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74화
“카리오스 웨이어 드 케이사… 제기랄…”
“다녀왔습니다… 어라? 무슨 일이라도 있어요? 모두 얼굴빛이 좋지 않은데…”
카리오스와 푸라하 두 사람과 함께 저택으로 돌아온 이드는 거실에 모여 있는 사람들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카리오스 역시 거실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굳은 모습에 분위기에 매달려 있다시피 잡고 있던 이드의 팔을 놓아 버렸다.
이드는 자신의 물음에 쉽게 말을 꺼내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카리오스를 데리고 거실 한쪽 비어 있는 소파로 가서 앉았다.
몸을 감싸는 듯한 편한 느낌의 소파였지만, 지금은 굳은 분위기에 눌려 이드와 카리오스 등에게 그 성능을 다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무슨… 큰일이라도 났어요? 사람 답답하게 하지 말고 말을 해봐요.”
이드가 푹신해야 할 소파에서 왠지 딱딱함을 느끼며 그렇게 질문하자, 다시 서로를 바라볼 뿐 누구 하나 속 시원히 말을 꺼내지 못하는 눈치였다.
그 모습에 왠지 심상치 않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이드가 다시 물으려고 할 때였다.
“일거리… 엄청난 일거리가 생겼어. 용병들이 모자랄 정도의 일거리 말이야.”
타키난이 몸을 쭉 펴며 소파에 등을 대며 하는 말에 이드의 고개가 저절로 타키난을 향해 돌아갔다.
그런 이드의 얼굴에는 방금 타키난의 말이 이해되지 않는 듯한 표정이 떠올랐다.
“일거리라뇨? 그게 무슨…”
그러자 이드의 물음에, 여전히 등을 소파에 붙인 채 고개만 들어 이드를 바라본 자세로 타키난이 대답했다.
“전쟁이다. 카논과의… 싸움이지. 용병들에겐 엄청난 일터인 셈이지.”
말을 마친 타키난이 다시 고개를 젖혀 거실 천장으로 시선을 돌리는 모습을 보며, 이드는 다른 사람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제야 그들의 굳어버린 표정과 분위기가 이해가 갔다. 아라크넨에서도 전쟁 소식에 사람들이 저런 표정을 지었으니 말이다.
시선을 돌린 이드의 눈에, 어느새 다른 사람들과 비슷하게 굳어버린 카리오스와 푸라하의 모습이 들어왔다.
‘뭐… 어차피 일어날 일이었으니까…’
그런 생각과 함께 이드는 고개를 돌려 토레스를 바라보았다.
“그럼 궁에 들어가신 분들은…?”
“전쟁 소식에 궁에 급한 회의가 개최됐어. 그것 때문에 오늘 들어오실 수 있을지도 의문이야. 전쟁 소식도 같이 갔던 킬리가 가지고 온 것이었으니까.”
고개를 흔들며 답하는 토레스의 말에 이드의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당연한 일일 것이다. 전쟁이 시작되었으니, 그것도 카논이라는 라일론에 버금가는 나라와의 말이다.
거기에 궁에 들어간 일행 중에는 카논국의 공작위를 가진 바하잔 역시 끼어 있지 않은가. 아마 오늘 내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이 당연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 이드였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이드의 머리에 엉뚱한 생각이 떠오르며 미소가 떠올랐다.
‘이거 꼭 전쟁이 날 따라다니는 것 같잖아. 아나크렌에서도 내가 도착하고 나서야 본격적인 전쟁이 일어나더니, 여기서도 수도에 도착하고 나니까 전쟁 소식이라… 여기 말로 하면 트러블메이커던가? 이거 다른 나라로도 한 번 가 보면 그 나라에서도 전쟁이 나겠네? 응?’
머릿속으로 잠시 딴생각을 하고 있던 이드의 귀에 토레스의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불러도 못 들은 것 같은데… 어서 빨리 준비해. 네가 도착했으니 곧바로 궁으로 출발해야 하니까.”
그 말에 멍하니 있었던 것이 미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던 이드가 고개를 엄청난 속도로 돌렸다.
“무슨 일로…?”
“나도 잘은 몰라. 킬리를 통해 아버님이 전해오신 말이니까. 나는 우선 궁에 텔레포트 게이트의 연결을 알릴 테니까.”
토레스가 그 말과 함께 일어나는 모습을 보며, 이드 역시 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는 다른 일행들을 바라보고, 거실 밖으로 나가는 토레스를 향해 다시 물었다.
“그럼 다른 사람들은요? 나 혼자 가는 거예요?”
그 말에, 토레스는 멈추지도 않고 앞으로 나가며 몇 마디를 흘렸다.
“그래, 킬리가 그렇게 전했으니까… 빨리 준비해. 킬리가 그 말을 전해 준 지도 거의 두 시간이 다 되어 가니까.”
그 말에 이드는 급히 자신의 모습을 내려다보고는 거실 입구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이미 다른 복도로 들어갔을 토레스를 향해 소리쳤다.
“저는 준비할 것도 없다구요!”
그러자 복도를 울리는 이드의 목소리에 대답하는 작은 목소리가 있었다. 아마 체면상 이드처럼 소리를 지르지는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럼 거기서 기다려…”
이드는 작게 들려오는 토레스의 목소리에 몸을 돌려서는 다시 자신이 앉았던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그리고 그때, 자리에 앉은 이드를 향해 굳어 있던 분위기를 조금 풀어 보려는 듯 가이스가 이드 옆에 앉아 있던 두 사람을 가리키며 누구인지 물었다.
“맞아, 그러고 보니 아직 모르죠. 여기는 이곳 저택의 소주인인 카리오스, 정확한 이름은 메이라처럼 좀 기니까 빼고요. 그리고 이쪽은 푸라하, 역시 카리오스처럼 이름이 좀 기니까 빼고요. 오늘 카리오스와 수도 구경차 밖으로 나갔다가 만났어요.”
그러자 이드의 말에 편안하게 몸을 기대고 있던 타키난이 몸을 일으키며 카리오스를 바라보더니, 다시 시선을 이드에게로 옮겨서는 입가로 짓궂어 보이는 듯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에 절대 좋은 말은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느낌에 입을 봉해버릴까 하고 이드가 생각할 때였다.
“임마, 너…”
“이드, 준비 끝났으니 따라와라.”
타키난의 입이 열리고, 입을 봉해버리기로 결정한 이드가 지력을 준비하는 순간, 토레스가 거실로 들어서며 이드를 불러냈다.
뜻하지 않게 타키난의 시끄러운 입을 구한 것이다. 하지만, 토레스가 이드가 지력으로 타키난의 입을 봉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절대 지금 들어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곳까지 오는 동안 다른 사람들과 같이, 토레스 역시 타키난의 입에 상당한 심적 고통을 당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매번 타키난의 입을 통해 나오는 말이 토레스 자신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기에 누구에게 이 억울함을 호소할 수도 없었으니… 그런 토레스가 남도 아닌 자신이 타키난의 입을 구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도 땅을 치며 통곡하지 않을까.
이드는 그 말에 특별히 강하게 모아두었던 지력을 거두어들일 수밖에 없었다.
“알았어요. 그럼 다녀올게요.”
그러나 이드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키고도 몇 걸음 나아가지 못하고 타력에 의해 걸음이 멈추고 말았다.
“카리오스, 아까 토레스 말 들었지? 빨리 가야 하니까… 놔!”
그러나 어느새 이드의 한쪽 팔을 차지하고 매달린 카리오스는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그 모습에 옆에 있던 토레스가 둘에게 물었다.
“무슨 일이야? 바쁘다는 말 못 들었어?”
“들었지? 빨리 떨어져라, 카리오스.”
절래절래.
“싫어. 생각해 보고 해준다고 말했잖아. 빨리 해줘.”
그 말에 이드는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푸라하와 함께 돌아오면서도 저 말과 함께 이드의 팔을 잡고 늘어졌었다.
아마 거실에 들어섰을 때의 분위기가 굳어있지 않았더라면 지금까지도 놓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황궁에 가는 길이야… 응?”
그러나 이드의 그런 사정 조의 말에도 여전히 고개를 절래절래 저어대는 카리오스였다.
그리고 그 모습에 순간적으로 손을 뻗을 뻔한 것을 급히 멈춘 이드였다.
‘고집쟁이… 케이사 공작을 닮은 것도 아니고… 잠시 잠이나 자고 일어나라…’
그렇게 생각한 이드가 손가락에 지력을 모아 올릴 때였다.
“… 그냥 데리고 가라. 어차피 카리오스는 궁에 꽤 드나들었으니까. 그리고 레이디 메이라 역시 그곳에 가 있으니까… 빨리 와. 저쪽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하… 하지만…”
토레스의 말에 다시 손가락의 지력이 풀어짐을 느끼며 이드가 반론을 제기하려 했지만, 토레스의 바쁘다는 말에 묵살되고 말았다.
그리고 돌려진 이드의 시선에 얼굴 가득 득의만만한 웃음을 짓고 있는 카리오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하~~~ 알았어요. 그리고 카리오스… 걸어는 가야 할 거 아냐.”
왠지 점점 카리오스를 떨쳐 놓는 일이 힘들 것 같다고 느껴지는 이드였다.
우우우웅.
초록색의 풀들과 꽃들로 잘 다듬어진 작은 정원이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잘 다듬어진 정원의 중앙에 하얀색의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아름다운 정자가 하나 서 있었다.
그런 정자의 크기는 대략 7, 8명 정도의 사람이 서 있을 정도의 크기밖에 되지 않는 작은 것이었다.
그리고 그런 정자에는 사람이 앉을 자리도 없었고, 바닥 전체를 장식하고 있는 검은 선들과 모형, 그리고 알 수 없는 문자들…
이곳은 아무리 보아도 사람이 잠시 동안의 휴식을 취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정자가 아닌 듯해 보였다.
그리고 그런 정자의 입구에서 단정한 모습으로 서 있는 두 여인이 있었다. 그런 두 여인의 시선은 지금 현재 주위의 마나를 울리며 정자 중앙에 나타난 빛이었다.
한순간 격렬히 빛나던 빛은 곧 사라지고, 그 사이로 크고 작은 두 인형이 모습을 보였다.
빛 속에서도 여전히 카리오스에게 한쪽 팔이 붙잡혀 있던 이드의 눈에 빛이 사라지며 두 명의 여인의 모습이 들어왔다.
한 명은 약간 고개를 숙이고 있는 시녀 차림의 소녀였고, 그 옆에 있는 드레스의 여성은…
“메이라…?”
이드가 앞에 있는 여성을 알아보고 그녀의 이름을 부르자, 지금까지 이드의 팔에 매달려 있던 카리오스도 이드의 시선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어? 누나…”
그러자 메이라 역시 그 모습을 보고는 이드에게 매달려 있는 자신의 동생 카리오스를 바라보았다.
“카리오스, 네가 왜 여기…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빨리 그 팔 놓아 드리지 못해?”
메이라는 카리오스가 이드의 한쪽 팔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해서 붙어 있는 모습에 마치 자기가 아끼는 물건을 동생이 만지기라도 하듯이 그렇게 소리쳤다.
“하… 하지만 누나… 여기 형이…”
“너…”
순간, 카리오스는 상당히 오랜만에 싸늘하게 자신을 바라보는 누나의 눈길에, 이드의 한쪽 팔을 잡고 있던 두 팔에 순간적으로 힘이 빠져 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소드 마스터라는 단어가 힘이 빠져나가는 팔에 다시금 생동감을 불어넣었다.
“모… 못해, 안 해…”
이드는 처음 대하는 메이라의 싸늘한 눈길에 자신을 단단히 붙잡고 있던 카리오스의 팔에서 저절로 힘이 빠져 나가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풀려지려던 팔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꽉 조아졌다.
그 모습에 메이라는 생각하지 못한 반응이라는 듯 얼굴에 당황감이 떠올랐다.
그리고 메이라가 다시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카리오스가 서둘러 자신의 사정을 이야기했다.
“이… 이건, 이 형이 날 소드 마스터로 만들 수도 있다고 해서… 그래서, 그거 조르느라고… 그래서 매달려 있는 거야.”
조금 더듬거리기는 했지만, 카리오스의 말은 메이라가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말에 메이라는 ‘그렇단 말이지…’ 하는 눈으로 카리오스를 옆에 달고 있는 이드를 바라보았다.
이드는 자신을 바라보는 메이라의 눈빛에 그녀가 카리오스를 떼어내 줄 수도 있겠다는 기대를 버릴 수밖에 없었다.
세상 어느 누가 자기 가족이 잘되는데 말리겠는가… 그것은 중원에 있을 이드의 누님들 역시 마찬가지가 아니었던가…
“이드님, 정말 저희 카리오스에게 소드 마스터로 만들어 준다고 하셨어요?”
순간, 이드는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메이라의 모습에서 지금까지와는 다른 여우와도 같은 분위기를 볼 수 있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녀가 보여준 얌전하고 조신한 분위기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천화야… 여자는 언제든지 여우가 될 수도 있단다, 그러니까 조심해야 돼…’
갑자기 옥빙 누님의 말이 생각나는 이드였다.
그리고 지금의 메이라의 모습에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드였다.
방금의 카리오스의 말도 들었듯이, 카리오스는 현재 이드에게 조르고 있는 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