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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드 – 81화


지금 이드들이 서 있는 곳도 아까와 마찬가지로 영주의 성에 마련된 대정원이었다.

그리고 그런 이드들 앞으로, 마중 나온 듯 이드들 쪽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일행과 함께 텔레포트해 온 마법사가 앞으로 나서며 허리를 숙여 보였다.

“샤벤더 백작님께, 바츄즈 마법사단의 마법사 추레하네 인사드립니다. 명을 받은 대로 라일론 제국에서 오신 분들을 모셔왔습니다.”

추레하네의 말에 이드들을 향해 다가오던 사람들 중, 3~40대로 보이는 호방한 인상의 중년 남자가 알겠다는 듯 앞으로 나섰다.

그는 일행을 한번 훑어보더니 비엘라 영주와 마찬가지로 조금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불쾌감을 느낄 정도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잘 오셨소. 나는 임시로 이곳의 책임을 맡고 있는 스케인 샤벤더 백작이요.”

꽤나 거친 목소리로 말한 샤벤더 백작은 대답을 기다리듯 일행을 바라보았다.

자신의 말에 대답하는 사람이 이 서열 없어 보이는 무리의 책임자일 것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샤벤더의 말에 토레스가 앞으로 나섰다. 물론 일행의 책임자로서가 아니라, 일행의 무언의 압력에 못 이겨서였다.

그리고 일행 중 귀족을 상대하는 예의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도 그였기에, 자연스럽게 나선 것이기도 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이번에 아나크렌에 파견된 라일론 제국 소드 기사단의 기사, 토레스 파운 레크널입니다. 백작님께 인사드립니다.”

정중히 허리를 숙이며 하는 인사에 샤벤더 백작의 얼굴에 놀란 표정이 떠올랐다.

“토레스 파운 레크널? 그렇다면 경은 라일론 제국의 레크널 백작의…”

샤벤더의 물음에 토레스는 고개를 살짝 까딱였다.

“예, 제 아버님이십니다.”

“오, 역시 그런가. 내가 지난날 황궁의 파티에서 레크널 백작을 만난 적이 있었는데, 안녕하신가.”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드는 뒤에서 샤벤더 백작과 토레스를 번갈아 바라보던 지아를 슬쩍 건드리며 물었다.

“누나, 누나. 아까 비엘라 영주인가 뭔가 하는 색마처럼 생긴 남작도 그렇고, 저기 샤벤더 백작도 그렇고, 모두 레크널 백작님의 이름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레크널 백작님이 꽤나 유명한가 봐?”

이드의 말에 지아는 얼마 전,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같은 파티원이었던 콜에게 지어 보이던 한심하단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들리지 않게 몸을 약간 숙이며 이드의 귀에 속삭였다.

“너, 지금까지 그것도 몰랐니? 가이스들이랑 같이 다녔다면 들어봤을 텐데. 잘 들어. 간단히 설명할게.

전투가 일어나면 제일 먼저 나서는 두 사람의 백작이 있지. 한 분은 전장에 직접 뛰어들어 그때그때 병사들을 지휘하고 적을 베지.

그리고 다른 한 분은 전장의 뒤에서 적의 진로와 작전을 파악하며 전술을 세우지. 이 두 사람이 누군지 알겠니?”

이드는 귓불을 간질이는 지아의 입김에 웃음을 참으며 이야기를 듣다가 입을 열었다.

저번에 가이스들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전장에 직접 뛰어드는 분이 벨레포 백작님이고, 뒤에서 작전을 짜는 분이 레크널 백작님?”

그렇게 말하며 이드는 머릿속으로 두 사람이 전장에 있는 장면을 떠올렸다.

그리고는 생각했다. 정말 꽤나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전장에서 서로 친형제처럼 대하는 모습도 그렇고, 각자의 성격에 맞게 맡은 역할도 그렇고.

한 사람은 전장에서 검을 휘두르고, 다른 한 사람은 뒤에서 전군을 지휘한다.

확실히 천생연분(?)에 명콤비인 것 같았다.

“정확해. 지금까지 그분들이 참가했던 인간 간의 전투나 몬스터와의 전투에서, 전력의 차이로 무승부를 지은 적은 있었어도 패배한 적은 한 번도 없지. 덕분에 그 두 분은 여러 국가에서 아주 유명해. 용병들과 기사들 사이에서도 그 실력이 널리 알려져 있지.”

지아가 말을 마치자 이드는 그녀가 마지막에 물어온 꼬인 말투에 귀여움을 느끼며 씩 웃어 보였다.

“헤… 그건 말이죠. 음… 누나는 그 사람 보니까 어떤 느낌이 먼저 들었어요? 그거 한번 생각해 봐요.”

이드의 말에 지아는 잠시 눈을 깜빡이다가 곧바로 눈썹을 찌푸렸다. 그러더니 “으엑!” 하는 소리와 함께 혀를 내미는 모습에, 이드는 “풋” 하고 웃어 버렸다.

“아마 누나가 느끼는 것도 같은 걸 거예요. ‘변태’… 우리 마을에서는 그걸 ‘색마’라고도 불렀거든요.”

이드의 설명에 지아는 동감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 상판때기를 보면… 으~ 완전 여자 밝히는 얼굴의 전형이야. 그것도 잡식성처럼 보였어.”

“잡… 식성?”

“응. 그런 게 있어. 예쁘장하기만 하면 뭐든 안 가리는 인간.”

지아의 말에 이번에는 이드가 아까 지아가 지었던 한심한 표정을 지었다. 만약 그녀의 추측이 아니라 사실이라면, 비엘라 남작은 정말 변태인 셈이었다.

중원에서 들었던, 색마라 불리던 인간들도 어느 정도는 상대를 가린다고 들었는데, 저런 인간이 만약 생긴다면?

정(正), 사(死), 흑(黑), 관군까지 나서야 할지도 모른다. 하여간, 그런 변태라면 꼭 잡아야겠지.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니…

이드가 그런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 있을 때, 토레스와 샤벤더 백작, 그리고 몇몇 사람이 다가왔다.

그 모습을 본 이드와 프로카스 등의 용병들은 가볍게 허리를 숙여 인사를 표했다. 이어 토레스가 이드 일행을 소개하기 시작했다.

“저희 일행입니다. 이쪽부터 모리라스, 라일, 칸, 지아, 이드, 프로카스. 사실 저희는 따라온 것이고, 여기 이드와 프로카스 씨가 이번 전력의 주요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쪽은 카리오스 웨이어 드 케이사, 본국의 케이사 공작 가문의 자제 분이십니다.”

토레스의 말이 끝나자, 샤벤더 백작의 시선이 소개된 이드와 프로카스가 아닌, 이드 옆에 붙어 있는 카리오스에게 멎었다.

샤벤더 백작의 얼굴에는 황당한 기색이 떠올랐다.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곳은 전장이었다. 그것도 황당한 적들과 싸우고 있는 전쟁터였다.

그런 곳에 아이라니. 그것도 보통의 아이가 아니라, 라일론 제국의 공작 가문의 자제라니.

샤벤더 백작이 알기로 케이사 공작 가문에는 일남일녀뿐이었다. 그런데 그 가문의 가문을 이을 아들을 전쟁터로 보내다니…

샤벤더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을 일이었다. 만약 그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그것은 골치 아픈 일이 될 것이었다.

게다가 접대까지 신경 써야 한다면… 벌써부터 머리가 지끈거리는 샤벤더였다.

그런데, 이드 일행의 눈에 샤벤더의 안색이 나빠지는 것이 들어올 때였다.

샤벤더와 함께 있던 몇몇 사람 중 한 중년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그의 움직임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의 시선은 일행 전체가 아닌, 이드와 옆에 있는 카리오스를 향해 있었다.

이드는 자신을 바라보는 그 중년인의 존재감에서, 그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바하잔과 함께 카논을 떠나 아나크렌으로 향했던 두 명의 공작 중 한 사람, 차레브 공작이었다.

이드가 그를 알아보고, 상대를 훑어보던 찰나, 그 묵묵한 돌 인형 같은 사람의 입이 열렸다.

“그대가 바하잔 공작이 말하던 이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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