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29화
766화
서둘러 돌아온 이드는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요새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에단이 초인력을 흡수한 것만 빼고.
“그러니 잠시 오두막을 비우고 이곳에서 멀리 떨어질 필요가 있어.”
“충!”
누구 말이라고 거역할까. 이제 이드의 기사들이 된 전 트와이스 소속의 기사들이 가슴을 두드린 후 즉시 짐을 싸고 흔적을 지우기 시작했다.
“부디 저쪽에서 신경질적으로 반응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야.”
물론 쉽지 않은 일이다. 초인력을 빼앗기는 듣도 보도 못한 상황에 가만히 있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하다. 그런 의심을 가지고 살피다 보면 당장 그 앞서 나타났던 사냥꾼도 의심을 받게 되어 있다.
그런 식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최악의 경우 뒤를 쫓던 에단들의 존재가 들어날 수가 있었다.
이드가 그렇게 걱정하고 있을 때 스톤이 다가왔다.
“그럼 저희 쪽에서도 허물 작업에 들어가겠습니다.”
“허물이 뭐지?”
“돌발 사태로 인해 이쪽의 존재가 발각될 것을 대비한 의태입니다. 적이 자신들을 목적으로 우리가 접근했다고 생각하지 못하게 합니다.”
즉, 이드들 대신 적의 의심을 받을 대타를 준비했다는 말이다. 이드가 그의 말에 삼십육계 중 금선탈각을 떠올린 것은 당연했다.
“오호, 언제 그런 준비를?”
“은밀한 작전에서 만약의 사태를 대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적들은 저희가 아닌 떠돌이 용병 집단을 찾게 될 겁니다.”
당연하다는 듯 입술을 말아 올리는 스톤의 말에 이드는 작게 박수를 치고 말았다.
“과연 검은돌! 에단이 적극 추천한 만큼 믿음이 가는군.”
“대신 의뢰비가 어마어마합니다. 저 정도도 기본으로 해 주지 않으면 환불해 줘야죠.”
에단이 코웃음을 치며 나섰다. 사실 에단의 말이 사실이기도 했다. 유능한 만큼 대가가 큰 것이 당연하니까.
그에 스톤이 에단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는 유들유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왜 이렇게 신경질이야. 아니면, 네가 친 사고를 내가 수습하니 수줍은 건가?”
“이 자식이! 내가 사고는 무슨 사고!”
단번에 진실을 꿰뚫은 스톤의 말에 뜨끔한 에단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드는 그렇게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의 모습에 내심 고개가 갸웃했다. 은밀하고 위험한 작전을 수행하며 서로 목숨을 노리고, 또 서로의 손에 동료를 잃어 본 두 사람이 저렇게 죽이 잘 맞을 수 있나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사이가 나쁜 것보다는 백배 낫기 때문에 관여하지 않기로 했다.
잠시 후 톰이 준비를 마쳤음을 알려 왔다. 중간에 검은돌이 준비한 작전을 전해 들은 그는 용병들이 남길 만한 거친 흔적을 만들어 남기는 치밀함을
보였다.
“그럼 바로 물러나도록 하지.”
이드의 말과 함께 일행은 바로 오두막을 떠났다. 요새 인근의 마을을 사이에 두고 요새 반대편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대신 은밀하게 요새를 감시할 수 있는 검은돌의 남녀 한 쌍이 마을에 남겨졌다. 초인도 아니고, 내공도, 마법도 없는 두 사람이 의심을 받기는 힘들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리고 요새의 초인들에게 오두막과 톰이 남긴 흔적이 발견된 것은 수 시간 후였다.
이드에게 멧돼지를 빼앗은 남자도 그 속에서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 그는 오두막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 듯 흔들리는 눈으로 요새 방향을 바라보았다.
“시펄, 뒤질 뻔했네. 진짜 골든 아이가 행차할 줄이야. 그가 초장거리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는 말이 사실이었나?”
남자는 기절했던 비서가 깨어났다는 말을 듣고 씩씩거리며 찾아가던 때를 떠올리며 부르르 몸을 떨었다.
밤새도록 헛걸음한 것을 단단히 따지려고 들이닥친 곳에 설마 골든 아이가 있을 줄 상상이나 했겠는가. 골든 아이가 비서를 아낀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런 중요 인사가 직접 나타날 정도라고는 생각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골든 아이가 나타나도 비서를 가만두지 않겠다던 남자는 거짓말처럼 진짜 나타난 골든 아이를 앞에 두고 벌벌 떨면서 자신이 보고 들었던 모든 것을 이야기해야 했다.
그 직후 남자는 동료들과 함께 주변 탐색에 나서야 했고, 한참을 뒤진 끝에 오두막을 찾은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전혀 기쁘지 않았다. 비서의 오보는 오보가 아니었고, 자신이 주변을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는 증거가 오두막에 넘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죽일 놈, 감히 사냥꾼인 척하고 나를 속여! 잡히기만 하면 피부 안에 바람을 불어넣어 껍질을 벗겨 주마.”
남자는 자신이 가진 최악의 수법에 당해 괴로워하는 사냥꾼의 모습을 상상했다.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자신을 한심하게 바라보던 골든 아이의 모습이 떠올라 미칠 것만 같았다. 이 기분을 떨치려면 무슨 수를 쓰든 가짜 사냥꾼을 잡아야 했다. 거기에 더해 자신을 멍청이처럼 바라보던 골든 아이의 시선도 바꿀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빨리빨리 움직여! 수색을 마친 후에 바로 추적에 나선다! 지옥 끝까지라도 찾아가야 한다고!”
마음이 급한 남자가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바쁘다면서 직접 움직이지는 않는다. 그가 손을 더하면 그만큼 빨리 끝나는 일인데 말이다. 그리고 멀리 요새 안에서 진리를 훔쳐보는 황금안으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라울은 한심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쯔쯔쯧, 과연 연속된 오보에도 제대로 주변을 뒤지지 않은 이유가 있군. 저렇게 게을러서야 뭘 시킨들 제대로 할까.” 라울은 남자와 같이 게으른 자를 경멸했다.
저와 같은 자들의 대부분이 운 좋게 초인으로 각성한 멍청이라는 것도 이유지만, 더 근본적인 이유는 아무런 노력 없이 힘을 얻은 멍청이라는 기사와 마법사들의 평가 때문이었다.
본인은 그런 사실을 부정하며 노력하고 있지만, 저런 놈들이 있어서야 기사와 마법사의 초인에 대한 평가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초인들 중에는 자신들이 선택받은 자들이라는 선민의식을 가진 자들도 적지 않지만, 아무리 선택을 받아 좋은 능력을 얻으면 무엇 하겠는가? 멍청해서 그 능력을 제대로 써먹지를 못하는데.
‘멍청한 놈. 결국 이렇게 가는구나.’
라울의 뒤에 얌전히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본 성주는 영상 안에 비치는 남자의 이름을 머리에서 지웠다. 나름 강력한 초인기를 가지고 있어 머리에 담아 두었는데, 라울에게 찍힌 이상 앞으로 그를 다시 보시는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아니, 어쩌면 자신도・・・・・・・
“요새에 대한 점검은 끝났습니까?”
“예, 옛! 지금 막 끝났습니다. 확인 결과 침입의 흔적은 없었습니다.”
“확실…… 하겠지요?”
은근한 긴장감을 주는 라울의 말에 성주는 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물리적인 흔적은 물론, 대지의 기억과 잔류 사념까지 철저하게 확인을 마쳤습니다. 내부에 대한 침입은 없었습니다.”
그것은 모두 사실이었기 때문에 성주는 힘주어 말했다. 그 순간 엉망이 된 집무실이 떠올랐지만 그 생각을 곧 털어 버렸다.
그건 고양이가 한 짓이었다. 절대로 고양이다. 고양이가 아니어서는 곤란했다. 물론 자신의 미래에 관해서!
진심이 가득한 부리부리한 눈을 바라보던 라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부에 침입하진 못했으니 다행입니다. 그렇다면 목표를 찾는데 최선을 다하도록 하지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방금 들어온 소식에 의하면 수일 전에 마을 근처에 소수의 용병대가 머물렀다고 합니다.”
스톤이 준비한 허물에 성주가 제대로 낚이는 순간이었다. 덤으로 라울까지.
“떠돌이란 말이군요. 그렇다면 정보를 알아내기 쉽지 않겠네요. 더욱 철저하게 추적해서 확보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이번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고 있지요?”
“물론입니다. 모든 인원을 동원하여 최선을 다해 초인력을 흡수하는 초인기를 가진 초인을 손에 넣도록 하겠습니다.”
“모든 일정이 수일 늦어도 괜찮습니다. 이 일을 최우선으로 하세요.”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도록 계획된 일정이지만 라울은 그것을 망가트리는데 주저함이 없었다.
성주도 그런 라울의 말에서 무언가를 느낀 듯 허리를 굽히고는 방에서 나갔다.
라울은 한동안 성주가 사라진 방문을 바라보다 창밖으로 무심히 시선을 던졌다.
라울의 초인기, 진리를 훔쳐보는 황금안.
그것의 힘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름처럼 세상을 구성한 섭리라도 훔쳐볼 것처럼 보지 못하는 곳이 없고, 듣지 못하는 소리가 없었다. 또 우리 몸에서 가장 멀리까지 닿는 것이 무엇인가. 바로 눈이다. 팔과 다리는 아무리 길어도 2미터 이상 먼 곳에 닿지 못하지만 눈은 수십,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것도 볼 수 있다.
그처럼 황금안이 힘을 쓸 수 있는 범위도 어마어마하게 넓었다.
만약 그가 백작가에서 태어났다면, 드넓은 자신의 영지를 손바닥 들여다보듯 운영할 수 있게 해 줄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황금안이다.
그러나 이 황금안의 능력이 아무리 좋아도 나라를 넘을 수는 없고, 왕국 전체를 볼 수는 없다.
그에 라울은 능력의 한계를 극복할 방법을 연구했고, 그 끝에서 아티팩트의 힘을 빌리는 방법을 찾았다.
초인기의 이름을 딴 골든 아이라는 아티팩트를 만들어 황금안의 능력을 중계하게 만들고, 크게 소용이 없는 초인기를 가진 초인으로 하여금 중계된 황금안이 기동할 수 있는 초인력을 보충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중계된 황금안의 배터리 역할을 하게 되면서 비서들은 쓸모없던 초인기를 완전히 잃게 되었다. 마법이나 무공처럼 확실한 메커니즘이 밝혀지지 않은 초인력은 서로 힘을 더하는 방법이 없었는데, 이것을 억지로 극복하면서 비서들이 초인기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어차피 큰 쓸모가 없던 초인기의 소멸에 신경을 쓰는 사람은 없었다. 쓸모없는 초인기를 잃은 대신, 넉넉한 월급과 든든한 배경을 가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가 많은 수의 비서를 거느리고 있는 것에는 바로 이런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중에 요새에 설치된 단말과 비서에게 이상이 생긴 것이다. 멀리 있어 볼 수는 없지만 느낄 수는 있다.
라울은 그 즉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요새로 이동했다.
확실한 이유 없이 골든 아이가 기능을 상실한 것은 지금까지 없던 일이었으며, 그만큼 큰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서두른 덕분에 라울은 볼 수 있었다. 초인력에 심각한 데미지를 입고 기절해 있는 비서의 상태를 말이다.
그리고 기절한 그녀를 깨워 무슨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서 들은 라울은 기쁨에 몸을 떨었다.
세상에서 가장 다양한 초인기를 확인한 라울도 지금까지 보지도 듣지도 못한 초인기. 그러나 어딘가 존재할 거라고만 생각한 금단의 초인기. 다른 초인의 초인력을 흡수하는 초인기가 등장한 것이니까!
“그의 초인기라면 어쩌면 우리의 약점인 폭주의 이유를 밝혀 낼 수 있을지 모른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우리 손에 넣어야 해!”
라울이 검후를 탑에 가두고 끊임없이 설득하던 이유가 무엇이던가.
초인이 폭주하는 이유는 초인력이 미쳐 날뛰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폭주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인 초인력에 직접 흡수라는 형태로 간섭할 수 있는 그 정체불명의 초인이라면 폭주의 원인을 밝히는데 큰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라울은 오랜만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리고・・・・・・・
“더불어 우리가 좀 더 완벽해질 수 있는 단서를 줄지도 몰라.”
라울은 누가 들을세라 은밀히 혼잣말을 속삭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