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덤 이미지

이드 2부 – 567화


1003화

탑주는 삼검왕이 소드 팰러스를 차지하기 위해 검후를 찔렀고, 마탑은 그 일에 협조하고 대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초인파는 거기에 같이 협조하고 검후를 데려갔다.

그런데 도대체 초인파, 바벨은 무슨 목적으로 다른 대가를 거부하고 검후를 데려갔을까?

그것도 후환을 남기고 싶지 않은 삼검왕의 반대를 뚫고서 말이다.

오랫동안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었던 이드다.

그러다 토벌전을 지나며 가장 정확하다 싶은 답을 얻을 수 있었다. 폭주하는 초인을 보았기 때문이다.

발터는 그걸 초인 폭주 현상이라고 했다. 폭주라는 단어도 그렇고, 눈이 뒤집혀 제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모습을 봐도 그렇고.

초인들은 폭주 현상을 일종의 질병처럼 여기며 지극히 싫어하는 것으로 보였다.

이드는 그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초인들의 폭주와 비슷한 현상이 무공에도 있기 때문이다. 바로 주화입마다.

기혈과 정신을 동시에 침범하는 주화입마는 어떤 면에선 폭주보다도 질이 나쁘다 할 수 있다.

폭주는 중간에 풀렸을 때 움직이거나 생각하는 것에 큰 이상이 없지만, 주화입마는 운 좋게 벗어나더라도 몸을 쓰지 못할 정도로 망가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뭐, 그 외에도 마공을 익혀 정신 차리지 못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건 자업자득이니 제외하자.

이런 주화입마는 언제 어떻게 찾아올지 몰랐다.

그렇기에 아마 지금까지도 많은 무인이 주화입마를 극복하기 위해 궁리 중일 것이다.

그렇다면 초인들도 그렇지 않을까?

그들도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는 폭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시도할 것이다. 마법, 신학, 주술, 악마와의 계약 등 시도할 방법도 많다. 그런 초인들의 눈에 무공이 들어오지 않았을 리 없다.

특히, 무공에는 ‘폭주’와 비슷한 현상인 주화입마에 대한 주의 사항까지 설명되어 있으니, 더욱 관심이 갔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즉, 무공을 통해 폭주를 해결하려고 했을 거라는 거다.

하지만 이 주화입마는 무공의 핵심에 닿아 있다.

때문에 제국에서는 난화십이식과 함께 주화입마를 비의로 취급, 극소수의 인물만 알고 연구할 수 있도록 했다.

당연히 앙숙 수준의 초인이 접근할 수 없는 내용이란 거다.

그렇다고 폭주에 대한 문제를 오픈하고 해결을 위한 협조를 공식으로 요청할 수도 없다.

폭주에 대해 알려질 경우, 그 불완전성으로 인해 현재 초인들이 쌓아 온 자리가 위험해질 수 있으니까.

당연 이드는 이런 제국과 초인들의 입장을 자세히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무언가 복잡한 사정이 있다는 것쯤은 짐작 가능했다.

당장 폭주 현상에 대해서도 발터에게서 처음 들었을 정도이니, 비밀을 지키기 위해 철저히 보안 관리를 했다는 정도는 알 수 있었던 것. 

‘그런 중에 가장 무공에 대해 지식이 깊고, 경지가 높은 검후를 손에 넣을 기회가 생긴 거겠지. 삼검왕의 은밀한 협조 요청을 통해서 말이야.’ 

초인들로서는 바라 마지않던 기회였을 거다.

검후를 통해 폭주를 해결할 가능성을 봤다면 삼검왕과의 머리 아픈 협상 정도는 웃으면서 마쳤으리라. 그리고 그 결과 검후는 바벨의 손에 감금된 상태가 되었다.

이드는 그런 바벨의 상황을 그대로 마탑에 대입하고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 라미아가 재빨리 물었다. 갑자기 생각에 빠진 이드에 모두 숨소리도 조심하고 있었던 것.

“좋은 구출 방법이라도 생각났어요?”

“아니, 대신 마탑이 갑자기 끼어든 이유를 알 것 같아서.”

“에이~ 난 또, 이유가 뭐 중요해요? 오면 철저히 밟아 줄 건데. 사람 납치하고 인체 실험할 때 알아봤어야 했는데. 상도덕도 없는 탑주. 검후의 정보를 넘기고는 이런 수작질이라니!”

라미아가 분하다는 듯 주먹을 부르르 떤다.

“그래서 이유가 뭔데요?”

“내가 마지막 토벌전에서 초인들이 폭주하는 모습을 봤거든.”

“토벌 중에 버서커로 변한 사람이 있었던 말입니까?”

처음 듣는 이야기에 말이 끝나기도 전에 쉴라가 급히 물었다.

“폭주 초인을 버서커라고 하는 모양이죠?”

“그렇습니다. 초인들이 알려지는 것을 막고 있어서 버서커를 아는 사람은 적습니다만. 그런데 버서커가 나타났었습니까?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발터 단장이 부탁하더군요. 보고에서 빼 달라고. 그래서 말하지 않았습니다. 어려운 일도 아니고, 무엇보다 그게 알려지면 존 워스가 마탑과 함께 오조를 공격했던 사건도 복잡하게 꼬일 테니.”

“그런 일이.”

“미리 알렸어야 했는데, 워낙 바쁘게 돌아가는 통에 깜빡했습니다.”

“아니, 그런 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드의 사과에 쉴라가 부담스러워하자 라미아가 다시 그사이에 끼어들었다.

“아이, 그래서 이유가 뭐냐니까요?”

그에 이드는 기다렸다는 듯 여태 생각한 것들을 모두 말했다. 그리고는 척 하고 손가락을 들었다.

“여기서 핵심은 하나. 완벽히 제정신을 잃은 건 아니지만, 탑주도 초인과 마찬가지로 반쯤 버서커로 변했다는 겁니다. 그렇게 자랑하던 초인 마법에 버서커라는 치명적인 약점이 따라붙어 버린 거죠. 자, 그럼 이 사실을 알게 된 탑주는 이후 어떤 행동을 하게 될 것 같습니까?”

일리나가 손을 들고 말했다.

“저라면 마법의 취약점을 극복할 방법을 찾을 거예요.”

“정답이에요. 그런 점에서 지금까지 바벨의 노력은 좋은 이정표가 되어 줄 테고, 그들이 현재 집중하고 있는 검후에도 욕심이 나겠죠. 이 정도면 에린 양이 알 수 없다고 했던 마탑의 동기로 충분하지 않아요?”

충분하다 못해 넘치는 동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에단이 알겠다는 듯 팔짱을 끼며 말했다.

“이제 대략 그림이 그려집니다. 결국 마스를 움직여 사건을 만들고, 마탑은 결정적인 순간에 나타나 검후님만 빼돌리려는 계획이겠군요.”

이 손에서 저 손으로 물건처럼 뺏고 뺏기는, 자유 의지가 봉인된 힘없는 여인이 되어 버린 검후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

“젠장! 도저히 못 참겠네.”

어느새 장난스러운 웃음을 잃어버린 스폴이 벌떡 일어나 검을 쥐고 나가 버린다. 마치, 그길로 쉐어 가든으로 달려갈 것 같은 모습. 

“어….. 붙잡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반쯤 일어난 엉거주춤한 상태로 톰과 스톤이 말을 하자 쉘라가 고개를 흔들었다.

“걱정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검을 휘둘러 답답한 마음을 풀려는 것뿐입니다. 그리고 저도. 좀 머리를 식힐 필요가 있을 것 같아 먼저 일어나겠습니다.”

머리를 쓸어 넘기는 쉴라의 이마에 송골송골 땀이 솟아 있다. 속에서 올라온 화가 신체에도 영향을 준 것이다.

스폴을 따라 쉴라도 꾸벅 고개를 숙이고 방을 나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드가 에린을 보며 물었다.

“그 국경 기사단하고 타란 백작은 언제쯤 도착하지요?”

“타란 기사단은 내일 자정, 타란 백작과 수도 기사단은 이틀 후 저녁때쯤 도착할 것 같습니다. 목적이 목적이다 보니 쉬지 않고 달릴 테니까요.”

도착하자마자 작전에 들어가지는 못하니, 마스에서 작전을 시작하는 것은 아무리 빨라도 삼일 후.

“그럼 우리도 오늘은 일단 쉬도록 합시다. 토벌전에, 먼 길 이동한 건 우리도 마찬가지니까.”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이드가 일어나자 모두 그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을 나가는 사람들 뒤로 비올라가 라미아를 붙잡고 늘어지기 시작했다.

“왜? 뭐?”

“어디 가십니까? 연구해야지.”

“연구? 무슨 연구?”

“이번에 얻은 바이트 타블렛 말입니다. 저 그거 아직 한 번도 못 만져 봤단 말입니다!”

있는 대로 연구 욕심을 부리는 비올라에 라미아가 이마를 짚었다.

“연구는 복귀하고 난 후에 해야지. 그걸 지금 꺼내서 어쩌려고?”

“당연히 연구해야지요. 장소가 뭐 중요합니까!”

“난 중해요! 거기다 지금은 일단 쉬어야 한다고. 너도 대응 마법진 보강했는데, 피곤하지도 않아?”

절레절레.

“이 정도 피로로는 제 열정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연구하시죠. 아니면 바이트 타블렛 맛이라도 좀 보게 해 주십시오!”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 로브 자락을 꽉 붙잡고 늘어지는 비올라를 어지간해서는 떼어 놓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 소란에 고개를 돌린 이드가 이미 해가 진 창밖을 보았다.

가까이 주택이 없어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분명 흥분한 비올라가 외치는 소리에 나와 보는 사람이 있었을 거다.

“그냥 연구해 보라고 꺼내 주는 건 어때?”

처음엔 이상한 이유로 협조를 시작한 비올라지만, 지금까지 함께 하면서 상당히 믿을 만하다는 확신을 얻은 이드가 말했다. 고치기 힘들 것 같던 반말도 완전히 고치지 않았는가.

“보십시오. 명예 후작님도 연구가 급하다고 하셨잖습니까! 당장 연구를 시작해야 합니다.”

“아니, 내가 언제?”

유언비어 생산 현장을 코앞에서 목격한 이드가 어이없어하자, 라미아가 작게 한숨을 쉬며 이드를 향해 말했다.

“끙~ 꺼내 주는 건 문제가 아닌데, 아직 바이트 타블렛에 어떤 장치가 되어 있을지에 대해서 조사를 못 했단 말이에요. 이대로 꺼내 놓으면 자칫 바이트 타블렛의 존재를 감지하고 달려올지도 몰라요.”

“탑주?”

“아니면 누구겠어요?”

“그러니 같이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넌 좀 닥치고 있어!”

파앗!

쉬지 않고 징징거리는 소리에 열이 받은 라미아는 결국 비올라의 입에 사일런스 마법을 박아 넣었다.

무어라 말하는 듯 입을 뻐끔거리지만, 그 입안에서는 아무 소리가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된 비올라.

“이대로 지하실 조용한 방에 던져 버리고 싶은데. 안 되겠죠?”

“안될 건 없지만, 지하실에 넣는다고 얌전해지진 않을 것 같다.”

강렬한 충동을 느낀 라미아에 이드가 고개를 저었다. 써클을 봉인해 버리면 몰라도, 비올라가 지하실 방에서 얌전히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한 번 꽂히면 물불 가리지 않는 비올라다. 당장 라미아를 잡고 늘어진 것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이드 세 가족이 귀족의 권위를 세우지 않고 편한 모습을 보인다고 하지만, 그래도 명예 후작이다.

이드의 진짜 정체를 생각하면 그보다 더 어렵고,

가장 이드와 가깝다고 자신하는 에단조차 저런 짓은 하지 못한다. 그런데 비올라는 주저 없이 라미아를 붙잡지 않았는가.

그렇게 세 사람이 기묘한 고심에 빠진 모습에 일리나가 끼어들었다.

“그럼 지하실 방에 바이트 타블렛과 비올라를 함께 넣어 두면 어때요? 라미아가 방 주변으로 단절의 마법을 설치하면 괜찮을 것 같은데.”

언제나 침착하게 해법을 제시하는 일리나.

이드와 라미아의 눈이 마주치며 반짝거렸다.

“할 수 있어?”

“써클을 봉인하는 것보다 10배는 쉽죠. 문제는 안에서 밖으로 튀어나오는 건데.”

말과 함께 세 사람의 시선이 비올라에게 향하는 순간.

두 팔을 번쩍 펼쳐 든 비올라가 격렬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하는 몸짓만 봐서는 지하실 어두운 방의 지박령이라도 될 기세다.

해결 방법이 나오자 라미아는 바로 저택 지하 구석에 있는 방을 중심으로 마법을 펼치기 시작했다.

“탑주가 알아차리는 것이 걱정되어서 그렇지, 그것만 아니면 내가 할 일을 대신해서 연구하겠다는데. 이 정도 수고쯤이야 아무것도 아니죠.” 텅!

방과 외부를 단절시킨 라미아가 방 안으로 바이트 타블렛을 던지는 순간, 비올라가 뼈다귀를 향해 달리는 사냥개처럼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쿵!

그와 동시에 방문을 닫은 라미아가 탁탁 손을 털고는 이드의 손을 잡았다.

“자, 이제 쉬러 가요.”

랜덤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