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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402화


839화

사실 랜달의 그런 바람은 전혀 필요치 않은 것이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서로를 찾는 것은 물론이고, 쌀알 크기로 보일 거리를 넘어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는 이드와 프리실라.

두 사람은 애초에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좋게 이야기를 풀어 나갈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드가 지켜보는 가운데 프리실라가 움직였다.

그녀가 목줄을 당기자 옆에 서 있던 개가 그녀 앞으로 오고, 마수들 몸에서 생기던 무기처럼 썰매가 생겨나 프리실라를 태우고 이드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한 것.

“눈도 내리지 않은 숲에서 개썰매를 보는 것도 신선하네.”

이드는 색다른 이동 방법에 신기해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이드는 개썰매를 탄 프리실라보다 그 썰매를 끌고 있는 개에 집중했다.

“두상의 크기와 주둥이의 길이. 그리고 슬쩍슬쩍 보이는 이빨의 크기까지 완벽하네.”

찾았다 요놈, 놈의 이빨은 치털링 감시조의 몸에 남아 있던 것과 완벽하게 일치했다.

토벌이 시작되기 전에는 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이렇게 빨리 제 발로 나타날 줄이야.

‘그것도 감시조들을 물어 죽인 진짜 원흉을 끌고 오는 기특한 짓을 해 줄 줄이야. 상으로 주인과 함께 무지개다리를 건너게 해 주지.’

과연 동물의 천국에서 받아 줄지는 모르겠지만.

그러는 사이 프리실라가 이드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마법사답게 거리를 두는 것 같으면서도 당당히 몸을 드러내는 모습에서 강한 자심감이 보였다.

숲으로 들어서며 들러붙은 풀잎을 톡톡 털어 낸 프리실라가 진한 눈웃음을 지으며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내 고양이들이 죽어 나가서 실력 좋은 기사가 온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젊고 잘생긴 기사일 줄이야. 뜻밖의 행운인걸? 반가워요, 젊은 기사님.” 

“나도 반갑네, 개 주인 아주머니.”

“개 주인? 아니, 그보다 아주머니? 내가 왜?”

프리실라는 절대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볼에 빵빵하게 바람을 불어 넣고는 바락 소리를 질렀다.

“날 보고 젊은 기사라고 했잖아. 그래서 당연히 나이가 많은 아주머닌가 했지. 거기다 볼을 부풀리는 것도 주로 나이 든 사람이 억지로 젊고 귀엽게 보이려 할 때나 하는 행동 아냐?”

“어머나, 심하다. 그건 편견이야. 젊은 기사분. 그렇게 따지면 여성들에게 인기 없다?”

“그럼 개 주인 나이를 밝히던가. 거기다 난 이미 결혼한 몸이야. 다른 여성들에게 인기 있어도 곤란해.”

“그런데 왜 자꾸 개 주인이라고 하는 거지? 우리 베릴 때문이야?”

프리실라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면서 끝까지 나이를 밝히지는 않지만, 이드도 굳이 그녀의 나이를 알아낼 생각은 없었다. 저 젊은 얼굴 가죽 안에 어떤 노괴가 들어 있을지 궁금은 했지만.

“그것도 있지만, 내가 살던 곳에 속담이 있거든. 개를 패면 그 주인이 나온다고. 내가 이 주변의 깜둥이들을 죽였고, 당신이 나왔으니. 개 주인이지.” 

이드의 대답에 프리실라가 눈물을 찔끔거릴 정도로 꺄르르 웃어 댔다.

“호호호, 재미있는 속담이네. 마음에 드는 속담이지만, 계속 개 주인이라고 불리기는 싫으니까 내 이름을 알려주지. 난 프리실라 반 펨. 미완의 마탑 정신의 관 6 장로야.”

그녀의 소개에 이드는 내심 휘파람을 불었다.

6 장로라니. 생각보다 거물이 튀어나왔다. 적당히 분을 풀 놈이라도 나오길 바랐는데, 뜻하지 않게 개 주인이 나온 걸로도 모자라 정신의 관의 장로라니.

“그런데 반 펨? 혹시 피를 좋아하나?”

반 펨이란 이름은 이드가 재미있게 봤던 애니메이션에 나오는 뱀파이어의 성이었다.

“맞아. 피뿐 아니라 인간의 몸에 있는 걸 연구하는 걸 좋아하지. 그런데 어떻게 알았지?”

“재밌네. 내가 살던 동네에 반 펨이라는 성을 가진 뱀파이어에 대한 기록이 있는데. 그런데 당신도 피를 좋아한다니. 같은 가계인가봐?”

“그런 기록이 있어? 보고 싶은걸?”

“뭐, 기회가 되면. 그런데 따라오는 사람이 없는데. 혼자 온 건가?”

프리실라가 나타난 후 계속 주위를 살핀 이드였지만, 아무도 접근하지 않는 상황에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들어 물었다.

“젊은 기사가 내 고양이를 괴롭혔으니까. 젊은 기사에게 내 고양이가 당했다는 소문이 나면 부끄럽잖아?”

“그래서 혼자 나왔다? 고마운데? 당신만 잡아 두드리면 제법 나올 게 많겠어.”

“호호호, 동감이야. 나도 우리 젊은 기사의 몸에 관심이 많아서 말이야. 최근 약해 빠진 것들의 몸만 주물렀더니 최근에 좀 단단한 몸을 만져 보고 싶었거든. 우리 젊은 기사 정도라면 딱 좋을 것 같은데. 어때? 착하게 내 말을 들으면 지금보다 훨씬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데.”

만약 이 자리에 라미아가 있었다면 프리실라를 당장 공정 거래 위원회에 신고했을 발언이다. 이드를 강화한다니. 어디 드래곤 하트 한 상자나, 신의 피한 병이라도 준비하고서 하는 이야기냐고 말이다.

이드도 기가 막힌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헛소리는 사람 좀 가려 가며 하지? 내가 당신 개를 죽이면서 뭘 본 줄 알아? 당신이 말하는 강해지는 방법이 머리만 잘라 내는 거 아냐?”

“어머, 봤구나! 굉장하지? 내 최신의 기술이라고. 그리고 걱정 마. 기사는 초인하고 달라서 버릴 게 하나도 없거든.”

박수를 치며 말하는 프리실라는 정말 자랑스럽다는 듯 떠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이성으로 순수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는 짓은 미치광이 과학자인데 광기에 빠지진 않았다.

하지만 이드는 저런 자들이야말로 더 위험하다는 것을 안다.

“거절하지. 난 내 몸을 타인에게 맡기고 싶은 생각이 없거든.”

“어쩌나. 난 가지고 싶은데.”

“그럼 가져가 보시던가?”

“그럼 그럴까? 물어와, 베릴.”

프리실라가 진하게 웃으며 베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 순간 이야기하는 중에 얌전히 앉은 베릴의 몸을 통해 땅바닥으로 기어들어 이드의 아래로 이동한 촉수들이 작살로 변해 솟아올랐다. 터터터터턱!

하지만 그 작살들은 모두 지표면을 덮은 강막을 뚫지 못하고 찌그러졌다.

땅에서 나는 둔탁한 소리에 아래를 바라보던 이드가 프리실라를 바라보며 히죽 웃고는 말했다.

“주위를 돌리고 기습을 준비한다. 말하는 것과 달리 고전적이네.”

“호호호, 고전적인 건 반대로 그만큼 효과가 확실하거든? 지금처럼 변형도 다양하고.”

프리실라가 나긋하게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땅속의 촉수들이 강막의 경계선에서 검은 커튼처럼 솟아올라 이드를 덮치려 했다.

“그런 건 알면서 무인의 공격권에 접하지 말라는 기본은 모르는 모양이네.”

이드는 가벼운 비웃음과 함께 발끝을 비틀었다.

그러자 작살을 막아 낸 강막의 끝이 날카롭게 튀어나왔다. 근본적으로 그 형태가 사용자의 의지에 따르는 내공의 결정은 사용자의 의지에 따라 방패가 되기도 하고, 검강이 되기도 한다.

특히나 이드의 무극신기에 의한 의형강기는 그런 특성이 특히 진하다. 날카로워짐과 함께 방패는 즉시 검이 되었다.

쫘아아아악-

검에 걸린 검은 커튼이 길게 찢어지며 반탄력에 밖으로 펼쳐졌다. 그 모습이 마치 이드를 중심으로 검은 꽃이 핀 것 같았다. 이드가 그 속에서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마법사라면 마법사답게. 너무 큰 자신감은 자신의 목을 조르는 법이라는 걸 이번 기회에 배워 두면 좋을 거야.” 

슉!

순간 이드의 허리춤에서 검은 그림자가 번뜩였다.

그와 동시에 가만히 있던 베릴이 앉은 자리에서 사라지더니 갑자기 프리실라 앞에서 튀어나와 그림자를 막아섰다.

퍽!

묵직한 소리와 함께 베릴의 머리 절반이 뭉개졌다.

그 모습에 이드가 작게 감탄했다.

“개라서 그런가? 충성심이 뛰어나네.”

그리고 이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베릴의 머리가 순식간에 복구되었다. 그와 함께 베릴의 두꺼운 목을 따라 주먹만 한 크기의 상자들이

솟아올라 진주 목걸이처럼 자리했다. 단순히 세어도 그 숫자가 열 개가 넘었다.

“그 상자. 크기는 다르지만 어쩐지 눈에 익은 거 같은데. 내가 생각하는 그건가?”

이드가 눈살을 찌푸리고 프리실라를 바라보며 물었다.

그녀는 대답 없이 진한 미소를 보였지만, 그것이면 대답은 충분했다.

“우리 베릴이 특별한 이유지. 기사가 빠른 건 알지만, 공간을 뛰어넘는 베릴보다 빠를 순 없어.”

그녀의 말에서는 베릴이 있는 이상 자신은 공격당하지 않는다는 믿음이 강하게 느껴졌다.

“그럼 그 강아지가 방패가 되어 주는 사이 당신이 날 공격하고?”

“호호, 베릴, 젊은 기사분이 네 능력이 궁금하신 모양이구나.”

프리실라는 즐겁다는 듯 웃으며 가지고 있던 지팡이로 베릴의 목에 걸린 상자들을 두드렸다.

“크르르르륵.”

다음 순간.

프리실라의 허리까지 닿던 대형견이 분명하던 베릴이 두 발로 서며 점점 인간의 형태로 변해 갔다.

다만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개의 머리와 날카로운 발톱.

변신을 마친 놈은 지금까지 숨소리 하나 내지 않던 것과 달리 이드를 향해 이빨을 내보이며 으르렁 거렸다.

“웨어울프?”

앞의 마수들이 동물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면, 변신을 마친 베릴은 명백하게 몬스터의 형태를 가졌다.

그것도 신체 능력이 우수하기로는 손가락에 꼽히는 웨어울프의 형태였다.

“어때, 이 정도면 젊은 기사분의 취향에 충분히 맞을까?”

“아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혀 내 취향이 아닌데, 특히 목에 있는 저 물건이 가장 싫군.”

슈슈슉!

무심한 이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드의 손가락 끝에서 열 줄기의 지력이 뻗었다.

그중 여덟은 웨어울프의 요혈을 노렸고, 남은 둘은 은밀하게 그 뒤에 있는 프리실라를 노렸다.

강맹하고 음험하며 상반된 지력은 그 운용하는 내력의 방식이 전혀 달랐지만, 이드의 손끝에서는 그 둘이 하나인 듯 자유롭게 발출되었다.

뻐버버벅!

여덟의 지력을 먼저 몸에 맞은 것은 웨어울프였다. 놈은 지력을 보고도 움직이지도, 피하지도 않았다.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이는 이드도 이미 충분히 짐작하고 있던 것. 무엇보다 놈을 향한 공격은 그저 눈가림용이다. 물론 한 번의 공격을 그저 의미 없이 흘려보낼 생각은 없다.

웨어울프의 살가죽을 뚫은 지력은 강렬한 회전과 함께 폭발했다.

앞서 마수를 상대하며 놈들의 육체를 상대한 경험에서 나온 방법이었다.

과연 웨어울프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놈의 몸 곳곳이 화려하게 터져 나갔다.

하지만 진짜는 웨어울프가 아니라 두 줄기의 취을난지가 아니던가.

이드의 눈이 웨어울프 뒤의 프리실라를 향하는 순간.

쩌저저적.

프리실라를 중심으로 허공에서 갑자기 붉은 실선이 생겨나며 그녀를 휘감았다.

쩌정.

그 위로 취을난지가 부딪치며 날카로운 소리가 났다.

“호호호, 설마 마법사가 자신을 보호할 방법도 생각하지 않고 맨몸으로 나왔다는 멍청한 생각을 한 것은 아니겠지?”

이드는 앞선 자신의 말을 돌려 까는 프리실라의 말에 혀를 찼다.

확실히 쉽게 본 면이 있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다 생포할 생각에 지력이 약했던 것도 문제다.

“뭐, 팔다리 좀 없어도 말하는데 문제는 없으니까.”

“어머나, 잔인해라. 하지만 그런 소리는 우리 베릴부터 상대하고 하는 게 어떨까?”

“크와와와!”

프리실라의 말과 함께 몸이 걸레가 된 웨어울프가 이드를 향해 긴 손톱을 뽑고 번개처럼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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