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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34화


771화

방어는커녕 반응도 하지 못하고 한순간에 다섯 명이 죽었다. 그리고 다섯 개의 머리통이 땅에 떨어지기도 전에 그 빈자리를 채우듯 다시 다섯 개의 머리통이 몸과 분리되어 허공을 날았다.

반 호흡. 검을 들고 반보 움직이는 짧은 순간에 열 명이 죽었다.

이드를 만만히 보고 달려들던 초인들은 목덜미를 서늘하게 스치는 한기를 느끼며 덜컥 몸이 굳었다. 비웃음이 사라진 얼굴에는 긴장과 두려움이 떠올랐다. 아군의 숫자가 많다고 자신이 죽지 않는 것은 아니니까.

그러나 낙장불입이란 말처럼 피를 본 이상 쉽게 일을 끝낼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은 이드도 마찬가지다. 싸움에 있어서 어중간하게 피를 보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에단을 대신해 자신이 나섰던 것이 아닌가.

감히 다시는 덤빌 생각을 하지 못하게 만들기 위해서.

‘오행대천공 화륭기(火隆氣).’

푸화화화확!

이드의 양손과 검에서 새빨간 화염이 폭발하듯 터져 나왔다.

적들에게 최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 주기 위해 선택한 것이 바로 불이었다. 붉고 뜨거운 화염만큼 강하게 머리에 박히는 것이 없으니까.

물론 단순히 그 때문에 오행대천공을 꺼내 든 것은 아니다.

두려움이 목적이라면 오행대천공의 불 말고도 수단은 많다. 하지만 이드는 저들로 하여금 자신이 불의 초인기를 사용하는 초인이라는 인식을 심어 주고 싶었다.

적에게 ‘혹시’라는 의심을 남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요새를 탐색하고 도망치던 자를 공격했는데, 어마어마한 무공을 가진 강자였다고 가정해 보자.

과연 저들이 ‘아, 지나가던 무공의 고수가 심심해서 자신들을 살피고 갔구나.’ 하고 생각할까.

아니면 누군지 모르지만 자신들의 뒤를 캐는 적이 있다고 생각할까.

답은 당연히 후자다.

특히 이들처럼 정체를 숨기고 있는 자들이 가지는 의심과 조심성은 차라리 강박증에 가까울 정도로 지독하다. 조직을 구성하는 각 개인은 어떨지 몰라도, 최소한 그 조직이 가진 성질은 그러하다는 말이다.

곧 저들의 뒤를 계속 추적해야 할 에단들과 검은돌을 생각하면 결코 옳은 선택이 아니다. 그러나 강력한 초인기를 가진 초인에게 당한 것이라면 어떨까.

분명 분노하고 원한을 가지고 조사도 하겠지만, 무인의 뒤를 캐는 것만큼 의심을 가질까?

그 답은 이미 헹크의 말에 나와 있다. 같은 초인끼리 해가 될 일은 하지 않는다던가? 그 말처럼 초인이라는 동지 의식을 발휘해 뒤를 캐려고 날뛰지 말아 줬으면 하는 것이 이드의 바람이었다.

‘그냥 재수 없게 독사를 밟았다고 생각해 주길 바라.’

이드는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이 독사에 물리고도 살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를 바라며 검을 휘둘렀다.

삼 미터 크기의 불기둥으로 변한 검이 바닥을 찍으며 불의 강을 만들었다. 불의 강에 빠진 자들은 온몸이 타들어 가는 고통에 바닥을 굴렀다.

그것은 차라리 목이 잘리는 것이 편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광경이었다.

“여기서 물러서면 죽는다. 공격해! 1조는 전면에 나서고, 9조는 1조의 뒤를 받쳐!”

헹크는 급하게 명령을 내리며 이를 악물었다. 왜 불길한 예감은 틀리는 법이 없는지.

상대는 생각 이상의 강자였다.

저만큼 강력한 화력을 뿜어내는 초인을 만난 것이 얼마 만이던가. 저만한 강자는 중앙에도 흔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헹크는 어쩐지 이번 임무를 실패할 것 같다고 느꼈다.

그러나 실패하더라도 물러날 수 없다.

“뜨, 뜨거워어어억! 살려 줘!”

이드의 등을 노리던 자가 하반신이 숯이 되어 비명을 지르며 쓰러졌다. 하지만 그 비명은 불길의 화살이 가슴에 박히자마자 끊어졌다.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 꺼낸 카드지만, 타인의 비명을 감상하는 취미가 없는 이드가 화검기를 날려 그의 숨을 끊은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잔인할 수 있지만,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이드를 보는 자들의 눈에는 그것이 악마가 내리는 마지막 자비처럼 보였다. 어차피 하반신이 저렇게 된 이상 살아날 수도 없고, 살아도 산 것이 아닌데, 고통이라도 없어야지.

정말 허락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이 싸움을 멈추고 도망가고 싶은 것이 그들의 심정이었다. 이건 뭐 가까이 갈 수가 있어야 공격이라도 할 것이 아닌가.

원거리 공격도 저 무서운 불꽃의 벽에 부딪혀 힘없이 소멸될 뿐이다.

그렇게 슬슬 초인들의 손에 힘이 빠지던 찰나, 헹크의 명령에 따라 적재적소에 흩어져 있던 1조가 전면에 나섰다. 그들은 모두 헹크와 같이 정예로 훈련받은 초인계의 엘리트들이었다.

지금은 힘의 균형보다 힘의 집중이 필요한 때라는 뜻이다.

“침묵하는 안개!”

“솟아올라라, 암반수!”

앞으로 나선 이들은 불과 상극인 능력을 가진 초인들을 앞에 세워 이드가 두른 불을 공략했다. 불의 근원에 접근이 힘들다면, 불 자체를 상대한다. 무엇보다 끝없이 타오르는 불길은 없는 법. 그들은 불길을 제압하며 이드의 힘을 빼는 작전에 나섰다.

개인의 힘이 다수의 힘을 이길 수 없는 법. 숫자가 많다는 이점의 올바른 사용 방법을 1조가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실제 이들의 행동에 이드의 불길이 더 번지지 못하자 두려움에 떨던 초인들이 환호했다.

“물! 물을 더 부어!”

“그걸로 모자라. 비를 뿌려!”

“강을 만들어 익사시켜 버리겠어!”

그중에는 기적을 일으키라는 요청도 있고, 직접 손을 보태는 자도 있었지만 마음은 하나였다.

“저 괴물을 잡을 방법을 드디어 찾았어!”

극정의 불길. 삼매진화 안에서 잠깐 한숨을 돌리다 그 말을 들은 이드는 쩌업하고 입맛을 다셨다. 어쩐지 자신이 악당이 된 것 같아 기분이 묘했다. “어쨌든 그 방법 틀렸는데, 안타깝네.”

기운생동의 근본을 담은 화륭기를 끄려면 비슷한 크기의 불꽃을 끄는 데 들어가는 60배의 물이 필요하다. 성냥불 정도의 불을 끄기 위해서 물 한 바가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것도 추가적으로 화륭기의 힘을 키우지 않는다는 전제하에!

용광로 같은 불덩이를 끄기 위해 악을 쓰는 이들이 그 사실을 알았다면 과연 어떤 표정을 할까.

이드는 그 행동을 잠시 감상하다 납검했다.

“검과 화륭기의 궁합은 역시 별로야.”

강력하긴 하지만 화려함이 모자랐다. 폭발이 있어야 제맛인 불을 상자 안에 가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저들이 희망을 가지게 된 것이다. 이제 저들의 머릿속에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화인 같은 두려움을 심어 줄 때다.

이드는 자신이 두른 불길의 벽을 향해 각종 다양한 물길을 뿜어내는 초인들을 바라보다 허리를 굽혔다. 한 발을 빼고 엉덩이를 들고서 양손으로

땅을 짚었다.

“드디어 놈이 쓰러진다!”

불길에 가린 그림자를 보고 환호하는 자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쓰러진 것이 아니었다. 더 강력한 한 방을 위해 힘을 모은 것일 뿐!

‘축흉마탄’

본래는 허공에서 아래로 내려찍는 공격이지만, 이드는 그것을 돌진기로 사용할 생각이었다.

불끈!

허벅지 근육이 터질 듯 수축하며 땅을 찌그러트리듯 밀어내자 이드의 몸이 포탄처럼 쏘아졌다. 온몸에 불길을 감고 날듯이 땅 위를 달리는 이드의 모습은 말 그대로 불꽃의 탄환이었다.

“저…… 저!”

“피해!”

방금 전까지 이드가 쓰러진다고 환호하며 물을 뿌리는 데 힘을 더하던 자들은 빠르게 자신들에게 돌진하는 이드의 모습에 경기를 일으켰다. 머릿속엔 저것에 부딪히며 죽는다는 생각뿐.

그러나 이미 도망가라는 신호를 몸이 받아 실행하는 것보다 이드의 속도가 더 빨랐다.

콰아아앙!

불꽃의 포탄이 된 이드가 한데 모인 초인들 가운데로 떨어져 내리며 폭발했다.

시뻘건 화염이 세상을 삼킬 듯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순식간에 불타오른 물질들이 재가 되어 버섯구름을 만들었다. 마법사들이 보았다면 메테오라고 외칠 광경이다.

실제 9클래스의 메테오 만큼의 위력은 없어도, 그것의 하위 버전이라고 할 정도로 효과와 모습이 판박이처럼 닮았으니까.

후두둑, 후두둑.

착탄의 충격에 치솟았던 흙과 돌을 비처럼 맞으며 적들은 벌벌 몸을 떨었다. 주변에 가득한 열기에 땀을 주룩주룩 흘리면서도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으…… “

“미・・・・・・ 미친, 저딴・・・・・・ 괴물을…… 어떻게 하라고?”

털썩 바닥에 주저앉은 초인이 울 듯 말했다. 기사나 마법사라면 악과 깡으로라도 쉽게 보이지 않을 추태가 나왔다. 그만큼 정신 무장이 약하다는 소리.

“그, 그래도 저거면 그 괴물도 죽은 거 아닐까?”

누군가 조심스럽게 희망 사항을 입 밖으로 꺼냈지만, 개중 냉정하게 상황을 보던 자들은 고개를 저었다.

그들에게 괴물처럼 보였던 강자는 자폭 공격을 할 정도의 멍청이도 아니고, 그럴 이유도 없었다. 방금 공격이 아니라도 그의 힘은 충분히 자신들을 압도하고 있는데 자폭 공격을 할 이유가 있나.

아니나 다를까. 서서히 폭연이 걷히며 드러나는 커다란 구덩이 아래서 뿌연 그림자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이드는 가볍게 손을 저어 사방에 가득한 폭연을 걷어 냈다. 그러자 십 미터 깊이의 깊은 구덩이가 폭연 속에서 나타났다. 다행히 그 속에는

사람들이 상상하는 참혹한 광경이 담겨 있지는 않았다. 축흉마탄의 초고열에 모든 것이 한순간 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달리 생각하면 정말 끔찍한 상황이었다. 사람들이 들이마시는 연기 속에 죽은 자들의 재가 들어 있을 테니까. 하지만 그런 감상적인 것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멀쩡한 모습으로 다시 나타난 이드의 모습에 공포를 느끼기 바빴으니까.

그것이 바로 이드가 바라던 모습이었다.

주위를 돌아본 이드가 이 정도면 충분할까 생각할 때였다.

“지금이다! 묶어!”

신호와 함께 사방에서 뿜어진 온갖 초인기가 이드를 발끝에서부터 머리까지 움직일 수 없도록 꽁꽁 묶기 시작했다. 맹수를 가둔 철창처럼. 오우거를 묶어 두는 쇠사슬처럼.

이드는 자신을 미라처럼 둘러싸는 수많은 힘의 사슬에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저들의 움직임을 살폈다.

그러자 남은 자들 중 절반이 라미아들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사실 축흉마탄을 본 순간 헹크는 이드를 제압하겠다는 마음을 깨끗하게 접었다.

아무리 명령이라지만 불가능한 일은 할 수 없다.

대신 그는 이드를 잡기 위한 방법을 바꿨다. 기사를 잡기 위해 말을 잡을 필요가 있는 것처럼, 이드의 동료를 잡아 이드의 항복을 받아 내기로 말이다.

물론 헹크에게는 그것도 불확실한 도전이긴 마찬가지였다. 이드가 라미아들을 무시하고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이드를 직접 상대하는 것보다는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 판단은 틀린 것이 되었다.

‘아무리 해 봐라. 너희들로 라미아의 손끝이라도 잡을 수 있나.’

이드는 차라리 구경꾼의 느긋한 자세로 라미아들에게 달려드는 적의 모습을 감상했다.

제압용의 초인기가 단단히 이드의 몸을 잡고 있어 따로 기댈 필요도 없이 아주 편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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