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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54화


791화

“왔다!”

수일 후.

좋지 않은 소문에 검후를 걱정하던 사람들이 기대하던 오색 기사단이 수도에 도착했다.

아직 그들이 안티로스의 성문을 넘지도 않았지만,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기대에 부푼 가슴을 안고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다른 기사들처럼 기사단의 행진을 허가받는 과정에서 오색 기사단의 도착 소식이 퍼진 것이다.

사실 다른 기사단도 아니고 제국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오색 기사단인데 자랑과 홍보가 따로 필요할 이유가 없다. 그래서 조용히 진입하려 했지만, 황제가 제국민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하라고 하는데 기사단에 무슨 힘이 있나? 하라는데 해야지.


“은색 기사단은 왜 안 들어와?”

“얼마나 기다려야 은색 기사단을 볼 수 있는 거야? 가게에 올려 둔 냄비가 탄다고!”

“불난다. 냄비부터 내리고 와, 이 자식아!”

“사랑해요! 반짝! 반짝! 은색 기사단!”

그렇게 모인 대부분의 사람들이 은색 기사단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비밀도 아니다. 남녀노소가 없다. 여성들은 아름답고 강인한 은색 기사단의 모습에 반했고, 남자들은 그녀들의 고고한 아름다움에 매료된 것이다.

“이야, 은색 기사단의 인기가 엄청난데? 나머지 사색 기사단을 모두 가져다 놓아도 은색 기사단의 인기에는 못하겠어.”

그런 사람들 틈에 섞여 있던 이드는 은색 기사단의 인기에 새삼 감탄했다. 소드 팰러스에서도 은색 기사단의 인기는 높았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

[아무래도 소드 팰러스에서는 자기가 목표한 기사단이 우선일 테니까요.]

그에 이드와 나란히 서서 팔짱을 낀 라미아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말했다. “오늘 기분 좋은가 봐?”

[히히, 오랜만의 데이트잖아요. 이제야 아바타를 만든 보람이 느껴지네요.]

라미아는 자신이 사용하는 인형을 아바타라 불렀다. 이름은 붙이지 않았다. 자신의 몸에 따로 이름을 붙이는 것은 이상하다면서.

“지금에서야? 앞서는? 파티도 같이 다니고, 시온 숲에도 갔다 왔잖아.”

[에이, 그걸 어떻게 데이트와 비교해요? 그건 뭐랄까. 그래, 일종의 일에 가깝죠. 지금처럼 단둘만의 오붓한 나들이는 아니었잖아요.]

“그런가.”

내심 그렇게 다른가 싶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하기로 했다. 남녀의 감성 차이는 분명히 존재하는 현상이지만, 그 과정이 해석되지 않은 과학과 같은 것이니까 말이다.

문제 풀이를 포기한 이드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건물에 가려 보이지 않는 성문 쪽을 돌아보았다.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이드도 오색 기사단의 행진 소식을 듣고 나왔다. 다른 사람들처럼 구경이 목적이 아니라 은색 기사단과 함께 올 일리나의 마중을 나온 것이다.

“언제 오려나?”

이드가 성문이 있는 방향으로 목을 쭉 뺐다.

시간이 지날수록 구경 나온 사람들이 점점 많아졌다. 사람이 많이 모이다 보니 소매치기도 나타나고 사소한 싸움까지 생기기 시작했다. 덕분에 경비병들이 바빠지기 시작했지만, 자리를 뜨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지금이 아니면 오색 기사단과 같은 유명인을 언제 가까이서 볼 수 있을지 모르니까.

“이제 시작하는 모양이네.”

성문 입구에 어지럽게 모여 있던 기운이 어느새 단정하게 정리되어 웅장하게 솟아올라 고고한 기세를 뽐내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안티로스를 찾은 어느 기사단보다 강력한 기운은 오색 기사단이 분명했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이드는 알 수 있었다. 다양한 기운이 섞여 뿜어지는 기세 속에 익숙한 은색 기사단의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기사단이 구경을 나온 제국민에게 강한 인상을 주기 위해서 약하게나마 기세를 뿜고 있어서 그 느낌은 특히 선명했다.

‘그런데 일리나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네. 아, 그러고 보면 은색 기사단의 기사도 아닌데 이런 일에 힘을 쓸 필요는 없겠지.’

은색 기사단의 기사도 아닌 일리나가 구경꾼들에게 강한 인상을 줄 이유가 없다. 이드는 스스로 납득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후 성문으로부터 오색 기사단의 이름을 소리치는 환호성이 터지기 시작했다.

“뭐야? 온 거야?”

“왔다. 왔다!”

“영상 저장구로 오색 기사단 기사님들의 모습을 담아서 평생 가보로 간직하겠어!”

주변 사람들은 아직 보이지 않는 오색 기사단을 기다리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저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는 오색 기사단의 모습에 사람들이 미친 듯이 환호성을 질렀다.

“오색 기사단 만세! 은색 기사단 만세!”

“검후님 만세!”

“소드 팰러스 만세!”

전쟁에서 승리한 개선장군을 위한 환영이 이렇게 열광적일까.

이곳 사람들은 수도에 살고 있다는 자존심에 의외로 도도해서 아무 기사단에나 쉽게 환호성을 지르지 않는다. 그러나 오색 기사단에게는 우리가 언제 도도했냐는 듯 무조건적인 환영과 환호를 보냈다.

그만큼 제국에서 소드 팰러스가 대단한 위치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았다.

‘이러니 페시딘이 엉뚱한 야망을 품는 것이겠지.’

이드는 어딜 가든 쏟아지는 이와 같은 환호에 취해 있을 삼검왕의 모습에 고개를 저었다. 물론 삼검왕씩이나 되어서 이런 환호에 취해 심장이 콩닥거렸을 리는 없다. 그러나 분명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을 것은 분명해 보였다.

“어라? 오색 기사단인데 색깔이 좀 모자라지 않아?”

정신없이 소리치던 사람들 속에서 기사단을 살핀 이드가 말했다.

[그러네요. 흑색과 황색 기사단이 빠진 삼색 기사단이 왔네요.]

기사들이 들고 있는 깃발과 그들이 두른 망토의 색깔은 오색에서 두 색을 뺀 은색과 적색, 청색의 삼색이었다.

“사람들이 좀 실망하겠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오매불망 오색 기사단을 기다렸던가.

그러나 이드의 그런 생각을 무시하듯 사람들의 환호는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

혹시 너무 흥분해서 소리 지르느라 두 개 기사단이 빠진 걸 몰랐냐고? 아니다. 이유는 간단했다. 사람들이 가장 보고 싶어 했던 은색 기사단이 행진 중에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참, 지나치게 솔직한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은색 기사단 만세!”

“기사님, 너무 아름답습니다!”

“청색, 적색 기사단도 만세!”

얼마나 솔직한지 청색과 적색 기사단이 은색 기사단의 덤처럼 보일 지경이지만, 두 기사단 모두 이제는 익숙하다는 듯 태연한 얼굴이다. 어디 한두 번 당해야 말이지.

청색과 적색 기사단이 갑자기 빛이 바랜 듯 초라해진 가운데, 이드는 은색 기사단 속에서 금방 일리나를 찾을 수 있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뿐 아니라 기사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기사단의 갑옷을 걸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단숨에 찾아낸 것이다.

그녀의 주변에는 쉴라와 스폴 등 익숙하면서 은색 기사단의 핵심인 멤버들이 모여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은색 기사단이 일리나를 호위하는 듯했다.

“……이드!”

순간 부부의 마음이 통한 것일까. 똑바로 앞만 바라보던 일리나가 고개를 돌리다 이드를 발견하고는 환하게 미소 지었다.

“엇! 저 기사분이 날 보고 웃어 주셨어.”

덕분에 도끼병 환자들의 병이 도졌지만, 신경 쓰는 사람은 없다.

“이드 님이 나오셨군요.”

일리나의 눈을 따라 이드를 찾아낸 쉴라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괜히 눈치 없이 이드의 정체를 밝혀 그를 곤란하게 할 필요는 없으니까.

이드로서는 고마운 배려가 아닐 수 없다.

“그럼 쉴라 경. 저는 여기서 헤어져야 할 것 같아요.”

일리나가 말의 고삐를 쉴라의 손에 쥐여 주었다.

“황궁에 들렀다 가시는 게 어떨까요? 황제 폐하께서도 일리나 님을 궁금해할 텐데요.”

“아니요. 제가 제국의 황제를 꼭 만나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요.”

“단장님도 참. 사랑하는 임이 마중 나왔는데. 황제 폐하가 문제겠어요? 부부의 사이를 가로막으면 천벌이 떨어질지도 몰라요~”

“스폴 경. 제발 말조심!”

자칫 불경할 수도 잇는 농담에 쉴라가 눈총을 주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스풀의 말이 틀리지 않다고 여겼다. 과연 엘프인 일리나에게 황제를 먼저 생각해 달라는 말이 통할 것인가?

그 답은 이미 손에 쥐어져 있으니, 굳이 물을 필요는 없으리라.

“어쩔 수 없죠. 그럼 이드 님께 나중에 저택으로 찾아가겠다고 전해 주세요.”

“물론이에요.”

일리나는 쉴라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에서 뛰어내려 이드에게 달려갔다.

“여행은 즐거웠어요?”

이드는 달려오는 일리나를 따뜻하게 껴안고서 눈을 마주치며 보고 물었다.

“네. 그런데 여기서 이드가 기다라고 있을 줄 몰랐어요.”

“마나님이 먼 길을 오셨는데, 당연히 마중을 나와야죠.”

[나도 있어요, 일리나.]

“라미아도 마중 나와 줘서 고마워요. 그런데 얼굴이 보이지 않네요?”

일리나의 말처럼 로브를 쓴 라미아의 얼굴은 이상할 정도로 짙은 그림자에 아무것도 보이지가 않았다.

[가면이 보이면 사람들이 궁금해하거든요. 그래서 가렸어요.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면 궁금해할 것도 없으니까.]

효과는 확실했다. 사람들은 로브의 그림자에 가렸다고 생각한 것인지 라미아의 얼굴에 대해서 전혀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보는 눈이 엄청나게 많다. 아니, 많다 못해 난리가 났다. 우상처럼 바라보던 은색 기사단에서 갑자기 뛰쳐나온 기사가 남자와 포옹을 하고 있으니까!

“저, 저놈은 뭐야?!”

“아악! 내 은색 기사님을 죽인다…..!”

“죽이긴 뭘 죽여! 기사님이 먼저 달려왔는데. 연인 사이잖아. 보면 모르냐? 그런데 부럽다. 나도 은색 기사단 기사와 사귀고 싶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은색 기사단 소속이 아닌 거 아냐? 기사단 소속 갑옷도 입지 않았고.”

“뭐? 그게 어때서? 저 아름다움을 보고도 그런 걸 따지고 싶냐?”

“….”

의문을 표하던 남자는 너무도 옳은 반박에 조용히 입을 닫았다.

이드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질투와 의혹에 찬 목소리에 곤란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다고 ‘이 여자는 내 아내다!’라고 소리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오색 기사단을 기다리며, 그들과 함께 올 소검후에 대해 이야기하던 사람들인데, 그런 말을 했다가는 금방 이드과 일리나의 정체를 알게 될 것이다.

‘어차피 이야기하지 않는다고 끝까지 모르지도 않겠지만.’

그런 의미에서 최대한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는 것이 좋다.

이드는 라미아와 일리나의 손을 잡고 저택을 향해 달렸다.

길에는 오색 기사단을 보기 위해 몰려든 구경꾼들이 가득했지만, 이드가 앞으로 나가자 그 앞에 있던 사람들이 알아서 길을 비켜 주었다.

그들이 의식하지 못하는 레벨에서 본능이 격의 차이에서 느껴지는 위압감을 감지하고 먼저 반응한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사람들은 스스로 길을 내어 주고도 자신이 왜 그랬는지 알지 못해, 신기해했다.


“이드 명예 후작. 여전히 하찮은 일에 굉장한 힘을 쓰는군.”

사람들 사이로 사라지는 이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청색 기사단장 모이엔의 입술이 뒤틀렸다.

사라져 가는 이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모이엔의 눈이 음험하게 번들거렸다.

“행진을 계속한다. 황궁으로 출발!”

쉴라의 출발 소리와 함께 다시 시작된 삼색 기사단의 행진은 황궁에 도착해서야 멈추었다.

“대아나크렌 제국의 온당한 지배자이신 황제 폐하를 뵈옵니다.”

황제는 이들 삼색 기사단을 기쁘게 반기고 토벌의 참전을 칭찬했다. 그리고 잠시 기사들의 얼굴을 살피더니 물었다.

“그런데 소검후는 같이 오지 않았던가? 내 알기로 은색 기사단과 함께 움직인다 들었다만?”

“그것이…….”

황제의 물음에 쉴라가 조금 망설이며 사정을 이야기했다. 일리나가 은색 기사단과 함께 했었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문제는 은연 중 쉴라의 몫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황제는 재미있다는 듯 위엄에 어울리지 않게 키득거리며 웃었다.

“명예 후작도 그렇지만, 후작 부인도 재미있는 사람들이로구나. 밀리아리아가 고생을 좀 하겠어.”

두 사람이 다루기 힘든 사람인 것이 왜 황녀의 고생이 되는 것인지 궁금했지만. 쉴라는 최대한 인내심을 발휘해 묻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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