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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48화


1083화

‘파벌인가.’

이드는 침입한 기사들이 소속된 각기 귀족 가문에 대해 생각했다.

사람이 모인 조직에서 피할 수 없는 것이 파벌이다. 이 파벌은 조직에 좋게도, 혹은 나쁘게도 작용할 수 있다. 다만 그 속에서 변하지 않는 사실은 파벌에 속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소드 팰러스가 중심이 된 기사파라고 해서 다를 건 없다.

기사파라는 분류와 달리 파벌에 속한 구성원 대부분은 귀족들로서, 기사보다는 기사를 부리는 자들이었다.

그중에 기사도를 따르지 않는 자가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 봤자 우선되는 건 자신과 가문의 이익이다.

그런 자들이 소드 팰러스, 아니, 정확히는 삼검왕의 곤란을 돕기 위해 황궁을 침입하려 했다고? 가문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드는 고개를 저었다.

아무나 잡고 가능한 경우냐고 물어보면 답은 하나일 거다.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제국과 황제에 충성을 맹세해 놓고 삼검왕을 위해 황궁 벽에 구멍을 뚫었다니. 이익은 물론이고, 어떤 명예도 얻을 수 없는 일이었다. 도대체 제국보다 소드 팰러스에 충성해서 무엇을 더 얻을 수 있다고? 이건 아무리 봐도 귀족들이 개별적으로 벌인 짓은 아니다. 

‘아니면요?’

‘돌고 돌아 검왕이란 거지.’

살그머니 들려온 라미아의 목소리에 이드의 얼굴이 살살 풀려 가기 시작했다.

‘얼굴에 힘 빼지 말아요!’

‘알았어. 걱정 마.’

그걸 귀신같이 알아차린 라미아의 말에 이드의 미간에 다시금 진한 주름이 만들어졌다.

그에 라미아가 집으로 돌아가면 꾹꾹 눌러 주름을 펴 줘야지 하고 다짐했다는 사실은 아무도 모른다.

좌우간 그런 라미아의 존재를 숨기고서 이드는 심각한 척 입을 열었다.

“결국 다시 소드 팰러스로군요.”

“아무래도 전과가 많으니까요.”

전과라면 당신이 할 소리는 아니지 않냐 싶었지만, 굳이 그 점을 지적해서 분위기를 흐릴 생각은 없는 이드다.

“그렇지요. 다양한 혐의가 많으니.”

“네. 어디서 난데없이 제삼 세력이라도 튀어나오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 혼돈의 파편 같은?”

“그것만은 부정하고 싶네요.”

이드가 툭 던진 말에 질색한 표정의 라울이 다디단 과자를 찾아 입을 채웠다.

그렇게 라울의 입에 과자가 끊기지 않도록 근심거리를 하나씩 던진 이드는 한편으로 라미아와 대화를 이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아직이야? 잘 안돼?’

사실 침입자들을 움직인 주체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의는 돌아가서 해도 되는 일이었다. 이 자리에서 번뜩하고 무언가가 떠오르더라도 속에 든 말을 해 줄 정도로 친한 사이도 아니고 말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함께 고심하고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라미아가 조사를 마칠 시간을 끌기 위해서다.

이드가 전날 이 방을 찾아와 감지한, 복잡한 기운의 자취.

다름 아닌 이드이기 때문에 잡아낼 수 있었던 미세한 흔적이었고, 그것에 라미아가 호기심을 보였다.

겸사겸사 비서들을 가득 불러들인 저택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알아보자는 생각도 있었고 말이다.

그래서 이번 이드의 방문에는 라미아도 함께였다.

잠시 골렘의 몸을 떠나서 가면도, 검도 아닌 이드의 팔에 두른 파츠 아머의 모습으로 말이다. 그리고는 이드가 자리에 앉은 후부터 저택에 대한 탐험에 나섰던 것이다.

한데, 제법 시간이 지났음에도 라미아에게서 환호성이 나오지 않는다. 뭔가 건져 냈다면 이미 진작에 방울 울리듯 청아한 웃음소리를 냈을 그녀인데 말이다.

‘저번 파티 때는 쉬웠잖아.’

이드가 알기로 이번에 라미아가 선택한 조사 방법은 일전 파티에서 썼던 방법과 동일했다. 즉, 라미아의 몸을 거미줄보다 가늘게 뽑아내서 움직이는 것이었다.

그건 다시 말해 미세한 틈만 있다면 어디든 가지 못할 곳이 없다는 의미였다. 금속을 통째로 녹여 만든 것도 아닌, 이런 저택 따위로는 절대 막을 수 없는 탐사 방법.

하지만 라미아의 의견은 다른 것 같다.

‘그때와 지금은 완전 다르죠. 황궁의 파티장과 달리 여긴 바벨의 안방이잖아요. 차원이 다르다고요.’

‘그거야 알지. 내 말은, 네가 힘들어할 정도라는 게 놀랍다는 거야.’

별생각 없이 던졌던 말에 라미아가 날카롭게 반응하자 이드가 급히 말을 주워 넘겼다.

그에 라미아가 모르는 건지, 아니면 알고도 넘어가는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답했다.

‘똥개도 자기네 집 안방에서는 먹고 들어간다잖아요. 거기다 본격적으로 주저앉으려고 했으니, 얼마나 철저하게 준비를 했겠어요?’

흔히 마법사를 준비하는 자라고 한다.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두고 준비를 철저히 한다는 말이다. 만약 마법사의 진짜 전력을 보고 싶으면 연구실이나 탑으로 찾아가면 된다.

그리고 초인 중에선 마법이 아닌가 싶은 초인기를 가진 이들도 많다. 바꿔 말하면 마법사만큼은 아니더라도 초인 역시 비슷한 수준으로 자신의 둥지를 꾸밀 수 있다는 거다.

특히 그 둥지에 호랑이가 두 마리나 들어앉아 있으니, 얼마나 철저하게 꾸밀까.

‘그렇기는 하겠네.’

‘으이그, 그렇기는 한 정도가 아니라니까요. 그런 준비도 없이 이드를 저택에 들였겠어요? 아무리 협력을 약속했더라도 말이에요.’

제 속을 탈탈 털리고 싶은 변태가 아니라면 절대 그러지 못할 것이다. 당시 이드에겐 그럴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논리 정연한 라미아의 주장에 이드는 열심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최근에 날 몰아붙일 때 너무 가차 없어진 것 같단 말이지.’

‘뭐라고요?’

‘아니, 우리 라미아 님 말씀이 다 옳다고! 그보다 얼마나 더 걸릴 것 같아?”

이드는 무심코 튀어나온 불만을 급히 얼버무렸지만, 당연히 활짝 열린 문으로 새어 들어온 그 소리를 듣지 못할 리 없는 라미아였다. 그러나 그녀는 내가 그랬던가 하며 넓은 마음으로 이드의 말을 넘겼다.

나중에는 어떤 벌을 내리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어차피 그건 이후의 일이니까.

부르르.

‘어?’

갑자기 찾아온 오한에 부르르 몸을 떨던 이드는 곧 이어진 라미아의 목소리에 급히 집중했다. 말실수에 이어 또 잘못할 수는 없는 일.

‘다른 곳에 대한 탐색은 다 마쳤어요. 이제 남은 거라고는 이드가 신경 쓰인다고 했던 흔적이 이어진 옆방뿐이에요. 과연이라고 해야 할지, 제일 보안이 튼튼해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라미아의 보증이니 그 철저함이야 말할 필요도 없지만, 굳이 말하자면 종이는 고사하고 공기도 통하지 않을 정도다.

0.005밀리미터의 거미줄보다 얇아진 라미아가 들어갈 공간조차 없다는 건, 그야말로 공기조차 흐르지 않는 완전히 단절된 공간이란 뜻이다. 

‘옆방에 있는 이드가 그 방에 남은 자취만 느낄 정도이니, 공간 결계 종류의 초인기로 이 방을 완전히 분리한 걸 거에요.’

‘나 하나 때문에 애 많이 썼겠네. 그럼 못 푸는 거야?”

‘네. 포기해야 할 것 같아요. 아무래도 상황이 너무 나빠요.’

금방 돌아오는 대답에 이드는 솔직히 놀랐다.

지금까지 마법 관련으로는 힘들다는 말을 한 적이 없는 라미아가 이렇게 바로 포기를 선언하다니 말이다. 비록 그녀가 넘어야 할 산이 마법이 아니라 초인기이긴 하나, 그마저도 거의 없는 경우였다.

그래서 더욱 안타깝기도 했다.

‘이만큼 철저하게 숨기고 있다면 분명 대단한 걸 텐데. 하나도 못 건지다니.’

‘건진게 아예 없는 건 아니죠. 일단 결계 안의 모습은 나왔다고요.’

그 말과 함께 이드는 어떤 이미지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느꼈다. 마치 사진을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사방이 검은 방 안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황금색의 물체.

‘저게 뭐야. 물레방아? 베틀?’

이드는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물체의 형태에 고개를 갸웃했다. 금빛 실 같은 것이 걸려 있어 베틀이 떠오르긴 했지만, 사실 모양은 물레방아를 눕혀 놓은 것에 가깝다.

‘설마 평범한 베틀을 이렇게 철저하게 두지는 않겠죠. 조사해 보기 전에는 용도를 알 수 없는 물건이에요.’

‘그래, 수고했어. 저거에 대해선 천천히 알아보자.’

이드는 그렇게 말하며 라미아를 거둬들였다.

포기가 너무 쉽다고 볼 수도 있지만, 어차피 어렵다면 깔끔하게 단념하는 편이 나았다. 무엇보다 저 물건에 대한 단서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이드는 이 방에서 물체의 흔적이 남은 쪽으로 시선을 향했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희미하게 남은 자취.

이번엔 라울이 먼저 자신을 불렀으니만큼 어제보다 더 희미하다. 아무래도 시간이 넉넉했으니, 준비도 철저했으리라.

하지만 전날 방문에서 이드가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완벽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찬찬히 분해하듯 음미했고, 알아차릴 수 있었다.

희미한 자취 속에 숨은 라울의 초인력을 말이다.

‘이 정도면 오늘 수확으로는 나쁘지 않아.’

침입자에 대한 세세한 정보.

소드 팰러스가 귀족들의 기사를 훈련시켜 주고, 그것을 계기로 그들을 마음대로 움직이고 있을 가능성.

마지막으로 라울이 정말 단단히 주저앉기로 마음을 먹었는지 가져온 비장의 물건까지.

‘저택으로 돌아가는 대로 모두 불러서 던져 줘야지.’

자신이 이렇게나 뛰어다니는 동안 편안히 저택에서 놀고 있었으니, 어디 고생 좀 해 보라지.

‘던져 주고 난 후엔요?’

‘느긋하게 놀아야지. 우린 이 자리에서 고민할 거 다 했잖아. 다음은 검후나 에단 일행 차례라고.’

내심 고약한 미소를 지어 보인 이드는 천천히 일어날 분위기를 만들었다.

어차피 사실을 확인하기 전에는 답이 나오기도 힘든 문제들, 그런 의미에서 바벨이 좀 더 힘을 내 주길 바랄 뿐이다.

그러고 보면 마침 과자가 들어 있던 접시도 텅 빈 참이다.

이드는 먹은 티도 나지 않는 라울을 멀뚱히 바라봤다. 그걸 다 먹다니. 어지간히도 단 걸 좋아하는 것 같은데. 과연 치아는 안녕한지 모르겠다. 

‘다음에 올 때는 치약이라도 좀 챙겨 줄까.’

양질의 정보를 빠르게 물어 오는 라울이 조금 마음에 든 이드였다.

“그럼 또 다른 정보가 있다면 다시 연락 주기를 바랍니다.”

“아닙니다. 다음에는 제가 직접 찾아가도록 하겠습니다.”

라울이 고개를 흔들었다. 아무래도 이드가 찾아올 때마다 준비를 하는 것이 피곤해서가 아닐까.

이드는 그렇게 생각하며 방을 나섰다. 이번에도 라울의 배웅은 거절이었다.

문 앞에 기다리고 있는 퍼블의 안내를 받은 그는 문으로 향했다. 전날과 달리 퍼블과의 이야기는 없었다.

대신 이드의 머릿속에 각각의 방에 무엇이 들었는지 알려 주는 라미아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었다.

“다음 방문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문을 나서 꾸벅 고개를 숙이는 퍼블을 뒤로 했을 때다.

잠시 밤하늘을 살피던 이드가 다시 그녀를 바라보자 퍼블이 의아한 듯 눈을 깜빡였다.

“혹시 잊으신 것이 있으신지요?”

“내가 잊은 게 아니라, 그쪽이 뭐 잊은 거 없습니까?”

“네?”

“오늘 나 말고 손님이 오기로 한 것이 아닌가 해서 하는 말이오.”

이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퍼블의 눈이 깜빡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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