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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584화


1020화

붉은 번개를 신호로 전투가 시작되고 수분.

바짝 엎드려 전투를 지켜보던 요원은 떡 벌어진 턱을 감당할 수가 없었다. 열린 입으로 전투로 일어난 먼지가 한 움큼씩 밀려들어 가는데, 도저히 다물어지지 않았다.

“・・・・・・ 미치겠군. 저게 사실이라고?”

몇 번이나 눈을 비벼도 눈에 보이는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몬스터와 마법사를, 말 그대로 ‘갈아’ 버리는 이드가 있는 세상 말이다.

요원은 발끝에서부터 머리끝까지 치솟는 짜릿한 전율에 부르르 떨었다.

자신의 새로운 주인이 강하다는 사실은 귀가 따갑게 전해 들었다. 그래서 홀로 나타난 이드가 달려 나갈 때도 그러려니 했다.

이드가 그가 들은 만큼 강하다면 싸워 이기지 못해도 충분히 몸을 뺄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게 아니라도 그에게 이드를 막을 권한이나 책임 자체가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어진 모습은 어떤가. 수백 몬스터를 한 번에 베어 버리고, 마법사를 농락하고, 그것으로 모자라 거대한 말 괴수를 터트려 버리지 않았는가.

저게 어디 이천이 넘는 몬스터에, 마흔이 넘는 마법사를 상대로 홀로 싸우는 사람의 모습이냔 말이다. 차라리 어린아이 손목을 비트는 것이 저보다 어렵겠다 싶을 정도다.

“으흐흐흐흐. 저런 괴물이 새 주인이란 말이지. 시펄~ 검은 돌 만세다!”

충분히 놀란 요원은 아랫배에서부터 올라오는 웃음을 견디기 힘들었다. 저런 강자가 새로운 주인이라면 자신들에 대한 대우 역시 달라지겠지 싶어서다.

속한 세력과 모시는 주인의 위세에 따라 대우받는 것은 병사와 기사만이 아니다. 힘과 권력, 그리고 돈에 예민한 음지는 오히려 그런 게 몇 배나 더하다.

그런 의미에서 특히 신경 쓰였던 놈들이 틱톡이다. 같은 업계에서 활동하며 항상 검은 돌보다 미세하게 앞서던 놈들.

하지만 이젠 그것도 끝이다.

“기대해라, 똥쟁이 새꺄. 저분이 내 주인이시란 말이다!”

지금까지 조직을 잘 이끌어 온 스톤이 봤다면 섭섭해할 만한 말을 쏟아 낸 요원. 그는 정신없이 전투를 지켜보다 슬쩍 눈을 돌렸다.

“좋은 주인을 오래 모시려면 나도 좀 부지런해야겠지?”

요원은 저 멀리 전투 지역과 떨어진 장소를 보며 입술을 핥았다. 쉐어 가든에서 나온 정찰병이 숨은 곳. 그냥 두면 이드에 대한 정보가 새나갈 거다. 그걸 막는 것이야말로 새 주인에게 잘 보일 기회가 아니겠는가. 요원은 정찰병이 숨은 곳을 향해 슬금슬금 은밀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마치 달팽이와 같은 움직임에 흙이 조용히 흘러내렸다.


검은 말을 끝으로, 더 이상 남은 몬스터도 없다. 이드가 터벅터벅 걸어 마법사들에게 다가갔다.

파옥청강살에 휩쓸린 마법사들은 브레인 유니온의 진형에서 떨어져 한데 뭉쳐 있었다. 그중 대부분은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그나마 살아 있는 마법사들은 홀린 듯 이드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그마저도 하나같이 눈빛이 정상이 아니었다.

마치 꿈을 꾸는 듯, 혹은 작금의 상황이 믿어지지 않는 듯 초점이 흐릿했다.

“귀하…… 가이드 명예 후작…………… 이란 말이오?”

“날 알긴 하는 모양이오. 그나저나 다섯이라. 저 둘은 보기보다 생명력이 강한 모양이군.”

“그게・・・・・・ 무슨…….”

“무슨 말이겠소. 세 명만 살려 둘 생각이었다는 거지.”

“……쿨럭.”

대장 마법사는 재차 피를 토했다. 이드의 말은 그에게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미친, 그게 목표를 미리 정해 놓고 한 공격이었다고? 융합체와 브레인 유니온의 방어막이 있는데, 그걸 계산한다고? 이 무슨 미친 괴물이냐.’

뿐인가. 굳이 말은 하지 않았지만, 마법사 개인이 가진 보호 수단도 있다. 심지어 그건 개개인의 능력이나 성격에 따라 천차만별이었다.

그런데 이드는 그 짧은 순간 이 삼 종의 방어막에 대한 능력치를 계산해 낸 것이다. 마법사로서 이 작업이 얼마나 까다로운지를 아는 대장 마법사는 믿고 싶지가 않았다. 아무리 무인의 본능이 직관적이라도 정도가 있지. 말이 되나 싶었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깐이었다. 갑자기 머리카락이 삐쭉 설 것 같은 통증이 파도처럼 밀려온 것이다.

당연하게도 그 원인은 이드에 있었다.

“이런 상황에 딴생각이라니. 여유롭군, 여유로워. 그런데 말이오. 그런 건 내 질문에 답부터 해 주고 하면 어떨까 싶소만.”

“아아악! 그, 그만! 그만해! 그만하라고!”

고통이 얼마나 강했으면 침착한 대장 마법사의 입에서 반말이 절로 나왔다. 척추가 통째로 뽑히는 것 같은 느낌에 억지로 눈을 뜨고 본인의 가슴팍을 봤지만, 보이는 건 가슴을 지그시 누르는 이드의 손가락 두 개뿐.

점혈에 대해 알지 못하는 그로서는 이런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동시에 고작 손가락으로 이런 고통을 준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그런 눈빛을 읽은 이드는 일부러 조금 더 시간을 끌다 여유롭게 손을 뗐다.

“미리 경고하자면, 이 고통은 시작에 불과하오.”

“헉헉…… 빌어먹을. 다 답하겠소. 뭐든 물어보시오.”

“좋은 자세요.’

부르르 떠는 대장 마법사의 반응에 이드는 만족했다. 그러면서 대장 마법사가 숨을 고르는 동안 그 옆에 있는 마법사들의 가슴에도 하나하나 손가락을 댔다.

그때마다 마법사들의 입에서는 찢어지는 듯한 비명과 애원이 쏟아졌다. 그 모습이 얼마나 무서웠는지, 마지막 남은 마법사는 제 가슴이 눌리기도 전에 일찌감치 항복하겠다는 의사를 밝힐 정도였다. 뭐, 그렇다고 봐주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직접 겪은 고통에, 동료 마법사들의 모습까지 지켜보았기 때문인가. 마법사들은 생각 이상으로 말랑말랑해진 상태였다.

“너무 긴장하지 마시오. 내가 알고 싶은 건 많지 않으니까. 우선 당신들의 목적부터 확인합시다. 말해 보시오.”

“……검후 확봅니다.”

“랜달도 같이 온 거요?”

“부관주가 이번 일의 책임잡니다.”

“그런 그가 지금 이곳에 없는 이유는?”

“작전 조율을 위해 먼저 쉐어 가든에 간다고 했습니다. 저희는 부관주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을 뿐입니다.” 

처음엔 머뭇거렸지만, 정작 입이 한번 열리고 나니 이어지는 질문의 답은 기름을 바른 듯 매끄럽게 나왔다.

“쉐어 가든이라. 그게 언제요?”

“어젯밤입니다.”

설마 랜달이 벌써 쉐어 가든에 들어가 있었을 줄이야. 이드는 즉시 라미아를 통해 일행들에게 이 사실을 전했다. 그가 바로 나서진 않겠지만, 그래도 필히 알아 둬야 할 일이니까.

어쩌면 라미아가 먼저 랜달을 찾아낼 수도 있는 거고.

이드는 이어 그들의 계획과 마스의 관계 등에 대해 물었다. 대장 마법사는 충실히 답했지만, 의외로 그가 아는 것은 많지 않았다. 마스와의 협력 관계에 대해서도 깊게 알고 있지 못했다.

“그럼 마지막 질문이오. 이것만 대답하면 살려 주겠소.”

“꿀꺽.” “영혼의 관은 어디에 있소?”

이드의 말에 바짝 긴장하며 귀를 기울이던 대장 마법사는 순간 맥이 풀린 얼굴로 고개를 흔들었다.

“그건 뭐요. 모른다는 거요. 말하지 않겠다는 거요.”

“말하고 싶어도 말할 수 없다는 겁니다. 마탑의 마법과 함께 영혼의 관에 대해서는 발설할 수 없는 그런 계약이 걸려 있습니다.”

“음. 다른 마법사들의 답도 같은 걸 보면 거짓은 아닌 모양인데.”

“예? 다른 마법사?”

이드의 말에 흠칫한 대장 마법사가 황급히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제야 그와 함께 살아남은 마법사들이 생각난 것이다. 끔찍한 고통과 연이어진 공포스러운 비명 소리에 마비되었던 이성이 돌아왔다.

그런 그의 눈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이드를 향해 무어라 말을 하는 마법사들이 들어왔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마찬가지로 주변을 살피다 자신과 눈이 마주치고는 무어라 말을 했는데, 그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았다.

대장 마법사는 순간 어떤 두려운 예감에 몸을 떨었다.

“이건 혹시……..”

“맞소. 말할 수 있는 입이 다섯이나 있는데 한 명에게만 들을 필요는 없으니까. 교차 검증도 되니 나쁠 게 없지.”

“그러면 다른 사람들도 나와 같은 질문을 받은 거요?”

“그리고 모두 같은 답을 했소. 한 명만 빼고.”

그런 이드의 말이 끝나는 순간이다. 마치 지금까지 모든 소음을 차단하던 방음의 문이 열린 듯, 동료 마법사의 목소리가 왈칵 밀려왔다.

“차, 착각입니다. 순간 착각해서 잘 못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제발 살려 주십시오.”

다른 마법사들과 다른 답으로 이드를 속이려 했던 마법사도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듯 이드를 향해 손을 뻗으며 애원했다.

이드는 그의 애원에 답하지 않았다. 눈도 돌리지 않았다. 그저 가볍게 손가락을 까딱했을 뿐이다. 그 순간 마법사는 애원을 멈추고 그 자리에 그대로 엎어졌다.

뒤이어 굳어 있는 마법사들에게 말했다.

“걱정 마시오. 충실히 대답한 이상, 내가 한 약속을 어길 생각은 없으니까.”

“저희를 풀어 준단 말씀입니까?”

“살려 주겠단 말이오.”

무심히 답한 이드가 들판 한쪽을 향해 손짓했다.

불쑥.

그러자 아무것도 없던 들판이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그리곤 선이 가는 남자로 변해서는 이드를 향해 달려왔다. 그는 아까 이드에게 보고를 했던 요원이었는데, 한쪽 소매가 붉은 피로 물들어 있었다.

이드는 요원이 일어난 곳과 소매의 피를 번갈아 보고는 말했다.

“쉐어 가든인가?”

“명예 후작님의 정보가 샐 것 같아 먼저 처리했습니다.”

“수고했군.’

굳이 비밀로 처리할 할 이유는 없었지만, 그래도 칭찬을 바라는 부하에게 쓸데없는 일을 했다고 할 순 없는 일이 아닌가.

이드는 마법사들을 가리켜 보이고는 말했다.

“연락을 해 뒀으니 곧 검은 돌에서 사람이 나오겠지만, 그때까지 자네에게 이들을 맡기지. 마법은 물론 몸을 움직일 수도 없을 테니 위험하진 않을 거네.”

“가까운 곳에 접선 장소가 마련되어 있으니, 그리 옮겨 기다리겠습니다.”

“음. 가지고 있는 정보는 모두 캐내서 정리할 수 있도록 하고, 아주 협조적인 상태니 어지간해서는 고문할 필요가 없다는 말도 전해 주고.” 

“옙!”

요원이 큰 목소리로 답하며 마법사들을 향해 눈을 번뜩였다. 그 눈을 마주한 마법사들은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이전 같으면 자신과 눈도 마주치지 못할 놈에게 저런 눈빛을 받을 줄이야.

약속대로 살긴 한 것 같지만, 아무래도 이후 일어날 일들이 걱정스럽기만 했다.

직후 이드는 그들을 남기고 쉐어 가든으로 복귀했다. 올 때는 열심히 달려야 했지만, 돌아갈 때는 라미아와의 연결을 통해 가뿐하게 공간을 넘었다. 요원은 그렇게 사라진 이드가 있던 자리를 바라보다 긴 한숨과 함께 허리를 폈다.

“휴~ 살 떨리네. 살 떨려.”

멀리서 지켜볼 땐 뿌듯했지만, 가까이 다가서자 또 묘한 압박감에 고개를 들기 어려웠다. 그가 언제 이런 강자를 가까이서 본 일이 있었겠는가. 당장 피를 흘리고 쓰러진 마법사들의 모습도 은근히 심장이 떨리는데 말이다. 그러나 요원은 그런 감상을 잠시 미루고 마법사들 앞에 섰다. 

“자~ 그럼 어느 분부터 먼저 옮겨 드릴까. 손?”

“……시펄…..”

움직이지 못할 거라는 이드의 말처럼, 손가락 하나 꼼지락거리지 못하게 된 상태였다. 그런데 어떻게 손을 든단 말인가.

요원의 농락에 대장 마법사가 질끈 눈을 감고 욕설을 뱉었다. 자신의 미래가 질끈 감은 시야처럼 캄캄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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