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79화
516화
소드 팰러스.
기사들이 먼저 부르고 황제가 내린 이름이었다.
황제는 왜 새로운 이름을 내리지 않고 그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을까.
여기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기사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들이 만든 이름을 그대로 사용했다는 설과 검후가 그 이름을 그대로 쓰겠다고 황제에게 요구했기 때문이라는 설 등이다.
뭐, 황제가 소드 팰러스의 이름을 그대로 쓴 이유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소드 팰러스 그 자체다.
황제는 소드 팰러스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기는 했지만 성은 쓰던 것을 내리지 않았다. 황제는 소드 팰러스라는 이름의 성을 새롭게 건설해서 검후에게 내렸다.
그런데 그 규모가 절대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이드는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소드 팰러스의 모습에 입을 딱 벌리고 말았다.
“과연 제국이 통이 크긴 크구나.”
[그러게요. 쪼잔한 황제인 줄 알았더니. 쓸 때는 제대로 쓰는 남자였던 모양이에요.]
“아름다워요.”
소드 팰러스를 처음 보는 일리나와 라미아도 한마디씩 했다.
세 사람의 감상평에 옆에 서 있던 소드 팰러스 소속 기사들의 어깨가 으쓱 올라갔다.
“소드 팰러스는 제국에서 두 번째로 거대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입니다. 제국민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제국의 자랑이지요.”
에단이 자부심과 반가움이 가득한 얼굴로 소드 팰러스를 바라보며 말했다.
일리나가 살짝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첫 번째는 황궁인가요?”
“그렇습니다.”
하기사, 아무리 검후에게 내릴 성이라지만 황궁보다 거대하고 아름답게 지었을까. 황궁은 단순히 황제가 살고 있는 곳이 아니라 황제의 얼굴이고, 자존심이다. 제국의 가장 위대한 건축물은 당연히 황궁이어야 했다.
“하지만 황궁을 제외하고 제국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은 단언컨대 소드 팰러스일 것입니다.”
이드는 에단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위대한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인상 깊은 곳이긴 하네.”
이드는 자신이 알고 있는 건축물들과 소드 팰러스를 비교해 봤다. 자금성을 비롯해서 지구에서 봤던 현대적이고, 괴상한 건물들을 비롯해서 이전에 보았던 제국의 황궁까지.
하지만 소드 팰러스는 어떤 건축물과도 달랐다. 건물 자체가 다르다는 것이 아니었다. 건물의 배치와 느낌이 달랐다.
“뭐랄까, 성이라기보다는………… 군부대?”
이드는 말을 해 놓고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군부대와 닮았네.”
“마, 마스터! 소드 팰러스를 어떻게 그런 무식한 일반 병사들이 머물고 있는 군부대와 같다고 하십니까!”
에단이 펄쩍 뛰며 이드에게 반발했다. 에단은 눈에 보이는 소드 팰러스의 화려한 모습과 편의 시설의 효율성들을 침을 튀겨 가며 말했다. 소드 팰러스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모습이다.
사실 에단의 말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앞서 황궁에 이어 제국에서 두 번째로 위대한 건축물이라고 했던 것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정도로 이드의 눈앞에 펼쳐진 소드 팰러스의 모습은 대단했다.
소드 팰러스는 그곳에 주로 생활하고 머물 대상이 기사라는 것을 배려한 듯 웅장하고 선이 굵었으며, 담백했다.
그러면서 소드 팰러스의 주인이 여성인 것도 생각한 듯 화려하고 아름다운 멋도 살렸다.
확실히 삭막한 현대의 군부대와도, 지저분한 제국의 군부대와도 다른 모습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이곳은 군대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이곳에 머물고 있는 자들은 일반 병사들이 아니었다. 뛰어난 기사들이었다. 설령 정식 기사가 아니라고 해도 제대로 예의와 검술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있는 인재들이었다.
이드는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에단의 말을 잘랐다.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지. 내 말은 소드 팰러스의 외양이 아니라 배치를 말하는 거야, 배치!”
그러자 옆에서 에단의 열변에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라발이 과연 그렇다는 듯 말했다.
“그렇지. 기사들의 수련을 위해서 만들어진 곳이 소드 팰러스야. 황제께서 그 점을 잘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겠지.”
이드의 말대로 소드 팰러스의 전체적인 모습은 군부대와 비슷했고, 사관학교와도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건물이 비슷하다는 말이 아니었다. 배치가 그러했다.
소드 팰러스의 중앙에는 정말 황홀할 정도로 기품 있고 화려한, 말 그대로의 성이 세워져 있었다. 그리고 그 성을 중심으로 마치 군부대처럼 부속 건물들이 지어져 있었다.
당연하다는 듯 연무장이 큼직하게 마련되어 있었으며, 그 위에서는 지금도 수 명의 검사들이 올라서서 서로의 검을 겨루고 홀로 수련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런 건물과 수련장, 그리고 수련에 필요한 부속 건물이 중앙의 성을 중심으로 질서 정연하게 지어져 있고, 그 사이사이로 거미줄처럼 기하학적인 모양을 만들며 길이 뻗어 있었다.
에단의 말로는 중심의 성과 그 주변의 연무장을 포함한 건물들을 통틀어 소드 팰러스라고 부른다고 했다. 절대 작지 않은 규모였다.
작은 도시 정도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았다.
‘저걸 보고 있으니까 학원 도시라는 말이 생각나네.’
이드는 지구에서 보고 읽었던 이야기들 중의 하나가 생각이 났다.
규모와 모습을 보면 요새 도시나 학원 도시라는 말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흐응. 그건 틀린 말은 아닌데요. 에단이 그랬잖아요. 여기에 모여드는 검사들은 모두 시르피를 존경해서, 그리고 시르피에게 무공을 배우고 싶어서 모이는 것이니까요. 모두 학생이죠. 나이는 좀 많지만, 호호호.]
이드와 같은 경험을 공유하고 있는 라미아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다만 라미아를 통해 두 사람과 함께 마음을 나누고 있던 일리나만 고개를 갸웃거릴 뿐이었다.
‘학원 도시가 뭐지? 나중에 라미아에게 물어봐야겠다.”
일리나가 보드 게임뿐만이 아니라 지구의 또 다른 문화를 접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라발이 말했다.
“자, 자. 이제 정말 다 왔으니 어서 가자. 아마, 집 나간 아내를 기다리는 것처럼 애타게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을 거야.”
그런 라발의 뒤를 이어 사람들이 웃으며 말을 달렸다.
소드 팰러스 입구에서 이어진 대로는 중앙의 성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져 있었다. 전력으로 말을 달리기 딱 좋은 모습이었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
유명한 속담이다. 간단히 말조심하라는 뜻을 담고 있다. 자신의 말이 입과 입을 통해서 나라의 끝에서 끝까지 닿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만큼 소문이 멀리 퍼진다는 이야기다.
그럼 이 발도 달리지 않은 말이 퍼지는 속도는 얼마나 빠를까. 누구도 정확한 답을 내어 놓을 수는 없다. 변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한 가지는 확인할 수 있었다.
발 없는 소문의 속도는 적색 기사단이 말을 달리는 속도보다 빠르다는 것이다.
소드 팰러스에서는 이드를 위해 적색 기사단을 비밀리에 움직였다. 적색 기사단의 모습을 감춘 것이 아니라 적색 기사단이 움직인 이유를 감췄다. 하지만 그것도 이드를 만나기 전까지만이었다.
라발은 수많은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적색 기사단이 직접 움직인 이유를 당당히 밝혔다.
그리고 그 현장은 말이 되어 적색 기사단보다 하루 먼저 소드 팰러스에 도착해 있었다. 정확히는 이런 사실을 알지 못했던 소드 팰러스의 일반 기사들과 수련생들에게 닿은 것이다.
그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했고, 이후 믿을 수 없다고 부정했으며, 마지막으로 아이돌의 강림을 기다리는 군인들처럼 일분일초 느리게 가는 시간의 등을 밀기 위해 노력했다.
또 소드 팰러스의 이름 있는 기사들을 붙잡고 반복해서 소문의 진위 여부를 물었지만 기사들은 자신들이 확인해 줄 수 없는 이야기라고만 대답했다. 그들은 정말 몰랐고, 물어볼 수도 없었다. 왜?
검후가 사라지고 만들어진 긴급대책위를 진짜 만나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반 기사들과 수련생은 그런 모습에 오히려 소문을 믿었다. 사실이기 때문에 부정할 수 없고, 기밀이기 때문에 대답해 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들도 적색 기사단이 그들의 슈퍼스타인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를 언제 데리고 돌아올지 짐작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소드 팰러스로 꼭 복귀할 거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황궁으로 갈 수도 있어!”
누군가의 말처럼 그럴 확률이 높기는 했다. 하지만 한번 제대로 붕 떠 버린 멘탈은 쉽게 제자리를 찾을 줄을 몰랐다.
그러는 중에 적색 기사단이 소드 팰러스의 대로를 내달리는 모습이 목격된 것이다. 그 사이로 적색 기사단의 정복을 입지 않은 자들이 몇 보였다.
“그다! 이드 님이다.!”
“마인드 마스터의 후예가 소드 팰러스에 오셨다!”
“마이드 마스터의 재림이다!”
어린 수련생과 기사들이 흥분하며 적색 기사단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결국 오는군.”
적색 기사단이 달리고 있는 대로가 내려다보이는 성의 한 방에서 인테그란 후작이 조용히 말했다. 그는 짧게 자른 금발과 강철 같은 눈빛이 인상적인 오십 대의 남자였다.
또한 차기 소드 팰러스의 주인이자, 검후의 유일한 제자라고 말해지는 게일 인테그란의 아버지였다. 그는 아들이 수도로 올라오게 되자 그를 대신해서 소드 팰러스로 내려와 있었다.
아들의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해서였다.
“아들아………….”
후작에 오르면서 수도에서도 작지 않은 자리에 앉게 되었지만, 아들이 소드 팰러스의 주인이 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는 아들 게일이 소드 팰러스의 주인이 되기를 바랐고, 그것을 위해 소드 팰러스에서 확실히 게일을 지지해 줄 사람을 모으고 있었다.
검후가 건재했다면 그런 짓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진정한 초인의 경지에 올랐다고 말해지는 그녀는 오히려 젊어져서 얼마나 더 살 수 있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었다.
인테그란 후작으로서는 웃지 못할 농담이지만, 검후보다 게일이 먼저 늙어 죽을 것이라는 말도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검후가 실종된 후에는 사정이 달라졌다. 그가 본격적으로 소드 팰러스에서 사람을 만나고 사귀기 시작한 것도 검후가 사라진 후부터였다. 소드 팰러스에서 방귀깨나 뀐다는 기사들을 사귀고 그들을 개인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들도 상대가 검후의 뒤를 이어 소드 팰러스의 주인이 될 것이라고 공공연히 말해지고 있는 게일의 아버지였기 때문에 크게 문제 삼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 이드가 나타나면서 분위기가 이상한 흐름을 타기 시작한 것이다.
솔직히 후작은 소드 팰러스가 눈이 벌게져 찾고 있는 어떤 세력이 검후 때처럼 이드도 납치하거나 처리해 주길 내심 바라기도 했다. 실제로 이드의 소식이 끊겼을 때는 혹시나 하는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오히려 소드 팰러스로 그를 데려오고 있다는 보고가 올라와서 그를 심란하게 만들었다. 소드 팰러스의 진정한 주인이 돌아온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해서 그의 속을 뒤집었다.
“흥, 소드 팰러스의 진정한 주인? 소드 팰러스의 진정한 주인은 처음부터 검후였고, 그분이 정한 진정한 후계는 나의 아들 게일 인테그란이다.”
인테그란 후작은 적색 기사단과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삼인을 잠시 우묵한 눈으로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아들아, 소드 팰러스의 진정한 주인은 오직 너뿐일 것이다.”
인테그란 후작은 게일 자신도 눈치채지 못한 욕망을 누구보다 먼저 알고 있었고, 그것을 지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게일의 욕망을 이루어 주기 위해서 충분히 움직일 생각이 있었다. 아들의 욕망을 이루는 것이 바로 그의 욕심을 이루는 일이라는 것을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인테그란 후작은 소드 팰러스의 많은 눈이 모이는 곳이기에 이드를 마중하는 자리에 나가기로 했다. 많은 사람들의 눈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야 했다. 그것이 게일을 위한 그의 정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