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20화
1255화
이드의 고개가 기운다.
“흐으음. 그게 끝?”
부창부수. 라미아와 일리나의 고개도 이드를 따라 덩달아 기운다.
무슨 대단한 소식이라도 가져온 것처럼 굴더니, 막상 꺼내 놓은 이야기는 별거 없지 않은가.
“겨우 그걸 말하려고 이런 호들갑을 떤 건가?”
특히 검후의 반응은 노골적이었다. 심드렁한 목소리부터 시작해서 손짓 하나까지 너에게 실망했다는 느낌을 팍팍 드러냈다.
이런 일행의 태도에 드물게도 라울이 당황해 버렸다. 그가 소처럼 눈을 껌뻑거리더니 말했다.
“어째…… 알고 계시는 일이었습니까?”
“아니, 처음 듣는 이야기다.”
“그렇지요. 분명 제국도 모르는 정보라고 알고 있으니. 그런데 반응들이 왜 그런 것입니까?”
“어쩐 일로 오늘은 그대가 바보 같은 소리만 하는구나. 세상일이 꼭 눈으로 봐야 알 수 있던가? 그렇지 않습니까, 명예 후작?”
“그렇지요. 앞뒤 상황을 따지면 뻔한 일이지요. 대충 계산하고 있던 수 중 하나일 뿐이니까요. 아무렴 마탑이 마스를 부추기며 내놓을 게 초인 마법 말고 또 무엇이 있겠습니까.”
“결국 이런 뻔한 이야기를 하러 온 것인가, 자작?”
검후가 라울을 노려보았다.
여기서 고개를 끄덕였다가는 당장 엉덩이를 차 저택 밖으로 쫓아내기라도 할 분위기다.
순식간에 오간 대화에 잠시 말을 잃고 있던 라울이 곧 정신을 차리고는 곤란한 표정으로 찻잔을 비웠다.
그 뒤 한숨과 함께 말했다.
“이것 참. 두 분이 평범한 분이 아닌 걸 깜빡했습니다. 설마 초인 마법까지 염두에 두고 계실 줄은. 솔직히 놀랐습니다.”
간단히 말해 그 정도까지 머리가 돌아갈 줄은 몰랐다는 말인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방 안의 모든 사람이 라울을 노려보았다. 도대체 자신들을 어떻게 보고.
한 번은 봐주지만 두 번은 없다. 그런 뜻이 제대로 담긴 눈길에 라울은 슬그머니 고개를 숙였다.
그런 라울의 머리 위로 검후의 재촉하는 말이 떨어졌다.
“허튼소리는 그만하고 진짜를 꺼내 보라. 정말 초인 마법이 완성되었다. 그딴 소리나 들고 온 건 아닐 것 아닌가.”
“크흠. 사실 남은 이야기도 초인 마법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두 분이 초인 마법의 완성을 짐작하시니 하는 말입니다만. 마스와 마탑이 이미 초인 마법을 실전 배치하고 있습니다.”
“벌써 실전에 내놓을 정도라는 겁니까? 실험실 단계가 아니라?”
이건 좀 의외다.
이드가 목소리를 높였다. 그가 짐작한 초인 마법의 완성 단계는 그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습니다. 이미 블레인 인근에서 실전을 가정한 테스트가 이뤄진 것을 확인한 상태입니다.”
“블레인이면, 영혼의 관이 있는?”
귀에 익은 지명에 대해 이드가 묻자, 라울이 고개를 끄덕였다.
한편, 검후는 ‘실전 배치’라는 소리를 들은 이후 아무 말이 없다.
이드는 그런 검후를 한번 돌아보고는 라울에게 말했다.
“그럼 아까 제국 초인 전력을 단번에 무너트린다는 것도 이걸 두고 한 얘깁니까?”
“예, 결코 과장해서 한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이제야 자신의 말이 좀 통하다 생각한 것일까. 라울의 입가에 슬그머니 여유가 감돌기 시작한다.
이드는 그런 라울이 신기했다.
도대체 제국도 전혀 알아내지 못한 정보를 어떻게 빼냈을까.
물론 각국의 초인들 대부분이 바벨의 회원으로 있기는 하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자국의 비밀을 함부로 빼돌리지는 않는다. 그런 약속이 없다면 각국은 바벨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아무리 초인의 권익만을 위해 활동한다고 소리친다고 하더라도 말이다.
“혹시 그 실전 배치했다는 초인 마법의 상세한 위력도 알고 있습니까?”
혹시나 하는 질문에 라울이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그는 일전에 블레인의 야산에서 타란 백작이 지켜보는 가운데 벌어졌던 초인 마법의 테스트에 관해 이야기했다.
조금 틀린 부분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사실과 일치했다. 그뿐이 아니었다. 라울은 초인 마법에 대한 설명의 끝에 한마디를 덧붙였다.
“모르긴 몰라도, 이 초인 마법은 시간이 지나면서 더 강력하게 바뀔 겁니다. 이제 막 완성된 만큼 보완할 여지가 있을 것이고, 경험 많은 장군이나 고위 마법사는 이런 허점을 그냥 두지 않을 테니까요.’
라울은 마치 타란 백작의 수정 보완 요청을 눈으로 보기라도 한 양 말했다.
“당연히 그렇겠지요. 원래 만들어 내는 것이 어렵지, 일단 만든 후 수정 보완은 상대적으로 쉽죠.
이드 역시 라울의 의견에 동감이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전쟁에 쓰일 초인 마법의 위력은 강해질 것이다. 기실 더 강해질 필요도 없다. 당장 라울을 통해 확인한 초인 마법의 위력만 해도 제국에겐 치명적이었다.
대규모 전투에서 결정적인 순간 이 초인 마법을 사용한다면, 마스가 단숨에 승리를 가져갈 수도 있었다. 그만큼 위력적이었다.
아군의 초인이 몽땅 힘을 잃고 쓰러진다니. 전쟁을 지휘하는 입장에서 그만큼 끔찍한 일이 어딨겠는가.
물론 한번 경험하고 나면 어떻게든 대처 방법을 생각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 초인 마법이 지금 라울이 말한 데서 더 수정 보완된다면? 더 강력해진다면?
결국 제국은 초인을 전력에서 뺀 상태로 전쟁을 이어 나가야 한다.
과연 그런 상태로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을까? 모를 일이다. 한 가지 확실한 점은, 아무리 제국이라고 해도 그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이다.
“과연. 마스의 자신감이 어디서 오는지 이제야 알겠군.”
가라앉은 눈빛으로 대화를 듣고 있던 검후가 입을 열었다.
그녀의 모습에선 깊은 고민이 엿보였다. 라울이나 이드와는 달리, 제국 황실의 큰 어른인 그녀로서는 초인 마법으로 인해 죽어 나갈 제국 병사들의 모습이 그려졌을 것이다.
일리나가 그런 검후를 위로했다.
“제국이라면 이번 시련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예요.”
“그랬으면 좋겠어요, 일리나. 하지만 쉽지 않아 보이네요. 무언가 준비하는 줄은 알았지만, 생각보다 강력한 한 방이에요.”
사실 검후가 상상하던 초인 마법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그녀가 완성한 초인 마법의 이미지는, 고작해야 헬파이어 같은 강력한 공격 마법의 형태였다. 아군의 전력을 쓰지 못하게 만드는 그런 종류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드는 옆에서 들리는 대화를 한 귀로 흘리고는 말했다.
“그런데, 이런 정보가 있으면 먼저 황궁으로 향해야 했던 거 아닙니까? 굳이 이쪽을 먼저 찾은 거라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겁니까?”
좀 전, 라울은 황궁에서도 알지 못한다고 직접 말했었다.
사실 이런 중요한 소식은 전쟁을 코앞에 두고 있는 제국에 가장 먼저 알렸어야 했다. 당장 이번 전쟁에는 바벨도 한 손 거들고 협력 중이었으니까. 그런데 라울은 그러지 않고 저택을 먼저 찾았다.
굳이 검후를 놀라게 해 주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봐야 했다. 그리고 이런 이드의 의문은 정확했다.
“예.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 대답한 라울은 목이 타는지 빈 찻잔에 차를 따라 단숨에 마셨다.
그 모습에 한껏 심각해졌던 검후도 관심을 보였다. 지금 라울의 모습을 보면, 단순히 적이 전쟁에서 중요한 패를 가졌다는 것 말고도 다른 무언가가 더 있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과연 목을 축이고 이어진 라울의 말은 예상과 다르지 않았다.
“현재 바벨에서는 이 초인 마법의 완성을 아주 심각하게 보고 있습니다.”
“실제로도 심각한 일입니다만?”
당장 전쟁에서 제국이 크게 어려움을 겪게 생겼다. 이런 이드의 말에 라울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이건 차원이 다릅니다. 제국에게 그건 당장 전쟁에 영향을 주는 정도가 끝이겠지만, 바벨에 있어서는 조직과 초인 사회의 존망이 걸린 일입니다.”
바벨과 초인 사회의 존망이라니.
“말이 무시무시하네요.”
“실제로도 그만큼 상황이 심각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제국으로서는 초인 전력이 빠지더라도 수많은 병사와 기사, 그리고 마법사들이 남습니다. 하지만 바벨은 어떻겠습니까.”
“……아.”
“그렇습니다. 통째로 날아가는 겁니다. 펑!”
두 손을 모았다 펼쳐 보이는 라울. 행동이 일견 장난스러워 보이지만, 그 얼굴은 여전히 심각하다.
이드도 이제는 저 얼굴 뒤에 있는 다급한 마음이 짐작이 되기 시작했다. 라울의 말이 맞았다.
초인 전력을 순식간에 무력화할 수 있는 초인 마법이라면, 초인의 조직인 바벨 또한 순식간에 무력화할 수 있지 않겠는가. 더욱이 바벨에는 무력화된 초인을 지켜 줄 기사도, 마법사도 겨우 한 줌.
그야말로 눈앞이 캄캄한 사태이리라.
“여러분께선 저희들이 어떻게 이번 정보를 얻을 수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분명 이상한 일이다. 내 알기로 바벨의 정보는 대부분이 초인 회원들로부터 전해지는 것들. 그러나 이처럼 쓰기에 따라 전황을 한순간에 뒤엎을 수 있는 고급 정보는 바벨에 전하지 않도록 되어 있을 텐데.”
“검후께서 아시는 그대로입니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특별합니다. 초인에게 이 일은 단지 마스와 제국, 양국 간의 일로 끝나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바벨과 초인 사회의 존망이 걸린 일이다?”
이드가 앞서 라울이 했던 말을 그대로 가져오자 라울이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렇습니다. 이건 그야말로 대륙의 모든 초인의 발목을 잡을 수도 있는 대사건입니다. 초인이라면 누구나 위기감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일이지요. 해서 이번 정보도 테스트에 참가한 기사들에서 시작해, 파라켈 후작을 통해 들어온 것입니다.”
“파라켈 후작? 그 정도로 고위직의 인물이 말인가?”
“중대한 결심을 해 주셨지요.”
파라켈 후작은 이미 쉐어 가든을 검후의 감금지로 제공한 건으로 인해 징계를 당한 상태였다.
그 시점에서 또 국가의 핵심 기밀을 바벨에 제공한 것이다. 이 사실이 발각된다면 징계가 아니라 반역죄로 교수형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상황이었다. 그럼에도 그런 위험을 각오하고 정보를 넘겼다.
그만큼 그가 작금의 상황을 위험 사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사실이 그러했다.
“그런데 이거, 따지고 보면 자업자득 아닙니까? 바벨에서도 미완의 마탑을 다양한 방법으로 후원하고 있었다고 하던데.”
“그 사실 자체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건 저희가 바란 연구 방향이 아닙니다. 저희가 원한 건 버서커에 대한 연구였지요. 오로지 그 저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였지, 저희 스스로의 목을 조르기 위한 게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렇게 되었네요.
이드의 말에 라울이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
“그렇지요. 눈앞에 있는 어떤 분만 아니었다면, 없었을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