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674화
1109화
퐁퐁퐁퐁
들쭉날쭉 제 맘대로 솟아 있는 굴뚝에서 하나둘 연기가 솟아오른다.
새벽이 가고 아침이 오는 시간.
시골 특유의 평화롭고 서정적인 모습이지만, 마음이 심란한 마리는 그런 것에 신경 쓸 틈이 없었다.
“왜지? 왜 아직 오지 않는 거야?”
“여보. 아직 연락 없어?”
“보면 몰라? 그리고 지금은 네 여보 아니거든, 멍청아!”
화난 고양이 같은 마리의 말을 익숙하게 한 귀로 흘린 찰스가 말했다.
“이상한데. 시종이 일을 시작하기 전엔 돌아와야 했을 텐데.”
“그러질 않으니까 이러는 거잖아.”
“어쩌면, 외출이 아닌 거 아냐?”
“손님 말이 틀렸다고?”
“우리 추측이 틀렸다는 거지. 작정하고 자리를 비운 걸지도 모르잖아. 아니면 납치일 수도 있고.” 찰싹!
“말이 되는 소리를 해! 그런 기색은 없었다고.”
영양가 없는 헛소리에 찰스의 뒤통수를 응징한 마리다.
영지의 주인이 자리를 오래 비운다는 건 매우 큰 일이다. 성의 방비부터 시작해서, 기사들의 배치까지. 남작이 자리를 비운다면 응당 티가 나야 했다. 당연히 성에서 일하는 사람들이라면 모두 알게 될 일. 그 정도면 아무리 자신들이 남작에 대한 마크가 허술했어도 모를 수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하나. 조심하라던 손님의 말도 마음에 걸렸다.
혹시 남작이 자신들도 파악하지 못하는 사이 이미 돌아와 있다면? 어느 쪽이든 확인해야 했다.
“아무래도 직접 봐야겠어.”
“뭐?”
“따라오라고, 멍청한 여보야!”
마리는 찰스의 귀를 잡고 그림자 밖으로 몸을 내밀었다. 동시에 센싱 마인드로 연결된 동료들에게 명령했다.
당장 남작이 성에 있는지를 확인하라고. 대상에 대한 경계 등급을 최상으로 올려서!
“그래서 봤더니. 남작은 이미 성에 돌아와 있었다. 하는 거로군?”
“포섭한 라인을 통해 확인했고, 창 너머지만 육안으로도 확인했습니다.”
피터 앞에 선 마리가 보고했다.
그렇다는 건 곧 남작에게 마리를 포함한 정보원들을 피할 능력이 있다는 뜻
좋은 소식은 아니지만, 덕분에 남작에 대한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남작의 능력이 알려진 대로라면 결코 이들의 시선을 피할 수 없었을 테니 말이다.
이드가 내심 고개를 끄덕이고 있으니, 피터가 말을 걸어왔다.
“전부 말씀하신 대로 되어 가는 것 같은데. 일이 어려워질 것 같습니다.”
당장 남작의 행방을 역추적하려던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대신 확실한 꼬리를 잡지 않았습니까. 나쁘지 않다고 봅니다.”
“그러시다면 다행이지만, 이거 점점 더 면목이 없어지는 것 같습니다. 이번 일로 남작에 대한 자료까지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했으니, 제대로 드린 정보가 있나 싶습니다.”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자존심이 상한 듯 표정이나 눈빛이 심히 좋지 못했다.
재미있는 점은 그에 비례해 굳은 듯 서 있는 마리와 찰스의 안색도 칙칙하게 죽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도 아는 것이다. 차라리 화를 내는 게 낫지, 자존심 상하게 만드는 일은 피해야 한다는 사실을.
하지만 이번 일에서 그 조절이 완전히 실패해 버렸으니, 어떤 형태로든 그 뒷감당에 상당히 괴로울 것이 뻔했다.
“존 워스의 행방을 알았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휴~ 그럼 이제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남작이 다시 움직이길 기다리시겠습니까?”
“아니요. 어차피 그것도 밤이 되어야 할 테니, 그전에 마리 씨가 골라 놓은 곳들을 살펴보죠.”
이드는 말과 함께 마리와 찰스를 바라보았다.
“동행은 안내할 사람 하나면 될 것 같고, 남은 사람들은 영주 성을 감시하도록 해 주세요.”
피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남작이 소문대로의 인물이 아닌 것을 확인한 이상, 새로운 시선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그럼 마리는 연락을 위해 남겨 두고, 찰스를 데려가도록 하시죠.”
마리와 찰스는 밤을 새웠지만 전혀 피곤하지 않은 양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각자 할 일이 정해지자 사람들은 조용히 집을 나섰다.
마리는 바구니에 야채들을 채워 영주 성 쪽으로 움직였고, 이드들은 찰스를 앞세워 성을 빠져나가 동쪽으로 향했다.
이드 일행이 가장 먼저 살펴보기로 정한 영주의 별장은 동쪽에 있었다.
별장을 가장 먼저 살피기로 한 이유는 간단했다. 정보원들이 확인한 바에 따르면 존 워스가 가장 많이 목격된 곳이 별장이었기 때문이다. 다만 여기에는 사소한 문제가 있었다.
별장이 영주 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는 점이었다.
당연했다. 집 가까운 곳에 굳이 별장을 따로 만들 이유가 없으니까.
그에 피터가 나섰다.
“그림자만 빌려 주시면 찰스의 이동은 제가 책임지도록 하겠습니다.”
그와 함께 섀도우 워퍼가 찰스의 그림자를 휘감았고, 그 주인인 찰스는 마치 보이지 않는 번데기에 둘러싸인 듯 웅크린 자세로 허공에 달랑 들어올려졌다.
상당히 꼴이 우스운 것이, 모르긴 몰라도 피터의 감정이 실린 게 분명해 보였다.
이드는 이를 못 본 척 하기로 결정하고는 발을 굴렀다.
“어제보다는 좀 천천히 가도록 하겠습니다.”
슈팍!
화살처럼 공기를 뚫고 앞으로 쏘아지는 이드의 말에 오금이 저리는 속도감을 느낀 피터는 고개를 저었다.
미친 듯 빠른 속도가 좀 줄어 봤자 여전히 빠른 속도일 뿐이다.
어차피 빠르다는 건 변하지 않는 것.
다만 이번에야말로 흉하게 토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무엇보다 부하를 앞에 두고 그런 모습을 보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마음을 다잡은 피터가 두 눈을 부릅떴고, 그 결과,
“웨에에에엑!”
완전히 실패했다.
그나마 발전한 점이 있다면 바닥을 기지는 않았다는 것일까.
그리고 또 하나 다행이라면,
“쿠워어어어어어~”
그 대신 찰스가 어제의 피터와 같은 자세로 토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피터는 토하며 웃었다. 최소한 멀쩡한 부하 앞에서 개망신을 당하는 건 피한 것이다.
“속도를 줄인다고 줄였는데,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이드는 그런 두 사람으로부터 멀찍이 떨어져서 애매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어제의 경험이 있음에도 이 정도 속도에 멀미를 할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톡톡.
그 때 라미아가 옆구리를 찔렀다.
“아무래도 시간이 필요할 것 같은데, 별장은 우리가 살펴보죠?”
두 사람은 어디까지나 안내를 위한 길잡이 조사에 둘이 꼭 필요한 건 아니다.
특히 찰스의 경우 다른 정보원들과 함께 별장을 조사했음에도 이상을 발견하지 못하기도 했고.
마침 라미아의 말을 들은 건지, 이드는 겨우 고개를 드는 두 사람을 보며 말했다.
“둘은 일단 여기서 속을 진정시키고 있어요. 별장은 우리 둘이 살펴볼 테니까.”
“헉헉…… 그러・・・・・・ 시죠. 우웁!”
“그럼 하던 거 계속하세요.”
이드는 겨우 몇 마디를 남기고 다시 고개를 처박는 피터를 불쌍히 바라보고는 라미아와 함께 별장을 향했다. 과연 영지를 가진 귀족의 별장이라고 할까.
상당히 크고 화려한 외관을 하고 있었다. 벽부터 하얀색으로 빛나는 것이, 봄과 여름을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입구에는 병사들이 서 있었지만, 어차피 정문으로 들어가지 않을 테니 상관없었다.
이드는 들어가기 전, 팔목을 들여다봤다. 정확히 말하자면 팔목이 아니라, 그 속에 숨은 차원의 인을 말이다.
그 모습에 라미아가 쓸데없는 일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존 워스는 가까이 있어도 감지해 낼 수 없잖아요.”
“그래도 모르는 일이니까. 혹시나 싶어서. 그땐 존 워스가 혼돈의 파편인지 몰랐지만, 지금은 다르잖아.”
“확실히 반응해 주면 편하긴 하겠지만, 소용없을 것 같은데요.”
한 톨의 기대감도 보이지 않는 라미아의 말이었다.
귀가 있다면 자존심이 상해서라도 뭐든 해 볼 텐데, 차원의 인은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능력이 없는 것인지, 귀가 없는 것인지. 혹은 존 워스가 이곳에 없기 때문인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어쩌면 존 워스가 이미 이곳을 떠났을 수도 있겠어.”
“이곳이라면, 뱅커올슨 영지요?”
“응. 존 워스가 있었다면 정보원들이 영주 성을 살피는 걸 몰랐을 리 없으니까.”
그랬다면 최소한 남작이 밤에 외출하는 일은 없었을 거다.
“그렇긴 하네요. 그래도 확신할 수 없으니까, 확인은 해야죠. 존 워스가 떠났다고 해도 그가 하던 일에 대한 흔적은 남아 있을 거고.”
“맞아. 그럼 빠르게 조사를 끝내자.
하미아의 말에 힘을 얻은 이드가 고개를 끄덕이고는 즉시 담을 넘었다.
두 사람이 별장을 조사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아니, 모습은 일단 그렇게 보였다.
바쁘게 사방을 뒤지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곳곳을 둘러보는 것이 끝이었으니까. 그러나 그 속은 달랐다.
이드의 경우는 기감을 기운을 살핀 후 기파를 뿜어 공간의 허점을 살폈고, 라미아의 경우는 다양한 형태의 디텍트 마법에 투시 마법을 사용해서 숨어 있는 공간을 탐색했다.
이런 검사는 수백 명이 살피는 것 이상으로 정확하고 꼼꼼했다.
그렇게 지하부터 시작해서 3층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을 살핀 결과, 별장은 깨끗했다.
귀족이 사용하는 곳인 만큼 은밀히 숨겨진 은신처가 있기는 했지만, 그 뿐.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은 좁고 어두운 은신처에는 수상한 점이 없었다. 이에 이드는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아직 살펴봐야 할 곳은 더 있었고, 무엇보다 자신과 라미아의 눈을 그 누구보다 믿고 있기 때문이다.
때마침 피터와 찰스도 겨우 속을 진정시키고, 안도의 숨을 내쉬고 있었다.
두 사람은 생각보다 빠르게 돌아오는 이드와 라미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째서 벌써? 혹시 무슨 이상이라도 있습니까?”
“조사를 빨리 끝났을 뿐입니다. 별장에는 아무것도 없더군요. 바로 숲으로 이동하죠.’
“알・・・・・・ 겠습니다.”
이드가 결정한 일이기에 피터는 감히 반박하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겨우 진정시킨 속이 벌써부터 뒤집히는 것 같았지만, 그렇다고 멀미가 무서워서 천천히 가라든가 자신이 빠지겠다고 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출발합니다.”
슈팍!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눈을 감아도 느껴지는 속도감에 두 손을 입을 꼬옥 틀어막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날.
피터와 찰스는 총 네 번을 토했다. 토하고 토한 끝에 나올 것이 없어지면 올라오는 노란 위액도 직접 봤다. 또 위액처럼 노랗게 뜬 서로의 얼굴에 묘한 동지애도 생겼다.
시큼한 냄새가 남에도 서로에게 의지해 걸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왔다.
결국 마리와 정보원들이 뽑아 놓은 의심 지역은 전부 꽝이었다.
실로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빈손으로 돌아온 것이다.
하지만 그에 대해 뭐라 할 기운도 없는 피터는 힘없이 침대 위로 쓰러질 뿐이었다.
그에게 당장 급한 건 휴식이었다.
곧 밤이 되면 다시 움직여야 했다. 조사도 거들지 못했는데 토하느라 기운이 빠져 움직이지 못한다면, 망신도 그런 망신이 없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