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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390화


827화

“인사드립니다, 주군.”

이드들이 다가가자 와이번의 식사를 지켜보고 있던 기사들 중 하나가 다가왔다. 우렁우렁한 목소리와 산악처럼 떡 벌어진 어깨와 환한 이마가 특징인 기사였다.

“과연 명예 후작님이 교통편 이야기에 스폴 경을 바라본 이유가 있었네요.”

기사의 얼굴을 확인한 황녀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스폴이 괜히 정색하고 말했다.

“미노스 경과는 친구 사이일 뿐이니 오해는 말아 주세요, 황녀 전하.”

“나도 그저 교통편에 대해 이야기했을 뿐이에요, 스폴 경. 오해하지 말아요, 호호.”

“…….”

오해하지 말라니? 저 재밌어 죽겠다는 얼굴을 두고 그 말을 어떻게 믿으라는 건지. 하지만 황녀가 아니라는데 어쩌겠는가.

스폴이 풀 길 없는 화에 가슴을 두드릴 때 황녀와 록마틴 후작, 그리고 이드에게 예를 표한 미노스가 스폴에게 눈웃음을 건넸다.

“흥!”

그러나 황녀의 놀림의 원인을 반길 리 없는 스폴이 고개를 팩 돌리며 무시하자, 떡 벌어진 미노스의 어깨가 물에 젖은 휴지처럼 처졌다. ‘쯧쯧, 저렇게 휘둘러서야……..

다른 기사들처럼 두 사람의 연애사를 알고 있는 록마틴 후작이 내심 혀를 찼다. 그러나 황녀 앞에서 수하 기사의 연애 사정을 봐줄 수는 없는 노릇. “준비는 어떤가?”

“모든 준비가 완료된 상태입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명예 후작님을 모시고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좋군. 수고했네.”

정색한 미노스의 대답에 만족한 록마틴 후작이 이드와 일행들을 향해 돌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용기사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가득했다. 마치 자식 자랑을 하는 팔불출 부모 같다고 할까?

그리고 실제로도 록마틴 후작이 용기사로 이루어진 프랑 기사단에 쏟는 정성과 애정은 자식에게 향한 것 이상이기도 했으니, 자식처럼 아끼고 좋아하는 것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언젠가 한 번은 누가 록마틴 후작에게 가장 아끼는 보물이 무엇이냐고 물었는데, 후작은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프랑 기사단이라고 답해서 아내와 자식들이 강한 배신감을 느꼈다던가? 오죽하면 아버지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방법은 프랑 기사단의 기사가 되는 길뿐이라고 모든 자식이 프랑 기사단의 수련 기사로 들어갔을까.

“와이번을 타고 날아가면 수일 안에 도착할 수 있겠네요.”

“맞습니다, 후작 부인. 늦어도 이틀 안에는 도착할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답니다. 허허허.”

라미아는 록마틴 후작의 자신만만한 웃음소리를 한 귀로 흘리며 와이번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놈은 좀 전까지 미노스가 먹이를 주던 녀석으로, 자신에게 다가오는 라미아를 보며 큰 눈을 끔뻑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록마틴 후작이 미노스에게 눈짓을 하며 말했다.

“훈련받은 녀석이긴 하지만, 담당 기사가 없을 때는 위험할 수 있으니 후작 부인께선 너무 가까이 다가가시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괜찮을 거예요. 이 녀석은 절 해치지 못하니까요.”

상큼하게 답한 라미아가 와이번 앞으로 다가서자 미노스가 황급히 따라붙었다.

‘훈련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몬스터인데. 조심성이 없으신 후작 부인이시군.’

자신이 가까이 있으니 괜찮을 것 같지만, 그래도 혹시 사고가 있을지 모른다 생각한 미노스가 내심 투덜거렸다.

그래도 만일을 위해 미노스는 자신의 파트너 와이번과 눈을 맞추며 최대한 얌전히 있으라는 신호를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라미아는 그런 미노스의 노력을 아는지 모르는지 와이번을 올려다보다 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러자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던 와이번이 한순간 무엇을 느낀 듯 머리를 흔들며 라미아를 이리저리 살폈다.

“낯선 분의 접근에 녀석이 예민해진 모양이니, 잠시 뒤로…… 엇?”

와이번의 반응을 경계한 미노스가 앞으로 나서려던 순간, 와이번이 몸을 낮추고 쓰다듬어 달라는 듯 라미아의 손에 부리를 가져다 댔다.

“아무래도 괜찮은 것 같네요.”

“도대체 어떻게…….”

라미아의 말과 상관없이 미노스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애초에 자신을 제외하고는 사람의 손길을 좋아하지 않는 녀석이 스스로 부리를 가져다

대다니. 그로서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정말이지 뜻밖의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굉장하군. 와이번이 저렇게 애교를 부리는 생물이 아닌데 혹시 후작 부인의 가계에 용기사가 있는 것이 아니오?”

놀라긴 록마틴 후작도 마찬가진 듯하다.

이드는 그의 말에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타는 쪽이 아니라 태워 주는 쪽이라면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한에서는 없군요.”

라미아의 탄생에 관련된 존재들은 모조리 비행 능력 정도는 기본기로 탑재하고 있으며, 굳이 비행을 위해서 자신들보다 느린 와이번을 탈 이유가 없는 자들이었다.

“허허, 그런데도 와이번이 처음 본 후작 부인께 친근감을 느낀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오.”

“아마, 용기사의 자질이 아니라 다른 것을 느낀 거겠죠.”

아마도 용기사 같은 어중간한 자질이 아니라, 중간계 최강의 포식자 드래곤의 흔적 같은 것 말이다.

이런 이드의 짐작은 정확했다. 라미아는 그녀를 이루고 있는 부분 중 드래곤 피어를 미세하게 흘려 와이번을 굴복시킨 것으로, 애교로 보이는 행동도 사실은 살려 달라는 애원과 같은 것이었다.

그때 신기해하는 사람들을 뒤에 둔 라미아가 와이번의 머리 가까이 얼굴을 대고는 작게 속삭였다.

“저기 저 멋진 사람 보이지? 저 사람이 오늘부터 네 주인과 함께 널 타고 날 거야. 만약에 혹시라도 저 사람을 떨어트리거나 불편하게 만든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알았니? 내가 널 잡아먹어 버릴 거란다.”

속삭이는 목소리의 협박에 와이번의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 학자들이 봤다면 와이번의 안색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만들어 낼 법한 모습이다. 

“끼, 끼이익. 끼익! 끼익!”

와이번이 시끄럽게 울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절대로 떨어트리지 않을 테니, 잡아먹지만 말아 달라는 애원 같은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모습이 와이번과 라미아가 교감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록마틴 후작은 천부적인 용기사의 자질이 있다고 칭찬하며, 용기사로 영입하길 간절히 바랐지만 이드에게 거절당했다.

스폴은 그런 모습을 바라보다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와이번을 노려보고 있었다.

“저 자식이! 나한테는 매번 까칠해서 탈 때마다 고생을 시키더니. 라미아 앞에서는 꼬리를 흔들다니. 미노스는 도대체 훈련을 어떻게 시킨 거야!”

불똥은 아무 죄 없는 미노스에게 튀었다. 그건 딱 남자 친구의 애완동물이 다른 사람을 더 잘 따라서 질투하는 여자 친구의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던 이그렌은 조용히 혀를 찼다. 이래저래 고생인 미노스가 불쌍해서 무심코 기도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라미아가 와이번을 상대로 당부를 가장한 협박을 끝내고 복귀하자 이드가 록마틴 후작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지금 바로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명예 후작이 서둘러 준다면 나야 감사할 일이오. 그리고 명예 후작이 편히 활동할 수 있도록 감시조에 투입할 인원을 조금 추가했소.”

록마틴 후작이 손짓하자 용기사들 옆에 부동자세로 서 있던 병사들이 번개처럼 달려와 예를 표했다.

확실히 실력 좋은 기사는 아니었지만, 예사롭지 않은 눈빛을 통해 모두 경험 많은 감시자들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드가 감시조에 자원한 만큼 좀 더 실력 좋은 감시자들을 붙여 최대한 질 좋은 정보를 확보하려는 록마틴 후작의 의도가 읽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감시조에 용기사까지 인원이 너무 많아지지 않겠습니까?”

“아니오. 어차피 용기사들은 명예 후작과 감시조를 데려다주고, 토벌대로 돌아올 것이오. 다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두 명의 용기사가 치털링에 남아 있을 것이오. 혹시라도 통신구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면 용기사를 통해 알려 주시오.”

적인 미완의 마탑을 염려한 말이었다. 그래도 용기사를 전서구로 사용하라니. 세상에서 제일 강력하고, 제일 큰 전서구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그럼 먼저 가서 기다리겠습니다.”

교통편에 대한 의문도 해결했겠다. 어차피 짧은 이별에 배웅이 길 필요는 없다. 짧은 당부를 남긴 이드가 미노스와 함께 와이번에 올랐다.

라미아의 위협이 뇌에 박힌 와이번은 이드가 다가가자 타기 좋게 밟고 오르라는 듯 사다리처럼 날개를 바닥에 깔아 주었다.

몬스터로 분류된 와이번의 날개는 일반 날짐승의 날개와 달리 그 위에 사람이 올라가 뛰어도 부러지지 않을 만큼 단단했다. 하지만 하늘을 나는 생물답게 중요한 기관인 만큼 쉽게 내어 주는 법이 없는데, 그것을 제 스스로 깔개로 내어 준 것이다.

“야, 너 뭐 잘못먹었냐? 오늘 왜 이래?”

미노스는 자신의 와이번에서 보이는 낯선 모습에 당황을 숨기지 못했다.

‘고마워, 라미아’

대신 그 뒤에 앉은 이드는 편안한 탑승의 배경에 라미아가 있음을 알고는 그녀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명예 후작님, 이제 출발해도 되겠습니까?”

“목적지까지 잘 부탁하죠.”

“최대한 신속하고 안전히 모시겠습니다. 가자!”

현대의 비행기 기장을 닮은 멘트와 함께 미노스가 고삐를 당기자 와이번이 큰 날개를 펴고 힘차게 날갯짓을 하려다 멈췄다.

그리고는 큰 눈을 굴려 라미아를 바라보고는 등에 탄 이드가 떨어지지 않도록 뒤뚱거리며 라미아에게서 멀어진 후 힘차게 날아올랐다.

그 모습을 관심 있게 지켜보던 황녀가 놀랍다는 듯 말했다.

“지금 와이번이 먼지가 날리지 않도록 거리를 벌린 건가요?”

“아니, 와이번이 그렇게 똑똑한 몬스터가 아닙니다.”

황녀의 말을 보충하듯 비올라가 나섰지만, 그 말은 곧 록마틴 후작의 자신만만한 웃음소리에 묻히고 말았다.

“하하하, 저희 프랑 기사단이 훈련시킨 와이번에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지요.”

과연 믿어야 할지 의문이지만, 이미 떠나 버린 와이번을 다시 불러 물어볼 수도 없는 일. 일리나들은 순식간에 멀어진 와이번과 그 위의 이드를 바라보다 천천히 막사로 발길을 돌렸다.

“자, 일단 제 막사로 가시죠. 제가 좋은 차를 대접하겠습니다.”


이드는 짧지 않은 생에 비해 그 경험이 다종다양했다. 동시에 경험의 폭도 넓었다. 지구의 과거와 현대는 물론이고, 그레센이라는 이세계와 함께 변해 버린 지구도 경험했다.

덕분에 탈것에 대한 경험도 다양했다.

말과 마차를 기본으로, 배와 자동차, 오토바이, 비행기 등등 탈 수 있는 건 다 타 봤다. 심지어 몬스터의 습격이라는 긴급 상황에 헬기와 함께 전투기도 타봤다.

그나마 타지 못한 게 있다면 잠수함과 우주 비행선 정도?

그런 다양한 경험을 가진 이드도 와이번을 타는 것은 처음이었다.

“와이번을 타는 것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군요.”

“하하하, 명예 후작님께서 비 오는 날과 한겨울의 비행을 겪어 보시면 그런 말씀은 못 하실 겁니다.”

비 오는 날과 겨울이라. 과연 끔찍할 것 같기는 하다. 속옷까지 축축이 젖어 가는 느낌이나, 떨어질 것 같은 귀와 살을 에는 추위는 겪고 싶지 않을 테니까.

물론 한서불침에 호신기를 가진 이드는 예외다. 이드는 내심 한 번은 경험해 봐야겠다고 다짐하고는 미노스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에도 와이번은 쉬지 않고 날았다. 최대한 흔들림 없이 날기 위해 진땀을 흘리면서……………

끼이이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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