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566화
1002화
검후가 초인들에 의해 쉐어 가든에 잡혀 있다는 정보를 알았기 때문일까.
한 번 나온 파라켈 후작의 이름은 금방 회의실을 채워 나갔고, 그 대부분이 그를 성토하는 말이 되었다. 당연했다. 검후가 쉐어 가든에 잡혀 있다면, 쉐어 가든의 주인인 파라켈 후작이 모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 애초에 그의 허락이 없었다면 어떻게 그곳을 사용할 수 있었을까.
회의실에 모인 마스의 대신들은 그런 사실을 놓치지 않았다.
“이번 파라켈 후작님의 문제를 단순히 넘겨서는 안 됩니다.”
“이건 폐하와 마스에 대한 배신입니다.”
“어허! 말조심하십시오. 파라켈 후작님이 이 나라에 해를 끼친 것이라도 있다는 말이오?”
소수 옹호하는 사람도 있지만, 목소리가 크진 못했다.
성토하는 사람 중 가장 목소리가 큰 사람은 세르베트 백작으로, 사사건건 파라켈 후작과 대립하던 정적이었다.
그는 이번 사건을 파라켈 후작을 꺼꾸러트릴 절호의 기회로 여겼다.
크흠 하는 헛기침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모은 그가 우렁우렁 울리는 특유의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많은 의견이 있으시겠지만, 저는 한 가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번 일이 초인들의 이기심으로 인해 벌어졌다는 것. 마스와 왕실에 충성을 맹세한 귀족으로서, 어떻게 사적인 일을 더 중요하게 여길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가 조금만 더 빨리 쉐어 가든에 검후가 있음을
알았다면, 그랬다면 우리는 더 강해지고, 더 빨라졌을 겁니다.”
텅!
“맞습니다. 저 말씀이 지금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진실입니다.”
세르베트 백작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그 모습에 세르베트 백작이 내심 흐뭇하게 미소 지을 때였다. 후우~
늙수레한 기운이 담긴 한숨이 하얀 담배 연기와 함께 탁자 위를 길게 가로질렀다. 그걸 본 대신들이 하나둘 입을 닫았다.
소란을 잠재운 이는 왕을 대신해 회의에 나선 노재상 안데르였다.
세르베트 백작을 슬쩍 돌아본 그가 말했다.
“여러분들의 마음은 잘 알겠소이다. 하지만 지금 중요한 건 그것이 아니지 않소이까? 우리 모두 마스를 위해 지금 해야 할 일을 해야 할 것이오. 우선 외부의 시선을 막았는지부터 다시 확인해 봅시다.”
마스에서 검후를 빼앗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 사실이 외부에, 특히 아나크렌에게 알려지게 된다면 크나큰 사건으로 발전하고 만다.
그건 아무리 싸움 좋아하는 마스라도 식은땀 나는 일.
때문인가. 슬쩍 정치 싸움으로 흘러가려던 회의 방향이 다시 제자리를 찾았다.
그에 세르베트 백작이 짧게 혀를 찼지만, 안데르는 그저 웃어넘기며 등을 기댈 뿐이다.
회의를 주도하기보다 방향을 잡는 것. 그것이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그가 회의실에서 하는 일이었다.
‘초인 마법에 검후의 무공이라. 운명인가? 아니면・・・・・・ 운이 좋다면 이 눈으로 왕국이 제국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
회의실 그 너머 무언가를 바라보던 안데르가 길게 연기를 뿜었다.
그렇게 회의실에서 파라켈 후작에 대한 이야기를 끊어 냈을 때, 이드들이 모인 방에서는 파라켈 후작에 대한 이야기가 한창이었다. 제일 먼저 그 이름을 꺼낸 것은 에린이었다. 그녀는 전달된 쪽지를 받아 확인한 후 탁자에 펼쳤다.
쪽지의 내용은 짧았다. 파라켈 후작을 비롯, 초인파의 주요 인물들이 전날 입궁한 후 여태 출궁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전부였다. 내용을 살핀 이드는 에린을 돌아보았다.
마스가 검후의 정보를 알았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추측일 뿐, 확인된 사실은 아니었다.
그때 나선 것이 에린이었다.
그녀는 파라켈 후작을 살피면 사실 여부 확인이 가능할 것이며, 정녕 검후의 정보가 샜을 경우 파라켈 후작이 난처한 입장일 것이라고도 말했다.
검은 돌은 확인에 나섰고, 결과적으로 그녀가 말한 상황대로 흘러가고 있다는 쪽지가 왔다.
“이러면 확정이라고 봐야겠군요.”
“그런데 마스에서는 어떻게 알아차린 걸까요?”
“그러게요.”
일리나가 꺼낸 말에 이드가 턱을 쓸었다.
맞다. 지금까지 검후의 존재를 모르던 마스가 갑자기 어떻게 알았을까?
마스가 검후 구출에 끼어드는 것도 문제지만, 그 뒤를 생각하면 마스가 어떻게 정보를 얻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할 문제다.
뭐, 그래 봤자 정보 출처는 한정되어 있다.
검후를 납치할 때 같이 있었던 소드 팰러스, 초인들의 바벨, 미완의 마탑. 그리고 어떤 사건에 어디까지 손을 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혼돈의 파편까지. 꼴랑 넷.
‘문제는 어디서 흘렸든 그 꿍꿍이가 흉악할 거라는 거지.’
과연 어디서 움직인 것일까.
“그나저나 마스는 확실히 과격한 구석이 있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한 나라의 주요 전력들을 가두어 두다니 말입니다.”
쉴라가 탁자에 올려진 쪽지를 들어 살피며 말했다.
무려 후작이다. 뚜렷한 명분이 없고서는 왕이라도 함부로 대하지 못할 대귀족인데.
마스의 행동은 거침없고, 전격적이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에린이 쉴라에게 질문을 던졌다.
“쉴라 단장님은 권력자에게 가장 큰 죄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미안하지만 그런 넌센스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센스가 없어서가 아니・・・・・・ 크흡!”
장난스럽게 끼어들던 스폴이 갑자기 옆구리를 잡고 침몰했다. 당연히 쉴라의 징벌을 받은 거다. 익숙한 꽁트의 한 장면이지만, 에린은 웃지 못했다.
‘못 봤어.’
스폴을 때리는 모습은커녕, 쉴라가 움직이는 모습조차도. 정보 분석이 주된 역할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실력으로는 검은 돌에서 스무 번째 안에 있는데도 말이다.
새삼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의 대단함을 깨달은 에린은, 쪼그려 앉은 스폴에 즉시 답을 내놓았다.
“괘씸죄입니다. 이 죄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종류도 많은데, 그중 보물을 혼자 꿀꺽하려 한 아랫사람의 죄는 괘씸죄 중에서도 그 죄질이 매우 무겁습니다. 즉.”
“욕심 많은 왕이, 파라켈 후작과 초인들이 검후의 무공을 독차지하려 한다고 여겼다?”
스폴이 욱신거리는 옆구리를 문지르며 끼어들자 에린이 고개를 끄덕였다.
“왕뿐 아니라 대신들도요. 이쪽은 괘씸죄가 아니라 질투심에 더 가깝겠지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법이지.”
이드가 쭛 하고 혀를 찼다.
이리저리 말을 꼬고는 있지만, 결국 본질은 강도짓이나 다름이 없다. 파라켈 후작이 가진 보물을 빼앗으려는.
거기에 그걸로 끝나지도 않는다.
강도짓을 한 공범들 입장에선 보물의 원래 주인이 껄끄러울 테니 배척하려 할 것이고, 자연히 파라켈 후작은 정계에서 밀려나게 되리라. 거기에 그를 따르는 초인들도 같이.
‘이렇게 되면 바벨의 개입은 확실히 아니네.’
그렇지 않아도 경계를 강화해도 모자를 바벨이 정보를 흘릴 이유가 없기에 반쯤 제외하고 있었는데, 파라켈 후작의 이야기를 들으니 더 확실해진다.
이번 사건으로 파라켈 후작과 초인들은 유무형의 불이익이 생길 것이다. 초인들의 조직인 바벨이 그런 일을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물론 거대한 조직일수록 일부의 의견이나 이익이 묵살되기도 하지만, 파라켈 후작은 쉽게 버릴 수 있는 가벼운 패가 아니니까.
그럼 어떤 놈들이 자신의 일에 난입하려는 걸까?
마침 스폴의 곤란한 질문을 깔끔하게 받아 내고 있는 에린이 눈에 들어왔다.
‘이 정보를 어떻게 분석할지 한 번 들어 볼까?’
혼돈의 파편에 대한 자세한 사정을 모를 뿐, 그 외에 대해서는 에단과 함께한 덕에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비밀에 대한 부담도 없다.
생각과 동시에 즉시 행동으로 이어졌다.
“에린 양은 누가 마스를 움직였다고 생각합니까?”
그렇게 말을 꺼낸 이드는 토벌에서 드러난 네 곳의 관계에 대해 설명했다. 토벌전 이전과 토벌전 중에 일어난 배신과 협력 관계까지 더해서 말이다.
“정리 좀 하겠습니다.”
에린이 엄지손가락을 깨물며 생각에 빠졌다.
그와 반대로 에단과 트와이스는 깊은 탄식을 쏟아 냈다. 토벌전에 대한 소식은 보고 때 대략적으로 접하고 있었지만.
“설마 청색 기사단에서 마탑과 손을 잡고 적색 기사단을 공격했다니. 미친놈들! 어떻게 소드 팰러스의 기사가 그런 미친 짓을! 에라이~ 잘 죽었다. 차라리 잘 죽었어!”
그러나 말과 달리 답답하다는 듯 쿵쿵 소리가 날 정도로 가슴을 두드리는 에단이다.
왜 그렇지 않을까. 오색 기사단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그도 소드 팰러스 소속의 기사다. 성격 좋은 그는 두루 아는 사람이 많았고, 청색 기사단에도 아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들이 좋지 못한 일에 개입되었다가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니, 마음이 좋지 않을 수밖에.
거기에 한탄한 대로 조금의 수치심과 부끄러움도 추가되었을 것이다.
오색 기사단은 소드 팰러스에 속한 모든 사람의 기대를 받는 자랑이다. 한데 그들이 적과 손을 잡고 동료를 죽이려 했다니.
에단으로서는 듣는 것만으로 소름이 돋을 정도로 부끄러운 일일 것이다.
그나마 에단에 비해 톰을 비롯한 트와이스는 좀 나았다. 특수 기사단으로 활동하면서 더러운 꼴을 한둘 봤어야 말이지. 청색 기사단의 소식도 그저 쓴웃음 한 번으로 넘기고 만다.
오히려 존 워스를 잡아낸 이드와 그런 이드와 치열하게 싸운 혼돈의 파편이라는 과거의 존재에 큰 관심을 보였다.
“무섭군요. 저희도 세상의 뒷면에서 주로 활동했지만, 그곳에 그런 괴물이 돌아다니는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손 털길 잘했죠. 작전 중에 그런 괴물이라도 만났다고 생각하면..”
커크의 호들갑에 콜과 베일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는 사이 분석을 마친 에린이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깨물고 있던 손가락엔 잇자국이 선명하다.
“제 분석으로는 미완의 마탑이 검후님에 대한 정보를 흘렸을 가능성이 가장 높습니다. 다만 정보량이 적기 때문에 정확도는 다소 떨어집니다.’
“내가 제공한 정보가 적으니, 정확도는 일단 뒤로 하고 가장 가능성이 높은 곳이 미완의 마탑인 이유가 있소?”
“소거법입니다. 그에 따라 바벨이 가장 먼저 제외되었고, 두 번째로 소드 팰러스가 제외되었습니다.”
소드 팰러스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자 귀를 기울이던 에단이 불쑥 손을 들었다.
“제 입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소드 팰러스도 의심받기엔 충분한 것 같은데. 제외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들은 검후님을 배신했다는 원죄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손가락질받을 만한 죄입니다. 감추고 또 감춰도 모자랄 일에 마스를 이용한다? 어림없는 소립니다. 정말 죽이려 한다면 가장 은밀하고 알려지지 않게 움직이는 게 정상입니다.”
“……쯧, 납득했습니다.”
“세 번째로 제외된 것은 혼돈의 파편입니다. 그들에 대한 정보는 거의 없어서 가장 변수가 크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제외되었습니다. 명예 후작님이 말씀해 주신 메르시오라는 존재는 너무 강력하거든요. 굳이 마스를 움직일 필요 없이 가진 힘만으로도 원하는 목적을 충분히 이룰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제외되고 남은 것이…….”
“미완의 마탑이로군.”
“그렇습니다. 그들은 아마도 검후님을 노릴 생각일 겁니다. 검후님의 존재는 소드 팰러스와 바벨 양측에 모두 중요하니까요. 다만…… 어디까지나 제 추측이지만, 어쩌면 미완의 마탑에서도 검후님을 꼭 손에 넣어야 할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듭니다. 아무래도 소드 팰러스와 바벨에 중요하다는 이유만으로 검후님을 노리는 것은 위험 부담이 크기 때문입니다. 자칫 상황이 잘못 구르는 순간 소드 팰러스와 바벨이 손을 잡고 공격해 올지도 모르니까요.”
“대단한 분석 능력입니다. 굉장하군요.”
짝짝짝.
막힘없는 에린의 설명에 이드가 손뼉을 쳤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정확도가 떨어진다는 걸 잊지 말아 주십시오.”
조심스러운 것인가. 재차 강조하는 에린의 말이었지만, 이드는 만족스러웠다.
특히 미완의 마탑에서 모종의 이유로 검후를 노릴 가능성이 있다는 말에 번뜩 떠오르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선명히 떠오르는 장면.
제정신이 아닌 상태로 메르시오를 향해 달려들던 초인들과 탑주의 모습 말이다.
‘그거면 마탑에서 검후를 노릴 만한 이유로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