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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2부 – 673화


1108화

다시 성벽 아래로 돌아온 이드.

거기엔 먼저 도착한 라미아가 팔랑팔랑 손을 흔들고 있었다.

“왜 이렇게 빨리 와요?”

금고 방에서도 얻을 게 없었던 모양인지, 반갑게 흔드는 손과 달리 목소리에는 별로 힘이 없다. 이드도 그건 마찬가지.

“너도?”

“네. 저도요. 금은보석뿐이더라고요. 쓸데없이.”

금과 보석이 쓸데없을 리가 있나.

하나 라미아는 진심인 듯 귀찮게 되었다며 투덜거렸다.

여기에서 존 워스와 관련된 뭐라도 발견했다면 일이 빠르게 끝났을 텐데 아쉽게 되었다.

뭐, 물론 그랬다면 영주 성이 몽땅 무너지긴 했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결국 발로 뛰어야 했다.

“흔적이 남진 않았지?”

“물론이죠.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도 모르는데.”

“보석에도?”

“날 어떻게 보는 거예요? 영지민들 자금일 게 뻔한데, 그걸 손대겠어요?”

기분이 나빴는지 한 손을 허리에 올린 라미아의 눈매가 삐딱하다.

그러나 주인 없는 레어 몇 개를 알뜰하게 털어 내던 그녀의 모습을 기억하는 이드로서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손댔냐는 게 아니라, 그냥 확인하는 거지. 그보다 이것 좀 볼래?”

말과 함께 아공간을 열어 상자 하나를 꺼내는 이드다.

성인 남자가 쉽게 들 수 있을 정도의 크기였지만, 그에 어울리지 않게 상당히 무거웠다.

바닥에 내려놓자 잘 관리된 흙바닥이 푹 꺼졌다.

최소 성인 한 명 정도의 무게라는 의미.

그런 상자 안에 든 것은 커다란 석탄 덩이 같은 물건이었다.

거기엔 진흙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이거, 호론석이네요. 지하에 이게 있었다고요?”

그중 하나를 꺼내든 라미아가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을 했다.

그건 그녀 뒤에 서 있던 마리와 찰스 역시 마찬가지.

정보원으로서 지식이 풍부한 만큼, 그들도 이 석탄 덩이 같은 것의 정체를 알았다.

호론석. 그 정체는 반(反) 감응석으로, 정밀함이 필요하거나 규모가 큰 마법을 사용할 때 외부의 영향을 최소화하는 목적으로 사용되는 재료였다. 마나석이나 미스릴 같은 대표적인 재료보다는 흔하고 저렴하다.

하지만 그건 언제나 상대적으로 얘기했을 때의 일.

저것만 팔아도 한 가정이 평생을 모자람 없이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의 가치가 있다.

사실 귀족 가문의 지하에 호론석이 있는 게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영지에 고용된 마법사가 쓸 수도 있고, 가문의 누군가가 마법을 배운다면 필요할 테니까.

물론 이드도 단순히 호론석의 존재만으로 이러는 건 아니었다.

“이런 상자가 쌓였더라고.’

“쌓여요? 많다는 뜻이에요?”

“어. 딱 봐도 천 개는 넘어 보였어. 지하실을 꽉 채웠더라고.”

물론 다른 것이 담긴 상자도 있긴 했지만, 대부분이 호론석이었다.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양. 그걸 돈으로 환산하면 백작 영지를 사고도 남아돌 거다.

“그 정도면 한낱 남작 성이 아니라 마탑이나 제국 창고에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수상하지. 이 땅에서 호론석이 나는 것도 아닌데.”

보고서에도 그런 내용은 없었다.

광산을 숨겼을 가능성도 고려해 보았지만, 그것도 말이 안 된다.

애초에 저만한 양을 채굴할 규모라면 감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

“고용된 마법사가 사달라고 졸랐을 리도 없고.”

“크큭. 그런 요청을 하는 이가 있다면 벌써 쫓겨났을 겁니다.”

어처구니없는 말에 피터가 웃고 말았다.

그 모습을 흘끗 본 라미아는 호론석이 들어 있는 상자를 발끝으로 톡톡 건드렸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더하면 결국 이 호론석은 남작의 것이 아닐 확률이 높겠네요. 그러면서 이만한 양을 소리 소문 없이 모아 둘 정도로 대단한 인물이고.”

“그래, 간단히 말해 존 워스가 이 호론석의 진짜 주인 같다는 거야.”

“무슨 목적일까요?”

“이제부터 그걸 알아봐야지.”

상자를 다시 아공간에 밀어 넣은 이드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터널을 준비시킬까요?”

마리가 물었다.

이드는 바로 답하지 않았다.

대신 영주 성의 한곳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확인할 게 있으니까 잠깐 기다리고 있어요.”

짧은 명령과 함께 앞으로 나선 이드의 몸이 둥실 떠오르더니, 어둠 속으로 연기처럼 사라졌다.

“흐읍!”

그 모습을 본 마리와 찰스가 놀라움에 숨을 삼켰다.

두 사람은 이드가 사라진 방향과 옆의 라미아를 번갈아 보았다.

금고 방을 연 라미아도 대단했지만, 이드의 신위도 그에 못지않았다.

그와 함께 조금의 허탈감도 뒤따랐다.

자신들을 힘들게 만들었던 지하실과 금고 방을 이 두 사람은 제집처럼 드나들고 있지 않은가.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인간들인 거야? 진짜 궁금하네..’

두 사람은 달싹거리려는 입술을 질끈 깨물며 치미는 호기심을 내리눌렀다.

놀란 건 두 사람만이 아니었다.

피터 역시 심경이 복잡했다.

이드의 정체를 아는 만큼 그 전투 능력에 대해서는 의심하지 않았지만, 설마 은신 능력까지 이 정도로 뛰어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섀도우 워퍼를 다루며 은밀성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었거늘, 이드를 보고 나니 그 자신감에 찬물이 뿌려진 듯했다.

그렇게 사람들의 머리를 복잡하게 만든 이드는 조금 전의 말처럼 금방 돌아왔다.

“이제 돌아갑시다.”

“어딜 갔다 온 거예요?”

“그건 이따 말해 줄게.”

답을 뒤로 미룬 이드는 마리에 의해 다시 열린 바람 터널을 타고 영주 성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그 길로 두 부부가 마련한 둥지로 돌아왔다.

영주 성으로의 침입을 도왔던 정보원들도 모두 각자의 숙소로 돌아갔다.

“이제 말해 줘요. 대체 어디 갔던 건데요?”

사람들이 주방 탁자에 둘러앉자 라미아가 대답을 재촉했다.

이드는 마리에게 받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는 입을 열었다.

“특별한 건 아니고, 영주를 보고 왔어.”

“충분히 특별한 일이잖아요. 그런데 뜬금없이 영주를 만나서 어쩌려고요?”

라미아뿐 아니라 모두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그 시점에 갑자기 뱅커올슨 남작을 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존 워스를 찾거나 호론석 이상의 무언가를 찾기 전까지 그들이 영지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은 비밀이어야 하니까.

“틀려. 만나려는 게 아니야. 영주가 성에 있는지를 보려고 했던 거지.”

“그 말은 없었다는 거네요?”

과연 라미아.

금방 말뜻을 알아차린 그녀의 대꾸에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보고서에는 영주가 마스터라고 적혀 있었잖아. 그런데 영주 침실에서는 마스터의 기운이 느껴지지 않더라고. 그래서 혹시 결계 같은 걸 사용하는 건가 싶어 직접 확인했지.”

이런 이드의 말에 가만히 듣고 있던 피터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침실의 위치는 마리가 지하실과 금고 방에 대해 설명할 때 정말 짧게 언급했었다.

그걸 기억하고 마스터의 존재감과 연결시켜 영주의 부재까지 알아내다니.

하지만 놀라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피터의 차가운 시선이 마리와 찰스를 향했다.

이드가 저렇게 말한다는 건 영주가 단순히 침실에 없는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성을 나갔다는 뜻임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자네들은 알고 있었나?”

“……죄송합니다. 영주의 외출에 대해서는 파악된 바가 없습니다.”

“쯧, 영지에 대해 파악하려면 영주에 대해 조사하는 건 기본이잖나!”

이어지는 추궁에 두 사람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피터의 말처럼 정말 기본이 되는 사항에 대해서 소홀했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에 변명할 말이 없던 것이다.

“영주가 영지에 있는 건 확실해?”

“초기에 확인했습니다.”

“내가 묻는 건 오늘도 있는지 확인했느냐 거야.”

“……죄송합니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당당하던 마리와 찰스였지만, 정보원의 기본 능력에 대한 추궁에는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피가 날 듯 입술을 깨물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피터가 혀를 차고는 이드를 향해 고개를 숙였다.

“정보에 미흡한 점이 있었습니다. 두 분께는 면목이 없습니다.”

“미흡한 게 아니라 상대가 약았다고 봐야 할 것 같군요.”

이드는 잠시 말을 멈추고는 보고서를 꺼내 영주에 대한 부분을 펼치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대외적으로 알려진 남작의 이미지는 은둔자. 특별할 것 없는 인간을 굳이 따라다닐 사람은 없겠죠?”

“그 말씀은, 남작이 세상을 속이고 있다는 거로군요.”

피터가 혀로 입술을 적셨다.

확실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런 의욕 없이 조용히 영지에서 두문불출하는 인간이 은밀히 밤에 성을 비울 이유가 뭘까. 애초에 존 워스는 단순히 아픈 손가락 같은 제자라서 남작을 자주 찾는 것일까.

아니다. 당장 지하실에 쌓여 있는 호론석만 봐도 나오는 답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남작은 스승이 무얼 하건 모른 척 아무것도 하지 않고 협조하고 있는 것일까?

그보다는 스승이 하는 일에 은밀하게, 하지만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있다고 보는 쪽이 더 합리적이었다.

“아무래도 의심 지역보다는 남작부터 다시 조사를 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남작에 대해서 파면 뭐가 나와도 나온다.

그런 확신을 받은 피터의 말에 이드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히 그래야죠. 그렇다고 마리 씨가 골라 놓은 의심 지역에 대해서도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으니, 동시에 진행하죠. 당장은 남작이 어디에 있는지도 알 수 없는 일이지 않습니까.”

“지금 바로 영주성과 외성 쪽으로 요원들을 배치하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남작이 어디에 있었는지는 몰라도, 어느 방향으로 갔었는지는 알 수 있을 겁니다.”

“좋은 생각이군요.”

이드는 이를 악물고 나선 마리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만약 남작이 돌아오는 방향 중 마리가 뽑아 놓은 지역과 겹치는 곳이 있다면 충분히 의미 있는 정보가 되리라.

거기에 이드는 당부의 말을 더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리고 요원들을 배치하는 김에, 좀 더 은신에 신경 써야 할 겁니다. 여태껏 알려진 남작의 정보가 거짓이었다면, 그가 마스터 이상의 실력자일 가능성도 있는 거니까요.”

“……명심하겠습니다.”

대답하는 마리의 눈에 긴장감이 서렸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로, 가장 조심해야 할 부분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에 와서는 초기 영주에 대한 조사에서 그에게 발각되지 않았음을 감사해야 할 판이다.

“그럼 저희도 나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마리와 찰스는 가만히 앉아서 기다릴 생각이 없는 듯 조용히 집을 나섰다.

이드는 갑자기 조용해진 분위기에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우리는 쉬어 볼까요. 내일 둘러볼 곳도 많고.”

“주무시려고요?”

“자야죠. 밤인데.”

방긋 웃어 보인 이드는 라미아와 함께 마리가 내어 준 방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주방에 홀로 남은 피터는 끔뻑끔뻑 눈을 껌뻑였다.

“또 자야 하나?”

기절한 듯 긴 잠을 자고 일어난 피터로서는 별로 자신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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