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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56화


793화

“내 집은 아니지만, 어서 와요. 쉴라 경.”

“반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연하죠. 일라나에게 들었어요. 쉴라 경이 특별히 신경 써서 잘 챙겨 준 덕분에 편했다고.”

두 팔 크게 벌려 반기는 이드의 모습에 어리둥절하던 쉴라는 곧 그 이유를 알고는 손을 저었다.

“그 정도는 당연합니다. 일리나 님이 화원과 제 기사들을 지켜 주신 걸 생각하면 더 해 드리지 못한 것이 아쉬울 정도입니다.”

정말이다. 마인드 마스터의 아내라는 것을 제외하더라도, 현재 자신의 무공 스승이다. 그녀로서는 최선을 다해 받들어 모셔야 하는 사람이다.

서로 덕담을 주고받던 이드와 쉴라는 곧 마주보고 웃고는 자리를 옮겼다. 이런 감사의 말이야 이전 화원에 들렀을 때 이미 충분히 주고받았으니까. 그래도 하면 할수록 좋은 것이 서로에게 감사하는 마음이 아닐까? 가까울수록 더욱 챙겨야 한다. 당연하다고 소홀하다 보면 언제 멀어질지 모르는 것이 사람의 관계이니까.

“황궁에 갔던 일은 잘 마쳤습니까?”

“네. 황제 폐하께서 무척 반겨 주셨습니다. 모이엔 경을 경계하기는 하셨지만.”

“하긴. 황제도 그가 삼검왕의 사람이라는 건 알 테니까. 쉴라 경에겐 아무 말이 없던가요?”

“진심으로 반겨 주셨습니다. 검후님을 찾느라 고생이 많다고. 검후님 때문에 황제 폐하와는 약간의 친분이 있으니까요.”

이드는 과연, 하고 이해했다.

황가의 가장 큰 어른이 검후라면 제국의 큰 행사에 초대받는 것은 당연하고, 은색 기사단과 쉴라는 그녀를 호위하기 위해서 함께했을 테니 안면이 있을 수밖에 없겠다.

“반겨 주셨다는데, 표정이 좋지 않네요.”

“아무래도 아직 검후님을 찾지 못했으니까요.

검후의 가족인 황제를 볼 면목이 없는 것 같다. 아니면 검후를 찾지 못한 스스로의 부족함에 실망하고 있거나. 일단 그녀는 클라인과 달리 검후의 납치에 관련해서 황제를 의심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녀의 생각이 맞을 수도 있다.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으니까.

“참, 그보다 수련생과 같이 오셨던데요.”

괜히 어색해지는 분위기에 이드가 말머리를 돌리자, 쉴라도 빠르게 얼굴색을 바꾸고는 답했다.

“아, 그렇지! 클라인 백작님이 그 일 관련으로 전해 달라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삼검왕이 이 토벌에서 뭔가 꾸미는 것 같다고요. 당장 이번에 꾀가 많은 청색 기사단의 모이엔 단장이…….”

“어, 그거 들었어요. 일리나한테……”

“들으셨군요. 그럼 삼검왕이 토벌에 나가지 않는다는…………….”

“그것도…….”

“철벽의 검왕에 대한 건…….”

“그것도 이미……”

“・・・・・・ 미리 일리나 님의 입을 막아 두지 않은 제 탓이겠죠.”

열심히 고개만 끄덕거리는 이드의 모습에 쉴라가 실망 가득한 표정으로 일리나를 원망스럽게 바라본다. 그녀에게 자신의 일을 모두 빼앗겼기 때문이다. 이 문제들을 진지하게 논의하려고 이 저녁에 달려왔건만.

“나는 일리나의 이야기를 듣고 삼검왕이 미완의 마탑을 제대로 토벌할 의지가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따져 봐도 그것 이외에는 이유가 없었다. 진심으로 전력을 더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최소한 수련생은 딸려 보내지 말았어야 한다는 것이 이드의 생각이었다.

“저와 클라인 백작님도 같은 결론을 내렸어요. 그리고 어쩌면 삼검왕이 미완의 마탑과 모종의 거래를 통해 손을 잡았을 수도 있고요.”

“클라인 백작의 의견이겠네요. 증거는?”

“주변 정황을 통한 추측이에요. 그렇지 않고는 삼검왕의 태도 변화는 이해할 수 없으니까요.”

생명의 관에서 카린이 죽을 뻔했다는 것에 절대 가만 두지 않겠다고 분노하던 삼검왕이었다. 어떤 야망을 가지고 있든지, 그들이 품고 있는 기사에 대한 애정은 진실했으니까.

그런데 그 상대에게 분노를 풀 기회가 생겼는데, 갑자기 손을 거둔다. 왜? 갑자기 자비심을 깨우쳐 분노를 사랑으로 승화시키기라도 했단 말인가? 분명 이유가 있다. 그리고 클라인은 그 이유를 삼검왕의 분노를 풀 만큼의 좋은 거래에 있다고 보았다.

물론 희박한 가능성이지만, 토벌을 계기로 미완의 마탑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마탑을 손아귀에 움켜쥐려고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말 그대로 가능성이 너무 낮아 무시되었다.

“거래란 말이죠. 혹시 클라인 백작이 토벌대에 참가하지 않는 것도 삼검왕이 남아 있어서인가요?”

“네. 가까이 있어야 삼검왕의 속셈을 알아낼 기회가 많다고 하네요.”

천리안이 있지 않고서야 토벌 중에 삼검왕이 무슨 짓을 하는지 알 방법이 없기는 했다. 다만 이드는 그가 무리를 하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평소였다면 시간이 걸려도 조심스럽게 일을 풀어 나갔을 테지만, 검후와 관련된 일에는 어떻게 변할지 모를 클라인이라 조금 걱정이 되었다. 

“그럼 당장 문제는 토벌에 참가하는 수련생들인데. 그들에 대한 계획은?”

“없어요. 청색 기사단은 미리 선수를 쳐 빠졌으니 은색 기사단이나 적색 기사단에서 수련생들을 책임져야 할 것 같아요.”

내 새끼들을 내가 지켜야지 누구에게 맡긴단 말인가. 소드 팰러스의 수련생은 오색 기사단 후보생과 같은 의미. 오색 기사단의 어떤 기사라도 같은 전장에서 수련생의 위험을 그냥 보고 있을 기사는 없다.

그리고 그 부분에 대해서는 이드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수련생들 중에 이드에게 수업을 받던 수련생도 상당수 끼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말이에요. 수련생을 같이 보낸 걸 보면, 이번 토벌 예상보다 난전이 될 것 같지 않아요?]

라미아가 잘난 척 다리를 꼬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째서?”

[봐요. 이번 토벌에 참가하는 전력은 어마어마하다고요. 기사 전력만 사천이에요. 국가 간 전쟁에 동원될 전력이란 말이에요.]

사실 마탑 하나를 상대하기에는 바보 같이 여겨질 정도의 과잉 전력이 아닐 수 없다. 적이 어떤 수단을 감추고 있을지 알 수 없다고 해도 그렇다. 넘쳐도 너무 넘친다. 여기에는 자랑도 자랑이지만, 깜짝 이벤트와 같은 토벌에서 소중한 전력을 잃고 싶지 않은 황제의 고심이 담겼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승부욕과 명예욕에 불탄 기사단의 불꽃같은 참가 러시는 덤이고.

덕분에 일각에서는 우려의 말도 나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마탑과의 전투가 아니라 전과에 대한 과열된 경쟁으로 사상자가 나오는 것이

아니냐고 말이다.

이드는 이 의견에 부분적으로 동의했다.

‘완전히 부정할 수 없는 게 무섭지. 멀쩡한 사람도 미치게 만드는 것이 전장의 피와 열기니까.’

이드는 라미아에게 다음 말을 재촉했다.

[그런 전력 사이에 있으면 아무리 애송이라도 위험할 일이 있을까요? 수련생들이 최전방에 설 것도 아니고, 후방에 있을 텐데. 아마 적들은 수련생들에게 닿기도 전에 전과를 올리고 싶은 토벌대의 손에 산산조각이 날 거란 말이에요. 그런 상황이라면 굳이 기사단이 수련생들을 지킬 필요가 없지 않겠어요?]

“즉 그런데도 검왕이 한발을 빼면서 수련생을 보낸 건 그 많은 전력이 정신없을 정도로 큰 전투가 벌어져서 기사단이 수련생을 지키지 않을 수 없는 환경이 만들어 질 거라는 말이구나?”

[바로 그거죠. 그게 아니면 던전 같은 특별한 전투 환경을 만들어서 전력을 흩어 놓을 수도 있고요. 사실 전 이쪽일 가능성이 높다고 봐요.] 아무리 대단한 마탑이라고 해도 제국 전역에서 모인 인원에 비빌 수 있을 턱이 없다.

[생명의 관도 그랬지만, 이편이 마법사들이 실력을 발휘하기 좋거든요. 생명의 관만 해도 이드와 저, 그리고 초반에 마탑을 배신하고 붙은 비올라가 있어서 쉽게 공략할 수 있었지, 그게 아니고 쉴라 경 혼자였다면 결과는 알 수 없었을 거예요.]

말이 좋아 알 수 없는 것이지, 죽거나 사로잡혔을 확률이 매우 높다.

그 사실은 이드도 알고 쉴라도 안다. 쉴라는 느슨하던 긴장의 끈을 팽팽하게 당겼다.

다시 생각해 보면 생명의 관의 공략은 쉬웠지만,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뚫은 것은 아니었다. 그 안에서 부딪힌 힘은 무시무시했다. 특히 마지막 이드와 싸웠던 생명의 관 부관주의 마법을 생각하면 수천의 기사 전력도 마냥 안심할 수는 없다.

비올라가 말했었다. 미완의 마탑을 이루는 생명, 정신, 영혼 중 생명의 관이 가장 약하다고. 그렇다면 이번에 목표로 하는 정신의 관에도 부관주만 한 마법사가 있을 것이고, 어쩌면 생명의 관에서 도망친 부관주가 합류해 있을지도 모른다.

쉴라는 미완의 마탑에 대한 토벌이 새삼 큰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검후의 숲에서 있었던 전투와 자자수 영지에서 물을 먹였던 일 때문에

초인파에만 너무 마음을 쏟았다.

알고 보면 미완의 마탑이 가진 힘도 결코 작은 것이 아닌데 말이다.

“방금 라미아가 했던 말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도 괜찮을까?

라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상관없지만, 어떻게 말할 건데요? 라미아는 삼검왕을 기준으로 예측해 본 거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게 말할 수는 없잖아요.”

당연하다. 그랬다가는 토벌대가 출발하기도 전에 제국 기사 전력이 쪼개지거나, 은색 기사단이 오명을 쓰고 해체되는 진귀한 구경을 하게 될지 모른다.

“그렇죠.”

이드는 기가 죽은 쉴라의 모습에 쩝쩝 입맛을 다시더니 말했다.

“그래도 적당한 선에서 말해 둘 필요는 있죠. 내일이나 모레쯤 황제 폐하를 만날 테니까, 그때 너무 방심하지 말라고 전해 두도록 하죠.”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좋은 기사들이 바보처럼 죽는 꼴은 보고 싶지 않으니까요.”

이드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다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케마란과 네리베르는 수도까지 따라와 놓고 왜 같이 오지 않은 겁니까?”

네리베르는 몰라도 케마란이라면 당장 달려올 줄 알았는데 말이다.

“기사단의 막내로서 할 일들이 있으니까요.”

어딜 가든 막내는 항상 바쁘고 할 일이 있는 법이다. 이번에 은색 기사단에 입단한 네리베르와 케마란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하, 기사단에 잘 적응한 모양이네.”

인정받지 못하거나, 미운털이 박히면 오히려 일을 주지 않는다. 기사들이 막내에게 주는 일은 대부분이 전투에 관련된 것들로, 믿지 못할 사람에게는 맡기지 않는다. 자신과 동료의 목숨이 달려 있으니까.

“네. 일리나 님의 수업으로 실력도 많이 늘어서 선배 기사들을 긴장하게 만들고 있죠. 다음엔 같이 데려오도록 하겠습니다.”

쉴라는 최근 기사단 내부에서 뜨겁게 일어나는 수련 열풍을 떠올리며 매우 흐뭇해했다. 기사단장으로서 소속 기사들이 열심히 수련하는 모습만큼 보기 좋은 것이 또 있을까.

“그래 주면 고맙죠. 저도 두 사람 실력이 얼마나 늘었는지 궁금하니까. 뭐, 두 사람은 잘하고 있는 것 같고. 쉴라는 어때요?”

“…..최선을 다해 배우고 있습니다.”

처음엔 왜 자신에게 난화십이식을 배우도록 했는지 이드에게 물어보려던 마음이 있었던 쉴라지만, 수련에 열중하기 시작한 이후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

그녀 스스로 난화십이식을 배워야 하는 이유를 찾았기 때문이다. 그 덕분인가. 답을 찾은 후 쉴라는 두 배의 열정을 보이며 수련에 모든 힘을 다했다.

“그럼 얼마나 최선을 다했는지 확인해 볼까요?”

이드는 쉴라의 대답에 만족하며 히죽 웃었다.

쉴라는 이드의 도발에 일리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스승님이 얼마나 잘 가르쳐 주셨는지 보여드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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