택처럼 외곽에 있는 건물부터 찾아보자.”

[야호! 저 가고 파티는 어땠어요?]

라미아가 두 주먹을 불끈 쥐어 보이고는 서둘러 이드와 팔짱을 끼며 물었다.

이후 두 사람은 정말 산책을 나온 연인처럼 밤길을 걸었다. 이동속도가 번개 같다는 점과 중간중간 저택과 같은 큰 건물을 은밀하게 탐색한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복불복이라고는 하지만 처음부터 정말 성의 없이 설렁설렁할 생각은 없었던 이드였다.

그렇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흠칫!

걷고 있던 라미아가 급하게 멈춰 섰다. 이드는 그녀의 갑작스런 행동에 반사적으로 주변을 돌아보는데, 라미아가 말했다.

[아쉽지만, 아무래도 오늘 산책은 여기까진가 봐요.]

“왜? 혹시 골렘의 조종에 이상이라도 있어?”

주변에서 이상을 감지하지 못한 이드가 걱정스러운 듯 말하자 라미아가 고개를 저었다.

[일리나에게 주고 왔던 부적이 부서졌어요.]

통신용으로 사용할 거울과 함께 긴급 상황, 또는 전투 시에 알릴 수 있도록 주고 왔던 부적이다.

이드는 눈을 가늘게 뜨고 사늘하게 말했다.

“이놈들이 미끼를 물었구나.”

동시에 라미아가 했던 말도 생각이 났다.

“어쩌면 네가 들었다는 ‘슬슬 시작할 때’라는 이야기도 이 건에 대해 말했던 걸 거야.”

이드는 내심 확신하며 말했다. 어차피 숲에서 은색 기사단을 공격했던 놈들이나 감금된 검후를 만나고 온 라울이나 같은 놈들이니까.

[가 보실 거예요?]

“그래야지.”

원래 그럴 생각이었다. 하지만 라울을 본 후에는 꼭 가야 한다 생각했었다. 라울이 어떤 초인기를 가지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강력한 초인력을 감지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화원을 공격한다면 일리나가 위험할 수도 있었다.

일단 그런 일에 초인 기사단장인 발터가 나서지는 못 할 것이고, 또 파티장에서 슬슬 시작할 때라고 말한 것을 보면 직접 전투에 나설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단순한 짐작에 일리나의 안전을 맡겨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치고 나서 후회하는 것보다는 조금 수고스러운 것이 천배는 낫다.

[그럼 빨리 저택으로 돌아가요.]

안티로스로 돌아온 후 가장 먼저 한 일이 화원과 안티로스의 저택을 잇는 이동 마법진을 설치하는 일이었다.

말을 마친 라미아는 골렘의 몸을 버리고 작은 새로 변해 이드의 어깨에 앉았다.

“저 몸, 그냥 버려도 되는 거야?”

[한 번 만들었던 거라 쉽게 다시 만들 수 있어요. 재료도 흙이라서, 계속 쓸 몸은 좋은 재료로 다시 만드는 게 나아요.]

“전문가가 그러시다면야. 그럼 꽉 잡아.”

라미아의 말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인 이드는 땅으로 돌아가는 골렘을 일견하고는 저택을 향해 말 그대로 번개처럼 달려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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