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882화
1317화
다 잡은 물고기를 놓쳐 아까워하는 검후.
이드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말을 대신했다.
아무리 자신과 라미아의 능력이 뛰어나도 만능인 것은 아니니까.
마침 라미아가 검후를 달랬다.
“어차피 잡을 수 없는 적이었습니다. 1층과 달리 이곳의 공간은 매우 안정되어 있으니까요.”
1층 플로어 마스터를 생포할 수 있었던 것은 무차원 공간이 붕괴되며 생겨난 공간의 틈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2층 공간은 매우 안정적이다.
공간 확장 마법을 사용하고 있지만 1층처럼 공간의 겹침도 없고, 공간이 붕괴할 조짐도 없다.
“그리고 공간 붕괴가 일어났어도 생포는 어려웠을 거예요. 아마.”
“어째선가요?”
“보통 정보 전달에 사용되는 마법은 양방향이 기본인데, 사라진 마법사의 투영체는 그렇지가 않았거든요. 방금 이드가 지워 버린 마법진도 그렇고. 이쪽에서 접속할 가능성을 완벽히 차단해 버린 거죠.”
“1층 마법사가 어떻게 잡혔는지 알고 있는 거로군요.”
“그렇다고 생각해요.”
“적 마법사가 그렇게 대비를 하고 있었다면 정말 어쩔 수 없었겠네요.”
이래서야 다음 기회를 노리기도 어렵지 않은가.
상황을 이해한 검후가 다시금 시무룩해졌다.
“크흠.”
이런 모습에 쉴라가 헛기침을 하며 검후의 모습을 가렸다.
전투에 대한 격려보다 아쉬움이 먼저라니.
전투를 지켜본 상관의 태도로는 옳지 못한 것이었다. 물론 지금의 인원 구성 안에서 검후가 책임자도 아니고, 모두의 상관도 아니다. 다만 제국 황실의 어른이자 소드 팰러스의 주인으로서 가장 윗사람이었다.
사실 평소의 검후였다면 이런 모습을 보이는 일은 없었을 터였다.
그녀는 누가 뭐래도 검후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이드와 라미아, 그리고 오랫동안 교류해 온 일리나가 옆에 있었다. 검후라는 타이틀을 달고도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사람들. 그렇기에 검후의 마음도 살짝 풀어진 것이다.
다만 이런 속사정을 모르는 라울과 플레타에게 보이기에는 부적절한 모습이었기에 쉴라는 그게 걱정이었다.
그러나 쉴라의 걱정과 달리, 두 사람은 이런 검후를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우선 플레타는 이런 일에 의미를 부여할 정도로 섬세하지 못했으며, 충분히 섬세한 라울은 라미아의 대답에 온통 신경이 가 있었다.
“그럼 적 마법사가 이런 대비책을 가졌다는 것은, 지금도 우리를 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거로군요.”
“그렇게 봐야겠죠? 아무렴 이름은 달라도 마탑이니까요.”
라울의 질문에 답하는 라미아.
그 모습을 본 쉴라가 가슴을 쓸어내리고는 검후를 향해 애원하듯 두 손을 모았다.
“바벨이 보고 있습니다. 부디 행동에 조심을……”
“호호. 그게 그렇게 신경이 쓰였니? 괜찮다. 나도 나이가 나이잖니. 어지간한 일은 늙은이의 주책 정도로 볼 거야.”
“그럴 수는 없습니다. 자칫 검후님의 위엄에 손상이…….”
“아휴~ 괜찮다니까. 내가 일전에 이야기했잖니. 쉐어 가든에서 결코 얌전히 있었던 건 아니라고.”
“……”
검후는 구출된 후 자신이 감금당해 있던 때의 이야기를 짧게 해 준 적이 있다.
당시 그녀가 탈출을 위해, 그리고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어떻게 행동했는지를 대충 들었던 쉴라였다.
그 이야기 속 검후의 모습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흔해 빠진 비극 속 황녀는 절대 아니었다.
“그런 날 가장 잘 아는 인간이 바로 저 라울이다. 새삼 가식을 떨 필요가 없어. 오히려 이제 와 내숭이라니, 그거야말로 못 할 짓이지.”
“…..”
그건 가식이나 내숭이 아니라 황족으로서의 품위입니다!
목까지 치밀어 오르는 말을 겨우 눌러 참는다. 대신 돌아서 가슴을 콩콩 두드리는 쉴라다. 그러고 보면 이드 일가와 함께하는 검후는 그녀가 지금까지 알던 모습이 아니었다.
‘마치 나쁜 물이 든 것처럼.’
문득 떠오른 생각에 쉴라가 고개를 저었다.
아무렴 그건 아니다.
무엇보다 이드가 없었다면 검후를 누가 구출할 수 있었을까. 그들은 쉴라와 은색 기사단의 은인이었다.
동시에 쉴라에게 있어서는 스승이기도 했다.
난화십이식에 대한 가르침을 내려 주시는 스승.
‘검후님을 무어라 하기 전에, 나야말로 긴장이 풀렸구나. 이런 잡생각을 떠올리고.’
스스로를 돌아본 쉴라가 아랫배에 힘을 주고서 정신을 바로 했다.
이드가 있고 검후가 있지만, 이곳은 마법사의 마탑. 적의 뱃속이다. 한시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곳이라는 말이다.
‘나와 기사단의 임무는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검후님을 수호하는 것.’
그렇게 자신을 다잡는 쉴라의 모습을 옆에 선 검후가 귀엽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잠시 후.
각자의 이야기를 마친 사람들이 자리를 옮겼다.
이드가 가장 앞서서 움직였다.
그 사이 전장은 대충 정리되었다. 시신들은 한쪽에 치워져 있었고, 기사단도 개인 정비를 마친 모습이다.
다만 천장에 박힌 네트나의 시체는 손대지 않은 상태였는데, 비올라가 그 아래서 서성이고 있었다.
마치 익은 감이 떨어지길 바라는 아이처럼.
“뭐하나?”
“아, 저거. 저 시체 말입니다! 꼭 제가 가지고 싶습니다. 연구, 연구를 하면!”
이드가 그를 향해 말을 건네는 순간.
얼마나 흥분했는지, 비올라가 떼를 쓰는 아이처럼 자신의 바람을 쏟아 냈다. 나잇값은 둘째치고, 평소의 냉소적이던 모습을 가져다 버린 모습에 이드는 자신도 모르게 쉴라를 돌아보았다.
찌릿.
아니나 다를까.
비올라를 바라보는 눈길에 냉기가 뚝뚝 떨어진다.
서로 간에 감정이 없다면 나오지 않을 반응. 과연 이 두 사람의 관계는 어디쯤일까?
이드는 내심의 호기심을 뒤로하고, 바벨과 검후의 의견을 물었다.
시체 따위 누가 가지고 싶을까 싶지만, 그래도 모르는 일이니까. 다행히도 바벨과 검후는 네트나의 시체에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검후야 당연했지만, 바벨은 의외였다.
하지만 바벨의 입장은 그럴 만했다.
“바벨에서 바라는 건 초인에 대한 근원적 해석입니다. 저런 마법적 응용이 아니죠. 무엇보다 해당 마법의 기초적 이론에 대해서는 이미 입수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한다.
이 대답에 당연히 가장 기뻐한 것은 비올라였다. 그는 당장 네트나를 끄집어내서는 자신의 아공간 주머니에 넣으려 끙끙거렸다.
그 모습을 멀뚱히 바라보던 검후가 문득 말을 걸어왔다.
“저 네트나라는 괴물 말이에요. 명예 후작께선 어떻게 보셨나요?”
“어떻게 보다니요?”
“토벌대가 상대했다면 피해가 컸겠지요?”
이드는 질문의 의도를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겁니다. 여섯 종류의 초인기를 한꺼번에 사용하는 것만큼이나 신체 능력도 그에 못지않았으니까요.”
정말 어지간한 기사단이 홀로 상대했다면 전멸당했을 것이다.
그 정도로 네트나가 가진 무기들은 어느 하나 만만한 게 없었다. 심지어 근력과 피부의 방어력 자체도 오우거보다 약하지 않은 데다 본능에 충실한 오우거와 달리 무기술도 알고, 지능도 높았으니까.
“저것을 보니 그간 내가 미완의 마탑을 가볍게 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야,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일이니까요.”
이드는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 상대적이다.
당장 혼돈의 파편이 날뛰고 있는데 미완의 마탑이 눈에 들어올 리가 없지 않은가. 뿐인가. 검후 개인적으로는 삼검왕이라는 배신자의 처리 문제도
있었다.
미완의 마탑이라는 잘 알지 못하는 단체에 대해 깊이 고심하기에는 아무래도 무리가 있던 것이다.
“후후. 그렇기는 했죠.”
이드의 말을 이해한 검후가 씁쓸하게 웃더니, 그대로 고개를 돌려 라울을 쏘아본다.
“저야 그렇다 치고, 바벨에선 미완의 마탑이 이런 전력을 확보할 때까지 뭘 하고 있었던 겁니까.”
“어엇! 불똥이 왜 이쪽으로 튀는 겁니까.”
“어물쩍 넘어갈 생각하지 말아요.”
검후가 재차 대답을 독촉하자 라울이 멋쩍은 모습으로 한숨을 푹 내쉰다.
“검후께서 그렇게 물으시면 사실 할 말은 없습니다. 이유를 찾자면 수십 가지를 댈 수 있지만, 결국 변명에 불과합니다. 근본적인 이유는…….방심입니다. 이들의 역량을 너무 하찮게 여겼던 거지요.”
“그런 자들에게 후원을 했다는 겁니까?”
“어쩔 수가 없는 것이, 미완의 마탑 외에 후원할 곳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바벨은 초인의 각성과 폭주에 대한 연구를 한시도 쉰 적이 없었다. 그러나 초인으로 구성된 단체이기 때문에 그들이 할 수 있는 연구에는 선이라는 것이 있었다.
그렇기에 이 선을 넘어 줄 마법사는 외부에서 구했었다.
하지만 대륙에서 초인의 존재가 탄탄해질수록 초인에 관해 불법적인 연구를 하는 마법사들은 줄어들었다.
미완의 마탑이 나타날 무렵에는 그들 외에 다른 연구자들은 바벨로서도 찾기 힘들 정도였다. 개인적으로 연구하는 자들은 있을지 모르지만, 그 많은 마법사를 하나하나 조사할 수도 없는 일 아닌가.
마침 연구 목적도, 어느 정도 성과도 있기에 바벨은 미완의 마탑을 후원했다. 기계적으로 시작된 후원이었다는 소리다.
거기에 미완의 마탑은 그 조식을 셋으로 나누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이들에 대한 감시도 쉽지가 않았다. 혹시 발각될 경우를 위한 대비였지만, 이제 와 돌이켜 보면 그건 전부 핵심적인 연구성과를 숨기기 위한 방편이었는지도 모른다.
거기에 더해 앞서 라울이 말했듯이 바벨이 관심을 가지는 것은 어디까지나 초인과 초인 마법의 근원에 관한 연구였다.
아무래도 그에서 파생된 부분에 대해서까지는 노 마크에 가까웠다는 말이다.
“결국 자업자득이었다는 소리로군요.”
“면목 없습니다.”
라울이 꾸벅 고개를 숙였다.
검후는 그를 향해 더 말하지 않았다.
기실 바벨과 함께 소드 팰러스 역시 미완의 마탑을 후원했기에, 바벨을 욕할 처지가 아닌 것이다. 비록 그것이 검후의 결정은 아니었다고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소드 팰러스가 미완의 마탑을 후원한 것은 검후가 소드 팰러스를 다스리던 때였다.
당연히 그녀의 관리가 미흡했다고 할 수밖에.
아니, 따지고 보면 바벨보다 더 골치 아픈 상황이었다.
이쪽엔 무려 삼검왕이라는 배신자가 있지 않던가, 그들은 손을 잡고 삼검왕이 검후를 배신하던 날, 함께 했었다.
악의 마법사와 손잡은 기사라니.
검후는 급 우울해지는 기분을 달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