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73화
810화
“후후후.”
이드는 아이넬이라는 이름을 하사받고 한마음으로 기뻐하는 기사들을 보며 작게 웃었다.
그리고 기사단을 하나로 묶는데 큰 역할을 하고 떠난 테러발의 숭고한 희생에 1초간 감사의 묵념을 했다.
‘뜻하지 않게 귀찮을 일 하나가 줄었단 말이지.’
그렇지 않아도 한 바구니에 담긴 두 기사단의 기사를 얌전하게 만들 일이 고민이었다.
원래 생각대로 수련이라는 채찍을 휘두를 것인가, 반대로 적당한 당근을 주어 입을 닥치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 말이다.
그런데 생각지 않게 사고를 친 테러발 덕분에 골치 아픈 문제가 한 방에 해결되었다. 그의 희생은 어지간한 채찍이나 당근보다 약발이 강했다. 하기야 죽음의 공포만큼 강한 약발도 드물긴 하지.
거기에 테러발 효과는 덤도 있었다.
테러발에게 시녀라고 조롱당한 은색 기사단이 이드를 바라보는 시선에 꿀이 떨어지고 있었던 것. 친밀감을 측정하는 측정기가 있다면 수치가 정확히 두 배 이상 올랐을 정도로 애정이 가득해서, 괜히 아무렇지도 않은 일리나의 눈치가 보일 정도였다.
그에 반해 황색 갈기 기사단의 기사들은 그 모습을 그저 부러운 듯 바라보며 속으로 피눈물을 흘렸다. 테러발의 발언과 이어진 베르나의 대처로 인해서 기사들의 아이돌인 은색 기사단과는 좋은 관계를 쌓아 나가기 틀렸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드 단장님의 말씀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만세 소리를 스폴이 나서서 정리했다.
이드는 그녀에게 고맙다 말하고는 기사단을 세 개 팀으로 나누었다. 당연히 원래 소속되어 있던 기사단 기준으로 나눈 것이다.
어차피 아이넬 기사단은 토벌대에 한정되어 운용되는 기사단. 훈련 시간도 거의 없고, 운용 기간도 길지 않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으로 나눈 것이다. 괜히 섞어 봤자 서로 익숙하지 않은 움직임에 빈틈이 생기고 분란만 날 테니까.
“또한 황녀 전하께서 내려 주신 기사단장의 권한으로 은색 기사단 수석 기사인 스폴 세이벤 경을 아이넬 기사단의 부기사단장으로 임명하겠다.”
황녀와 기사단장이 정했다는데 반대할 사람이 있을 턱이 없다.
짝짝짝.
하지만 사람들은 박수를 치면서도 부단장 임명보다는, 그녀가 스폴이라는 사실에 대해서 놀라고 있었다.
“스폴이면 ‘그’ 스폴을 말하는 거지?”
“그렇지. 은색 기사단의 스폴이 둘도 아니고.”
“스폴을 두드리면 용기사가 튀어나온다’의 그 스폴을 실제로 보게 될 줄이야.”
“하마터면 베르나 경이 와이번의 아가리에 들어갈 뻔했던 거네.”
스폴에 대해서 떠드는 것에는 황색 갈기, 청색 깃털이 나눠지지 않았다. 비록 작은 소리로 소근거렸지만 이드와 일리나의 귀를 피할 수는 없었다. “스폴을 두드리면 용기사가 튀어나온다니. 쿠쿠쿡.”
일리나가 급히 입을 가렸지만, 웃음이 새어나왔다.
“네?”
부단장 임명에 이드 앞으로 나왔던 스폴이 일리나의 말에 당황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거렸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그 말을 모르지 않는 듯하다. “뒤에 기사들이 하는 말이 들려서요.”
“아드드득, 정확히 어떤 놈들인지 꼭 좀 알려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단장님.”
이드는 그러겠다고 약속했다. 스폴의 성격상 시원하게 한바탕하고 나면 뒤끝은 없을 테니까. 그리고 이런 류의 소동은 기사단 내의 친근감을 올리는 좋은 재료가 되기도 한다. 그래도 혹시나 싶은 생각에 사이사이 들리는 말을 더했다.
“그런데 꼭 그런 이야기만 있는 건 아니네요. 그 스폴 경이면 베르나 경을 밀어붙인 것도 이해가 간다는군요.”
“흥, 그래도 용서는 없습니다.”
하지만 말과 달리 날카롭게 올라갔던 스폴의 눈꼬리가 살짝 내려와 있다. 역시 기사란 남녀 관계없이 실력을 인정받는 것이 가장 기분 좋은 것이다.
“그리고 여기 한 사람을 더 소개하겠다. 이미 짐작하고 있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 아름다운 여성은 화원을 공격한 적을 물리치고 소드 팰러스에서 소검후라는 별명으로 불린 일리나 세레스피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점은 나의 아내라는 것이다.”
“우~”
마지막 발언과 함께 기사들 사이에서 야유가 터졌다.
“제가 본 가장 아름다운 후작 부인이십니다. 부럽습니다, 단장님!”
일부러 편한 분위기를 유도하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테러발의 그림자가 강하게 남아 있을 만한데 거침없이 야유하는 것을 보면, 미녀를 얻은 남자가 공공의 적인 것이 확실하긴 한 것 같다.
“스폴 경과 마찬가지로 일리나는 단장 보좌역으로 기사단에 속하게 될 것이며, 긴급 상황이나 내가 자리를 비우게 될 때 부단장과 함께 아이넬 기사단을 지휘하게 될 것이다. 어쩌면 황녀 전하와 관련하여 나보다 더 아이넬 기사단을 움직이는 경우가 많을지도 모르겠다.”
즉, 일리나가 황녀와 아이넬 기사단의 중간다리 역할을 할 거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기사들 중에는 그 말에 불만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다.
“아무리 단장 보좌라지만 기사단의 지휘는 좀……”
“아직 정식 기사 작위도 없는데.”
이드는 기사들의 미묘한 표정을 통해 그들의 생각을 읽었다. 그건, 불만은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것에서 나오는 불협화음이었다.
“이 말에 이견이나 불만이 있다면 거침없이 말해도 좋다. 이유 없는 조롱이나 비난 같은 멍청한 소리만 아니라면 내 귀는 나의 기사단을 향해 항상 열려 있으니까.”
물론 바로 자신의 의견을 내지는 않았다.
잠시 기다리던 이드가 한 번 더 재촉하고서야 청색 깃털 기사단에서 한 기사가 수련 기사처럼 팔을 들었다.
“말하도록. 그리고 다음부터는 팔을 들지 않아도 좋다.”
이드의 말에 기사가 쿨럭거렸다.
“큼, 큼. 감사합니다. 긴급 상황이라고 하셨는데, 그런 상황이라면 더욱 단장님께서는 기사단을 움직여 황녀 전하를 보호하셔야 하는 것이 아닌지요?”
기사의 말에 주변 기사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은색 기사단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동조하던 것을 멈추고 이드를 향했다.
“옳은 말이다. 일반적인 기사단과 일반적인 단장을 가지고 있다면 그 말이 맞다.”
“그럼 아이넬 기사단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말씀입니까?”
당연한 말을!
자신과 일리나에 비공식적으로 라미아까지 포함될 기사단이 어떻게 평범한 기사단일 수 있을까.
“그렇다. 오색 기사단이 다른 기사단과 다른 것과 같다. 우리 기사단에는 뛰어난 부단장이 있고, 소검후라고 불리는 단장 보좌가 있으니까. 굳이 나라는 무력을 지휘에 묶어 둘 필요는 없는 것이다.”
결국 ‘기사단을 지휘하기에는 자신의 무력이 아깝다’라는 뻔뻔한 소리였다.
하지만 기사들은 의외로 덤덤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드의 실력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기 때문이다. 소문도 소문이지만 황궁에서 엘론드를 어린아이 다루듯 했다는 사실은 유명했으니까.
“황색 갈기나, 청색 깃털은 어떨지 모르지만 오색 기사단의 단장은 나와 같이 상황에 따라 개별 행동을 한다고 알고 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도 나는 지휘형 인간 보다는 실전형 인간이다. 뒤에 앉아 있기보다는 부하들과 함께 선봉에 서는 타입이지.”
“오~”
지휘관의 중요성은 이미 알고 있는 기사들이지만, 용감하고 솔선수범하는 지휘관은 어디서나 환영받는 법이다.
‘확실히 이드 단장님의 실력으로 지휘만 하는 것은 심각한 전력 낭비긴 하지.’
‘지휘보다는 실전이라. 딱 내 타입이야.’
‘그래도 소검후는…………….
“자네, 아직 말하고 싶은 것이 남은 모양인데, 망설이지 말고 말해도 좋다.”
“이드 단장님의 뜻은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직 소검후님은 정식 기사가 아니시지 않습니까. 그리고 저희는 그분의 실력에 대해서 알지 못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절대 소검후님의 활약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아니고, 저희가 직접 보지 못했고・・・・・・ 그러니까・・・・・・ 화원을 공격한 자들 대부분이 초인이었고…… 으…… 으・・・・・・ 죄송합니다!”
아무래도 이드 앞에서 일리나의 실력을 믿지 못하겠다는 말을 하는 것이 퍽 부담스러웠나보다. 뒤로 갈수록 꼬이던 말이 지리멸렬하더니 결국은 고개를 숙였다.
“죄송할 것까지는 없다. 경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충분히 이해했으니까. 하지만 앞으로는 말하는 연습을 하거나, 말하기 전에 내용을 제대로 정리할 필요가 있겠어.”
“명심하겠습니다.”
“일단 자네의 질문은 잘 들었다. 그리고 소검후의 실력에 대한 의문을 자네만이 아니라 은색 기사단을 제외한 모든 기사들이 가지고 있는 것일 테지. 그렇지 않은가?”
“뭐, 대답은 들은 것으로 하고. 그리고 그 의문은 이미 짐작하고 있던 것이기에, 완벽하게 해소할 대답도 미리 준비해 뒀다. 하지만 아무래도 말보다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것이 빠르겠지?”
갑작스러운 이벤트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기사들이 뒤늦게 입을 떡 벌렸다.
“저, 정말이십니까?”
“당연히 좋습니다!”
“설마 여기서 소검후님의 솜씨를 볼 수 있는 겁니까?”
“좋았어.”
“빌어먹을. 크크크. 나는 이드 단장님보다 소검후의 실력이 더 궁금했는데, 드디어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겠어.”
“어서어서 자리를 만들어!”
소문 무성한 소검후의 실력을 견식한다는 것에 신이 난 기사들이 움직이자 이드가 손을 들어 그들을 멈추게 했다.
“자네들의 모습을 보니 내가 좋은 방법을 선택한 걸 알겠다. 하지만 제대로 된 실력을 알려면 아무래도 적당한 상대가 필요하지 않겠나?” 상대라니?
“그리고 하는 김에 내가 앞으로 이끌 기사단의 기사들이 얼마나 뛰어난지도 알고 싶고.”
“이거 혹시…….”
어떤 목표를 향해 급격히 몰아가는 이야기에 기사들이 떨리는 시선을 들어 이드를 바라보자, 이드가 음모를 완성한 양아치의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서 준비했지. 즉석 대련이다. 아이넬 기사단은 호위 대형을 갖추고 소검후로부터 호위 대상을 보호하라. 기사단 지휘는 스폴 부단장이 한다.”
“소집일에 수련이라니!”
“으아악, 이런 건 수련 기사 때도 없었다고.”
“단장님은 진정 지독하신 분이 틀림없다.”
개학식 날 진행하는 수업에 버금가는 테러에 기사들은 절망에 빠졌다. 빨리 끝내고 따로 모여 한잔할 계획이 한순간에 몽땅 날아가 버렸다.
그리고 이번만은 은색 기사단의 여기사들도 다른 기사들과 다르지 않았다.
“나, 오후에 약속 있었는데.”
“나도 출정 전에 애인이랑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이! 땀 냄새가~!”
높이 솟던 이드에 대한 친밀감이 한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이드 단장님 미워~”
“……이게 어디서 같잖은 애교질이야! 죽을래!”
중간에 불똥이 다른 곳으로 튀는 일이 있었지만, 이드의 명령은 바뀌지 않았다.
“그런데 아무리 소검후라도 우리들을 상대로 얼마나 버틸까?”
진형을 짜던 청색 깃털의 초인이 말했다.
“일부러 이런 대련을 준비한 거 보면. 예상보다 더 대단할지도 모르지. 일단 화원이 공격당할 때 활약한 게 있잖아.”
반대로 그 화원의 활약을 황색 갈기 기사는 다르게 해석했다.
“초인 상대라면 활약할 만하지. 하지만 우리 기사들을 상대로는 그러지 못하실걸. 암!”
“그건 네 생각이고! 화원에는 초인만 있던 게 아니라 은색 기사단도 있었던 걸 잊지 말라고. 베르나 경이 한 대도 못 때리고 스폴 경에게 두 대나 맞은 걸 벌써 잊은 건 아니겠지? 초인이지만 그런 은색 기사단을 몰아붙인 놈들이야.”
기사들이 갑자기 시작된 대련을 위해 바쁘게 준비를 시작하는 가운데 스폴이 이드에게 다가왔다.
“그런데 호위 대상은 있는 척만 합니까? 아니면, 이드 단장님께서?”
“아니, 우리 기사단의 호위 대상은 오로지 한 분뿐이죠. 마침 저기 오시는군요.”
이드가 고개를 돌린 곳에는 황녀가 수련장으로 들어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