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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75화


1011화

쉐어 가든엔 오늘도 사람이 많았다.

타란 백작과 기사단은 성문을 넘는 순간 그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저렇게 많은 기사들이 무슨 일이지?”

“저 문장, 본 적 있어. 변경백의 타란 기사단이야.”

무공이 보급되며 기사의 숫자가 늘었고, 덕분에 기사를 보는 것 자체가 드문 일은 아니다. 그러나 전쟁이라도 나지 않는 이상 이백이 넘는 기사를 한번에 보긴 힘들다. 그들이 보이는 박력과 압력이란.

놀란 사람들이 허둥지둥 길을 텄다. 덕분에 타란 백작과 기사단은 순식간에 외성을 가로질러 내성 문 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곳엔 오치 기사에게 연락을 받은 듯,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그중 뾰족한 턱에 세모꼴의 눈을 가진 남자가 대표인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

“왕국의 방패이자 검이신 타란 백작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연락을 받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제가 쉐어 가든의 정원사입니다”

“정원사? 정원사가 왜 이 자리에?”

“하하. 실례했습니다. 쉐어 가든의 유래와 이름 때문에 대대로 관리자를 정원사로 부르고 있는데, 그만 버릇이 되어서. 다시 소개드립니다. 브리더 곤 자작입니다.”

“아! 과연 역사와 재미가 있는 호칭이오. 반갑소 곤 자작. 한편으로 미안하게 되었소. 이렇게 불쑥 찾아와 놀라게 해서 말이오.”

“아닙니다. 타란 백작님께서 직접 방문하셨으니, 당연히 그럴 만한 이유가 있으실 테지요.”

웃는 얼굴과 달리 뼈가 있는 말이었다. 이는 정당한 이유가 없는 방문이라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뜻이니까.

그러나 이런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아무리 변경백으로 유명한 타란 백작이라지만, 쉐어 가든은 엄연히 파라켈 후작의 영지다. 그런 곳에 미리 허락도 받지 않고 수백 기사를 끌고 오는 것은 분명한 실례다.

이백 기사는 당장 전쟁을 벌일 수 있는 전력으로, 이건 달리 보면 위협이나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까딱 잘못하면 당장에 영지전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할까?

그래서 타란 백작도 곤 자작의 반응 자체는 불쾌하게 여기지 않았다.

대신 입장의 차이는 분명 있었다.

성문을 지키던 오치 기사와 마찬가지로 강경한 곤 자작의 모습이, 꼭 성 안에 숨기고 있는 검후를 들키지 않으려는 발악처럼 보였다.

“그렇소. 내가 이런 무례를 범하며 방문한 이유는, 왕실의 명령 때문이오. 또한 이는 수도에 있는 파라켈 후작님의 허락과 동의를 얻은 일이기도 하오. 곤 자작이 직접 왕실에 확인을 해도 좋소.”

“물론 그렇게 할 것입니다.”

“편할 대로 하시고, 일단 들어가서 이야기하는 것이 어떻겠소?”

타란 백작의 말에 곤 자작은 고민했다.

내성엔 아무도 들이지 않아야 옳다. 하지만 시종 정중한 모습을 보이는 타란 백작을 언제까지고 밖에 세워 둘 수도 없다.

검후의 존재는 숨겨야 하지만, 너무 가시를 세워 의심을 사는 것도 좋은 자세는 아니니까.

생각을 정리한 곤 자작이 입을 열었다.

“그럼 타란 백작님과 호위 기사 분들만 들어오십시오. 아시겠지만 내성엔 후작님의 혈족이 계시므로, 확인을 마치지 않은 지금 이 기사들 전부를 들이는 것은 어렵습니다. 이백이 넘는 사람들을 수용할 공간이 부족하기도 하고요.

어떻게든 최대한 많은 기사를 집어넣으려던 타란 백작이 내심 혀를 찼다.

다른 이유도 아니고 후작의 가족을 내세운다면 그도 고집을 더 부릴 수 없다. 후작이 자리를 비우고 대신 성을 지키는 입장에서 후작 가족의 안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니까.

“그리합시다. 그럼 구른 단장이 나와 함께하고, 피오 단장은 기사들이 머물 숙소를 알아본 후 대기하도록 하시오. 확인에 오래 걸리지는 않을 테니까.”

“알겠습니다.”

피오 단장의 대답과 동시에 곤 자작이 앞장섰다.

“제가 안내하겠습니다.”

그의 뒤를 따라 타란 백작과 구른 기사단장, 그리고 열 명의 기사가 내성 안으로 들어섰고, 성문이 닫혔다.

직후 피오 단장은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편히 쉬며 대기할 수 있도록 대열을 조종했고, 말 잘하는 기사들을 불러 숙소를 알아보게 했다. 

“아, 하는 김에 무거운 짐도 같이 가져가게. 여기 계속 두는 것도 보기 좋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자연스럽게 그들 사이에 여덟 개의 묵직한 상자를 들려 보냈다.

그 후 돌아선 피오 단장이 쉐어 가든의 기사들을 살폈다.

굳게 닫힌 문 앞과 성벽 위에 선 그들 중, 대열을 떠나는 기사들을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걸로 이번 작전의 절반은 성공이다.’

피오 단장은 보이지 않게 불끈 주먹을 쥐었다. 사전에 계획된 가장 중요한 작업이 탈 없이 완료된 것이다.

“하하하!”

“?”

이유를 모르는 쉐어 가든의 기사들은 갑자기 웃음을 터트리는 피오 단장의 모습에 묘하게 눈썹만 꿈틀거릴 뿐이었다.

하지만 쉐어 가든의 기사들과 마찬가지로 피오 단장도 모르는 것이 있었다.

사람들 사이로 흩어진 기사들을 유심히 지켜보며 은밀히 따라붙는 자들이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때, 이드는 타란 백작과 기사단이 쉐어 가든의 성문을 넘었음을 전해 듣고 있었다.

“그럼 우리도 슬슬 가 볼까.”

타란 백작과 기사단이 쉐어 가든에 들어선 이상,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른다. 그러니 적절하게 대응하려면 언제든 손을 댈 수 있도록 가까이 있어야 했다.

라미아와 일리나, 그리고 검은 돌의 암구호를 해석하고 상황을 예측하기 위해 남은 에린과 쉘라가 이드와 함께하기로 했다.

“그럼 저희는 이대로 남아서 대기합니까?”

그에 어깨를 축 늘어트린 스폴이 힘없이 물었지만, 어쩔 수 없다.

라미아가 새로 변해 있어 제외한다고 쳐도, 여자만 셋이다. 그것도 눈이 번쩍 뜨일 미인과 고고한 기백의 미녀, 그리고 두 사람보단 조금 못해도 특유의 어둡고 날카로운 분위기가 독특한 여성까지.

이정도만 해도 눈에 띄는데, 스폴까지 더해지면…..

“어쩔 수 없지. 은색 기사단에는 미안하지만 상황 발생 전까지는 지하실에서 대기해 줘야겠어.”

앞서 말한 대로 언제든 은색 기사단을 이동시킬 수 있도록 라미아가 이미 지하실에 이동 마법진을 설치해 둔 상태다.

“연락은 비올라를 통해서 할 테니까, 미리 데려다 놓는 게 좋을 거야.”

아마 바이트 타블렛에 껌 딱지처럼 달라붙은 그를 떼어 내려면 고생깨나 할 것이다.

그렇게 출발 준비를 마쳤을 때였다.

조금 늦게 이드들의 출발 소식을 들은 듯,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숨을 바쁘게 몰아쉬며 달려왔다.

“헥헥. 마스터. 저희도, 저희도 데려가 주세요.”

“케마란이 검후님을 찾는 일에 도움이 될 만할 능력을 깨워 낸 것 같다고 합니다.

“그 거짓말 정말이냐?”

고개를 저으려던 이드는 곧 이어진 네르베르의 말에 관심을 보였다.

당연하게도 네르베르가 말하는 주체는 케마란이 아니라 링스피어를 말하는 것이었다.

토벌 중에 각성한 링스피어는 탑주가 사용 중이던 바이트 타블렛에서 다양한 초인기를 훔쳐 냈다.

문제는 그 습득 과정이 정당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렇게 얻은 초인기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케마란과 링스피어 공동의 각성 작업이 필요했다. 이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힘들게 능력을 각성시킬 때마다 새로운 힘을 손에 넣는 것과 같아 케마란은 호들갑을 떨었고, 그때마다 이드에게 달려오고는 했다.

어떻게 보면 귀찮을 수 있지만, 이드는 오히려 재미있어했다.

링스피어가 각성하는 것은 마법이 아닌 초인기였기 때문에 어떤 능력을 각성할지 보는 것도 나름 재미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 검후를 찾는 데 도움이 될 능력을 얻었다니. 조금 기대가 되면서도 의심이 드는 이드였다.

“진짜 정말이에요. 제가 마스터께 어떻게 거짓말을 하겠어요. 분명 도움이 될 거에요. 그러니 저희들도 데려가 주세요.”

“당연히 도움이 된다면 말하지 않아도 데려갈 테니, 우선 보여 봐.”

“이번에 각성한 건 잠입하기 위한 능력인데, 탐색용으로 쓸 수도 있을 것 같았어요. 이름은 기어드는 냉기라는데, 별로라서 바꾸기로 했어요.”

“잘 생각했다. 꼭 바꿔라.”

이드가 적극 찬성하며 고개를 끄덕이자 케마란이 크게 숨을 들이키고는 링스피어를 들어 올렸다.

“잘 봐주세요, 마스터, 링스피어. 가자!”

팡!

다음 순간, 링스피어가 사라졌다. 대신 여전히 창대를 잡은 자세로 있는 케마란의 손 위에 커다란 물방울이 생겨났다.

물방울은 곧장 저택의 벽에 달려들어서는 그 이름처럼 기어가듯 천천히 스며들었다.

마치 모래에 빗물이 젖어드는 것 같았다.

“신기하네.”

이드도 그 모습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물방울이 스민 벽으로 가 손으로 만져 보았다.

보이는 것처럼 진짜 물은 아니었다. 대신 단단하면서 점성이 있었다. 액체 형태의 금속 같다고 할까?

이드는 그 상태로 안력을 높여 벽을 살폈다. 그러자 저택의 벽이 투시되어 보이기 시작했다. 이미 단순한 돌 정도는 꿰뚫어 보고도 남았다. 덕분에 물방울이 번진 범위와 벽 속으로 스며든 정도, 또 얼마나 빠르게 스며들고 있는지, 그리고 얼마나 번져 나갈지가 한눈에 들어왔다. 그에 따라 이 능력의 유용성에 대해서도 바로 판단이 섰다.

“됐다. 그만해도 좋아.”

“어땠어요?”

“확실히 괜찮은 방법이야. 이렇게 초인력이 옅어서는 적들도 알아 차라기 힘들 테고, 벽을 부수는 것이 아니라 스며드니까 소리도 없지. 그런데, 이게 잠입 방법이라고?”

“네. 이대로 벽을 넘으면 다시 원래 형상을 찾을 수 있거든요. 탐색은 그걸 응용한 방법이고요.”

“알았어. 일단 내려가서 선배 기사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어라.”

순간 한껏 신나 설명하고 있던 케마란이 믿고 있던 도끼에 발등이 찍힌 얼굴이 되었다.

“에? 어째서요. 마스터도 괜찮은 방법이라고 하셨잖아요.’

“그 말은 사실이야. 괜찮은 방법이고, 좋은 능력이야. 문제는 이 능력의 범위다. 검후를 찾기 위해서는 쉐어 가든의 내성 정체를 탐색해야 해. 하지만 지금 이 능력으로 이 저택이라도 전부 감쌀 수 있겠어?”

“……”

케마란은 바로 답하지 못했다.

각성한 능력에 대해서는 본능적으로 알게 된다. 범위나 위력에 대해서.

그 감각에 따르면 이 능력의 최대치는 저택의 한쪽 벽면 정도. 내성은 어림도 없다.

“어렵지? 그게 문제야.”

“휴~ 그럼 이번에도 다른 능력과 같은 거네요. 제가 모자라서.

“모자란 게 아니라 아직 자라는 중인 거지.”

이드는 무척이나 실망한 케마란을 위로했다. 최근 그녀와 링스피어가 각성해 내는 능력에는 대부분 꽤 큰 문제가 있었다.

바로 위력이 약하다는 것이다.

각성한지 오래되지 않았다는 점도 있지만, 그보다는 능력의 근간이 되는 주인인 케마란의 힘이 약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초인들 중에는 현재의 케마란보다 약하면서도 강력한 초인기를 사용하는 초인도 있다.

그러나 그건 초인기의 원래 주인과, 강제로 탈취해 능력만 사용하는 이용자 간의 차이다.

그 간극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힘인데, 케마란은 아직 그 부분이 부족했던 것.

“그래도 생각은 좋았어. 좀 더 발전하면 분명 요긴하게 써먹을 수 있는 능력이야. 그러니 아쉽겠지만, 다음 기회를 노려보자.”

“네.”

“저희는 부르실 때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케마란과 네리베르가 꾸벅 고개를 숙이고 터덜터덜 저택 지하로 향했다.

이드는 그 모습을 보다 고개를 돌렸다.

“그럼 우리도 출발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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