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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75화


812화

아이넬 기사단의 임무는 첫 번째도 황녀의 안전이고, 두 번째도 황녀의 안전이다.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이 핵심이다.

그럼 점에서, 지금까지 적을 공격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온 기사들이 이를 잘 숙지하고 있을까?

과연 기사들은 그들의 적이 예상보다 약하다면? 거기에 적의 명성이 높아 잡을 경우 자신의 공이 높아진다면?

그때도 기사들은 적을 공격하는 것을 포기하고 황녀를 지키는 것을 우선할까?

일리나의 실력을 직접 겪은 기사들이 늘어날수록 기사들의 머릿속은 복잡해졌다.

‘잘하면 잡을 수 있겠는데?’

‘확실히 강하지만 언터처블은 아니야.’

‘잡을까?’

‘이왕 잡을 거면 저놈들보다 우리가 잡아야지 않겠어?’

먹음직스러운 먹이가 눈앞에 나타나자 기사들이 눈치를 봤다. 테러발의 일로 수그러졌던 경쟁심이 머리를 들자 조급함이 생겨났다. 그리고 때마침 일리나가 초인 기사의 공격에 힘겨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파앙!

“이얍!”

에어버스터에 뒤로 밀리는 일리나. 그것은 이드의 부탁을 받은 일리나 혼신의 연기였다.

이드는 그 모습에 감동하는 한편 웃음을 참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다행이게도 그녀의 연기는 마음 급한 기사들에게 통했다. 그리고 마음을 정한 기사들이 앞으로 튀어 나가려는 순간 스폴의 목소리가 기사들의 발목을 틀어잡았다.

“선두! 검 끝이 흔들린다. 단단히 자신의 자리를 지켜라!”

“네!”

지휘관 특유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공중에 떠 있던 기사들의 뒤꿈치가 바닥에 찰싹 달라붙었다.

“자리 지켜!”

“우리 임무는 황녀 전하의 호위다. 딴생각하는 놈들은 대련 끝나고 죽을 줄 알아!”

거기에 스폴보다 한발 늦기는 했지만, 조금 늦게 기사들의 분위기를 읽은 각 기사단의 최고 기사들이 소리치자 마음이 흔들렸던 기사들이 울상이 되었다.

익숙한 목소리에서 추가 훈련이 예상되는 분위기를 읽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자신들의 이름이 이드의 손에 들린 종이에 적히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울상 정도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추가 정신교육 필수. 그래도 돌려보낼 기사는 없으니 다행이네.”

이드는 선두의 기사들 중 가장 검 끝이 흔들리던 기사들의 이름에 별표까지 하는 꼼꼼함을 보였다.

반대로 기사들을 잘 살피고 적절하게 기사들의 마음을 다잡은 스폴에게는 합격점을 주었다.

“수련생들을 가르칠 때도 느꼈지만, 시야가 넓어. 기사단을 지휘하기에는 딱 맞네.”

맡은 일만 확실히 할 수 있다면 평소 행실이 자유분방한 정도는 큰 문제가 아니다.

그러는 사이 기사들을 두드리는 일리나의 공격이 이어졌지만, 한 번 고삐를 조였기 때문인지 흔들리는 기사는 생기지 않았다.

부단장의 경고까지 받았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면 그것 또한 문제겠지만 말이다.

“일단일 단계는 합격.”

더 이상 일리나의 연기가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한 이드가 일라나에게 전음을 보냈다.

『일리나, 이제 유인은 그만하고 2단계를 시작하죠.』

『어느 쪽부터 시작하죠?』

이드는 일리나의 질문에 두 개 조로 나뉘어 있는 황색 갈기와 청색 깃털 소속의 기사들을 잠시 살핀 후 결정을 내렸다.

『청색 깃털 3조부터 눌러 보죠.』

이드가 결정을 내리자 작게 고개를 끄덕인 일리나의 호흡이 바뀌었다.

“지금부터는 조심하세요.”

“예?”

그리고 갑작스러운 경고에 어리둥절해하는 사이 갑작스럽게 빨라진 일리나가 3조에 속한 기사를 공격했고, 급격한 속도 증가에 반사적으로

일리나의 검을 막아 가던 초인은 부딪친 검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흡입력에 무 뽑히듯 기사들이 짜고 있던 대형에서 뽑혀 날아갔다.

“으어어어?”

허공에 뜬 기사가 자신이 왜 허공을 날고 있는지도 모르고 버둥거리는 사이 일리나는 기사가 빠진 빈자리를 치고 들었다.

“마, 막아!”

일리나를 막으라는 건지, 비어 버린 기사의 자리를 채우라는 것인지. 아니면 둘 다일지도.

그 소리에 하늘을 날던 기사가 쿵 소리를 내며 땅에 떨어지는 모습을 멍청하게 바라보던 기사들이 허겁지겁 움직였지만, 늦어진 대처에 빨라진 일리나의 속도까지 더해 세 호흡의 속도차가 나 버렸다.

평기사의 대련도 반 호흡이면 여유롭게 승부가 갈리는 형편인데, 일리나는 어떨까.

빠악!

한 기사는 고개도 돌리기 전에 턱을 맞고 일 미터 정도 떠올랐다가 그대로 기절했고, 그 옆의 기사는 팔꿈치에 명치를 가격당했고, 반대편 기사는 오금을 노린 발에 바닥을 굴렀다.

순식간에 세 명의 기사가 전투 불능에 빠지고, 그만큼 넓어진 공간에서 일리나의 손발이 송곳과 철퇴가 되어 날아다녔다. 그때마다 쓰러지는 기사가 하나씩 늘어났다.

“재정비!”

그 모습에 3조 조장인 펄헴이 목이 찢어져라 소리침과 동시에 자신의 초인기 중압을 사용했다. 일반 병사를 찌그러진 캔처럼 구겨 버릴 수 있는 중압이지만, 일리나에게는 속도를 늦추는 압박용일 뿐이었다.

병사와 비교하는 것이 우스운 일리나의 능력도 이유지만, 대련이기 때문에 전력을 다할 수 없는 이유가 컸다.

“미친! 갑자기 강해졌어!”

“뿌드득, 틀렸다. 갑자기 강해진 것이 아니라 힘을 숨긴 것이다.”

겨우 숨을 돌리고 검을 드는 기사의 말을 들은 펄헴이 분함에 이를 갈았다. 예상보다 약했던 일리나의 모습에 흔들리던 기사들과 갑자기 급등한 실력에 무참히 박살 난 기사들의 모습이 연결되었다.

“처음부터 이때를 노린 기만술이었구나.”

이드에게 쫓겨난 베르나 대신 2조에서 가장 고참으로서 임시 조장을 맡고 있던 고데리는 진실을 깨닫고는 아연한 표정이 되었다.

설마 대련에 기만술까지 동원할 줄이야.

“저는 오히려 지금 모습을 보니 납득이 갑니다. 소검후로 소문이 자자할 정도라면 저 정도는 되어야죠.”

“그거야 그렇지.”

문제는 지금 그 무력이 자신들을 향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놈들, 대형이 제법 무너졌는데 그냥 보고 있습니까?”

갤플이 뒤에 있는 스폴을 힐끗 돌아보고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좀 전까지라면 청색 깃털의 초인을 돕자는 말을 할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아무래도 눈치 보이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무엇보다 자신들을 향해 나의 기사들이라고 말한 황녀의 앞이지 않은가. 그저 재수 없는 놈들이 당하는 꼴이 보기 좋다고 구경하고 있다가는 기사단의 한 축이 한 사람에게 무너지는 꼴을 황녀에게 보여 주게 될지도 몰랐다.

원래 기사단으로 복귀한 후라면 몰라도 어쨌거나 지금은 같은 기사단에 소속된 동료 기사였으니까.

그리고 마침 고데리도 그런 생각을 하던 참이었다. 마침 3조의 기사들이 적당히 나가떨어지면서 2조에서 베르나가 빠진 것과 전력도 맞춰진 것 같았다.

“아니, 지금 움직인다. 갈고리 대형으로 3조를 지원한다!”

“우하!”

고데리는 명령과 함께 가장 앞서서 일리나가 허물어 버린 3조의 대형 안으로 돌아 들어가며 펄헴을 향해 외쳤다.

“지원하겠습니다.”

“고맙다. 2조를 지원하는 사이 3조는 빠르게 재정비를 마치고 합류한다. 얼빠진 모습은 그만 두고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 주자!” 

“알겠습니다!”

펄헴의 목소리에 3조의 초인들은 방패를 앞세운 기사들에게 자리를 내어 주고 잠시 숨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리나는 초인들이 빠진 자리를 기사들이 대체하자 검세를 바꿨다.

성격만큼이나 다양한 초인기는 공격에는 강하지만, 대련인 만큼 전력을 다하지 못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반면 유기적인 움직임과 기사들의 노련한 방패술은 초인들을 날려 버린 간단한 격투술로는 상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기사들의 방패가 이지스의 방패도 아닌 이상 일리나의 모든 공격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쿵!

쩌엉!

일리나가 앞을 막아선 방패를 보며 강하게 진각을 밟아 그 힘으로 방패를 후려친 것이다.

“꾸엑!”

“오우거도 아니고 무슨 힘이!”

기사들은 배트에 맞은 야구공처럼 방패째로 굴러가는 동료 기사의 모습에 놀라면서도 빠르게 빠진 구멍을 메웠다.

“방패가 튕겨 나가지 않게 보조해. 나머지는 방패 뒤에서 공격!”

펄헴이 명령하자 3조 소속의 초인이 나섰다. 그들은 흙과 나무뿌리 등을 움직여 방패와 방패를 든 기사의 등과 다리를 단단하게 받쳤다. 과연 이 방법은 제법 효과가 있었다.

진각에 이어진 일리나의 공격에 튕겨 나가지 않은 것이다.

“크아~ 좋았어. 견딜 수 있다. 밀리지 않아!”

방패를 든 기사가 저릿저릿한 팔의 통증을 참으며 소리쳤다.

“하지만 손이 너무 아파. 오래는 못 견뎌!”

“방패를 무너트리지 못하게 해야 해. 공격해!”

2조인지 3조인지 확인할 수 없는 누군가의 말과 동시에 3조에 속한 초인들이 방패에 숨어 일리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섬광의 사슬!”

“불꽃 파도!”

“번개의 칼!”

번쩍! 번쩍!

짜자작-

꽈꽝!꽈르릉!

앞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가 생기자 초인들이 각자의 초인기를 마음껏 쏟아 냈다. 초인기의 속성에 따른 색색의 공격이 일리나를 둘러쌌다. 아무리 전력을 다한 공격이 아니라지만 저만한 힘이 집중된다면 기사단의 상급 기사라 해도 쉽게 막아 내기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일리나에게 손발도 제대로 내밀지 못하고 무너지던 동료의 모습을 기억하는 기사들은 누구도 일리나가 쉽게 쓰러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리나는 훌륭히 그들의 기대에 부응했다. 붉은 검기로 물든 검을 휘둘러 모두 격추시켜 버린 것이다.

하나둘도 아니고 수십의 초인기가 날아들었지만, 일리나의 검은 나른한 나비처럼 허공에 기묘한 선을 그리며 초인기를 한 번에 두 개, 세 개씩 격추시킨 것이다.

화살비도 아니고, 하나하나가 검기와 같은 위력의 초인기를 쉽게 베어 버리는 모습에 기사들은 이를 악물었다.

그런 기사들에게 스폴의 명령이 떨어졌다.

“적에게 여유를 주지 마라. 다시 공격해!”

스폴의 명령에 다시 초인기가 하늘을 가득 채우고, 그 뒤를 따라 고데리가 기사들과 함께 방패를 넘었다.

고데리와 함께 뛰쳐나간 기사들은 앞선 초인기의 틈을 메우며 일리나를 향해 검을 휘둘렀다. 기사들의 검에는 상대를 베겠다는 확실한 의지가

담겼다.

대련에서는 볼 수 없는 위험천만한 공격이었지만, 기사들은 망설이지 않았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는다면 일리나를 막기는커녕 멈춰 세우는 것조차 어렵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분위기가 변한 기사들의 모습에 탁자에 앉아 지켜보고 있던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야, 이제야 제대로 각이 나오네.”

이드는 제법 원하던 모습이 나오자 만족했다.

일리나와 함께 계획한 이 단계는 2, 3조의 기사들이 전투에 있어서 얼마나 서로 융합할 수 있는지를 보는 것이었고, 충분히 쓸 만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평소 서로를 죽이지 못해 안달이던 모습과는 너무 다르게 공격의 연계가 너무 자연스럽게 잘 되었던 것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상대를 싫어하다 보니 역으로 잘 알게 된 경우라고 할까?

거기에 드물기는 하지만 기사와 초인이 한데 속한 견본이 없는 것도 아니고 말이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연계는 나름 훌륭하지만 아직 엉성한 부분이 많았고, 무엇보다 일리나를 상대하기에는 그들 개개인의 힘은 많이 약했다.

이제 그들에게 일리나의 필요성과 강자에 대한 경계심을 심어 줄 차례다. 덤으로 일리나에 대한 존경심도 같이 심겨지면 좋고,

‘감히 어디 일리나의 실력의 파편도 알아보지 못하는 눈으로 지휘를 인정하네 못하네 하고 말이야.’

이번 대련이 끝나면 감히 일리나와 눈을 마주치는 놈은 사라질 것이다!

이드는 회심의 미소와 함께 일리나에게 전음을 보냈다.

『이제 끝내죠. 마지막 단계에요. 자기들이 강자를 상대로 얼마나 약할 수 있는지 확실하게 보여 줘요.』

『알았어요.』

이드의 전음에 고개를 끄덕인 순간 일리나를 중심으로 붉은 검기의 폭풍이 뿜어지며 기사들을 튕겨 냈다. 

콰콰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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