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564화
1000화
어떤 일을 할 때 상대에 대해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구출 작전에 있어서는 몇 번을 강조해도 모자랄 만큼, 사전 정보의 중요성은 매우 컸다.
뭘 알아야 구출 대상이 갇힌 위치나, 잠입할 구멍을 찾을 것이 아닌가 말이다.
이드도 그런 의미에서 직접 쉐어 가든을 보기 위해 나섰다.
아무래도 많은 수가 움직여 좋을 것이 없어 새로 변한 라미아와 일리나, 쉴라와 스폴 정도만 함께 움직이기로 하고, 스톤이 안내 겸 설명을 위해 따라붙기로 했다.
쉐어 가든까지는 우선 말로 두 시간을 달려야 했다.
만약에라도 발각될 것을 염려하여 쉐어 가든에서 멀리 떨어진 저택을 구했기 때문이다.
앞선 스톤을 따라 말을 달리던 이드가 말했다.
“이렇게 조심해야 할 때마다 구출 작전이 참 어렵구나 싶단 말이야.”
“어쩔 수 없죠. 적의 말살이나 단순 파괴처럼 힘으로 밀어 버리면 끝나는 일이 아니니까요. 이드도 경험이 있잖아요.”
라미아의 말에 이드가 생각하기 싫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알고 있으니까 더 싫은 거지. 구출 작전도, 내 사람이 잡혀 있는 상황도.’
“누가 잡혔었어요? 언제요?”
나란히 말을 달리던 일리나가 물었다.
말발굽 소리와 바람 소리가 요란하지만, 엘프의 청력은 그런 소음 속에서도 이드의 목소리를 전혀 놓치지 않는다.
“처음 그레센에 오기도 전 고향에서였어요. 그때 같이 싸우던 친구가 잡혀서, 구출하느라 고생을 좀 했죠.’
이드는 생각만 해도 식은땀이 흐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말했다.
“그래도 지금은 그때보다 나아요. 초인파에서 검후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으니 쉽게 해치지도 못할 것이고, 먼저 이런저런 준비를 하는 기사들도 있으니까요.”
“짧은 시간인데 생각보다 꼼꼼하게 준비가 되어 있었죠. 지금 달리는 말도 그렇고.”
어디 말뿐인가.
오늘 밤 경비에 나선 병사의 이름에서부터 가족 사항까지 세세할 정도로 조사가 되어 있었다.
아쉬운 건 쉐어 가든의 중심부에 관한 것뿐.
여하튼 이 정보의 대부분이 검은 돌에서 제공되었다고 했었다.
“그때 에단의 요청에 검은 돌을 고용하지 않았으면 어쩔 뻔했나 싶어요.”
그 말이 들렸나 보다.
선두에서 말을 달리던 스톤이 슬쩍 속도를 줄여 이드와의 거리를 좁혀 왔다.
“명예 후작께서 그렇게 보아 주셨다니 감사합니다. 원래 저희들이 하는 일과 구출 작전이 준비 단계에서는 차이가 거의 없는 편이라 정보를 구하는 일이 쉬웠습니다.”
과연 그럴듯한 말이었다.
누군가를 암살하기 위해서도 목표가 머무르는 곳이나, 침입을 위한 빈틈을 찾아야 할 테니까.
“쉐어 가든에도 검은 돌의 목표가 있었던 모양이오?”
“그건 아니지만, 이 바닥이 준비가 철저할수록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은 곳이라서 말입니다.”
즉, 언제든 일을 하는 데 무리가 없게 중요한 곳에 대한 정보는 주기적으로 수집을 하고 있었다는 거다.
“검은 돌이 생각보다 규모가 큰 모양이오?”
제국 안이라면 이해가 가지만, 마스에까지 손이 닿아 있을 줄은 몰랐던 이드는 솔직히 놀랐다.
그 표정을 숨기지 않고 묻자 스톤이 그렇지 않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의뢰인의 신뢰는 반갑지만, 목숨이 걸린 일이기 때문에 과대평가에 대해서는 확실히 선을 그어야 한다는 게 평소 그의 지론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스톤의 말에 따르면, 기본 정보는 길드에서 제공되었다고 했다.
쉐어 가든은 중심부의 정보가 흘러나오지 않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주요 인사가 머물 여지가 있기 때문에 평소 신경을 쓰던 곳이라고.
“초인파에서도 그런 이유로 검후님을 그곳에 감금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렇군.”
“곧 쉐어 가든을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 나옵니다.”
말과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가는 스톤이다.
그 모습을 보던 라미아가 이드의 귓가에 속삭였다.
“에단의 말이 있어서 그런가? 확실히 전에 볼 때하고 태도가 달라 보이지 않아요?”
“네가 보기도 그렇지?”
아무리 장기 고용을 했다고 해도 그렇지. 묻지 않은 일에 친절한 설명은 물론, 검은 돌의 내부 정보 수집에 대한 부분까지 까발리는 암살자가 어디있나?
이드 아래로 들어오고 싶은 의향을 보인다는 에단의 말에 무게가 실리는 순간이다.
확실히 검은 돌 입장에서도 음지에서 활동하기보다 이드의 이름을 빌어 양지로 나올 수 있다면 좋은 일일 것이다.
“거두실 거예요?”
“일단 좀 더 보고. 당장 저쪽에서 요청해 온 것도 아니니까.”
이드의 말이 끝날 때였다.
쉴라가 세 사람의 대화에 불쑥 끼어들었다.
“감히 저들이 이드 님께 받아 달라고 먼저 요청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이드 님 주변에 암살자들이 얼씬거리는 것은 좋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래도 기사이기 때문인가, 암살자라는 업에 강한 거부감을 보이는 쉴라다.
다만 기사라고 모두 그런 것은 아닌 듯하다.
평소에도 진중한 기사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 스폴은 쉴라 뒤에서 실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으니까.
“저는 재미있을 것 같아서 좋습니다. 그리고 단장, 너무 깐깐하게 보지 말라니까요. 따지고 보면 에단 경이나 톰 경도 비슷한 계통의 일을
했다고요.”
의뢰자가 개인인가 나라인가, 대가가 국익인가 돈인가만 다를 뿐.
어차피 필요에 따라 사람을 죽이는 것은 같다.
그런 조롱이 섞인 스폴의 말에 쉴라가 눈을 부라리자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고 마는 스폴이다.
그러는 사이 네 사람은 스톤이 먼저 가 기다리고 있는 곳에 도착했다.
산허리를 휘감아 난 길 위에 있기 때문인가, 스톤의 말처럼 그 아래로 펼쳐진 쉐어 가든이 한눈에 들어왔다.
높은 성벽과 그 안쪽에 자리한 많은 건물들. 그냥 봐서는 여느 영지와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가만히 살피면 차이가 드러난다.
우선 초록빛의 나무나 수풀이 많다. 가든이라 불리는 이유도 그 때문일 듯하다.
또 눈에 뜨이는 것이 성벽이다. 성안에 세워진 벽은 담이라고 하기 어려울 만큼 높았고, 그 안의 성은 작은 요새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저게 쉐어 가든……”
하지만 그중 가장 이드의 눈을 끄는 것은 탑이었다.
삼각형을 이루는 요새의 꼭짓점을 따라 솟아 있는 세 개의 탑.
쉐어 가든의 역사는 약 대략 삼백 년에 가깝다.
마스의 역사가 육백 년이니, 절대 짧다고 할 수 없는 시간 동안 이름을 유지해 온 것이다.
처음 쉐어 가든의 시작은 마음씨 좋은 후작 부인이 가문의 사냥터 겸 정원을 유랑민들에게 내어 준 것에서 유래했다.
언제나 전쟁 중이라고 해도 좋은 마스였기 때문에 안주할 수 있는 곳을 찾는 유랑민은 많았다. 그들은 후작 부인의 보호 아래 힘을 키웠고, 후작 가문에 충성하는 세력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쉐어 가든은 홀로서기를 하고, 주인이 바뀌며 유지되어 왔다. 그러던 중 38년 전 마스 초인들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파라켈 후작의 소유가 된 상태였다.
“저곳에 검후님께서 계신 것이로군요.”
쩔그럭.
쉴라와 스폴이 갑자기 말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길 끝으로 걸어가 쉐어 가든을 보며 한쪽 무릎을 꿇었다.
별다른 말은 없었으나, 두 사람의 눈에서는 금방이라도 불이 쏟아질 것만 같았다.
이드는 두 사람이 어떠한 생각을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충 그 마음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겨우 주인이 있는 곳을 찾았다. 당장 검후를 구하기 위해 달려가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고통이지 않을까 싶었다.
일리나나 누이들이 검후와 같은 상황이라면 바로 그런 마음일 것 같았다.
‘왜 일리나와 누이분들뿐이고, 전 없어요?’
그런 중에 획 돌아서 라미아의 눈이 그렇게 말하는 듯하다.
다른 때라면 몰라도 이번만은 할 말이 많은 이드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네가 잡힌다는 게 상상이 가야 말이지. 거기다 언제 어디에 있든지 너와는 이어져서 부르면 바로 소환할 수 있잖아. 애초에 납치나 감금이 불가능한데 무슨.’
“핏!”
이드는 혀를 차며 고개를 돌리는 라미아를 보곤 승리의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다시 쉐어 가든을 살폈다.
공력이 깃든 이드의 눈은 망원 렌즈나 다름이 없었다.
중앙 요새 성벽 위를 지나는 경비병의 표정뿐 아니라 성벽에 아로새겨진 깊은 세월의 흔적까지 눈에 들어왔다.
그럼에도 각도상 보이지 않는 곳이 많다.
“자세히 살피려면 쉐어 가든 안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던 듯 스톤이 미리 준비한 마스 왕국의 용병패를 꺼내 든다.
하지만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이드는 굳이 저 안으로 들어가지 않아도 살펴볼 방법이 있었다.
“아무리 용병패가 있어도 자주 드나들어서 좋을 것 같으니, 다른 방법을 쓰지. 라미아, 날갯짓 좀 하자.”
끄덕.
이드의 말에 라미아가 즉시 날아올랐다. 동시에 이드의 머릿속에 라미아가 보고 있는 시야가 공유되었다.
드론과는 비교 불가한 비행 능력과 시야다.
“초인파의 연락을 받은 바벨이 움직였다면 경계가 보통은 아닐 터. 갑자기 찾아든 용병들이 내성을 기웃거려 의심을 사는 것보다, 작은 새가 내성 주변을 날아다니는 것이 더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겠소.”
물론 마법과 초인력이 있는 그레센인 만큼 의심을 하자면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새의 형태를 한 라미아가 더 시선을 끌지 않는 것 또한 사실. 스톤이 희미한 미소를 띠며 용병패를 집어넣었다.
“보통 탐색은 이렇게 쉽게 되는 것이 아닌데. 명예 후작님과 함께하니 신기하고 편한 일이 한둘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짧게 웃은 이드가 라미아의 시야에 집중했다.
나머지 사람도 그런 사실을 짐작한 듯 조용히 주변을 경계했다.
몸집은 작지만 진짜 새가 아닌 라미아는 금방 거리를 좁혀 쉐어 가든 상공에 닿았다.
이미 외성 쪽은 조사가 끝난 상태이니, 신경 쓸 것은 내성뿐이다. 라미아는 내성 주변을 돌며 외관부터 살피기 시작했다.
‘히야, 질릴 정도로 철저하네요. 창문이 하나도 없어요.’
‘그러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지은 거야.’
이드는 그 시야를 전달받으며 내심 혀를 찼다. 단순히 성벽의 문제가 아니었다. 정문을 제외하고 성벽과 그 안의 건물에 밖과 소통할 수 있는 구멍이라고는 하나도 없었다.
외부와 소통을 하려면 정문이 아니고서는 연결될 방법이 없어 답답해 보였다. 저래서 공기는 통하나 싶을 정도다.
뭐, 마법이 있으니 질식하지는 않겠지만, 안에서 불이라도 나면 살아 나오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구조다.
단순히 화염 때문만이 아니다. 화재에서 화염보다 무서운 것이 연기다. 저렇게 틈이 없으니 화재에 발생하는 연기가 건물 안을 가득 채우면 질식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닐 거다.
그보다, 현재 가장 큰 문제는 라미아가 들어갈 만한 구멍도 없다는 것이다.
‘어떻게, 들어가 볼 수 있겠어?’
‘조금 더 살펴볼게요. 일단 곳곳에 알람 마법이 있으니까 그걸 피해서 경비병들이 사용하는 비상문 쪽으로 접근해 볼게요.’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비상문에도 알람 마법이 있음은 물론이고, 굳게 닫혀 있는 문의 안팎에도 경비가 서 있었다.
라미아 실력에 알람 마법이 문제 될 것은 없지만, 이 안에 어떤 방비가 되어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진입하는 것도 성급한 일.
‘이거 괜히 검은 돌에서 내부 구조를 파악 못한 게 아니네. 그만 돌아와. 이 상태로는 안을 살펴볼 방법이 없겠어.’
‘알았어요.’
라미아의 말에 눈을 뜬 이드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휴~ 이걸 골치 꽤나 썩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