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2부 – 980화
1415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세간의 관심은 토벌대로 향해 있었다.
한동안 조용했던 대륙에 그 정도로 떠들썩한 사건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정신의 관에 대한 토벌은 요란했다.
각국에서 지켜봤고, 지금도 정신의 관이 무너진 자리에는 커다란 흉터 자국이 남아 있어 호기심이 왕성한 사람들은 직접 찾아와 구경을 하고 가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관심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제국은 영혼의 관 토벌을 통해 세간의 지지를 이어 가려 했지만, 초인 마법을 탐낸 마스가 그 앞을 막아섰다.
토벌은 중지되었고, 대신 높아진 양국 간의 긴장감에 전쟁 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렇지 않아도 새로운 소식이 없는 만큼 토벌에 대한 열기가 식어 가던 사람들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전쟁으로 옮겨 갔다. 하물며 이전보다 더욱 뜨겁고 열성적이었다.
이는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미완의 마탑 토벌은 술안주로 소비하기에는 좋지만, 어차피 나와는 관계가 없는 이야기였다.
사악한 마법사를 퇴치하고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 나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전쟁은 달랐다.
전쟁이 벌어지면 언제 병사로 끌려갈지 모른다. 당장 물가가 요동치고 치안이 불안해질 것이다.
그리고 세금이 오른다. 사실 평민들에 있어 이보다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는 없었다. 사람들은 어느새 전쟁에 대한 소식에만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여기서 재밌는 사실은, 이런 관심의 이동은 비단 평민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미완의 마탑을 토벌하기 위해 모여든 용사들의 시선도 전쟁으로 향했다.
이유는 평민들과 크게 다를 바 없었다. 토벌 후 남는 것은 명예와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뿐이지만, 전쟁에 참여하면 땅과 작위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 토벌대의 목표였던 영혼의 관이 무너졌다.
아마도 이 사실이 널리 퍼지는 순간 토벌대는 그대로 사라지고 말 터였다.
비올라의 말은 어느 하나 틀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드는 황궁으로부터 전해져 온 소식을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좀 더 자신만만한 태도로 말을 잇는 비올라다.
“학파의 완성은 마탑입니다. 마탑이 없는 학파는 집 없는 떠돌이 취급을 받을 뿐 아니라, 마법 사회에서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평소에는 이기적일 정도로 자신의 연구에만 몰두하는 마법사이지만, 그들도 엄연히 사회를 살아가는 인간이다.
그런 만큼 어딘가에 소속되고자 하는 본능이 있다.
사회가 그런 환경을 강요하는 이유도 있었지만, 현실적인 문제로 기대고 도움받을 보금자리를 원하는 경우도 많았다.
마법사에 있어 바로 마탑이 그러한 곳이었다.
아프고 힘들 때 찾아가면 언제나 그 자리에서 자신을 기다려 주는 안식처이자 집. 그것이 마탑이다.
이렇게 중심이 되는 마탑이 없다는 것은 나라 잃은 떠돌이와 같았다. 누구도 쉽게 받아 주지 않고, 누구도 보호해 주지 않는 떠돌이.
그렇게 떠돌다 쇠락한 학파가 한둘이 아니다.
딱 지금 초인 학파의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탑주가 살아서 법칙을 완성했다면 영혼의 관이 초인 학파의 마탑이 되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은 탑주도 없고, 영혼의 관도 붕괴했다.
더욱이 살아남은 부관주와 마법사들은 도망자 신세나 다름이 없었다. 영혼의 관이 붕괴된 시점에서, 마스의 태도도 언제 어떻게 바뀔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러니 이대로 시간이 지나면 결국 쇠퇴해 학파는 사라지고 말 것이다.
“제가 알고 있는 부관주라면 그걸 그냥 보고 있지는 않을 겁니다. 어떻게 완성한 초인 마법인데요. 특히 탑주를 위해서라도 너무 늦기 전에 세상에 나오려 하겠죠.”
“세상에 나와서? 초인 마탑을 세우는 건가?”
“마탑을 세워서 마법 사회로부터 당당히 인정받으려고 하겠죠. 그렇게 함으로써 학파의 개조가 된 탑주의 명예를 드높이는 겁니다.”
“과연. 그러자면 정말 사람들의 관심이 아직 초인 마법에 향해 있을 때 움직여야겠네.”
세상을 살면서 절대 무시할 수 없는 게 바로 타이밍이다.
지금이야 토벌과 전에 없던 마법이라는 사실에 관심이 모여들었지만, 그 관심이 사라지면? 과연 초인 마법에 투자하는 사람이 나올까? 더욱이 가장 초인 마법에 관심이 클 바벨이 등을 돌린 시점에서 말이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과연 그때까지 초인 마법이 그들만의 마법으로 남아 있을까 하는 점이다.
초인 마법이 온전히 완성되면, 당연히 그에 관해 연구하는 마법사들이 생겨날 것이다.
더욱이 이미 생포된 초인 마법사가 있으며, 제국이 확보한 연구 자료도 있다.
지금 숨어 버린 도망자들이 아니라도 초인 마법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말이다.
당장 라미아를 제외하더라도, 눈앞에 비올라도 있지 않은가.
만약 이렇게 다른 사람의 손에 초인 마탑이 세워진다면 도망친 부관주와 마법사들은 영원한 도망자이자, 패배자로 남을 뿐이다.
‘어쩌면 영혼의 관생존자들이 세상에 다시 나오는 때가 생각보다 빠를지도 모르겠는걸.’
이드가 이런 생각을 밖으로 꺼내 놓자 비올라가 당연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때, 제가 나서서 실력으로 부관주를 꺾을 겁니다. 그리고는 모든 초인 마법사들 앞에서 당당히 외치는 겁니다. 내가 최고라고!”
만약 그런 날이 오면 절대 가까이 가지 말아야겠다.
“그걸로 끝? 실력을 증명하는 걸로 끝낼 생각은 아니겠지?”
“물론입니다. 최고인 것을 증명했으니, 그 후 제가 탑주가 되는 것까지가 계획입니다.”
탑주라는 자리가 싸워 이기면 얻을 수 있는 자리였던가?
이드는 나오려는 한숨을 누르고는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알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너 지금 그거 집착이다? 굳이 다른 사람의 자리를 빼앗을 이유가 없잖아.”
특히나 미완의 마탑에는 인체 실험이라는 금기를 범했다는 꼬리표가 달려 있다.
체급 차이도 있지만, 저 싸우기 좋아하는 마스가 당장 칼을 빼 들지 않는 것도 이 이유가 가장 크지 않던가.
미완의 마탑이라는 유산을 잇는다는 말은, 동시에 그들의 죄도 짊어진다는 말과 같았다. 부관주와 그녀를 따르는 마법사들이 다시 세상에 나온다면 그만한 각오를 다짐했으리라는 말이다.
‘비올라는 그런 각오가 있을까?’
“……왜요?”
자신을 향한 시선에 눈을 껌뻑이는 비올라.
그 얼굴은 어떻게 봐도 믿음직스럽지 않다.
아무렴 머리가 있으니, 이런 사실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것과 책임을 지는 것은 다르다.
과연 비올라가 죄의 무게를 짊어질까? 탑주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미완의 마탑을 배신한 저 비올라가?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오래 못 갈 거 같은데.”
“뭐가 오래 못 간단 말입니까?”
“아니다. 그보다, 차라리 그쪽은 두고 새로 마탑을 세우지 그래?”
“싫습니다. 미완의 마탑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습니다. 초인 마탑이 새로 생겨도 그건 다 가짜일 뿐입니다. 이게 집착이라고 해도 상관없습니다.”
과연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더는 할 말이 없기는 했다.
더욱이 어딨는지 알 수 없는 남은 혼돈의 파편을 찾아야 하는 이드에게 있어 고작 이런 문제에 오래 매달릴 이유도 없었다.
이드는 라미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이렇다고 하는데, 나는 모르겠다.”
비올라를 가르치는 건 이제 그녀의 몫이었다.
아니, 처음부터 비올라에 관해서는 그녀가 챙겨 왔다. 새삼 자신이 이래라저래라 할 필요도 없는 일이었다.
굳이 그런 ‘권리’를 찾자면 라미아에게 있다고 하겠다.
과연 이런 비올라를 두고 라미아는 뭐라고 할 것인가.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이어진 라미아의 말은 시작부터 비올라의 주장을 뒤엎는 것이었다.
“미완의 마탑이 아니면 안 된다고 했는데, 그건 곧 미완의 마탑을 잇겠다는 말로 들어도 괜찮은 거지? 그럼 말이야. 오늘부터 내게 배울 초인 마법은 어쩔 생각인데?”
“……예? 그게 무슨 문제라도?”
“내가 가르칠 초인 마법. 그러니까 완성된 초인 마법은 미완성의 초인 마법과는 살짝쿵 다르거든? 그걸 익힌 이상 미완의 마탑을 잇는다고 주장하긴 힘들지. 브라이팅 학파와 로메인 학파의 관계를 모르진 않지?”
브라이팅은 원소 마법을 다루는 학파다. 이런 브라이팅에서 ‘광’과 ‘뇌’라는 두 속성에 집중해서 갈라진 학파가 바로 로메인 학파다.
광과 뇌는 다루기 어렵고, 대신 그런 만큼 위력이 강력한 속성이다. 응당 그에 관련된 마법 역시 파괴적이며, 전장에서 매우 위력적이었다. 자연히 지원이 쏟아졌고, 로메인 학파는 독립적인 마탑을 세울 수 있었다.
브라이팅에서 갈라져 나온 로메인이 당당히 브라이팅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순간이었다.
보기에 따라 부모와 자식으로 볼 수도 있는 관계.
그러나 마법 사회에서는 철저하게 이 둘을 따로 보았다. 이는 로메인이 단순히 변수를 통해서 위력의 극대화를 꾀한 게 아니라, 핵심 이론을 새로 변형시켜 짜 올렸기 때문이었다.
마법의 발현 형태나 결과값이 비슷하다고 해도, 해당 현상을 발생시키는 공식이 다르다면 다른 마법이라는 개념이었다.
라미아가 이제부터 가르치겠다고 한 초인 마법도 그렇다.
그녀가 새롭게 배치한 변수가 가져온 변화는 마법 사회로부터 충분히 다른 학파라고 인정받을 수 있을 정도라는 말이었다.
따지고 보면 이건 부관주를 비롯한 다른 초인 마법사들에도 해당하는 말이었다.
실력이 하락한 그들은 그 이유를 찾아 연구할 것이고, 그 결과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엔 라미아가 가져온 변화를 찾아내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그들의 마법은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을 수밖에 없을 테니까.
다시 말해, 더 이상 탑주의 오리지널 초인 마법은 세상에 없다는 말과도 같다.
마법사로서 탐구와 향상심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에는 말이다.
라미아의 말 속에 담긴 의미를 모를 리 없는 비올라는 바보처럼 눈만 껌뻑거렸다.
미완의 마탑이 아니면 안 된다고 말은 했지만, 이건 어떻게 반박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미완의 마탑은 미완의 마탑이라서………………”
“말 잘해라. 지금 하는 말에 따라서 내가 널 가르쳐야 할 이유가 사라질지도 몰라요. 꼴깍!”
비올라가 마른침을 삼켰다.
부드러운 라미아의 미소가 그에게는 그렇게 무섭게 보일 수가 없었다.
미완의 마탑이냐, 완전한 초인 마법이냐.
갑자기 등 떠밀려 선택의 기로에 선 비올라가 간절한 눈빛으로 이드를 향해 도움을 청했지만.
“네 미래잖아. 나는 모른다.”
“아니, 그러지 마시고요.
좀 말려 주세요.
겨우 뒷말을 삼키는 비올라를 보며 이드는 포기하는 것이 좋다며 최소한의 충고를 덧붙였다.
“굳이 한마디 하자면, 굳이 옛것에 집착해서 좋을 거 하나도 없다. 미래를 봐. 너라고 탑주와 같이 새로운 길의 개척자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
탑주에 대한 애정도 없으면서, 도대체 미완의 마탑에는 왜 저렇게 집착을 하는 건지 모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