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389화
826화
“저요!”
비올라가 흥미를 잃고 늘어지자, 라미아가 손을 번쩍 들었다.
어쩐지 라미아 학생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이드는 무시하고 말했다.
“응. 말해.”
“누구하고 같이 가요?”
“모르지. 그건 록마틴 후작님이 정할 거야.”
이드의 자원과 상관없이 감시조의 파견은 결정 사항이었으니, 인원 선정은 끝나 있을 것이다. 거기에 이드가 자원했으니, 원한다면 이미 뽑아 둔 인원을 빼고 더할 수는 있겠지만 그럴 생각은 없었다.
“아니, 그쪽 말고요. 우리요. 저하고 일리나는 함께 가지 않느냐는 거예요.”
“아무래도 힘들지. 내가 없는 대신 두 사람이 황녀 전하를 지켜 줘야 하니까.”
“하지만 지금까지 황녀 전하 옆을 지킨 건 이드하고 일리나잖아요. 일리나가 있으면 저는 따라가도 될 것 같은데, 같이 가면 안 돼요?”
라미아가 외출하는 주인을 바라보는 강아지 모드로 이드를 올려다보았다. 실로 엄청난 파괴력이다. 이런 모습에 지각한 애견인이 부지기수다. 이드도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뻔했지만, 겨우 참고 고개를 저었다.
“미안. 라미아는 남아서 일리나의 보충을 부탁할게. 거기다 청색 기사단과 게일을 살피는 일도 네가 빠지면 구멍이 생기잖아.”
은색 기사단이 있으니 사람이야 충분하지만, 아무래도 마법적인 수단이 딸린다. 비올라가 있기는 하지만 3조의 지원에 바쁠 것이고, 무엇보다 라미아가 있는 쪽이 든든하다.
“감시조에도 마법사가 있어야 하지 않아요?”
있으면 좋기야 하겠지만, 아무래도 라미아의 동행은 지나친 과잉 전력이 아닐 수 없다. 그녀가 토벌대에서 할 일이 없는 것도 아닌 이상 같이 갈 수는 없는 일이다.
“그것도 록마틴 후작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정 힘들다 싶으면 내가 부를게. 그때 와 줘.”
라미아가 입술을 삐쭉거렸다. 힘들다 싶으면 부르겠다니. 고작 감시 임무 중에 이드를 힘들게 할 마법이 뭐가 있을까? 결국 동행도, 호출도 없다는 소리다.
“칫, 그럼 어쩔 수 없죠.”
“말 나온 김에, 게일 쪽에서 새로 건진 건 없어?”
“아쉽게도. 탐침까지 사용하고 있지만, 오러텅을 사용하는 건지 얻은 게 없어요.”
라미아는 게일과 모이엔이 꾸미는 일을 알아보기 위해서 마법과 함께 이전 파티에서 발터와 라울의 이야기를 엿듣는데 사용한 탐침까지
사용했지만 큰 수확은 얻지 못하고 있었다. 진짜 중요한 이야기는 할 생각이 없는 것이거나, 아니면 오러텅을 사용하는 것일지도 몰랐다. 라미아의 마법이나 탐침으로도 오러텅을 엿들을 수는 없으니까.
“뭐, 예상했던 일이잖아. 토벌대 안이라고 조심하는 거겠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계속 신경 써 줘. 혹시 그제처럼 게일이 초인 기사단과 접촉할지도 모르니까.”
이중 스파이 치고는 너무 조용하다 싶었는데, 겨우 움직임이 잡힌 것이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접촉이라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가는지 알아내지 못했지만 다음에는 놓치지 않을 거라고 라미아가 다짐을 했었다.
“에휴, 알았어요. 여기 남아서 그거라도 열심히 해야죠.”
이드는 불만이 가득한 라미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기분을 달랬다.
“그런데 내일 출발이면 정신의 관까지는 어떻게 갑니까? 그냥 말을 달려갔다가는 토벌대와 시간 차도 크지 않을 텐데. 그럼 감시조의 의미가 없잖습니까?”
심드렁하니 앉아 있던 비올라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그의 말대로 되면 그건 감시조가 아니라 정찰조다.
“이동 마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닌가?”
자신의 생각을 꺼내던 스폴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한 비올라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물었다.
“아니다. 진동 후 차원 좌표가 아직 안정되지 않았다. 미완의 마탑은 물론이고, 거대 마탑에서도 아직 이동 마법진을 사용하지 않은 이동 마법은 금지하고 있는데, 토벌대 수준에서 뭘 해?”
“불가능한 건 아니잖아. 마법진이야 그리면 되고.”
“흐흐, 여기 마법 무식쟁이 하나 나타났네.”
“뭐, 인마?”
비올라의 조롱에 스폴이 발끈해서 일어섰지만, 그녀가 뭘 하기도 전에 비올라의 말이 빠르게 이어졌다.
“잘 들어, 근육 덩어리. 장거리 이동 마법진은 한 쌍이야. 이쪽에만 마법진이 있어서는 쓸모가 없다고. 그리고 만에 하나 운이 좋아서 반대쪽에 대응 마법진이 있다고 해도 문제지. 토벌대에서 이동 마법진을 작성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이틀은 걸릴 테니까. 설마 마법진 그린다고 토벌대를 이틀이나 세워둘 건 아니잖아?”
“윽, 그거야……”
화를 내던 스폴이 주춤했다. 설마 마법진 작성에 이틀이나 걸릴 줄이야. 마법은 몰라도 전쟁은 안다. 이미 예정된 전쟁에서 적에게 이틀의 준비 시간을 더 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차라리 감시조 없이 이틀의 시간을 절약한 후 적의 함정에 대비하는 것이 더 낫다.
“뭐, 그렇다고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후작 부인이 공식적으로 나설 것도 아닌 것 같고…………….”
스폴의 입을 막아 버린 비올라가 슬쩍 돌아보자 라미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내가 나서면 시끄러워진다고.”
“당연하지. 안정되지 않은 차원 좌표에서 목적지를 확정할 방법이 있다는 걸 알면 마탑에 오래 묵은 마법사들이 눈깔 뒤집혀서 달려들 테니까. 흐흐흐, 그것도 나름 재미있는 구경거리긴 하겠네.”
비올라가 상상만 해도 재미있다는 듯 발을 동동 구르며 낄낄거렸다.
자신만의 상상에 빠져 혼자 웃어대는 비올라의 모습은 흡사 미치광이 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럼 록마틴 후작께선 감시조를 어떻게 투입하실 생각이실까요? 그에 관한 말씀은 없으셨나요?”
미치광이는 상대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며 비올라를 무시한 스폴이 물었다.
“없었죠. 하지만 짐작 가는 방법은 있죠. 하하하.”
잠시 턱을 쓰다듬던 이드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으며 스폴을 바라보았다. 이드의 시선을 받은 스폴은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에 고개를 갸웃했다.
청색 기사단장의 막사에서 게일이 모이엔과 마주 앉아 있었다.
모이엔은 록마틴 후작 막사에서 있었던 일과 이드가 감시조로 떠나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 이야기했고, 게일은 귀를 기울였다.
아군이 적에게 당했다고 하지만, 분노는 일어나지 않았다. 모이엔을 통해 은밀히 전해진 이야기에 따르면 미완의 마탑과 소드 팰러스는 이미 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목표는 다를지 몰라도 지금은 행동을 함께하는 아군이었다. 뛰어난 감시자들을 전멸시킨 저들의 능력에 손뼉을 치며 기뻐하진 못해도 분노할 이유는 없다. 오히려 든든해하면 모를까.
“그래서 내일부터는 명예 후작이 토벌대에 없을 것이네.”
“좋은 기회로군요.”
이야기를 마치고 반응을 기다리던 모이엔은 기회라는 게일의 말에 입술이 길게 찢어지며 히죽 웃었다.
“옳아. 좋은 기회지, 주인공이 빠진 연극은 악당이 주인공이 되는 법이니까.”
“악당…… 이군요.”
“그렇지. 이번 일을 하는 동안 우리는 악당이지. 왜, 악당은 싫은가? 정의의 기사만 하고 싶나?”
“훗, 악당이라면 최근에 한 번 경험이 있습니다. 두 번 정도는 나쁘지 않겠지요.”
“와하하하, 역시 자네는 내 과야. 그렇지. 검왕자라는 이름을 지키려면 그 정도 독심은 있어야지. 암!”
모이엔이 매우 재밌다는 듯 크게 웃으며 게일의 어깨를 두드렸다.
한 번이 두 번이 되고, 두 번이 버릇된다. 악당이 되어 가는 전형적인 코스지만, 모이엔은 굳이 그런 점을 주의하라고, 중심을 잘 잡으라고 경고하지 않았다.
‘악당이 된 자네를 내가 처단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의미심장한 생각을 떠올린 모이엔은 태연한 얼굴로 악당으로서 자신과 게일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명예 후작이 빠지고 감시조가 전멸했다는 사실이 퍼지기 시작하면 토벌대는 본격적으로 싸움을 준비하게 된다. 그때가 되면 자연 누구와 함께해야 피해를 줄이고, 많은 공을 쌓을 수 있는지 찾게 되지.”
“그들의 눈이 가장 먼저 향할 곳은 오색 기사단. 그중에서도 저희 청색 기사단이 될 테지요.”
토벌대에는 다른 유명 기사단도 많지만, 가장 부담 없이 기댈 수 있는 것은 오색 기사단이 최고다. 그중 적색 기사단과 은색 기사단은 각각 단장과 기사단의 성격상 이런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토벌대의 기사단들은 자동적으로 청색 기사단을 주목하게 될 것이다.
“후후, 그때 우리는 당근과 채찍으로 그런 기사단들을 최대한 많이 모아 우리를 지지하고 따르도록 해야 하네. 그래야 우리가 전장의 흐름을 지배하고, 계획을 완벽하게 성공시킬 수 있어. 그럼 자네가 할 일은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물론입니다. 청색 기사단의 이름을 보고 따르지 않을 기사는 없을 겁니다. 최대한 많은 기사단을 끌어모으겠습니다.”
이런 행동은 토벌대의 명령 체계와 기강을 무너트리는 행위였지만, 모이엔의 말처럼 이번에 한해 악당이 되기로 한 만큼 게일의 말에는 망설임이 없었다.
게일은 몇 마디 더 나눈 후 막사를 나서는 모이엔에게 고개를 숙이고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기회다. 명예 후작만 없다면 황녀를 만나는 것을 막을 자는 없다.”
애초에 이드는 그를 막은 적이 없었다.
그저 반칙을 쓰고도 무참하게 패배한 수치심에 이드를 마주할 용기가 없어 스스로 나서지 못한 것일 뿐이었지만, 게일은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는 중에 이드가 토벌대를 떠난다고 하니, 참고 있던 황녀에 대한 마음이 폭발한 것이다.
무엇보다 사건 직후에야 끈 떨어진 연 신세였기 때문에 만나라고 해도 만나고 싶지 않은 황녀였지만, 지금은 그때와는 입장이 달랐다.
모이엔의 지원을 받고, 삼검왕의 계획에 동참하면서 게일은 다시 검왕자의 자리로 빠르게 복귀하고 있었으니까.
“이제 황녀와의 사이도 원래대로 돌릴 때가 되었지.”
언제가 좋을까.
황녀와 마주할 때를 가늠하는 게일의 머릿속에는 기사단의 지지를 받아 내라는 모이엔의 명령은 뒷전으로 물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정신없는 게일의 모습을 끝으로 라미아가 눈을 떴다.
“역시 기다린 보람이 있어. 이드, 이리 와 봐요. 대물이 낚였어요~”
다음 날.
이드는 전날 미리 정해 둔 시간에 따라 록마틴 후작을 찾았다.
“어서 오시오, 명예 후작. 얼굴이 피곤해 보이는데, 편히 쉬지 못한 것이오?”
“잠자기 직전에 급한 일이 생겨서 말입니다. 잠을 좀 설쳤습니다만, 별건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그런데…. 배웅인 것이오?”
배웅이 아니라면 곤란하다. 그런 뜻이 가득한 록마틴 후작의 말에 이드는 멋쩍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거기에는 라미아와 일리나를 필두로, 황녀와 스폴, 비올라 등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다.
“네, 배웅입니다. 정신의 관까지 갈 교통편을 보고 싶다고 하는군요.”
“으허허, 황녀 전하와 후작 부인들께서 보자 하시는데, 당연히 보여드려야지요. 내 자랑거리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과연 자랑거리라는 말처럼 일행을 안내하며 앞서가는 록마틴 후작은 신이 나 보였다.
그는 이드들을 토벌대 외곽으로 이끌었다. 토벌대와도 조금 떨어진 곳에는 저걸 언제 만들었나 싶은 거대한 천막이 줄줄이 늘어서 있었고, 그 주변에는 기사들의 명령을 받은 병사들이 수레에 커다란 고기를 실어 나르고 있었다.
끼이익!
수레가 한 천막 앞에 멈추자 늘어진 천막을 헤치고 긴 주둥이를 가진 머리가 튀어나와 송아지 크기의 고기를 한입에 삼키고 사라졌다. 먹이가 마음에 드는지 장난스럽게 펄럭인 날갯짓에 돌풍이 생겨 천막을 걷어내며, 그 안에 든 생명체의 온전한 모습을 드러냈다.
“와이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