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27화
764화
“어때?”
깔끔한 도시 남자에서 거친 사냥꾼으로 변신을 완료한 이드가 물었다.
[・・・・・・ 이런 건 이번만 해요.]
라미아가 거칠게 변한 이드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이드를 사랑하지만 거친 사냥꾼은 그녀의 취향이 아닌 것이다. 감탄을 바랐던 이드는 라미아의 반응에 실망하고 입맛을 다셨다. 그런 이드의 눈에 있는 대로 얼굴을 구기고 있는 에단이 들어왔다.
“넌 또 표정이 왜 그래?”
“제 표정보다…… 괜찮으십니까? 뼈가 가루가 되는 소리가 나던데. 안 아프세요?”
모르는 사람이 들어도 소름 끼치는 소리지만, 거칠고 위험한 작전을 수행하며 뼈가 부러지는 건 여사였던 그는 그 통증이 너무 생생하게 떠올라 도저히 얼굴을 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무리 경험이 많아도 친해질 수 없는 것이 골절의 고통이니까.
“별로. 좀 강한 안마를 받은 느낌이라 오히려 시원해. 진짜 뼈가 가루가 되는 통증이 있으면 이 방법은 못 쓰지. 그보다 감쪽같지 않아?”
“그렇기는 하죠. 어딜 봐도 완벽한 시골 사냥꾼 같네요. 그런데 차라리 라미아의 마법을 사용하시죠. 그게 더 간편한 것 같은데요.”
통증이 없다는 이드의 말을 믿지 못한 에단이 말했다. 당장 화원이 공격받을 때 그런 방법을 사용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이드도 생각이 없어 이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축골공을 꺼내 든 것이 아니다.
“마법은 마나의 흔적이 남아서 발각될 수 있어. 대신 축골공은 직접 내공으로 몸 안을 살피지 않는 이상 들킬 염려가 없지.”
거기다 살피는 것도 흐릿한 무극신기의 특징 덕분에 그레이트 소드 이상이어야 가능하다.
꼭 무공이 아니라도 폴리모프 마법을 사용하면 티끌만 한 흔적도 없이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만, 이드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폴리모프 마법을 위한 준비물이나, 소모되는 대대적인 마나는 둘째 치고 자신의 몸이 근본부터 다른 것이 된다는 것에 거부감이 있기 때문이다.
무인이 본능처럼 가지고 있는 자신의 몸에 대한 욕심 때문이랄까?
“그보다・・・・・・ 아무래도 멧돼지 한 마리 더 몰아와야겠다.”
라미아에게 돌려받은 겉옷을 이리저리 살피던 이드가 말했다.
“한 마리면 충분할 것 같은데요?”
“나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런데 이 녀석은 사냥감이 아니라 옷감으로 써야 할 것 같아서. 아무래도 사냥꾼이 입을 만한 옷이 없다. 시골 사냥꾼이 이런 옷을 입고 다닐 수는 없잖아.”
확실히 이드의 손에서 찰랑거리는 옷은 사냥꾼의 것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일 년 수익을 몽땅 퍼부어도 사기 힘든 옷을 입고 사냥을 나서는 사냥꾼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드는 고개를 들어 에단을 보고는 그가 제압하고 있는 멧돼지의 머리에 손을 댔다. 순간 손끝에서 뿜어진 음유한 기운이 멧돼지의 뇌를 한순간에 곤죽으로 만들고, 멧돼지는 지가 죽는 줄도 모르고 그 자리에 쓰러졌다.
털썩.
멧돼지 잡는 데 쓰기엔 아까운 수법에 에단이 혀를 내둘렀다.
그러나 멧돼지를 잡는데 칼을 쓰면 어떻고, 내공을 쓰면 어떤가. 필요에 의해 잡았으면, 고통 없이 죽여 주는 것이 생명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는 것이 이드의 생각이다. 물론 이 예의에 적과 악당은 포함되지 않는다.
이후 쓰러진 멧돼지의 가죽을 벗겨 정령과 무공으로 가공하고 그럴듯한 가죽옷을 만들어 내는 과정이 물 흐르듯 이어졌다.
그리고 이드가 자신이 만든 옷을 걸치고 만족할 때쯤 에단이 또 다른 멧돼지를 몰고 돌아왔다.
“억! 벌써 옷을 만드신 겁니까?”
“대충 형태만 만든 거야. 뭐, 어려울 것도 없지.”
“마스터니까 그렇지요. 진짜 쉬운 일이었으면 사냥꾼들은 다 부자가 되었을 겁니다.”
그리고 재단사는 가난해졌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이드가 빙긋 웃었다.
“하하, 그런가, 그보다 황금빛 기운이 지금 어디를 비추고 있지?”
이드의 물음에 엉덩이로 멧돼지를 깔아뭉갠 에단이 간파의 눈을 뜨고 요새를 살폈다.
“저기서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패턴이라면 저쪽에서 다가와 이렇게 돌아서 빠질 겁니다.”
에단은 이틀 동안 눈에 익힌 황금빛 기운의 운행 경로를 손가락으로 짚어 보였다.
이드는 그 경로를 눈으로 익힌 후 활과 화살을 들었다.
“좋아. 이제 녀석을 풀어 줘.”
이드의 말에 에단이 멧돼지를 풀어 주자 녀석은 꽁지에 불이 붙은 듯 다급하게 뛰쳐나갔다. 하지만 녀석은 여전히 이드의 손아귀에 있었다. 이드는 살기와 위압감으로 경험 많은 사냥꾼보다 능숙하게 멧돼지를 황금빛 기운을 향해 몰아갔다.
그리고 녀석이 황금빛 기운 아래 들어갔을 때, 이드는 허공을 가르는 화살을 하나 쏘고는 뒤따라 황금빛 기운 아래로 뛰어들었다.
피이잉-
그 순간 이드는 미세한 기운이 자신의 몸을 스캔하듯 훑고 지나감을 느꼈다. 그것은 정말 짧은 순간 일어난 일이지만, 이드는 그 기운이 자신의 몸에 닿는 순간 기운에 대해 분석하고, 떠나는 순간 기운의 패턴을 몸에 새겼다.
단 1초의 짧은 순간 일어난 일이었다.
‘역시 초인기. 무극신기처럼 자연지기, 정령의 기운을 많이 닮았어.’
그중에서도 빛과 바람 정령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졌다. 세상을 비추는 빛과 가지 못하는 곳이 없는 바람. 어쩐지 요새를 경계하는 것에 잘 어울리는 것도 같았다.
‘일단 목표는 달성했고.’
한순간이지만 확실히 몸에 새긴 감각이다. 이후에는 절대 놓치는 일 없이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온 것.
이드는 외부인을 감지한 요새가 얼마나 빨리 반응하는지 알아보기로 하고, 멧돼지를 요새 방향으로 몰았다. 반응은 빨랐다.
쐐애액!
성벽 위에서 무형의 칼날이 바람을 가르고 날아와 이드가 조종하고 있던 멧돼지의 목을 날려 버린 것이다.
서걱 하는 섬뜩한 소리에 이어 머리가 사라진 멧돼지의 목에서 피가 솟아올랐다.
이드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냥꾼처럼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놀란 눈으로 두리번거렸다.
“사냥감을 쫓아온 것 같은데. 이 일대는 상단의 소유다. 당장 여기서 나가라.”
성벽 위의 목소리에 이드가 뒤늦게 고개를 들자 거기에는 입술이 얇아 인상이 잔혹해 보이는 젊은 남자가 얼굴을 보이고 있었다.
“어이쿠! 죄송합니다. 기사님. 정신없이 사냥감을 쫓다 보니, 여기가 어딘지를 몰랐습니다.”
“이 미친놈이 감히 누굴 기사 따위에 가져다 붙여!”
남자가 기사로 불린 것에 매우 불쾌해했다. 그러나 따로 받은 명령이 있는 듯 양아치처럼 사냥꾼으로 위장한 이드에게 위해를 가하지는 않았다.
“빨리 사라져라.”
“예. 바로 사냥감을 들고・・・・・・ “
이드가 허둥대며 멧돼지에 손을 대자 남자가 으르렁거리며 말했다.
“그걸 왜 네가 가져가? 네놈이 잡았느냐?”
“그렇지는 않지만…….”
“알았으면 당장 눈앞에서 꺼져라. 아니면 저 멧돼지처럼 만들어 줄까?”
한쪽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비웃는 남자의 모습에 이드는 허둥지둥 산속으로 달려갔다. 이드가 사라지자 남자는 멧돼지를 무형의 칼날로 갈기갈기 찢어 버렸다. 결코 멧돼지 고기가 먹고 싶어서 가져가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무 그늘에서 그 모습을 본 이드는 속 좁은 놈이라고 욕했다.
저렇게 버릴 것이면 사냥꾼에게 내어 줄 것이지. 저렇게 진상을 부리다니.
[수고했어요, 이드]
“기운을 감지하는 일은 잘되셨습니까?”
이드가 돌아오자 라미아와 에단이 말했다.
“확실하게 기억해 놨지. 이제 조금 거리를 두더라도 기운이 느껴져.”
“헉, 그럼 전 이제 필요 없으니 잘리는 겁니까?”
“원한다면 지금 잘라 주고.”
“하하하, 당연히 농담이죠.”
이드는 에단의 넉살을 받아 주고는 라미아를 보며 물었다.
“어때, 감지할 수 있겠어?”
[네, 충분해요. 다만 자세히 알아보려면 시간이 걸리겠지만요.]
이드의 감각을 통해 황금빛 기운에 대해 느낀 라미아가 말했다. 이럴 땐 영혼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 참 편하다.
“그건 어쩔 수 없지. 저 기운의 주인이 친절하게 연구할 시간을 내어 줄 것도 아니고. 혹시 뒤에 생포할 수 있으면 기회가 오겠지.”
“그럼 일은 끝나신 겁니까?”
“아니, 진짜는 이제부터야. 내가 저 기운의 실체를 잡았으니, 이제 기운이 날 얼마만큼 볼 수 있는지를 확인해야지.”
가령 저 기운이 얼마만큼 가까이 가야 자신을 감지하는지, 또 허공에 투사된 무형의 내공도 감지하는지, 혹은 은신술을 꿰뚫어 보는지 등에 대해 알아볼 생각인 것이다.
“알겠습니다. 조용히 기다리겠습니다.”
이드는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몸을 돌렸다. 밖으로 나왔던 남자는 어느새 성안으로 사라진 후다.
여전히 아무도 경계를 서고 있지 않다. 하지만 보이는 것만 그럴 뿐 사람보다 더 확실한 방법으로 경계를 서고 있으니 다른 생각을 가지고 접근하는 자들에게 저 요새는 개미지옥과 같을지 모른다.
다시 요새로 접근한 이드는 제법 먼 거리에서도 황금빛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래서 뭐든 경험이 중요한 법이지.”
이드는 기운과 정확한 거리를 가늠하고는 무형의 내력을 쏘아냈다.
푸스~
내력은 한참을 전진한 후 공기 중으로 사라졌다. 기운은 내력을 감지하지 못한 듯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기운이 기운을 감지하지 못하는 모습에 잠시 턱을 쓰다듬던 이드는 무극검강의 은백색 기환을 만들어 쏘아냈다. 피이잉-
은백의 기환이 나타나자 이번에 기운이 빠르게 반응했다.
이드도 그것을 감지하고는 부운귀령보를 밟아 은밀하게 요새의 그림자로 몸을 숨기고는 요새를 올려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잠시 후 성벽 위로 아까 얼굴을 내밀었던 남자의 머리가 튀어나왔다.
“젠장,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주변을 자세히 살핀 남자는 아무런 침입자의 흔적이 없자 신경질을 내며 안으로 들어갔다.
이드는 그 모습을 확인하고는 황금빛 기운의 특징 한 가지를 알 수 있었다.
“희한하네. 저기에 눈이 달린 것도 아닐 텐데. 눈에 보이는 것만 감지한다는 말이잖아.”
눈이 달리지 않은 기운이 눈에 보이는 것만 본다? 이드는 그 기묘한 사실에 헛웃음을 흘렸다. 그리고는 실험을 이어 갔다.
크고 작은 형태의 기환을 날려 어느 크기까지 감지하는지를 살피고, 내력으로 물건을 감싸서 그것을 보는지 보지 못하는지도 살폈다. 중간중간 위력을 달리한 무형의 내력을 투사해 보는 것은 덤이다.
그리고 그때마다 남자가 달려 나오기를 수차례. 달려 나와도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에 점점 높아지던 남자의 목소리는 다섯 번째로 나올 때 결국 입에 욕설을 담기 시작했다.
“이런 개 같은! 아무것도 없는데 도대체 뭘 경계하라고! 당장 감시자들 눈에 눈곱부터 떼라고 해! 눈곱을 침입자로 착각한 게 분명하니까!” 하지만 아무리 남자가 짜증을 부려도 이드의 실험 정신이 사라지는 것도, 확인을 독촉하는 명령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남자는 어쩔 수 없이 짜증 가득한 얼굴로 기어 나와 얼굴만 비추고 돌아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이드는 더 편한 마음으로 기운에 대해 실험하며 성능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참 답 없는 인간이네. 게으른 건가? 이렇게 자꾸 반응이 울리면 요새에서 나와서라도 한번 확인해 볼 만 할 텐데. 끝까지 안 나오네. 뭐, 나야 덕분에 편하게 움직일 수 있었지만…….”
초인파의 미래를 걱정한 이드는 마지막으로 은신술을 사용했다. 이전 알고 있지만 익혀 두지 않아 쓸 수 없었던 것이 안타까워 익혀 둔 만류일품. 잠무은신이나 무무기환처럼 기기묘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본에 충실한 일류의 은신술이 펼쳐지자 이드의 몸이 주변에 동화되어 점점 흐려지더니 사라졌다.
이드는 분명 눈에 보이지 않으니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달리 기운은 이드를 잡아냈다.
“이상하네. 분명 보이지 않는 것은 감지하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이드는 잠시간의 궁리와 시도 끝에 무극신기를 두른 후 만류일품을 사용하면 기운이 감지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그럼 마지막으로 라미아!”
[가요.]
이드의 부름에 라미아가 에단과 함께 다가왔다. 어느새 캄캄한 밤이 되어 있어 접근은 어렵지 않았다.
“다른 건 확인이 끝났고, 이제 투명화 마법만 확인하면 돼. 그리고 이번에는 네가 들어가 봐.”
이드의 말에 에단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을 손가락질하며 말했다.
“제가요?”
“어. 내가 저기 들락거리다 보니 느껴지는 게 제법 있었어. 빛과 바람의 정령과 비슷한 느낌이 들기도 하고, 크게 세 가지 흐름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는 것도 있고, 혹시 가까이 가면 네 눈에도 뭐가 더 보일지도 모르니까. 한번 시도해 보자고.”
“들키지 않을까요? 전 마스터처럼 빠르게 숨을 자신은 없습니다.”
“전혀 빠를 필요 없어. 너도 멀리서 봤을 거 아냐. 오늘 경비를 서는 남자. 네가 걸린다고 바로 나올 것 같아?”
그 말에 에단은 열 번 이상 성벽으로 불려 나온 남자를 떠올리고는 크큭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지막으로 성벽에 얼굴을 보일 때 그 남자는 거의 눈을 감고 있었다.
“알겠습니다. 제가 해 보죠.”
고개를 끄덕인 에단은 라미아의 투명화 마법을 걸치고 요새를 한 바퀴 돌고 다가오는 황금빛 기운으로 다가갔다.
간파의 눈을 한 에단의 눈에 비치는 그것은 등대의 불빛 같기도 하고, 태양에 빛나는 실크 커튼 같기도 했다.
지금까지 피해만 다녔지 한 번도 가까이서 본 적이 없는 구름 같은 기운의 집합을 잠시 감상하던 에단이 기운 속으로 발을 들였다.
피…….
그리고 그 순간 황금빛 기운은 투명화 마법을 넘어 에단을 감지하고 침입 경고를 울렸다. 마법의 흔적을 감지할지 모른다는 이드의 염려가 정확히 들어맞는 순간이다.
하지만 그 신호는 제대로 울리지 못했다.
쿠루루루루-
에단에게 닿아 무언가를 감지한 기운을 시작으로 황금빛 기운이 에단의 눈 속으로 빨려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저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이드는 생각지 못한 뜻밖의 결과에 순간 당황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