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47화
784화
눈은 핏발이 섰고, 밖으로 드러난 피부는 붉었으며, 가만히 서 있는데도 숨은 거칠고 뜨겁다. 힘없이 술잔을 내어주는 시온 자작을 살핀 코롤은 이드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건 아무리 봐도 술을 마셔서 나올 수 있는 증상이 아니다.
술에 과민 반응을 보이는 사람은 그럴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사람은 아예 술을 권하지도, 마시지도 않는다. 정말 술을 마시다 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백작가에서 시온 자작을 살해할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아닐 것이고, 남은 것은 특별하다는 것 한 가지로 모아진다.
‘이 유혹하는 향은・・・・・・ 올리아올인가. 쯧, 이 술에 아까운 짓을 해 놓았군.’
사랑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술을 아끼는 코롤은 이 명주에 약을 탔다는 사실에 분노하며 몸을 돌렸다.
그곳에는 웃음기가 싹 가신 시디푸가 서 있었다.
분명 한여름 땡볕 아래 녹아내린 개처럼 늘어져 있어야 할 인간들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예법에 따라 파티에 청했지만 피로로 사양했던 자들이 아니던가.
그런데 갑자기 파티장에 나타나 시온 자작의 술잔을 빼앗아 들었다.
시디푸는 코롤이 들고 있는 시온 자작의 술잔을 보고 파르르 떨었다. 혹시 그가 약에 대해 알고 온 것인가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곧 부정했다. 감히 이 성에서 백작가를 거역하고 허튼 소리를 할 자들은 없다고. 또 마지막 기회인 이 파티는 무리해서라도 완벽하게 마무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을 정리한 시디푸가 갑자기 나타난 세 기사를 반겼다.
“하하하, 파티도 사양하고 쉬겠다고 하시더니 나오셨군요. 잘되었습니다.”
“더 쉬고 싶었지만, 풍겨 오는 술 향이 너무 달콤해서 참을 수가 없지 않겠소. 역시 피로는 술로 풀어야 제대로 풀리는 것인 모양이오.”
“하하하, 역시 사나이십니다. 그렇지요. 술로 풀어야지요. 여기 제 잔을 받으시지요.”
시디푸가 새 잔과 술병을 들었다.
코롤이 시온 자작의 손에서 빼앗아 든 약술을 마셔서는 곤란했다. 여러 가지로!
하지만 처음부터 그 때문에 파티장으로 난입한 코롤은 시디푸의 생각대로 따라 줄 생각이 전혀 없었다.
“아니, 전 이 잔을 마시지요. 향이 너무 좋은 것이 제가 가끔 아껴 마시는 올리아올인 것 같습니다.”
“역시 질풍 기사단장님은 알아보시는군요. 그런 의미에서 새 잔을 받으시죠. 이 파티는 자작님이 떠나는 게 아쉬워 연 것인데, 주인공이 취하지 않아서야 섭섭하지 않겠습니까.”
“그도 그렇군요. 하지만 우리가 도착한 순간부터 자작님의 몸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호위대의 책임 아래 있으니 어쩔 수 없습니다. 그냥 보아도 심하게 취하신 듯 보이지 않습니까. 이대로라면 출발도 늦어지겠습니다. 그래도 소영주께서 권하시니 새 잔은 받고 헌 잔은…….”
“올리아올이 그렇게 명주라니. 제가 맛을 보겠습니다.”
코롤이 돌아보자 보바르가 기다렸다는 듯 손을 내밀었다.
보바르와 록코스 두 사람은 어느새 시온 자작의 양옆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원래 그 자리에 있던 두 아가씨는 엉거주춤 놀란 얼굴로 두 사람에게 밀려나 뒤에 서 있었다.
두 기사는 아가씨들이 욕심만으로 대항할 수 없는 자들이었던 것이다.
노골적으로 아가씨들을 시온 자작에게서 떼어낸 것이지만, 보바르의 손에 넘어간 잔의 처리가 더 급했던 시디푸는 그런 사실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경께도 새 술을…….”
그리고 시디푸가 코롤에게 새 잔을 권하다 말고 급히 손을 뻗으려는 순간 그보다 한발 먼저 보바르의 어깨를 치며 술잔을 떨어트리는 자가 나타났다.
“어이쿠,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한눈을 팔다가 그만…….”
사과와 함께 꾸벅 고개를 숙이는 자는 백작가의 기사, 투맨이었다. 시디푸의 계획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가 상황 수습을 위해 나선 것이다.
“이런 투맨 경, 조심을 하지 그랬소. 하하하, 차라리 잘되었소. 마침 술을 버렸으니 투맨 경이 새 잔에 술을 담아 질풍 기사단의 기사께 드리시오.”
시디푸는 갑작스런 투맨의 등장에 내심 가슴을 쓸어내렸다.
“예. 그러겠습니다.”
시디푸가 일부러 수선스럽게 나서자 투맨이 세 기사에게 술을 채운 잔을 권했다. 그리고 그러는 사이 잠시 빈틈을 이용해 시디푸의 옆에 붙어선 투맨이 속삭였다.
“시온 자작의 양옆에서 붙어선 것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습니다. 약을 치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안 돼! 오늘이 아니면 기회가 없어.”
“하지만…….”
“하지만이고 저지만이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오늘 일은 마무리해야 돼! 도대체 저 자작 새끼는 뭐야! 그만큼 처마셨는데 왜 약발이 안 올라? 왜 멀쩡하냐고!”
시디푸는 죄 없는 투맨을 향해 이를 갈았다. 마치 약발이 서지 않는 것이 그의 탓인 것처럼. 그러나 이 충직한 기사는 그에 기분 나빠하는 기색 없이 답했다.
“아무래도 자작이 체질적으로 약이 잘 듣지 않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시디푸는 투맨의 말에 결심한 듯 입술을 질끈 물고 품에서 작은 봉투 하나를 꺼내 주며 말했다.
“이렇게 된 것 강하게 나가자. 남은 약 있지? 모두 술에 타서 가져와라.’
“하, 하지만 그렇게 되면…….”
“그러면 뭐? 미친 듯 여자를 찾기밖에 더해? 추하긴 해도 귀족이 술에 취해 여자를 찾는 게 이상할 건 없잖아? 어차피 수상해도 하루 이틀 지나면 흔적도 남지 않을 약이야.”
・・・・・・ 알겠습니다.”
반론은 듣지 않겠다는 듯 강한 시디푸의 모습에 투맨은 힘없이 고개를 숙이고 약을 받아들었다.
시디푸는 투맨이 약을 탄 술을 가져오길 기다리며 술잔을 들어 올렸다.
“자, 여기 그 이름도 유명한 질풍 기사단의 기사들이 참석했소. 모두 이 위대한 기사들을 위해 잔을 듭시다!”
“질풍 기사단을 위해!”
파티에 모인 사람들이 크게 외치는 사이 투맨은 준비된 술병에 약을 털어 넣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파티장 밖에서 지켜보고 있던 이드는 혀를 내둘렀다.
“미친놈들. 설마 저 약을 다 쓸 생각인 거야?”
[대담하긴 하지만・・・・・・ 결과적으로 소영주 말이 틀리지도 않은 것 같은데요?]
라미아는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시디푸의 과감한 결단은 틀리지 않다고 보았다. 특히 귀족이 마음에 드는 여인을 찾는 것이 당연한 곳 아닌가. 그레센은 지구가 아니었다.
“그렇긴 하지만, 아무리 최음제도 과하면 몸에 나빠. 특히 이번 약은 독성도 강한 약인데…….”
대표적인 발기부전 치료제인 비아그라조차 정량을 넘길 경우 심장마비가 생길 수도 있다. 그 많은 테스트를 거친 약도 그런데 성분도 불분명한 저 약은 어떻겠는가!
[그래서 좋은 거죠. 자업자득. 자기가 먹겠다는데 먹여 줘야죠.]
라미아가 흉흉한 눈으로 시디푸를 노려보며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녀의 손가락 위에는 지금까지 시온 자작이 마신 술에서 분리한 약이 찰랑거리며 떠 있었다.
그녀는 이드가 자작이 마신 약을 시디푸에게 다시 먹인 이야기를 듣고는 이번엔 자신이 처리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오늘보다 약한 약을 먹고도 그 소동이 났는데, 과연 오늘 더 강한 약을 먹고는 어떤 추태를 보이게 될지?
‘차라리 심장마비로 쓰러지는 것이 소영주의 미래를 위해서는 좋을지도.・・・・・・’
이드는 내심 기대되는 한편 소영주의 악몽 같은 미래에 심심한 유감을 표했다. 개미 똥구멍만 한 작은 유감을 말이다.
그리고 잠시 후 이드와 라미아가 지켜보는 가운데 약을 탄 술잔이 나타났다. 투맨에게 잔을 건네받은 시디푸는 그것을 시온 자작의 손에 건네주기 위해서 갖은 수단을 다했다.
참으로 옆에서 보기 민망할 정도였지만, 왕의 명령을 받은 질풍 기사단의 벽을 넘기는 쉽지 않았다.
그리고 잔을 권하고 막던 중에 잔이 엉뚱한 곳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렇게 강권하시니 어쩔 수 없지요. 수도까지 질풍 기사단이 모시는 분인 만큼, 자작님을 대신해서 제가 벌주로 마시도록 하겠습니다!”
중간에 잔을 가로챈 보바르가 단숨에 잔을 비웠다.
[어라라라라?]
그 모습에 시온 자작이 잔을 비울 때를 노리고 있던 라미아가 놀라 기묘한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그리고 그것은 시디푸와 투맨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니, 그들의 놀람은 라미아보다 오히려 더욱 컸다. 두 사람은 순식간에 벌어진 사건에 입만 떡 벌리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설마 그가 갑자기 잔을 비워 버릴 줄이야!
하지만 그것은 그의 돌출 행동은 아니었다.
이드가 전한 정보에 대한 확인 차원에서의 행동이었다. 이상하다고 해도 증거가 필요했으니까. 의심스럽다고 술을 가져가 검사하는 것은 백작가에 대한 무시이지만, 약을 먹고 생긴 몸의 이상을 조사하는 것은 이야기가 다르니까.
왕에게 충성하는 질풍 기사단은 왕의 것에 손을 대는 백작가의 행동을 그냥 웃어넘길 생각이 없었던 것이다.
또 덩치만큼이나 술과 독에 강한 보바르라면 충분히 괜찮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런 믿음은 완벽히 빗나가고 말았다.
설마 시디푸가 남은 약을 통째로 술에 들이부을 거라고 짐작이라도 했겠는가!
강력히 약을 쓴 만큼 효과는 즉시 나타났다.
“콰아아아아아~”
처음에는 명주의 끝 맛을 감상하던 보바르가 곧 심상치 않은 느낌으로 드래곤의 브레스와 같은 숨을 내쉬었던 것이다.
“이봐, 보바르. 괜찮아?”
예상과 다른 동료의 모습에 옆으로 다가오던 록코스는 이내 흠칫하고 말았다. 보바르가 내쉬는 숨이 희미한 핑크색이었기 때문이다.
절대 잘못 본 것도 아니고, 등불이 잘못 비친 것도 아니었다. 도대체 어떤 약을 마시면 사람이 핑크색 숨을 뿜을 수 있을까. “크으으~”
그런 의문을 제대로 떠올리기 전에 보바르가 전신을 부르르 떨며 고개를 들었다.
그 짧은 사이 그의 눈엔 핏발이 서고, 얼굴은 붉어졌으며, 전신의 근육이 불끈거리며 펌핑되었다. 특히 사타구니 사이가 불룩하게 솟아 있는 것이 약발을 아주 제대로 받은 모습이다.
그나마 기사로서 최대한의 자제력을 발휘하여 정신을 차리려는 듯 고개를 저어 보지만, 아무리 봐도 오래 갈 것 같지 않다.
“소영주, 도대체 보바르가 마신 술이 무엇이오? 무엇이기에 내 기사가 저런 모습을 보이는 것이오?”
보바르의 강한 체력을 믿고 있던 코롤이 시디푸를 노려보았다. 설마 자작이 몇 잔이나 마신 술에 사용한 약이 강해 봐야 얼마나 강할까 얕본 것이 실수였다.
“아니, 이것은…… 그……”
설마 일이 이렇게 커질 거라고 생각지 못한 시디푸가 당혹하는 사이.
록코스가 빠르게 사람들을 파티장 밖으로 내보냈다. 약에 당한 동료가 실수하여 그의 명성에 오점이 남는 것을 피하게 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질풍 기사단의 세 기사와 시온 자작, 시디푸, 투맨만이 남은 순간!
“우어어어~”
모든 이성이 증발한 보바르가 몸을 날렸다. 시디푸를 향해서…………….
이유는 달리 없었다. 코롤과 록코스가 뒤로 숨기고 있는 시온 자작을 제외하고, 그나마 시디푸가 가장 몸이 가늘었기 때문이다.
즉, 보바르에게는 그가 여성으로 보였던 것!
“으아아아~ 투, 투맨! 저자를 막아!”
순간 남성으로서 가장 중요한 무언가의 위기를 느낀 시디푸가 시퍼레진 얼굴로 소리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밖에서 그 어이없는 상황을 보고 있던 라미아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 끝으로 가지고 놀던 약물을 시디푸의 입속으로
이동시켰다.
[평생 기억에 남을 황홀한 밤을 위하여~]
그리고 그날 밤의 일은 모든 사람들의 기억 속에 봉인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