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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09화


746화

“좋소. 그럼 새신랑의 무사 귀환을 위해 애쓰는 것으로 선물을 대신하지.”

“감사합니다.”

새신부 얼굴에 화사한 미소가 피었다. 아무리 당돌한 성격의 그녀라도 이드를 앞에 두고 당당히 요구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러나 충분히 시도할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었고, 보기 좋게 성공했다. 그녀는 자신의 억지를 허락해 준 이드에게 감사했다.

하지만 이드의 말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장은 위험한 곳, 절대 무사할 것이라고 약속하지는 못하겠소. 그 부분은 이해해 주길 바라오.”

그러자 새신부는 새신랑의 얼굴을 돌아본 후 말했다.

“명예 후작님께서 지켜 주시는 중에 그런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면 그땐 운명의 신을 원망할 뿐이지요. 그리고 그 불행을 막을 힘을 키우지 못한 이 남자를 원망하렵니다.”

그러니까 출정 전까지 죽도록 수련하세요. 라는 속삭임이 작게 들린다. 백작가의 딸로 자라서일까. 전쟁의 잔혹함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말이다. 이드는 그녀의 당당한 모습에 점수를 더 주었다. 오늘 결혼식에 참석해서 만난 사람들 중에 가장 인상 깊었다.

‘뭘 해도 제대로 했을 여자네. 남자가 꽉 잡혀 살겠군.’

“과연 최고의 선물입니다. 오늘은 하리온 백작이 부럽군요.”

짝짝짝.

다임 백작이 손뼉을 치며 말했다. 그러자 주변에 몰려 있던 사람들도 뒤따라 손뼉을 쳤다.

그들의 얼굴에는 노골적인 부러움이 가득했다.

“평소에도 똑 부러지는 아이인 줄은 알았지만, 오늘 보니 특히 더 대단하군. 리뷰드 자작은 좋은 며느리를 얻었어.”

“저렇게 야무진 아이인 줄 알았으면 우리 가문에 데려올 걸 그랬어요.”

똑소리 나는 새신부의 활약에 아쉬워하는 어느 부부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충분히 그럴 만했다. 새신부가 챙긴 것은 단순히 새신랑의 안전만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드와 같은 실력자가 토벌에 참가하면 어디 얌전히 앉아 구경만 하겠는가?

당연히 가장 앞에 서서 활약할 것이고, 새신랑은 그때 이드 옆에 있을 것이다. 즉, 새신랑은 신부의 부탁 한 방으로 안전과 함께 활약을 예약한 것이나 마찬가지가 된 것이다.

거기에 더해 이드와의 친분은 덤이다.

같이 전장을 누비는 것은 굉장한 친밀감을 형성시킨다. 전우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닌 것이다. 흔들다리 효과는 이성 간에만 통하는 것이 아니라 동성 간에도 유효하다.

“명예 후작의 선물이 오늘 선물 중 가장 최고의 선물이 되었군.”

누군가 허탈한 듯 말했지만, 반론이 나올 수 없는 말이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신혼부부 부모들의 입이 귀에 걸려 내려올 생각을 않는다. 새신부는 시댁에 들어가기도 전에 십 년 치 점수를 땄다.

이후 부부는 다시 하객들 사이를 누비기 시작했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다 라미아의 손을 잡았다.

“이제 그만 돌아갈까?”

“벌써요? 아직 신혼부부 인사 중이잖아요.”

“그러니까. 저게 마지막 순서잖아. 저거 끝나면 또 사람들 모여들지 않겠어? 조금 전엔 그래도 식전 파티라고 조금 라이트하게 즐겼지만 이젠 예식도 마쳤으니 술을 들고 달려들 거란 말이야. 그렇지 않습니까?”

“후후.”

이드가 슬쩍 고개를 돌려 눈짓을 하자 다임 백작이 가볍게 웃음으로 답했다.

라미아는 꾸미고 온 것이 아까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그런데 일리나스 쪽 사람은 결국 오지 않을 건가 봐요.”

이드는 라미아의 말에 머쓱한 표정이 되었다. 당연히 참석할 줄 알았는데, 일리나스 쪽 사람이 없었다. 혹시나 싶어 이그렌을 시켜 찾아보았지만, 그도 아는 얼굴을 찾지 못했다.

“의외로 일리나스의 힘이 약했나? 진짜 참석 못 할 줄은 꿈에도 몰랐지.”

“그럼 시온 자작에 관한 일은 어떻게 해요?”

이드는 라미아의 말에 시무룩한 이그렌을 돌아보며 말했다.

“너무 실망하지 마. 벤텀 백작이라고 했던가? 따로 자리를 만들면 되니까.”

진짜다. 만나는 거야 뭐 어렵겠는가. 오히려 그쪽이 이드를 만나지 못해 안달이 난 상황이 아닌가. 얼굴 좀 보자고 하면 하던 일 팽개치고 달려올 것이 분명하다. 대신 본래 생각하고 있던 구도나 분위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만큼 때와 장소, 그리고 분위기는 이야기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뭐, 3개 뱉어 낼 거 2개 뱉어 내게 만들면 되니까.’

이득이 적을 뿐 결코 손해는 없을 것이다.

“감사합니다.”

“이미 한 감사, 또 할 필요는 없고………… 이제 조용히 나가자. 돌아가는 길은 다임 백작께 또 신세를 져야겠습니다.”

“하하하, 물론입니다. 올 때와 같이 편안히 모시도록 하지요.”

하지만 이드들은 바로 파티장을 떠나지 못했다.

황녀가 두 볼이 발갛게 달아오른 어린 시녀를 데리고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파티가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돌아가시려는 건가요?”

“네. 그다지 파티를 즐기는 성격이 아니라서요. 그것이 아니라도 자리를 지키고 있기에는 신혼부부에게 미안해서 말입니다. 이제 진짜 주인공이 축하를 받아야지요.”

파티의 성격을 모르지 않는 황녀는 고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한편으로 이드가 정말 귀족 사회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꼈다. 귀족가의 파티 중 순수한 축하를 담은 파티가 얼마나 있을까. 수많은 이해관계가 부딪히고 화합하는 곳이 바로 파티장이다.

‘아마 후작이 돌아가고 나면 다른 의미로 신혼부부가 관심의 대상이 될 테지.’

이드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제물로 내놓았던 신혼부부가 의외로 가장 튼튼하게 인연을 만들었으니까.

실로 재미있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이드 때문에 피해를 본 당사자가 가장 크게 이득을 보았으니.

황녀는 어쩌면 후작이 새신부의 부탁을 들어준 이유도 그런 점 때문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하며 말했다.

“그럼 더 이상 이야기를 나누긴 힘들겠군요.”

“하하하, 다음에 청해 주신다면 언제라도 이야기 상대가 되어드리겠습니다.”

이드는 웃는 얼굴로 파티장에 남을 생각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러자 황녀가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그럼 제가 명예 후작을 초대하기로 하죠.”

“초대・・・・・・ 말입니까?”

“네. 제 궁으로 초대해서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요. 제가 최근에 가진 고민에 대해서 도움을 받고 싶기도 하답니다.”

이드는 살짝 어이가 없었다. 지금까지 얼굴을 몇 번 봤다고 고민 상담이란 말인가?

“글쎄요. 제가 황녀님의 고민에 도움이 될지 모르겠습니다.”

“제국의 누구보다 도움이 된답니다. 그땐 라미아 부인께서도 함께 오세요.”

“저도 말인가요?”

“네, 전 검후님을 가장 존경한답니다. 그분처럼 용감하게 흑마법사를 퇴치한 부인의 모험담을 자세히 듣고 싶으니, 꼭 함께 와 주세요.” 황녀는 진심을 가득 담아 라미아의 꼭 잡았다.

이드는 손이 잡혀 난감한 표정을 한 라미아를 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찾아뵈어도 괜찮겠습니까?”

“아침부터 활짝 문을 열어 두 분의 방문을 환영하도록 하겠어요.”

이드의 빠른 결정이 마음에 들었는지 황녀는 곧 작별 인사를 하고는 이들보다 먼저 파티장을 나섰다.

그녀야말로 이드가 아니라면 파티장에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이거 오늘에 이어 내일도 좀 바쁘겠는걸.”

그래도 한 사람만 상대하면 되니 오늘보다는 편할 것이 분명했다.

“확신하지 말아요. 고민이라면서 엉뚱한 걸 꺼내 들고나오면 오늘보다 더 피곤할지도 모른다고요.”

“으음, 그건 싫은데.”

들어주지 못할 일은 거절하면 끝이지만, 그 거절의 말을 꺼내는 일 자체가 싫었다.

그때 나가는 황녀와 교차해 파티장으로 들어서는 익숙한 얼굴을 본 이드가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자세를 바로 했다. “안 오는 줄 알았더니, 결국 왔네. 벤텀 백작.’

파티장 안으로 들어선 그는 이미 결혼식의 마지막 순서가 진행되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하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도 이드의 재촉 때문에 결혼식이 당겨질 줄은 생각지 못한 것이다.

“아무래도 다임 백작의 신세는 다음에 져야겠습니다.”

“하하하, 마차는 언제나 빌려 드리지요.”

이드가 벤텀 백작을 가리키며 말하자 다임 백작이 별거 아니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도 이드가 무언가를 위해 벤텀 백작을 기다렸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다임 백작과 악수를 나누며 가볍게 인사를 나눈 이드는 느긋한 걸음으로 벤텀 백작에게 다가갔다.

“아, 후작님께서도 참석해 계셨군요. 후작님까지 초대할 줄이야. 하리온 백작이 참 대단합니다.”

설마 진짜 자신의 참석 사실을 몰랐을까. 이드는 뻔뻔한 벤텀 백작의 헛소리에 길게 대답하지 않고 말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군요. 그런데 늦으셨습니다. 이제 마지막 행사가 진행 중이니까요.”

“아무래도 제가 시간을 잘못 알았던 모양입니다.”

“아쉬우시겠습니다. 저는 식도 끝나서 이제 돌아가려던 참입니다만, 마침 마차를 가지고 오지 않아서 그러는데 마차를 빌려 탈 수 있겠습니까?” 

“무, 물론입니다. 마침 제가 타고 온 마차가 아직 밖에 서 있을 것입니다.”

평소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던 이드와의 대면 기회에 벤텀 백작은 깊게 고민하지 않고 즉시 고개를 끄덕였다.

“잘되었군요. 그런데 오늘 주인공들에게 선물을 전해 주지 않으셔도 되겠습니까?”

이드는 벤텀 백작의 손에 들린 작은 꾸러미를 가리켜 보였다. 이대로 돌아가면 저 선물은 신혼부부에게 전해지지 못하리라. 더 이상 오늘의 주인공에게 폐를 끼치는 것은 사양하고 싶은 이드였다.

“아, 선물, 하하하, 제가 중요한 걸 까먹을 뻔했군요.”

자신의 마음이 급했다는 것을 들킨 벤텀 백작이 크게 웃고는 집사를 불러 선물을 전해 주었다. 본래 결혼 선물은 직접 전해 주는 것이 맞지만, 지금은 이드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가시죠.”

벤텀 백작은 크게 웃으며 이드들을 마차로 안내했다.

다행히 그들을 잡는 사람은 없었다.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흐흐흐흑…….”

기절했던 페니메나는 얼굴에서 느껴지는 끔찍한 통증에 깨어났다. 겨우 눈을 뜨자 희미하던 시야가 밝아짐과 동시에 옆에서 불쑥 머리 하나가 솟아올라 그녀를 놀라게 하였다.

벨로우였다.

‘이 자식이 왜 여기 있지?’

페니메나는 괜히 불안한 마음이 되었다.

“이야, 깼어?”

벨로우가 서늘한 눈빛 그대로 웃으며 말했다. 페니메나는 그 모습에 뭔가 나쁜 예감을 느꼈다.

“이야, 나 오늘 진짜 놀랐다? 설마 내가 여자 손에 놀아나며 망신을 당할 줄은 꿈에도 몰랐어. 너 진짜 대단해. 내가 진짜 인정한다!”

“…….”

“그런데 좀 더 똑똑하지 그랬어. 끝까지 모르게 그랬으면 나도 그냥 넘어갔을 텐데. 너도 알지? 내가 여자 문제에 대해서는 좀 미친놈이야. 몰랐으면 모르지만, 여자한테 당하고 그냥 넘어갈 수는 없잖아?”

“느・・・・・・ 슬마…… 나를・・・・・・ 즉이러고…….”

“에이, 그럴 리가. 뭐, 그런 생각을 안 한 건 아닌데. 어떤 지혜로운 분이 내게 새로운 깨달음을 주시더라고. 그래서 그분의 지혜를 빌려서 너한테 제대로 갚아 주기로 했어. 이제 너와 난 부부야.”

“뭐…… 아악!”

벨로우는 너무 놀라 얼굴이 부서진 것도 잊고 입을 열다가 비명을 지르는 페니메나의 모습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역시 좋은 결정이었어. 자, 자. 우리 마누라 진정하고 들어. 내가 있잖아. 이번에 너한테 당한 걸 평생을 두고 갚아 줄 거야. 아버지를 통해서 자작님께 말씀드렸더니 바로 승낙하시더라고. 네가 친 사고가 걱정되었기 때문이겠지?”

그 말에 페니메나의 눈이 불신과 혼란으로 파르르 떨렸다. 믿고 싶지 않지만 충분히 가능한 소리가 아닌가.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것을 증명하듯 문이 열리며 두 중년의 남성이 들어왔다. 바로 벨로우의 부친과 페니메나의 부친이었다.

두 사람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손을 잡고 서로를 새로운 호칭으로 불렀다.

“사돈!

“하하하, 사돈!”

“꼬로록…….”

그 소리에 페니메나는 눈앞이 아찔해져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 그동안 미인계를 갈고 닦은 결과가 고작 벨로우 따위와의 결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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