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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61화


997화

마법진은 특이하다.

그냥 봐서는 알아먹기 힘든 복잡하고 특이한 기호가 가득한 그림일 수도 있지만, 이게 보고 있으면 묘하게 사람을 빨아들이는 마력이 있다. 아마 마법진이 마법의 정수이기 때문이리라.

그런 이유로 라미아의 마법진은 고요한 가운데 완성되었다.

“끝!”

스팟.

손끝에 맺혀 있던 빛이 없어졌을 때, 완성된 마법진에서 스파크가 짧게 일어났다가 사라졌다.

“진짜 고생했어.”

공을 들여서인지 평소보다 제작에 제법 시간이 걸렸다.

이드가 고생한 라미아의 어깨를 주물렀다. 그래 봤자 골렘의 어깨라서 뭉친 것도, 풀릴 것도 없지만.

“마법진도 이 정도쯤 되니 웅장하네요. 처음 봅니다. 이렇게 큰 건.”

“나도 이 정도 크긴 몇 번 본적 없어.”

스폴과 쉴라가 마법진을 보며 소곤거렸다.

두 사람의 말처럼 마법진은 컸다. 지름만 50미터였으니.

액세서리 등에 사용되는 극소 마법진과 성에 설치되는 특대 마법진을 제외한 마법진의 평균 크기는 1미터에서 2미터 사이. 보통 마법진의 제작 난이도가 크기에 비례한다는 점을 보면, 방금 라미아가 만든 것은 일반 마법진과 스무 배나 차이가 났다. 다만 아쉬운 것은 그런 굉장함을 알아줄 사람이 없다는 거다.

대부분은 마법에 문외한인 기사들이고, 알아볼 능력이 있는 이드와 일리나에겐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자, 모두 이 위로 올라서요.’

충분할 만큼 이드의 우쭈쭈를 즐긴 라미아가 손을 깃털처럼 가볍게 흔들며 말하자, 은색 기사단이 자로 잰 양 반듯하게 정렬했다. 마지막으로 라미아가 마법진 위로 올라섰다.

“그럼 이동합니다. 잠깐 어지러울 수 있을 거예요.”

“출구 쪽 준비 끝난 건 확인했고?”

“당연히 실시간으로 파악 중이죠. 그거 때문에 비올라도 미리 보내 놓은 건데요.”

톡톡 귓가를 두드리는 라미아에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에단과의 통신을 마친 후, 에단에게 보내진 비올라였다.

그의 임무는 공간 이동을 위한 마법진의 보강. 아무래도 인원이 많다 보니 에단에게 맡겨 놓은 임시 마법진 만으로는 용량이 작아서다. 

‘그게 아니었으면 마법진을 만들 때부터 라미아 옆에 붙어 귀찮게 했겠지.’

그러다 한 대 맞는 건 덤이고,

부웅.

낭랑한 캐스팅이 끝이 나고, 마법진에서 빛이 난 뒤 중력이 사라진 듯 부유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눈에 보이던 모든 흐릿해지다 선명해진 순간.

“어머!”

공간 이동을 처음 경험하는 여기사들이 어깨와 허리에 걸리는 무게에 휘청거리며 놀란다. 아마도 누가 갑자기 뒤에서 당기는 감각과 흡사하기 때문이리라.

이윽고 정신을 차린 그녀들,

아쉽게도 처음 경험한 공간 이동에 대해 감상을 말할 틈은 없었다.

“휘이익! 이런 세상에! 진짜 왔어!”

“내 평생 은색 기사단의 실물을 이렇게 가까이서 보게 될 줄이야! 고맙다. 이 자식아!”

걸걸한 목소리에 어울리지 않는 방정맞은 호들갑 때문이다.

그 음성의 주인은, 에단과 함께 기다리고 있던 전 트와이스 소속의 기사들이었다.

정체를 숨기고 다닐 때가 많긴 했지만, 그들도 제국의 기사들. 은색 기사단에 설레는 마음이 없을 수가 없었다.

다만 그들을 이끌고 있는 톰으로서는 그저 주군인 이드를 보기 부끄러울 뿐이다.

“오랜만에 뵙는 주군 앞이다. 잘 좀 하자, 이 자식들아!”

기사들을 향해 돌아선 톰의 얼굴이 굉장히 살벌했던 모양이다. 휘파람과 환호를 올리던 기사들이 행동을 즉시 멈추는 걸 보면.

그들은 곧 절도 있는 동작으로 이드를 향해 인사를 올렸다.

확확 변하는 모습에 몇몇 여기사들이 호기심을 보였다.

정작 이드도 그런 기사들을 나쁘게 보지 않았다.

적국에서 정체를 감추고 적을 추적하는 일은 어지간히 신경이 굵지 않고서는 하기 힘든 일인데, 이렇게 장난을 칠 정도의 여유면 아직 크게 힘들지는 않은 것 같아서다.

간단히 소개와 함께 인사를 주고받은 뒤 쉴라가 조용히 속삭였다.

“축하드려야 할 것 같군요. 듣던 것보다 뛰어난 자들을 거두신 것 같습니다.”

조금 예의가 없어 보이긴 했지만, 무례한 느낌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실력이 좋았다. 촐싹대는 중에도 끊임없이 사방을 경계하는 걸 모를 쉴라가 아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안전한 곳으로 옮긴 후 하시죠. 마법의 규모가 워낙 커서 조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모로 방비를 하긴 했지만, 만약이라는 게 있을 수 있으니…….”

에단이 주변을 살피며 말했다.

그에 공기 중으로 산화되어 사라지는 마법진을 살피던 비올라가 벌떡 일어나서는 성을 냈다.

“실수 따윈 없어! 내 마법은 완벽하다고!”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에단은 비올라를 무시하고는 길을 안내하기 시작했다.

비올라가 분한 듯 쿵쿵 발을 구르고는 일행의 제일 끝에 붙었다. 그러면서 꿍얼꿍얼 혼잣말을 멈추지 않는다.

그 모습을 재미있다는 듯 바라보는 쉴라다.

“비올라 마법사는 토벌대에 있을 때보다 지금이 더 즐거워 보입니다.”

이드는 턱을 긁적였다.

그녀에겐 저 모습이 즐거워하는 것으로 보였나.

“즐거운 건 모르겠고, 에단과 붙여 두기만 하면 항상 저렇더군요. 그러면서도 손발은 척척 맞는 걸 보면 궁합은 좋은 모양입니다.” 

“후후후, 그렇군요.”

그 말에 묘한 웃음을 흘리는 쉴라다.

그렇지 않아도 맡고 있는 학생에 대한 이야기를 보호자에게 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던 이드는 흠칫했다.

‘진짜 쉴라 단장과 비올라 사이에 뭐가 있는 건 아니겠지?’

하루 동안의 데이트라는 파격적인 사건이 있기는 했지만, 그 이후 서로 자주 만날 시간도 없었는데 도대체 언제? 이드는 설마 하고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쉴라와 비올라라니. 개인마다 취향이 다르다지만 어울리지 않는 것도 정도가 있지!

이드는 두 사람에 대한 섣부른 예측을 포기했다. 사람의 연애만큼 종잡을 수 없는 것도 없으니까.

에단이 안내한 곳은 작은 상단의 주인이 소유하고 있던 저택이었다.

크지는 않지만, 뒤로 작은 동산이 있어 포근한 느낌이 들었다. 에단의 말로는 검은 돌에서 급히 구매한 저택이라고 했다.

“이 저택이 보기엔 아담해 보이지만 지하가 굉장히 넓습니다. 상단 물건을 보관하던 용도로 썼다고 하는데, 대외적으로는 알려지지 않은 공간입니다.”

쉽게 말해 밀수품을 숨겨 두던 창고란 이야기다.

간단히 짐을 풀고 은색 기사단에 휴식을 명했다. 처음 경험하는 공간 이동에 힘들어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까. 무엇보다 지금은 늦은 밤. 쉬어야 할 시간이었다.

대신 이드들은 따로 응접실에 모였다. 에단이 커튼을 치고 불을 밝혔다.

“이제 말씀해 주십시오.”

“많이 궁금했던 모양이지?”

이드가 나란히 앉은 에단과 톰, 그리고 스톤과 에린을 보았다.

스톤과 에린은 고용된 처지인 만큼 이 자리에 함께 할 수 없지만, 특별히 이드가 허락했다. 이전의 인연 때문인가, 에단을 통해 포섭이 가능할 것 같다는 보고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큰 작전을 앞에 두고 함께하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비올라가 말해 주지 않던가?”

“명예 후작님께서 말씀해 주지 않으신 일인데, 저 꼴통에게 억지로 들을 수는 없다 싶었습니다.”

“어차피 말해 줄 생각도 없었어, 인마!”

그러나 이번에도 에단은 무시로 일관했다. 그에 비올라가 화가 끓어오르는 듯 거친 숨을 푹푹 내쉰다.

그러거나 말거나 어서 대답해 달라는 듯 이드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사람들.

이드는 조용히 말했다.

“간단하다. 지금부터 우리가 할 일은 하나. 검후 구출이다.”

“흡!”

순간 명치를 맞은 듯 숨을 멈추는 네 사람이다. 특히 그중 톰은 엉덩이까지 들썩였다.

제국 소속의 특수 기사단이지만, 검후의 중요성을 모를 사람은 아니었다.

아니, 정보와 관련된 쪽에 근무하고 있었기에 어쩌면 검후의 중요성을 오히려 더 절절히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런 그의 놀람은 어쩌면 당연했다. 

“혹시나 하고 시작한 추적이지만…… 정말 이 끝에 검후님이 계신다니. 후~”

정신이 멍한지 슥슥 얼굴을 문지르는 에단이다.

그때, 그 옆에 있는 에린의 움찔거리는 모습을 본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할 말이 있으면 하라는 뜻.

전엔 제법 거침없이 말을 하는 듯하더니, 오늘은 이상하게 조심을 한다.

에린은 망설이는 기색이었지만 곧 입을 뗐다.

“그럼 현재 검후님이 쉐어가든에 있다는 말씀이신데. 해당 정보의 출처, 그리고 확실한 정보인지 궁금합니다.”

정보 분석에 능하다고 하더니. 질문도 그쪽이다.

이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정보가 정보다 보니 아직 확인은 하지 못했소. 검후님을 가두고 있는 곳이라면 경비가 보통이 아닐 테니까. 대신 정보 자체는 믿을 만하오. 검후를 납치한 범인들 중 하나에게 직접 들은 것이니까.”

“무례하게 들리시겠지만, 순진하신 판단 같습니다. 그런 적의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습니까? 오히려 더욱 확인에 확인을 거쳐야 합니다. 함정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딱딱 끊어지는 사무적인 발언이 이어졌다.

이드는 물론이고 그 유명한 은색 기사단의 단장을 앞에 두고 있음에도 전혀 위축되지 않는 모습이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인지 스폴이 평소의 그것과 다른 사늘한 분위기를 풍기며 나섰다.

“그대가 말한 대로 무례한 언사다. 네가 알고 있는 사실을 이분들이 모르실 것 같은가!”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들어온 정보를 분석하고 의견을 내는 것이 제 일임을 알아주십시오.”

전혀 위축되는 모습없이 당당히 할 말을 다 하는 에린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저 스폴이 진짜 기도를 드러냈는데도 말이다.

스폴도 그 모습이 의외였는지, 눈꼬리가 떨렸다.

그가 더욱 기도를 돋우려는 듯하자 이드가 나섰다.

“그만, 각자 입장은 충분히 알았을 테니, 쓸데없는 말싸움은 그만하도록 하지.”

“알겠습니다.”

“네, 조장님.”

기다렸다는 듯 칼같이 들린 대답이다. 하지만 거기에 의문을 가진 사람이 있었다. 바로 톰이었다. 

“조장님? 스폴 경은 은색 기사단 소속이 아닙니까? 어째서 명예 후작님께 조장님이라 하십니까?”

그에 언제 심각했냐 싶게 평소의 악동같은 모습으로 돌아온 스폴이 가슴을 펴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자리를 옮겼습니다. 명예 후작님의 부관으로! 그리고 아직 토벌대가 정식으로 해체되지 않았으니, 토벌대의 조장님이시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아, 이렇게 반가울 데가! 그럼 같은 주군을 모시게 되었네요. 앞으로 많은 가르침을 부탁드립니다.”

“호호호, 저야말로 잘 부탁드려요.”

척 하고 악수를 나누는 스폴과 톰.

이드는 그 모습을 황당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도대체 누구 허락을 받고 마음대로 소속을 옮기는 거냐고!

거기다 흐뭇하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쉴라는 또 뭐란 말인가.

뭔가 함정에 빠진 것 같은 느낌에 세 사람을 붙잡고 한바탕 설교라도 해야 할까 고민할 때였다.

에단이 빗길에 버려진 강아지 같은 얼굴을 하고는 이드의 옷깃을 잡고 늘어졌다.

“이드님! 부관은 저 아니었습니까? 저, 저는 이대로 버려지는 건가요?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으십니까?” 

“너야말로 왜 이러냐. 흐아…….”

이드는 뜬금없는 끼어든 에단에 눈을 질끈 감았다. 언제 부관을 시켜 줬다고 저런 소리를 하는 건지.

어쩐지 키득거리는 라미아와 일리나의 웃음소리가 멀게 느껴지는 이드였다.

검후 구출이 그 시작부터 삐걱거리는 느낌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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