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31화
768화
쪼옥. 쪼옥.
방에 있는 모두가 요구르트병에 꽂힌 빨대를 빨았다. 빨대가 무엇인지 묻는 에단의 물음에 대한 라미아의 답이었다.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고, 보는 것보다 직접 만지고 사용하는 것이 천배는 나은 법. 이보다 더 확실한 답이 있을까.
덕분에 산만 한 덩치의 기사들이 아이 주먹만 한 요구르트병을 들고 쪽쪽거리는 희극적인 장면을 만들게 되었다.
특히 한번 라미아가 주는 단맛을 본 적이 있는 에린은 정보 분석의 대가로 받은 디저트 안에 없는 새로운 먹거리에 라미아 옆에 달라붙어 한 방울, 한 방울 아껴 가며 요구르트를 빠는 중이었다.
이드는 한순간 조용해진 방에서 이어지는 라미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아직 어떻게 이런 형태의 초인력 흡수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알아내지 못했어요. 아스트랄 포인트, 즉 상단전을 그릇으로 이용하는 방법인 만큼 단순히 신체 구조의 변화만을 조사해서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니까요. 정확히 하려면 마법으로 에단의 아스트랄 바디를 분리시켜 분석할 필요가 있는데, 이처럼 환경이 좋지 않은 곳에서 했다가는 에단에게 부작용이 생길지도 몰라요.]
하기야 고위 마법이라고 하지만 드래곤의 마법적 지식을 고스란히 가지고, 이드라는 거대한 연료통을 가진 라미아에게 불가능한 마법이 있을 리가 없다.
그저 뒷감당이 곤란할 뿐이지.
하지만 여기서는 그 뒷감당이 큰 문제다.
에단이 한 번 쓰고 버리는 실험 재료가 아닌 이상 그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해야 했다.
“그런데 단순한 신체 구조의 변화로 알 수 없다는 말은 뭐야?”
“그건 제가 설명하겠습니다. 쪼로록……………”
아쉬운 듯 빈 요구르트병을 요란하게 빨던 비올라가 말했다. 디저트에는 크게 욕심을 보이지 않던 그는 요구르트가 매우 마음에 든 듯 빈 병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고, 이드는 그에게 요구르트 한 병을 더 주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답으로 지금까지 비올라가 보인 감사의 인사 중 가장 진심에서 우러난 인사를 받을 수 있었다.
‘…….너 이렇게 쉬운 놈이었냐.’
바이트 타블렛을 걸지 않으면 그렇게 뻣뻣하던 인간을 한 방에 무너트리는 먹거리의 위력에 이드는 새삼 식(食)의 위대함을 느꼈다.
“・・・・・・ 디저트로 부릴 수 있는 건 그쪽도 마찬가지군. 나중에 마법사가 필요하면 이야기할 테니, 연결 좀 시켜 줘라.”
“그 전에 마스터와 먼저 연결시켜 줘야 하지 않을까? 너희들에게는 저 자식에게 줄 이 달콤한 음료가 없잖아. 안 그래?”
“……쪼로로록.”
그 모습에 스톤은 복수라도 하듯 에단의 옆에서 악마처럼 속삭였지만, 되돌아온 에단의 말에 조용히 남은 요구르트를 빨아야 했다. 분명 요구르트는 그의 평생 한 번도 맛보지 못한 새콤달콤한 맛이었으니까.
“아무튼 아스트랄 포인트를 이용하는 것은 단순하지 않은 문제라는 겁니다. 간단하게 말해 텅텅 빈 에단의 머리 안에 초인력을 흡수하는 물건을 박아 넣어서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처럼 제대로 아스트랄 포인트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에단의 정신체, 즉 아스트랄 바디와 상차원의 연결. 쉽게 말해 일종의 마법적인 계약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연 먹을 것의 위력은 대단했다. 비올라는 평소의 그답지 않게 친절한 목소리로 예를 들어 가며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흐음, 계약이란 말이지.”
이드가 계약 하면 흔히들 떠올릴 악마와의 계약을 상상하고 있을 때였다.
짝!
“그래. 너 한 적 있잖아, 계약!”
계약이라는 단어에 무언가를 떠올린 커크가 무릎을 치곤 벌떡 일어나 에단에게 손가락질했다.
“나? 내가 언제?”
“기억 안나? 시온 숲에서 요정하고 계약한 거.”
“아!”
그의 말에 에단을 포함한, 당시 트와이스 소속으로 함께하고 있던 기사들이 동시에 잊고 있던 기억을 떠올리고는 기성을 발했다.
“요정이라니?”
당장 초인력 흡수에 대한 단서를 발견할 수 없을 것 같던 상황에 나온 뜻밖의 말에 이드가 관심을 보이자, 톰이 당시의 일을 설명했다. 미쳐 날뛰던 에단과 그 원인, 뒤이어진 계약까지.
“확실히 요정이라면 가능성이 있지. 워낙 어디로 튈지 모르는 종자들이고, 마법의 틀을 벗어난 권능에 가까운 능력을 타고난 것들이니까.”
오히려 설명할 수 없는 부분에서는 초인력과 비슷하기 때문에 초인력을 흡수하는 능력을 보인다고 해도 이해할 수 있다며, 비올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요정이라면 다행이지만…….”
다른 사람들이 요정에 대해서 말하는 비올라의 말에 귀를 기울일 때, 이드는 기묘한 예감에 라미아와 눈을 마주치며 입을 열었다.
“딱 저 때였지? 우리가 소환된 악마를 처리했던 게. 그놈이 생각나는 건 그냥 기분 탓이겠지?”
[가능성은 충분해요. 뱀과 같았다는 형태도 비슷하고. 살펴볼 필요가 있어요.]
“혹시, 악마가 에단의 몸을 빌려서 소환될 가능성이 있을까?”
악마의 처리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한 번 물리친 상대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으니까. 다만 그 사이에 끼게 될 에단이 걱정이지.
[그럴 가능성은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악마이기 때문에 이 중간계의 어떤 존재보다 약속을 잘 지킬 거예요. 계약 조건에 따라 에단에게 해를 가할 수는 없어요. 오히려 문제는…………….]
“다른 사람들이겠지.”
[하지만 에단이 계약했다는 정령이 그때 그 악마였는지 확실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저렇게 흡수한 초인력으로 회복하거나, 진신을 소환하려면 굉장히 오랜 시간이 필요해요. 아이러니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안전해요. 당분간은.]
라미아와 이야기를 나눈 이드는 잠시 후 결정을 내렸다.
“그럼 일단 이 일에 대한 건 덮어 두고 나중에 확실하게 알아보자.”
밝혀지지 않은 일로 괜히 문제를 크게 키울 필요는 없으니까. 대신 에단에게는 조용히 가능성에 대해서 언질을 줄 생각이었다. 에단의 몸에 생긴 일인 만큼 몸의 주인으로서 작은 문제라도 알아야 했다. 그래야 혹시 모를 상황에서 대처가 가능하니까.
‘그런데 진짜 악마가 문제라면…… 악마가 흡수할 수 있는 초인력이란 것은 뭐지?’
이드는 새롭게 나타난 초인력이라는 화두에 머리를 부여잡았다.
악마가 인간보다 뛰어난 상위 정신체이기 때문에 아직 인간들도 분석하지 못한 초인력을 흡수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초인력이기 때문에 악마가 흡수할 수 있는 것인지.
분명 생각해 볼 문제인 것은 확실했다.
이드가 새로운 고민거리에 끙끙거리는 동안, 라울이 지켜보는 가운데 초인력 흡수라는 초인기를 가진 초인에 대한 수색이 대대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벌써 자리를 옮긴 이드들을 찾을 수 없는 것은 당연.
자연 탐색에 나선 초인들의 행동반경이 넓어지고 거칠어졌다. 당장 요새와 가까운 마을을 찾은 초인들은 평소의 모습을 버리고 집을 뒤지기도 했다.
예상보다 강렬한 그들의 반응에 요새의 동태를 감시하던 검은돌도 몸을 사려야 했다.
그로 인해 그 소식은 조금 늦게 이드의 손에 닿았다.
“이거 하루, 이틀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겠는데?”
“저 때문이겠죠?”
“그것 말고는 이유가 없지. 저쪽에서도 초인력 흡수를 안 거야. 하기야 아무리 갑자기 생긴 힘이라고 해도 자신의 힘이 뽑혀 나가는데 모를 수가 없지. 분명 흥미를 가질 만해. 문제는 그게 생각 이상이라는 거지만.”
이드는 자신이 가볍게 생각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날도 새지 않은 새벽에 마을로 쳐들어와 집을 뒤지는 무리한 짓은 하지 않을 테니까.
“만약 제가 그들이었다면 세상 끝까지 쫓아서라도 손에 넣을 겁니다. 으흐흐흐.”
불 앞에 앉아 다시 인형을 제작하고 있던 비올라가 음산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마법사의 지적 욕망이 가득한 말이었지만, 흡성대법을 떠올린 이드는 초인의 상황도 무인과 다르지 않다고 보았다.
타인의 초인력을 흡수하는 것은 무림으로 치면 내공을 흡수하는 흡성대법이 아닌가.
처음 흡성대법이 무림에 나타난 후 얼마나 큰 문제가 되었는지를 짚어 보면 지금의 상황은 당연할 수 있는데, 아무런 노력 없이 운에 따라 얻을 수 있는 초인력의 가벼움에 거기까지 헤아리지 못한 것이다.
동시에 이 작은 차이가 현재 초인과 기사, 마법사의 사이를 가르고 있는 것인가 싶었다.
“그런데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이 한 가지 있습니다. 초인력 흡수가 제 초인기가 아니라는 사실도 좋고, 요정과의 계약 때문일 거라는 점도 좋은데… 왜 그때 초인력을 흡수한 걸까요? 이전처럼 죽은 초인의 초인력도 아닌데.”
누군가 자신을 쫓고 있다는 사실에 날카로운 분위기를 풍기기 시작한 에단이 말했다.
이드의 옆에서 있으면서 풍기던 가벼운 분위기와 다른 그 모습은 그가 트와이스의 기사로 임무를 수행하던 시절의 모습이었다.
지금의 질문도 그때의 경험에 의한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인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라미아를 향한 질문이었지만 대답은 이드에게서 나왔다.
당시의 상황을 마법적으로 해석하는 라미아와 달리, 황금빛 기운을 감각에 새긴 이드는 에단이 궁금해하는 점을 직관적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간파의 눈과 황금빛 기운, 아니 황금 초인기가 동전의 앞면과 뒷면 같은 사이라서 그래.”
“……완전히 다르다는 말입니까?”
“아니. 오히려 반대. 앞이든 뒤든 같은 동전이란 뜻이야. 보는 방향이 다를 뿐이지 근본은 같다는 거지. 내가 황금 초인기에서 느낀 기운과 네가 간파의 눈을 사용할 때 뿜어내는 초인력은 그 근본이 하나다 싶을 정도로 닮았어. 차이라면 같은 눈으로 땅을 보는 것과 하늘을 보는 정도의
차이랄까?”
“그러니까 마스터의 말씀은 제 몸에서 나온 힘과 근본이 같아서 제 힘이 황금 초인기를 흡수했다는 말씀이군요.”
“일단 내가 보기엔 그래.”
“하지만 제가 뱀 놈과 한 계약에 따르면 놈은 제 힘은 흡수할 수 없는 게 아닌가요?”
“그렇지. 하지만 황금 초인기가 네 의지 아래 통제되는 힘은 아니잖아? 네 안에 있는 존재의 입장에서는 활짝 열린 문으로 들어온 주인 없는 먹이처럼 보였지 않을까?”
“끄응…….”
에단은 추상적인 이드의 발언에 팔짱을 끼고 고민에 빠졌다. 무려 마인드 마스터의 의견을 무시할 수는 없었으니까.
그러나 이런 이드의 추측은 의외로 핵심을 찌르는 것이었다.
에단의 그것과 너무나 닮은 황금 초인기는 에단의 몸에 발을 들이는 순간 그 힘에 대한 지배력이 희미해졌는데, 에단의 안에 있던 존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목줄을 채워 끌고 가 잡아먹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에단이 끙끙거리는 사이 하루가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