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522화
958화
구구구ᅳ
초중기와 연계된 발터의 공격은 흉악했다. 존 워스를 중심으로 생성된 중력 필드의 압력만으로 대지가 움푹 파였다.
당연히 그 중심에 있는 존 워스가 감당해야 할 무게는 더욱 무시무시할 터.
하지만 존 워스는 당당히 견디고 섰다. 거기에 단순히 버틸 뿐 아니라 유연하게 검을 움직이기까지 했다.
마치, 중력에서 자유로운 물고기처럼.
촤르르륵-
검이 움직이는 순간 존 워스를 중심으로 은은한 금빛 오오라가 생겨났다. 일그러진 검막이 순식간에 안정된 형태로 바뀐 것.
그 모습에 발터가 두 눈을 부릅뜨고, 창과 검막을 형성하는 검이 부딪혔다.
쿠아앙!
힘의 충돌은 언제나 폭발이고, 폭발은 소음을 동반한다. 한데 이번은 다르다. 진동으로 폭음을 먼저 느꼈지만, 음파가 도달하기 전. 꾸구구구국
기묘한 소음과 함께 소음과 충격이 폭심지를 중심으로 압축되어 찌그러들었다.
오만 가지 요소가 압축되는 현장은 심연처럼 검었다.
이드는 그 모습에 솔직하게 감탄했다.
“블랙홀이 폭발한 것 같네.”
물론 비유일 뿐이다. 진짜 블랙홀을 폭발시킬 정도의 에너지라면 던전이 아니라, 대륙이 위험할 테니까.
물론 어림없다고 여길 수도 있다. 별을 잡아먹을 수도 있는 블랙홀에 비유라니.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현장에 초인들과 복면들은 이드의 말에 전력으로 동감할 것이다.
실시간으로 블랙홀의 흡입력에 빨려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은 즉각 바위 뒤로 몸을 던지고, 검을 땅에 박고, 갖가지 초인기로 버텼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이 많았다.
“빠, 빨려 든다!”
“잡아 줘! 손 좀 잡아 줘~~!”
“끄아아악!”
발버둥 치다 흡입력에 끌려간 사람들은 초중기의 영역에 진입하는 순간 피를 토하며 절명했다. 사방에서 포탄처럼 쏟아지는 수십, 수백 톤의 압력에 온몸이 부서진 것이다. 그들은 존 워스가 아니니까.
무엇보다 끔찍한 건 그게 끝이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까드드득.
초중기의 중심인 흑점에 가까워진 시신이 말라비틀어진 멸치처럼 뒤틀리며 흩어진 것. 기사가 되어 남의 전투에 휘말려 죽는 것도 부끄러운데, 시신조차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게 생긴 것이니까.
오죽하면 이드가 그 모습에 혀를 찰까.
그런 이드는 모두가 흡입력에 휘청이는 중에도 평온했다. 옷은 찢어질 듯 휘날리지만, 반짝이는 머릿결을 자랑하는 머리카락은 한 점도 흔들리지 않는다.
피부 1mm 위에 펼쳐 둔 미세한 호신강기 덕분이다.
“에잇, 진짜, 이쪽이나 저쪽이나 대처가 늦네.
이드는 답답함에 가슴을 쳤다. 마음 같아서는 발터를 대신하고 있는 칸에게 한마디 해 주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칸도 바보는 아니라는 것일까.
조금 늦었지만 입술을 질끈 깨문 칸이 조원들을 뒤로 물리기 시작했다.
“전투 중지! 방어에 전력을 다하면서 조장과의 거리 확보를 최우선으로 합니다.”
“전장을 한정할 생각입니까?”
“네. 최소한 전투 여파에 휘말려 죽는 개죽음은 피하도록 해야지요.”
마음 같아서야 수백 미터 떨어지는 것이 안전하다. 서로 죽고 죽이는 전장에서 안전한 곳이 있겠냐만, 저런 항거 불능의 자연재해는 피해야지 않겠는가.
그러나 지금 있는 곳은 넓다고 해도 깊은 지하에 있는 석실, 공간이 한정되어 있으니,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멀리 떨어지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하지만 그렇게 전력이 밀집되다 보면 전투가 길어질 겁니다.”
“상관없습니다. 어차피 이 전투는 우리가 이기고, 지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발터와 암살 기사.
두 강자의 싸움이 끝나야 진짜 끝나는 것이다. 막말로 발터가 패배할 경우 오 조에 암살 기사를 막을 초인이 있을까?
고개가 저어진다.
“그나저나 발터 조장님도 강하지만, 저 암살 기사 놈도 솔직히 두려울 정도군요. 강자들의 싸움이란 것이 어떤 것인지. 오늘에서야 진짜 세상에 눈을 뜬 것 같습니다.”
기사의 말에 칸이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발터의 부관으로 있으며 그가 싸우는 모습을 많이 봤지만, 이만한 강자와의 싸움은 그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구경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발터의 싸움이 끝나지 않은 것처럼 자신의 싸움 역시 끝난 것이 아니다.
“전원 밀집 방어 형태를 취하십시오!”
우선은 천천히 접근해 오는 복면들을 상대하는 일. 그게 그가 할 일이었다.
그사이 발터와 존 워스의 전투는 한층 격렬해지고 있었다.
초중기로 만든 중력 지대 속에서 초인기의 주인인 발터는 물론이고, 존 워스는 자유롭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단지 자유로움을 넘어 날아다녔다.
발터는 어느새 거인이 되어 있었다. 그의 몸엔 흑마처럼 흙으로 만든 것이 분명한 외장갑이 그물처럼 뒤덮여 있었다.
검은색으로 번들거리는 외장갑은 단순히 방어만 하는 것이 아닌 듯, 발터가 움직일 때마다 유기적으로 밀고 당기며 힘을 더했다. 그에 따라 속도와 힘이 증가되어 발터의 공격은 마치 거인의 그것 같아 보였다.
그뿐인가.
펑! 펑!
발터의 공격 끝에는 초중기의 중력이 채찍처럼 아른거리며 튀어 나갔다. 작은 움직임 하나하나에도 초중기의 중력이 공명하며 폭발했다.
바로 여기가 내 홈그라운드다! 라고 격렬하게 주장하는 것 같은 모습.
그러나 그런 압도적이라고 해도 좋은 공격력을 자랑하면서도 발터의 표정은 좋지 못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지극히 유리한 환경에서 터트리는 공격이 존 워스의 검에 모두 막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강력하고 대단해도 적을 쓰러트릴 수 없으면 의미가 없지 않은가!
무언가 다른 특별한 방법이 필요하다.
마음을 굳힌 발터가 멈춰 섰다. 쿵 소리를 내며 발터의 두 발이 바닥에 박혀 들었다. 질끈 깨문 이에 턱이 불끈 일어서 있다.
“음? 어째서 멈추는가?”
“아무래도 당신을 잡기 위해서는 특별한 것이 필요할 것 같아서 말입니다.”
사실 초중기 안에서 그 영향을 받지 않는 것만 해도 엄청난 일이다. 경지에 이른 검막의 경우 이치에 어긋난 인공적인 힘을 끊어 낼 수 있다지만. 설마 이 정도로 완벽하게 초중기를 벗어날 줄은 몰랐다. 그렇다고 초중기를 풀어낼 생각은 없다.
초중기가 있는 중에도 저렇게 날아다니는 인물이다. 초중기가 없다면 그 발을 어떻게 잡을까.
이때는 한쪽으로 힘을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남겨 두고 있던 힘을 꺼내야 할 때다.
“훗, 좋지. 하지만 나도 더 이상 가만히 받아 줄 생각은 없다네.”
존 워스가 웃음을 흘리며, 검을 들었다.
그에 따라 수만의 검영이 거대한 해일처럼 일렁이며 발터를 덮쳐 갔다. 휩쓸리면 아무리 단단한 외장갑을 가졌어도, 순식간에 다져질 것 같은 공격.
“흐읍!”
그 앞에서 발터는 피하지 않았다. 짧게 들이쉰 숨을 연료로 주먹을 부딪쳐 공간을 울리고, 초중기의 압력으로 일렁이는 공간을 뜯어내 말아 쥔다.
콰드드득!
순식간에 앞으로 향한 발터의 손에 까맣게 물든 초중압의 중력구 여섯 개가 쥐어졌다.
그중 하나가 해일을 향해 쏘아졌다.
콰우-
키리리리리-
해일은 만난 중력구가 해방되며 질서 정연하던 검영이 태풍 앞의 갈대처럼 흔들렸다.
“흠.”
그 모습에 존 워스가 내력을 한층 끌어 올리며, 이파, 삼파의 검영 해일을 쏘아 냈다. 지금까지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그 역시 편하지만은 않았다.
발터의 예상대로 초중기의 영향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 검막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이다.
‘철벽’이라는 별명을 가진 존 워스에게 검막의 유지는 크게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문제는 검막을 유지하며, 격렬한 발터의 공격을 막고, 공격까지 해야 한다는 것이 문제.
거기에 발터라는 인물이 어디 어중간한 공격이 통할 상대인가.
하지만 존 워스의 검력이 더해진 것과 마찬가지로 발터의 중력구도 아직 다섯 개나 남았다.
퓨푹!
순식간에 두 개의 중력구가 더해졌다.
끼리리리링-
검의 해일이 밀려나고 검영이 일그러지며 불협화음이 났다.
푹!
그리고 하나의 중력구가 더해지는 순간. 모든 소리가 멈추고 은빛 해일의 중간에 휑하니 구멍이 뚫렸다.
순간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고, 그 순간 발터가 웃었다. 하나 남은 중력구를 들고서.
‘둘이 아니라 하나라고?’
존 워스는 인지와 동시에 움직였다. 아니, 인지하기 전 본능이 몸을 움직였다.
직후 땅에서 하늘을 향해 검은 선이 그어졌다. 바로 발터의 손에서 떠난 중력구였다. 땅을 뚫고 나온 중력구는 길게 꼬리를 만들며 솟아오르더니 이번엔 획하고 방향을 존 워스를 향해 내리꽂혔고, 존 워스는 검으로 중력구를 베었다.
치이이잉!
하지만 검강에도 중력구는 베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튕겨 나가며 존 워스 주위에 복잡한 선을 만들어갔다.
마치 거미가 먹이를 둘러싸는 것 같은 형태.
존 워스는 이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이 좋지 못함을 느끼고, 다시 날아오는 중력구를 쳐 냄과 동시에 검은 선을 베어 냈다.
과연 검왕이랄까.
한 번의 베기에 다섯 개의 선이 베어졌다. 아니, 정확하게는 베지 못했다. 베었다고 생각한 선이 마치 물감처럼 검에 달라붙으며 일그러졌다. 부우우우-
존 워스는 검은 선을 떨치기 위해 내력을 더했다. 검강이 선명해지며 은빛 검 위로 선명한 검형이 떠올랐다.
“쯧.”
그러나 검은 선은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그림자인 듯 검에서 검신에서 떨어지지 않는 것이다. 존 워스는 그 상태에서 다시 검은 선을 베었다. 결과는 동일했다. 검은 선은 검강에 베이지 않고, 검신에 치렁치렁 매달렸다.
존 워스는 검은 선에 닿지 않으려고 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선에 닿아 결코 좋은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덕분에 이리저리 일그러진 선 때문에 존 워스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급격히 줄어들었다.
한 뼘 정도 되는 공간.
빠져나갈 수 없이 촘촘해진 검은 선들.
“잡았습니다.”
결과 만족한 발터의 말과 함께다.
추욱,
검을 든 존 워스의 팔이 늘어졌다.
“무거워졌군.”
존 워스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검을 내려다보았다. 검은 선에 둘러싸인 검의 무게가 바윗덩이처럼 무거워진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존 워스의 말을 무시한 발터가 주먹을 쥐자 사방에 거미줄처럼 늘어져 있던 줄이 한순간에 팽팽하게 조여들며 존 워스를 덮쳤다. 순식간에 검은색 고치가 생겨났다.
하지만 상대는 검왕. 발터는 끝까지 방심할 생각도, 오만한 마음도 없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남아 있던 중력구를 쏘아 냈다.
이대로 중력구에 당한다면 검왕 하나를 잡을 수 있으니, 남는 장사다. 상대의 정체를 알 수 없겠지만, 그럼 어떤가.
어차피 이후 보이지 않는 검왕이 있다면. 그가 이 자리에서 죽은 자일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