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12화
749화
‘휴우~ 설마 그놈이 그런 멍청한 짓을 할 줄 알았겠냐고.’
클라인도 이드에 대한 소식을 챙기는 중에 게일의 행동에 대한 부분을 읽고 기겁을 했었다. 설마 그가 그런 질투에 눈먼 계집아이 같은 짓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 하지만 어쩌겠는가. 자신이 사람을 잘못 본 탓인걸.
“미안하다, 라미아. 아무래도 사람을 잘못 본 것 같다. 나도 설마 게일이 사람들 앞에서 그런 헛소문을 퍼트릴 줄은 꿈에도 몰랐다고.”
클라인은 곧 자신의 실수를 순순히 인정했다. 게일에 관해서는 스스로도 충격적인 듯 표정이 좋지 않다.
라미아는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사람을 잘못 봤다는 건 앞으로도 그런 수준 떨어지는 수작질을 걸어올 수 있는 인간이란 뜻?]
“쓰읍…… 글쎄, 그건 어떠려나..”
클라인은 먼 산을 바라보며 머리를 긁적였다. 게일에 대한 판단의 기준이 흔들리자 확신을 가지고 답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클라인은 결국 고개를 저었다.
“역시 잘 모르겠군. 사실 이번 일을 듣고서야 내가 게일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 너무 어릴 때부터 게일을 보아 온 탓이겠지.”
이드는 클라인의 말을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등하불명. 원래 가까이 있을수록 깊이 보지 못하는 법이지요. 품안의 자식이 엇나가는 걸 모르는 부모처럼.”
종종 있지 않은가. 아이가 온갖 나쁜 짓을 하고 다니는 것도 모르고서 그저 우리 아이는 착하고 성실하다고 믿는 부모들 말이다.
“그런 어리석음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주변을 잘 살펴야 했는데…..”
게일의 아버지가 게일을 위해 다방면으로 움직인다는 것은 알았지만, 그래도 게일은 그런 정치적인 일에 휩쓸리지 않고 올바르게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에 입맛이 더욱 쓴 클라인이었다.
과연 부전자전이라고 해야 할지, 피는 속일 수 없다고 해야 할지. 도대체 기사의 정석처럼 행동하던 그의 어디에 그런 악심이 숨어 있던 것일까.
[그럼 욕심을 숨기고 바른 사나이인 척했다는 거잖아요. 으~ 난 그런 음흉한 사람은 진짜 싫은데…………….]
“그런 성격 좋아하는 사람은 없지. 그나저나 더는 엉뚱한 짓 하지 말고 적당히 멈췄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게일이요?]
“응. 그때 헛소문 정도라면 아직은 실수라고 넘어가 줄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면 귀찮아지거든.”
이드는 대문파 출신의 모자란 것 없이 성장한 후지기수들이 떠올랐다. 뛰어난 자질에 배경까지 어디 하나 모자란 것 없이 관심을 받은 그들은 자신보다 뛰어난 자를 만나게 될 경우 가끔 질투에 눈이 뒤집혀 인생을 말아먹고는 한다.
그것도 주변에 온갖 똥물을 튀기면서 말이다.
‘남자의 질투는 나쁜 놈 이상으로 보기 흉한데………’
이드가 그렇게 생각할 때 쉴라가 차분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그녀는 어느새 폭풍 같던 분노를 조용히 잠재우고 있었다. 원래 그녀와 같은 경지에 오르면 육체를 다루는 것만큼이나 감정을 조율하는 것에도 능숙해지는 법이다. 그와 같은 경지에 오르기 위해서는 정신도 육체만큼이나 두드리고 깨어지며 단련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아마 앞으로 귀찮아지실 겁니다. 제가 아는 게일 경은 자존심 강하고 오만한 청년이거든요. 특히 남에게 지거나, 밀려나는 걸 지독히도 싫어하지요.”
“과연 은색 기사단이라면 게일이 검후님께 무공을 배울 때도 옆에 있었을 테니 게일에 대해서 잘 알겠군. 왜 진작 물어볼 생각을 못 했지?”
이드는 클라인이 아쉬운 듯 미간을 꾹꾹 누르는 모습을 보다 쉴라를 향했다.
“확실히 그런 성격이면 조용하긴 어렵겠네요.”
“이미 게일파 쪽에서는 많이 움직이고 있습니다. 다만 이드 님의 귀에 닿지 못할 뿐이죠. 무엇보다 게일 경도 문제지만 더 골치 아픈 쪽은 사실 그의 부친인 인테그란 후작입니다. 그는 게일 경을 소드 팰러스의 주인으로 만드는 것을 인생 목표로 두고 있는 사람이니까요.”
확실히 잘 달리던 대로를 갑자기 거대한 바위가 가로막으면 어떻게든 치우고 싶은 것이 당연하다. 다만 그 바위가 길을 막지 않도록 옆으로 비켜 주었는데, 크기가 태산만 해서 길을 비켜 줬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그나저나 록이 이번 사건으로 많이 실망했겠어요. 그렇게 기사 중의 기사라고 자랑을 했었는데.]
“그렇지 않아도 그 때문에 열심히 사람들 찾아다니고 있다.”
[왜요?]
“자기가 게일의 지지자로 만든 사람을 찾아서 지지를 취소하게 만들려고. 덕분에 저택을 찾아도 얼굴 보기가 힘들어.”
[세상에나…… 아하하하.]
이드는 깔깔대는 라미아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록은 잘 있는 모양이네.”
클라인의 말만 들으면 너무 잘 있어서 탈인 듯 보였다. 설마 게일에 대한 실망을 그런 식으로 표현할 줄이야. 에단이 소개시켜 줄 때 느꼈지만 참으로 자기 생각과 개성이 분명한 사람이다.
“끄응, 시간이 제법 늦었네요.”
긴 이야기를 마친 이드는 기지개를 켜며 창밖을 살폈다.
쉴라와 클라인에게 화원과 삼검왕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곧 있을 토벌에 어떤 형태로 참여하게 될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많이 지나 버린 것이다.
클라인도 그 사실을 알았는지 슬그머니 자리를 정리하며 말했다.
“크흠, 이거 저희가 눈치 없이 두 분의 시간을 뺏은 것 같습니다.”
“그걸 아셨으면 좀 일찍 빠져 주시지 그랬습니까?”
이드는 클라인의 너스레에 괜히 서운한 얼굴로 말했다. 사실 그 말의 반은 진담이었다. 오늘 방문의 가장 큰 목적이 쉴라와 클라인을 만나는 것이지만, 그 후 일리나와 즐길 달콤한 시간도 나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리나와는 거울을 통해 거의 매일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하고 있지만, 직접 방문한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라미아가 신경을 써서 제작한 거울이긴 하지만, 지금은 차원 진동으로 공간 이동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때에 공간이동을 자주 하는 게 현명한 행동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사정을 알고 있는 클라인과 쉴라는 재빨리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편히 쉬십시오.”
그리고 두 사람을 배웅하기 위해 같이 일어나던 이드는 라미아의 볼에서 붉은빛이 반짝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라미아, 볼에 뭐가 반짝이는데?”
[네? 어머나? 이게 언제 이쪽으로 옮겨졌지?]
자신의 몸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드의 말을 바로 이해한 라미아가 볼을 가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러는 사이 붉은빛은 그녀의 양쪽 귓가로 이동해 반짝였다.
“뭔데?”
[에단이 보낸 연락이요. 원래는 꼬리 깃털에 신호가 오도록 조종해 둔 건데 가면으로 모양을 바꾸면서 볼로 옮겨진 걸 신경 쓰지 못했어요. 히히히.] 제가 말하고도 민망한 듯 라미아가 귀엽게 웃었다. 하지만 이드는 에단이 한밤중에 갑자기 연락을 취한 이유가 더 궁금했다.
에단이 밖에 나가 있는 이유가 초인의 꼬리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던가. 그가 이 밤에 급히 연락한 것이니 분명 중요한 정보가 있을 것이 분명했다. 쉴라와 클라인도 같은 생각을 한 듯 나가던 발길을 돌려 라미아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에단이 뭐래?”
[음성만 남겼네요. 바로 재생할게요.]
-이드 님, 에단입니다. 저는 현재 레이논 산맥이 멀지 않은 카라카스 영지 근처에 도착해 있습니다. 갑자기 연락을 드린 이유는 적 초인들을 추적하던 중 적들이 아나크렌에 만들어 놓은 가장 큰 거점으로 보이는 곳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라미아의 손에서 흘러나오는 큰 거점이라는 말에 좌중은 날카롭게 반응했다. 그간 에단의 연락은 몇 번 있었고, 자자수 영지와 마찬가지로 적들이 쉬면서 사용하는 거점을 몇 곳 알아내기도 했다.
그런 에단이 아나크렌에서 가장 큰 거점이라고 말할 정도라면 정말 특별한 곳일 가능성이 높았다. 또 그런 곳이라면 지금까지 얻을 수 없던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이드는 다시 이어지는 에단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조사를 위해 침투를 계획했지만, 적 거점의 방어가 생각 이상으로 단단합니다. 특히 마법적인 방비가 철저한데, 아무래도 들키지 않고
침투하기에는 비올라의 실력이 많이 떨어져서…… 야! 내 실력이 딸린다니! 그냥 전문 분야의 차이라고 내가 몇 번을…… 켁!
약속보다는 에단 쪽 일이 더 중요해 보이잖아요? 황녀와는 약속 시간도 정하지 않았으니 일이 끝나는 대로 적당히 찾아가면 될 일이죠. 정 시간이 안 될 것 같으면 내일 찾아가도 되고요. 설마 약속 날짜를 어겼다고 벌이라도 내리겠습니까?” “하. 하. 하…….”
클라인이 어색하게 웃었다. 물론 벌은 내려오지 않을 것이다.
황제와의 약속도 아니고, 황녀와의 개인적인 약속을 어겼다고 제국의 명예 후작에게 벌을 내릴 수는 없을 테니까.
다만, 황녀와의 약속을 저렇게 쉽게 어길 생각으로 움직이는 사람이 없을 뿐이지.
“저도 함께 가고 싶지만 참아야겠죠?”
“당연하죠.”
이드는 슬그머니 다가온 쉴라의 말에 단호히 고개를 끄덕여 주고는 일리나에게 다가갔다.
“아무래도 오늘도 먼저 가야 할까 봐요.”
“알아요. 조심하세요, 라미아도.”
이드는 일리나의 당부를 들으며 라미아를 통해 에단을 불렀다.
-이드님?
“거기 딱 기다려. 내가 직접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