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574화
1010화
스톤과 에린은 이드의 질문 아닌 질문에 끄덕였다.
검은 돌의 정보 수집 능력도 능력이지만, 그간 이드가 직접 전달해 준 정보가 얼마인데 모를까.
꿀꺽.
“알고 있습니다. 삼검왕의 소드 팰러스, 바벨, 미완의 마탑, 그리고 혼돈의 파편. 이 넷이 명예 후작님의 적입니다.”
마른침을 삼키며 답하는 스톤의 목소리에는 옅은 두려움이 묻어났다.
검은 돌이 제국 음지에서 활동하며 방귀 좀 뀐다지만, 이들 중 한 조직이 콧바람만 불어도 날아갈 만큼 세력 면에서 큰 차이가 나기 때문이리라. 그가 굳이 ‘삼검왕의 소드 팰러스’가 말한 데도 이유가 있다. 이번 기회에 검후가 구출되면 앞으로 소드 팰러스가 어떻게 변할지 알 수 없기도 하거니와, 옆에 있는 은색 기사단을 배려한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우선은 맞소. 그리고 당연한 얘기이긴 하나, 검은 돌이 내 밑으로 들어올 경우 검은 돌도 그들과 싸우게 될 거요. 이미 알 테지만 이들은 매우 강하오. 이 부분, 검은 돌에서는 각오가 된 것이오?”
“저희 검은 돌에서는 새 사람이 들어오면 여러 가지를 가르치는데, 그중 하나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당연히 모른다. 이드는 에단을 통해 검은 돌의 실력에 대해서만 전달받았을 뿐이다.
“고통 없이 최대한 빨리 자살하는 방법입니다.”
“알 것 같군.”
가장 먼저 배우는 것이 자살법이라니. 기가 막힐 일이다. 그러나 이해 못 할 것도 없었다.
검은 돌의 주 활동 무대는 음지. 당연히 하나같이 위험한 일만 가득하다.
잡힐 경우 죽음과 고문의 양자택일뿐이라면 자살 방법을 가르치는 것도 이상할 건 없다.
무림의 암살자들을 봐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혈맥을 끊거나, 어금니에 구멍을 뚫어 극독을 숨겨 두는 경우는 흔하니까 말이다.
하지만 스톤이 말하려는 건 지독한 암살자의 지독함이 아니었다. 이미 검은 돌의 요원이 되는 순간 죽음을 각오했다는 비장함을 드러내고자 한 것이었다.
“저희 검은 돌에 있어 죽음의 가치는 늘 같습니다.”
“그럼,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까지 내 사람이 되겠다는 건가? 왜지? 만약 권력을 바라는 거라면 진작 포기하라고 하고 싶군.
“음, 제 말솜씨가 좀 모자란 모양입니다. 저와 검은 돌은 오히려 살기 위해 명예 후작님께서 거두어 주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말이야. 살기 위해선 오히려 내게서 멀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마인드 마스터의 출현 이후 현재까지 대륙이 깜짝 놀랄 일이 두 번 있었습니다. 그때마다 전쟁에 비견될 만한 사상자가 나고,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이드는 그가 말하는 두 가지 깜짝 놀랄 일이 뭔지 알 것 같았다.
“무공과 초인의 등장인가.”
“그렇습니다. 그리고 지금 그와 견줄 만한 사건들이 여기저기서 동시에 일어나고 있습니다. 하나하나 따로 보아도 전 대륙이 깜짝 놀랄 일들이 말입니다. 이에 검은 돌에선 앞서 무공이나 초인이 나타났을 때보다 더 큰 혼란이 일어날 거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이런 경우에 저희 같은 힘없는 집단은 갈대처럼 흔들리다 사라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위험을 피하는 가장 쉽고 좋은 방법이 바로, 강력한 힘에 보호를 받는 것이지요”
“검은 돌에선 날 혼란에 스러지지 않을 강자로 보는 모양이군?”
“당연합니다.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이시며, 제국의 명예 후작이시고, 토벌대도 함부로 달려들지 못한 혼돈의 파편이라는 괴물을 혼자서 물리치신 명예 후작님이 강자가 아니면 누가 강자가 될 수 있겠습니까.”
“그것참…….”
이드는 면전에서 자신에 대한 칭송을 늘어놓는 스톤 덕에 얼굴이 뜨뜻해지는 것을 느끼며 어색해했다.
이어 몇 가지 질문과 답이 오고 갔다.
스톤은 어떤 질문에도 막힘없이 답했고, 중간부터는 에린이 답을 대신하기도 했다.
미리 자신이 무엇을 물을지 리스트를 뽑아 준비라도 한 것 같은 철저한 모습에 이드는 문득 궁금증이 일어 물었다.
“내가 보기에 이번 요청에는 에린 양의 영향도 큰 것 같은데, 에린 양의 분석은 어떻게 나왔소? 내가 검은 돌을 받아 줄지 받아 주지 않을지에 대해서 말이오.”
이미 검은 돌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이드이기에, 에린이 그에 대해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대해서는 그저 순수하게 궁금했다.
잠시 대답을 망설이던 에린이 무언가 결심한 듯 이드의 눈을 보며 말했다.
“명예 후작께서 저희 검은 돌의 요청을 받아주신다는 것이 제 분석 결과였습니다.”
“훗, 검은 돌은 오늘 내가 이 요청을 받아들이는 이유에 에린 양의 지분이 가장 크다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라오.”
“그 말씀은?”
스톤과 에린이 번쩍 고개를 들었다.
이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앉은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검은 돌은 타인의 의뢰가 아닌, 내 이름 아래서 내 명령으로만 움직이게 될 것이오.”
“가, 감사합니다.”
“지금부터 저희 검은 돌은 명예 후작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스톤과 에린의 충성 맹세에 이어 문밖에서도 검은 돌의 요원들의 충성 맹세 소리가 들려왔다.
“명예 후작님께 충성을 맹세합니다.”
그 뒤 이드가 두 사람을 일으키자 두 사람 곁으로 에단과 트와이스의 기사들, 그리고 스폴이 모여들어 축하의 말을 건넸다.
같은 식구가 되었기 때문인지, 그들은 전에 없던 유대감을 표시했다.
특히 그 중 에단이 가장 적극적이었다.
“환영합니다. 이젠 같은 식구가 되었으니, 더 친하게 지내 봅시다.”
“고마워요.”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일이 끝나면 느긋하게 소드 팰러스를 구경시켜 주겠소.”
“……”
물론 그 목적이 단순 유대감 이상을 목적으로 하는 것 같았지만 말이다.
그렇게 축하의 말이 오고 가는 중에 쉴라가 이드에게 다가왔다.
“음지에서 활동한 전력이 조금 걱정이지만, 확실히 유능한 이들을 얻으신 것 같습니다. 축하드립니다.”
“고마워요. 그런데 이번 일은 순전히 에단과 트와이스 덕분이에요. 검은 돌과 좋은 관계를 형성한 것도 그렇고, 필요성을 주장한 것도 그렇고.”
“하지만 그런 자신감을 보일 수 있었던 이유도 명예 후작님이 있으셨기 때문이었을 겁니다. 이건 경험담이에요.”
이드는 비밀 이야기를 하듯 속삭이는 쉴라에 피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은색 기사단을 검후의 수호 기사단으로 여기던 사람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이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검후가 없는데도 그런데, 검후가 있을 때 은색 기사단의 영향력은 어떨까.
호가호위라는 말이 부정적으로 쓰이기는 하지만, 다시 말해 영향력이란 크면 클수록 벗어나기 힘든 것이기도 했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검은 돌의 운용에 대해서는 클라인 백작과 차차 의논해 볼 생각입니다. 그래도 일단은 지금은 의뢰를 받으며 현재 상태를 유지할 생각입니다.”
“그건 좋지 않아 보입니다. 저들이 명예 후작님의 소속이 된 이상, 음지에서 계속 활동하는 것이나 의뢰를 받는 것은 명예 후작님의 명예를 떨어트리는 일이 됩니다.”
쉴라가 싫은 내색을 감추지 않고 말했다.
정보 관련은 둘째 치고, 암살과 도둑질과 같은 일은 기사인 그녀의 입장에서 용납하기 힘들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하지만 이드는 그녀의 기분 때문에 말을 바꿀 생각은 없었다.
“명예는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그보다는 의뢰를 통해 수집되는 정보를 포기하기 아깝기 때문이에요. 가능성은 작아도, 그런 의뢰 속에 혼돈의 파편이나 검왕에 관련된 것이 있을 수 있으니까요. 물론 쉴라 경의 걱정은 알아요. 하지만 그런 부분은 문제없는 의뢰만 골라 받으면 괜찮을 겁니다.”
“단순히 문제가 있고, 없고가 중요한 것이 아닌데…… 휴~”
쉴라가 어쩔 수 없다는 듯 긴 한숨을 쉬었다.
마주한 이드의 얼굴에서 몇 마디 말로 생각을 바꿀 수 없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드가 권력뿐 아니라 명예에도 아무런 의미를 두지 않는다는 사실만 확실히 깨닫는 쉴라였다.
그리고 이런 이드의 결정을 반기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스톤과 에린이었다.
정보를 얻는 통로라는 이드의 생각과 뜻을 같이하는 부분도 있지만, 현재 진행하고 있는 의뢰는 물론이고 여기저기 흩어진 조직을 단숨에 정리할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간단한 조율이 끝난 후 검은 돌과 트와이스는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타란 백작과 기사단이 쉐어 가든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보고가 전해졌다.
두두두두두.
갑자기 뿌연 먼지구름과 함께 이백의 기마가 출현했다.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는 전력에 쉐어 가든의 성문을 지키던 병사가 바짝 긴장한 상태로 창을 들었다.
“멈춰라!”
“워~!”
그러나 긴장한 것과 달리 이백의 기마는 병사의 명령에 넉넉한 거리를 두고 멈춰 섰다.
신경을 바짝 곤두세우고 있던 기사는 그 모습에 상대가 싸움을 하려는 의지가 없음을 알고 한발 앞으로 나섰다.
다만 그런 중에도 검에서 손을 완전히 놓지 않고 있는 모습이, 평소 얼마나 잘 훈련하고 있는지를 알려 주고 있었다.
“이곳은 파라켈 후작님이 다스리는 쉐어 가든이오. 정체를 밝히시오.”
“경계를 푸시오. 나는 타란 백작님을 모시는 타란 기사단의 단장 피오 타란이오. 우리는 수도에서 파라켈 후작님과 왕실의 급한 명령을 받아 오는
길이오.’
“아, 변경백이신 타란 백작님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이분이 쿤 타란 백작님이시고, 이분은 수도 기사단의 단장이신 구른 벤 판 단장님이시오.”
설마 백작과 어지간해서는 수도에서 움직이지 않는 수도 기사단장이 함께 할 줄은 몰랐던 기사는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고 급히 예를 취했다.
“배, 백작님과 수도 기사단장님께 기사 오치가 인사드립니다.”
피오 단장이 말과 함께 신분증까지 보여 주었기에 의심의 여지도 없었다.
“우리는 내성에 볼일이 있소. 오치 경은 문을 열어 주겠소?”
피오 단장의 말에 오치는 당장이라도 고개를 끄덕이려다가 억지로 참고는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귀한 분들께 죄송한 말씀이지만,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이만한 병력의 방문 시에는 절차상 내성에 연락이 필수입니다.”
“이해하오.”
피오 단장의 짧은 말에 즉시 성문 안으로 달려가는 오치다.
타란 백작은 쉐어 가든과 그 안에 솟아 있는 세 개의 첨탑을 보며 말했다.
“이전에도 독특하게 여기긴 했지만, 지금 이렇게 다시 보니 정말 특이한 곳이네.”
“기사도 그렇습니다. 아무리 절차가 있다 해도 백작님을 기다리게 한다니. 보통 기사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입니다.”
귀족 중에는 개떡 같은 성격의 소유자가 적지 않다.
그런 만큼 길을 막을 경우 절차 따위와 상관없이 그 죄를 묻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지금처럼 큰 병력과 함께 움직일 때 그 위세는 참으로 대단했다. 그런데 겨우 성문을 지키는 기사가 백작을 멈춰 세우고 기다리라고 말한다.
쉐어 가든에 검후가 감금되어 있음을 알았기 때문일까. 그 행동 하나하나가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잠시 후 성문 안으로 들어갔던 오치 기사가 급히 달려 나왔다.
그와 함께 성문이 활짝 열렸다.
“기다리게 해 드려 송구합니다. 내성에 연락이 닿아 기다리고 있을 것입니다. 안으로 드시지요.”
“오치라고 했던가? 수고하게.”
“충!”
타란 백작의 말에 오치가 가슴을 두드렸다. 타란 백작과 기사들은 말을 몰아 내성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