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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81화


1017화

“잘 오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연락을 드리려던 참이었습니다.”

꼴 보기 싫은 면상이지만 어쩌겠나. 속내를 감춘 브리더 자작이 타란 백작과 구른 단장을 반겼다.

어차피 두 사람을 불러야 했던 것도 사실이고 말이다.

아무리 적이 나타났다고 하더라도, 이들을 내성에 두고 나갈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건 고양이한테 생선 가게를 맡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브리더 자작은 좀 전 피더스 남작에게 보여 주었던 보고서를 건네며 말했다.

“경고해 주셨던, 적으로 추정되는 놈들을 발견했습니다.”

“마법사들과 괴생명체라 맞는 것 같습니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지, 말이 참 이상하다. 분명 정체불명의 적을 대비해 왔다면서, 그 적에 대해 확신조차 하지 못하다니. 브리더 자작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말했다.

“부디 타란 백작님께서 도와주시길 바랍니다.”

애초에 쉐어 가든을 찾은 이유가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으니, 이 청을 거절하진 못할 것이다.

때마침 호출을 받은 위리더 남작과 피오 단장이 나란히 들어서자, 브리더 자작이 슬쩍 그들에게 눈길을 주었다.

“어느새 밖에 있는 기사단에도 연락을 하신 모양입니다?”

“하하하.”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타란 백작. 브리더 자작은 이 상황이 꾸며진 것이라는 가설에 힘을 더하며 내심 이를 갈았다. 현재 내성의 기사들에게 내린 타란 백작과 기사들에 대한 경계는 최고 단계다.

그런 이들이 내성 밖으로 사람을 보냈다면 당연히 보고가 있었을 텐데, 그런 보고는 받은 적도 없다.

마법 통신도 열어 주지 않으면 쓸 수 없도록 조치되어 있다.

그런 상황에 적이 나타날 걸 미리 알지 않았다면 피오 단장이 무슨 수로 이렇게 시기를 맞춰 찾아온단 말인가!

브리더 자작의 눈빛이 점점 심상치 않게 변했지만, 그걸 마주한 타란 백작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다.

그가 여전히 웃는 얼굴로 말했다.

“브리더 자작의 요청을 받아 우리가 돕도록 하겠소. 그러기 위해 온 것이니까.”

“……감사합니다.”

“그럼 자작의 계획부터 들어 봅시다. 여기 적힌 대로라면 적 병력이 적지 않은 것 같은데. 지도가 있소?” 

그러자 대기 중이던 기사가 지도를 펼쳤다.

타란 백작은 적과 쉐어 가든의 위치를 가늠해 보더니 말했다.

“거리도 적당하니, 내 생각에는 수성보다는 전격전을 하는 것이 좋을 듯하오만, 어떻게 생각하시오?”

쉐어 가든이 수성에 최적화되어 있긴 하지만, 이천의 병력도 만만한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이천 병력이 단순 병사가 아니라 정신의 관이 부리던 몬스터라면, 인간 병사 일만 이상의 힘을 발휘한다고 봐야 한다.

거기에 수가 얼마나 될지 모르는 마법사들까지 있다.

물론 이쪽의 병력도 만만치 않다. 거기에 적아가 애매하긴 하지만, 타란 백작이 끌고 온 기사들도 있다.

이만한 전력이면 타란 백작의 말처럼 굳이 수성에 치중할 필요 없이, 이쪽이 먼저 치고 나가는 것이 낫다.

무엇보다 이곳에 검후가 있는 이상, 적의 접근은 최대한 피하는 것이 좋았다.

“같은 생각입니다. 동시에 주변 영지에 연락해 도움을 요청할 것입니다. 이들이 쉐어 가든을 가장 먼저 노리긴 했지만, 결국은 마스를 공격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좋은 생각이오. 전투가 길어진다면 그들의 원조가 큰 도움이 될 거요. 그럼 내가 타란 기사단과 수도 기사단의 일부를 지원하도록 하겠소.”

그 말에 브리더 자작은 가슴이 서늘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타란 백작께서 직접 기사단을 이끄시지 않고 말입니까?”

사실 타란 백작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 지위가 높을수록 안전한 곳에서 부하를 부리는 것이 일반적이니까.

그러나 변경백으로 이름을 떨친 타란 백작은 달랐다. 그는 뛰어난 무력을 갖췄을 뿐 아니라 매우 용맹한 인물로, 싸움에서도 가장 먼저 앞장서는 것으로 유명했다.

한데, 지금 발언은 그런 모습과는 전혀 맞지 않는 것이었다.

“그렇소?”

“평소 전해 듣던 변경백의 용맹과는 다른 듯해서 말입니다.”

“하하하. 사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기사들과 함께 당장 달려 나가고 싶다오. 그러나 용맹보다 중요한 것이 약속과 충성이 아니겠소. 쉐어 가든의 주인이신 파라켈 후작님의 요청인데, 내 그 부탁을 어찌 거절하겠소.”

“약속과 충성……입니까.”

“그렇소. 쉐어 가든에 머물고 있다는 중요한 손님. 지금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손님의 보호니까 말이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하는 말인데, 그 중요한 분과 인사를 나누고 싶은데 만나 볼 수 있겠소?”

뱀이 담을 넘듯, 부드러운 요청이었지만.

그 부탁을 단호히 잘라 내는 브리더 자작이었다.

“안 됩니다.”

얼마나 칼 같은지, 말을 꺼낸 타란 백작은 물론 옆에 있던 두 기사단장이 민망할 지경이다.

“흐음. 아쉽구려. 후작께서 그렇게 강조한 손님이 누구신지 꼭 보고 싶었는데 말이오. 어쩔 수 없구려. 그보다 언제 출발하시겠소?”

“그 전에, 타란 백작께서 내성에 계시겠다면 기사들은 얼마나 남는 것입니까?”

“나와 구른 단장, 현재 내성에 있는 기사들, 그리고 내성의 입구에 다시 서른의 기사를 배치할 것이오.”

생각 이상으로 많았다. 안과 밖 합쳐 팔십. 거기에 타란 백작과 구른 단장은 또 따로다.

적 병력이 대략 이천이다.

그들은 상대하자면 쉐어 가든의 전력에서 최소 40%가 나서야 한다. 거기에 피해를 줄이고 안전하게 적을 상대하려면 60%. 또 적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있는 타란 기사단까지 생각하면.

“잠시 얘길 나눠 봐야겠습니다.”

“편한 대로 하시오.”

브리더 자작이 타란 백작에게 동의를 구하곤 피더스 남작과 위리더 남작에게 눈짓을 해 자리를 옮겼다.

“아무래도 전격전은 포기해야 할 듯하네. 두 사람의 생각은 어떤가?”

그 말에 두 남작이 서로를 바라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생각도 그렇습니다. 이건 확실히 함정입니다. 적을 상대할 병력을 빼내면 내성을 지킬 전력이 너무 줄어들어 버립니다.”

“하지만 단순히 수성전을 선택한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닙니다. 어차피 이천 몬스터는 이곳으로 올 겁니다. 잘못하면 앞뒤로 공격을 당할 수가 있습니다. 차라리…”

“차라리?”

“저희가 먼저 백작 쪽을 치는 것은 어떻습니까?”

“불가. 심정적으로는 확신하지만, 모두 정황일 뿐, 증거는 없어. 검후를 바로 빼돌리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임을 알면서 그런 말을 하는가.” 

위기를 앞에 두고도 완강한 브리더 자작에 위리더 남작이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두드렸다.

그 사이에서 가만히 인상을 쓰고 있던 피더스 남작이 말을 꺼냈다.

“과격하긴 하지만, 위리더 남작의 말도 틀리지 않습니다. 이대로는 너무 위험합니다. 차라리 이러는 것은 어떻습니까?”

“어떻게 말인가?”

“놈들의 목표를 스스로 밝히게 하는 것 말입니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하느냔 말이네.”

바로 그 ‘확증’이 없어 답답하게 버티고 있는 상황이지 않던가.

“우리가 먼저 저들에게 검후의 존재를 알리죠. 백작과 기사단의 목표가 그녀임을 안다고. 그리고 파라켈 후작이 마스에 협력 중인 사실도 안다고. 우리도 협력할 마음이 있다고. 저들 입장에선 싸우지 않고 안전하게 검후를 넘겨받을 기회라고 여길 겁니다. 어차피 그게 아니라도 미완의 마탑의 마법사들도 가까이 왔으니, 손해 볼 것 없다 여길 테지요.”

“……미끼를 던지자는 거로군.”

잠시 고민하던 브리더 자작은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피더스 남작에게 일을 맡겼다. 그가 보기에도 이대로는 위험만 더해질 뿐, 방법이 없었기때문이다.

브리더 자작은 곧 타란 백작 일행을 조용한 방으로 안내했다. 첫날 내성을 찾았을 때 타란 백작들을 안내했던 바로 그 방이었다.

“전투를 앞두고 어떤 중대한 말을 하려고 이리 부른 것인지 모르겠군.”

“아주 중요한 이야기입니다. 제가 우선 말씀드리고자 하는 것은, 저희도 깊은 고심 끝에 말을 꺼낸다는 사실입니다.”

“거창하구려.”

브리더 자작이 피더스 남작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자, 그가 입을 열었다.

“아까 중요한 손님을 궁금해하셨지요.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분은 바로 소드 팰러스의 검후님이십니다.”

느닷없이 폭탄을 터트린 피더스 남작의 발언에 세 사람이 순간 멈칫하며, 크게 놀랐다.

“그건・・・・・・.”

“물론 그분의 존재. 타란 백작님은 아시고 계셨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타란 백작이 무언가 말하려는 것을 막고 피더스 남작이 말을 이었다. 그는 지금부터 단숨에 휘몰아칠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서 검후의 존재를 먼저 터트렸다. 일종의 충격 요법이다.

“사실은 파라켈 후작님께 작은 언질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놀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저희도 파라켈 후작님의 입장을 이해했고, 저희의 거취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민이 깊었습니다. 검후가 이곳에 머문 지는 오래되었지만, 크게 얻은 성과는 없었습니다.”

거기까지 말한 피더스 남작은 숨을 한 번 몰아쉬고는 계속 이어 갔다.

“문제는 더 시간이 흘러도 검후에게 무언가를 얻어 낼 수 있을 듯 보이지 않는다는 겁니다. 이대로면 이곳을 지키는 수문장들은 모두 고인 물이 될 터인데. 아시겠지만, 고인 물은 결국 썩어 버리고 말지요. 그래서 깊은 고심 끝에 마지막 기회를 잡아 보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반문할 시간도 주지 않겠다는 듯, 진심을 담아 쏟아 낸 피더스 남작이 타란 백작의 눈을 직시했다.

말도 그렇고, 표정이나 눈빛 그 어디에도 어색한 점이 없었다. 그는 뛰어난 기사 이전에 훌륭한 연기자였다. 관련 업계 사람이 봤다면 엎드려 모셔 갈 만한 재능의 덩어리랄까.

그러나 정작 피더스 남작 본인에게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하리라.

‘정치하고 계략을 꾸미는 사람에게 이정도 표정 연기는 기본이 아닌가’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 기본에 타란 백작이 넘어간 듯하다. 어쩌면 그건 타란 백작이 오랫동안 중앙 정계를 떠나 거친 변경에 머무른 덕분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래서・・・・・・ 세 분은 무슨 결정을 내렸다는 말이오?”

그 말을 듣는 순간 피더스 남작은 아랫배에 힘을 줬다. 정말 모른다면 저런 대답이 나올 수가 없다.

이제 한 걸음.

“타란 백작님께서 직접 행차하신 목적은, 검후를 왕실로 옮겨 가기 위함이시겠지요?”

“으음.”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타란 백작에 구른 단장이 급히 입을 열었다.

“백작님!”

“괜찮네. 이제 막다른 길에 닿았다는 사실은 우리도 알고, 이들도 아는 사실이 아니던가.”

당장 이들이 마음을 바꿔 싸움이 나더라도 타란 백작과 두 개 기사단이면 쉽게 밀리지 않을 뿐 아니라, 곧 도착할 마탑의 전력까지 더해지면 승부는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다.

타란 백작의 수긍은 그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었다.

무엇보다 타란 백작의 명성은 가짜가 아니었다.

백작은 말과 함께 피오 단장에게 작게 신호를 보냈고, 그에 피오 단장은 은밀히 감추고 있던 발신기를 눌러 외부에 있는 기사들에게 신호를 주었다. 곧 두 개 기사단 이백에 가까운 기사들이 내성 입구에 도열할 것이고, 조금 이따 다시 보낼 신호가 조금만 늦으면 바로 입구를 부수고 진입을

시도하리라.

다시 정면으로 시선을 향한 타란 백작이 답을 기다리는 세 사람을 보며 말했다.

“맞네. 그게 내가 받은 가장 중요한, 유일한 명령이네.”

그렇게 기다리던 확인을 마친 순간이다.

그러나 브리더 자작을 포함한 세 사람은 전혀 기쁘지 않았다. 아니, 브리더 자작은 오히려 후회했다.

‘좀 더 빨리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가.’

그런 세 사람을 보며 이번엔 타란 백작이 말했다.

“검후를 넘겨주게.”

쿵!

분명 조용하게 뱉은 말인데. 왜 이렇게 무겁게 들리는지.

하지만 타란 백작은 바로 대답을 들을 수 없었다.

갑자기 문을 열고 들이닥친 한 명의 기사 때문이었다. 허락도 받지 않고 문을 열어젖힌 기사는 사과의 말도 할 정신이 없는 듯 다급히 외쳤다. 

“급보입니다. 정체불명의 적이 신원을 알 수 없는 강자와 전투를 벌이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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