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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79화


1015화

쉐어 가든이 백작과 기사들에게 내어 준 공간은 넓지 않았다. 방이 넉넉하지 않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걸까. 기사들은 이 인 일 실 혹은 삼 인일 실을 써야 했다.

다만 브리더 자작도 백작과 기사단장에게까지 좁은 방을 주진 않았다. 백작이 머물기엔 조금 초라해도, 머물 수 있도록 허락된 구역 안에서는 가장 좋은 곳을 제공한 것이다.

타란 백작은 그런 공간에 홀로 앉아 조용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김이 오르는 뜨거운 차와 함께 말이다.

호로록.

“특이하군.’

차를 한 모금 마신 타란 백작이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내성의 구조를 생각하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거기엔 정말 창이 있었다.

크지 않은 크기의 그것은 외부의 모습을 그대로 비추고 있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유리로 된 평범한 창문이 아니라, 마법을 통해 외부를 비추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거기에 그곳을 중심으로 사실적으로 그려진 그림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마치 실제로 넓은 창이 있는 듯 느끼게 만들었다.

이는 외부와 단절된 내성 사람들이 느낄 답답함과 폐쇄감을 해소하기 위한 최소한의 조치였다. 쉐어 가든의 폐쇄성 때문에 정신에 이상이 생긴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신 모든 방에 이런 게 설치되어 있지는 않다. 마법이란 기본적으로 사용하기 어렵고, 이용하기엔 비싸다. 그러다 보니 귀족들이 머물 수 있는 큰 방을 제외한 곳에는 창 대신 그림만 걸려 있다.

그래도 그게 아무것도 없는 것보다는 나았기 때문인데, 덕분에 쉐어 가든에 상주하는 화가들은 다른 곳의 화가들보다 제법 돈을 만지는 편이다. 계절이 바뀌고, 건물이 바뀔 때마다 각 방에 걸리는 그림이 바뀌기 때문이다. 거기에 방 주인이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화풍이나, 분위기가 있으면 추가 수당을 받을 수도 있고 말이다.

좌우간 쉐어 가든을 처음 방문한 타란 백작이 보기엔 여간 특이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만 그런 관심이 머문 것도 잠깐.

타란 백작은 무의식적으로 마법이 비추는 창 너머를 살폈다. 분명 지금도 저 어딘가에 자신의 기사들이 열심히 움직이고 있을 테니 말이다. 똑똑.

“백작님. 피오 단장님께서 오셨습니다.”

방문 앞을 지키는 기사의 목소리다. 백작이 허락하자 피오 단장이 방으로 들어왔다.

방에 들어선 피오 단장은 가장 먼저 방 안을 살폈다. 자신의 주군인 백작이 머물기에 안전한가를 살핀 것이다.

“특이한 외부와 달리 내부는 평범하군요. 저 창만 빼고 말입니다. 방이 불편하진 않으십니까?”

“나쁘지 않아. 자네가 말한 저 창이 있어 크게 답답하지도 않고 말이야. 다만 아주 편하진 못하군.”

딱 봐도 고급스러운 의자에 앉아서 불평을 늘어놓는 백작이지만, 편하지 못하다는 말의 속뜻을 아는 피오 단장은 그저 희미하게 웃을 뿐이다. 타란 백작은 피오 단장 앞에 차를 밀어 주며 물었다.

“그보다, 기사들이 쉴 숙소는 모두 잡았나?”

“가장 좋은 위치에 통째로 빌렸습니다.”

“짐은?”

“조정 중입니다. 두 시간 후라면 언제든 사용이 가능한 상태가 됩니다.”

타란 백작이 팔걸이를 톡톡 두드렸다.

“두 시간인가.”

똑똑.

다시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기사가 이번엔 구른 단장의 방문을 알렸다. 그 역시 방에 들어선 순간 가장 먼저 방을 살폈다.

오히려 피오 단장보다 세심한 모습에 타란 백작이 소리 없이 웃었다.

“자네나 우리 피오 단장이나, 어찌 그리 하는 일들이 똑같은지.”

“주군을 모시는 기사이니 당연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나저나 조금 그렇군요.”

“뭐가 말인가? 피오 단장은 아무 말이 없었는데?”

혹시 자신이 놓친 무언가 있는 것인가. 침묵한 피오 단장이 이어질 말을 기다리며 살짝 긴장했다.

“이방, 제방과 똑같습니다. 당연히 백작님께 더 큰 방을 내어 드리는 것이 바른 일인데.”

그러나 이어진 별것 아닌 말에 타란 백작이 호탕하게 웃었다. 피오 단장도 따라 웃으려는 때다.

외부를 비추는 창으로 다가간 구른 단장이 창의 마법을 유지하고 있던 마나석을 빼 마법을 멈춰 버렸다.

순간 그를 향한 두 사람의 시선이 무거워졌다. 이어 탁자에 마나석을 내려놓는 구른 단장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어서 이유를 설명하란 눈빛이다. 그것은 동시에 주변에 대한 경계이기도 했다.

말 없는 추궁 때문인가. 구른 단장이 자신의 찻잔에 차를 따르며 우선 입을 열었다.

“수도 기사단장으로 있다 보니, 다른 것보다 마법 물품에 대한 공부를 좀 더 해야 하더군요. 그렇게 배운 것 중 하나가, 내가 상대를 들여다보면 상대도 나를 들여다볼 수 있다. 였습니다. 어떤 식으로든 외부와 연결되어 있다면, 무엇이 되었든 이쪽의 것이 빠져나갈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에 따라 생각하면, 외부를 비추는 창을 통해 우리는 밖의 경치를 보지만, 반대쪽에선 우리를 볼 수도 있다는 의미지요.”

“으음. 과연 옳은 말이군. 옳은 말이야. 그런 생각은 하지 못하고 있었군.’

고개를 끄덕이는 타란 백작에 피오 단장이 칙칙하게 죽어 나는 얼굴빛으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미처 저길 세심히 보지 못했습니다.”

“아니, 괜찮네. 나도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잖나.”

타란 백작이 가볍게 위로하지만, 그렇다고 피오 단장의 기분이 나아지진 않았다. 몰랐다고 해서 끝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짐에 대해 나눈 이야기가 걱정이 된 피오 단장이 물었다.

“하면 백작님과 제가 나눈 이야기도 저들이 들었겠습니까?”

“너무 걱정 마십시오. 일단 제 조치는 만약을 위한 것입니다. 진짜 그런 기능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다 해도 항시 훔쳐볼 수는 없을 것입니다. 변경백의 날카로운 감각에 저들이 쉽게 염탐할 생각을 하겠습니까.”

마법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기사라고 우습게 볼 수 없는 것이, 이들에겐 지식을 대신할 날카로운 감각이 있다.

무언가 사용하지 않던 기능이 켜지면 크든 작든 사용되는 마나의 양이 달라질 수밖에 없고, 그리하면 감각이 날카로운 기사에게 포착될 수 있다. 하물며 그 용맹과 무공이 높아 변경백으로 유명한 타란 백작이니, 쉐어 가든도 쉽게 그런 짓은 하지 못했을 거라는 의미다.

그 말에 타란 백작도 고개를 끄덕인다.

“들었어도 문제가 있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으니 걱정할 일은 없지. 그나저나 구른 단장은 마법에 대해서도 해박한 모양이오?”

“림몬이 마스의 수도가 아니겠습니까. 신기한 것들이 계속 나타나는 곳이니 어쩔 수가 없었지요.”

범인을 잡으려고 해도 뭘 알아야 잡을 것이 아닌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인 타란 백작이 피오 단장을 향해 눈짓을 했다. 구른 단장이 이렇게 쉬지 않고 공부를 하는데, 너도 해야지 않겠냐는 의미다. 하지만 좀 전의 참담함은 어디로 치웠는지 슬그머니 눈길을 피하는 피오 단장이다.

‘무공 수련을 더 하라면 하겠지만, 마법 공부는 진짜 할 짓이 아니지. 어차피 국경에 나타나는 마법 물품이 림몬의 것들처럼 다양하거나 교묘한 것도 아니고.’

타란 백작은 그 모습에 쯧쯧 하고 혀를 찼다. 과연 친족 간이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이랄까.

그 모습을 보며 차를 마신 구른 단장이 짐의 상태를 물었다.

타란 백작과 마찬가지로 가장 궁금한 것이 짐의 상태였다.

피오 단장은 좀 전에 했던 말에 더해 현재 여덟 곳에 나눠진 기사단의 상태에 대해서 설명했다.

“부디 제 기사들을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십시오. 저야말로 백작님을 잘 부탁드립니다.”

이제 내성 밖에 머물고 있는 두 기사단을 부리는 일은 온전히 그의 책임이다.

“참, 오는 길에 보았는데 경비를 서는 병사와 기사들의 숫자가 늘어난 것 같았습니다만, 혹시 아십니까?”

구른 단장이 이 방으로 오며 본 것에 대해 말했다.

그러자 두 사람이 관심을 보였다. 그들에게 이곳은 이미 적지나 마찬가지다. 적의 움직임에 민감할 수밖에 없다.

“나는 따로 들은 것이 없네. 하지만 경비 병력이 늘었다니, 저쪽도 무언가 의심을 하고 있다는 것이겠지?”

“후작님께서 협력하기로 하셨다 해도, 워낙 급히 진행되는 일이다 보니 허술한 부분이 없을 수 없을 것입니다. 저들도 이상한 기색을 느낀 것이지요.”

“위험이 늘었군요.”

구른 단장의 말을 짧게 줄여 버린 피오 단장이 불끈 주먹을 쥐어 보였다.

“아시지요? 다른 건 몰라도, 놈들보다 우리가 먼저 쳐야 합니다.”

선수 필승을 외치는 피오 단장이다. 하지만 단순한 이 말을 절대 쉽게 여겨서는 안 된다. 흔히 들을 수 있는 말은 가장 진리에 가까운 법이다. 특히 이런 내성에서 기습을 당한다는 것은 적이 그만큼 철저히 준비했다는 의미와 같다. 어지간한 대비로는 희생이 클 수밖에 없다.

“알고 있네. 하지만 저들도 확신은 없을 것이네. 허튼 생각을 하지 말라는 경고인 거지.”

그렇지 않다면 누구도 모르게 숨길 수 있는 경비를 굳이 눈에 보이게 늘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단 계획대로 신호가 오길 기다린다. 적을 먼저 치는 것도 좋지만, 명심하게 가장 중요한 우리 목표는 다른 누구도 아니고 검후야. 그녀만 얻을 수 있다면 다른 놈들은 아무 의미가 없어.”

“압니다. 그저 숨 막힐 듯 갑갑해서 그렇지요.”

그러면서 답답한 듯 목을 감싼 옷을 당겨 늘리는 피오 단장이다. 동시에 아무래도 자신은 이런 치밀한 작전보다는 야전에 체질이라고 생각했다. 그 철이 덜 든 것 같은 모습에 타란 백작은 내심 혀를 차며 손짓을 했다.

“그럼 그만 나가 보게. 신호가 오기 전까지는 따로 부르기 전엔 오지 않아도 되니까.”

“휴~ 그래야겠습니다. 아무래도 적의 소굴이라고 생각하니, 자꾸 검에 손이 가서 아주 고역입니다.”

그와 함께 마치 사우나에서 탈출하듯 서둘러 방을 나가는 피오 단장이다.

그 모습에 구른 단장을 보기 조금 부끄러운 타란 백작이다.

“피오 단장이 구른 단장의 반만 닮아도 좋을 텐데 말이오.”

“하하하. 전 오히려 피오 단장의 솔직담백한 모습이 부럽습니다. 무엇보다 두 분의 편안해 보이는 관계도 그렇고요.”

“그렇게 봐 준다니 다행이오. 그럼 피오 단장 대신에 구른 단장이 내 상대를 좀 해 주겠소? 아직 반나절이나 남았는데, 마냥 기다리긴 너무 지루해서 말이오.”

타란 백작이 그 말과 함께 탁자에 있던 체스판을 펼쳤다. 그러자 구른 단장이 자신만만한 얼굴로 맞은편으로 자리를 옮겼다.

“후후후, 봐드리진 않을 겁니다?”

“바라던 바요.”

툭.

짧은 도발 후 체스판에 말이 놓였다. 그리고는 고요가 방에 내려앉았다. 일차로 내성에 무사히 들었으니, 타란 백작의 말처럼 이제 기다릴 차례였다.

그렇게 한 우리 두 마리의 맹수가 함께하게 되었다.

그것도 양쪽 모두 내심 상대를 적으로 간주한 상태로 말이다.


그때, 이미 여덟 개의 상자를 살피고 돌아와 있던 이드가 그런 대치 상태를 감지했다. 딱히 특별한 방법으로 들여다보거나, 검은 돌의 보고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용광로가 따로 없네. 긴장감이 아주 흘러넘치네. 넘쳐.”

그저 내성 안에 머무른 기사들이 흘리는 미세한 투기와 흐릿한 살기를 감지한 것이다. 비록 두꺼운 벽으로 막혀 있고, 출입구라고는 하나뿐인 내성이지만 그 안에 든 수백의 기사들이 흘리는 기운과 기세를 막을 수는 없었다.

물론 이것도 이드니까 정확히 읽어 낸 것이다. 그렇다고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건 아니다.

본능적으로 그런 분위기를 느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내성 앞에서 조심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자, 언제 시작이냐.”

그렇게 이드까지 포함. 세 개 무리가 서로를 지켜보며 기다리는 가운데,

시간이 무심히 흘렀다.

저녁이 되고, 방이 지나, 해가 뜨고, 그림자가 짧아졌을 때까지.

기다림은 지루하게 이어졌다.

그러다 느닷없이 기다림의 시간이 깨어졌다.

가장 먼저 그걸 알아차린 사람은 이드였다. 별채 지붕 위에 올라 내성을 바라보던 그가 별채 안으로 들어서며 말했다. 

“뭔가 시작하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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