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드 – 97화
순간 라일의 말에 아프르와 일란의 얼굴에 만족스러운 웃음이 뛰어지며 이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언제든 가능하네… 최대의 문제점을 어제 이드가 해결해 주었거든, 그러니 언제든지 말이야.”
“지금, 이곳에 있는 카논의 기사와 병사들… 그리고 모든 국민들은 들어라…”
웅성웅성… 와글와글…
이드는 자신의 앞에서 목소리에 한가득 마나를 담아 외치는 차레브 공작을 바라보고는 다시 전방에서 이리저리 출렁이는 인해(人海)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런 이드의 뒤로 우프르를 비롯한 세레니아와 일리나 등이 서 있는 이곳은 3일 전 주위의 지형도를 다시 꾸며야 할 정도의 거대한 전투가 있었던 바로 곳, 바로 아나크렌과 카논이 불과 1000m의 거리를 격하고 대치하고 있는 지역이었다.
더구나 이드들은 그런 격전지의 아나크렌 진영을 벗어나 정확히 양 진영의 중앙부분에 위치하고 있었다. 사실 이드들이 이곳에 있는 이유는 어제 우프르가 말했던 계획 때문이었다.
카논의 공작인 차레브와 바하잔을 내세운다는 계획, 그리고 그 계획에 가장 큰 걸림돌이었던 그리프 베어 돌인 모르카나가 사라진 상황이었기에 서로 간의 희생을 최소로 줄이자는 차레브와 우프르의 의견에 따라 바로 다음날인 오늘 이렇게 이 자리에 서게 된 것이었다.
본래 어떤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와 사전조사 등이 철저히 되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이드들이 하고 있는 일은 그 일의 성공 시 뒤따를 엄청난 상황과는 어울리지 않게 거의 극단적이랄 만큼 아무런 준비도 갖추지 않았고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계획이란 것이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더 이상 준비하고 자시고 할 것이 없기 때문이었다. 성공을 하면 잘된 일이요. 실패한다 해도 카논 측에서 병력을 증강하지 않는 이상은 별다른 준비가 필요치 않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당당히 나선 일행들과 자신들을 향해 마법이라도 사용한 듯한 엄청난 성량으로 외치는 남자를 본 카논의 진영에서는 곧 웅성거림이 들려왔고 이어 병사들이 터주는 길을 따라 병사들 앞에 서는 세 명의 사람들과 기사들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카논 측을 살피던 이드의 눈이 저절로 그들을 향해 돌아갔다.
자신들의 뒤쪽에 기사를 세운 세 명은 우선 가장 우측에 서 있는 사람은 평민들의 평상복과 같은 간단한 옷을 걸친 남자였는데, 척 보면, 아! 남자답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외모와 분위기를 지닌 장년이었는데 나이는 대략 이십 대 후반 정도로 보였다.
그리고 그런 그의 옆에 서 있는 사람은 상당한 나이를 자랑하는 노년의 인물이었는데, 새하얀 서리가 내려앉은 듯한 새하얀 머리와 얼굴 가득 훈장을 드리운 주름이 자리를 잡고 있었다.
하지만 꽃꽃히 허리를 세운 그의 모습은 자신이 아직 늙지 않았다고 말하는 듯 했고, 그런 그의 분위기 탓인지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그렇게 늙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옆에 서 있는 마지막 한 사람, 길다란 붉은 머리를 목 부분에서 아무렇게나 질끈 묶어 놓고, 머리 색깔과 같은 색으로 먹이를 노리는 맹수처럼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로 이드들이 있는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눈이 위치해 있는 얼굴은 상당히 부드럽고 완곡한 곡선을 이루고 있기 때문에 그 얼굴에서는 단아하면서도 야성적인 이중성이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및으로 위치해 있는 길다랗고 하이얀 목과 당당한 어깨 그리고 볼록하고 완만하게 솟아 올라 있는 가슴… 가슴?
“가…슴?”
순간 이드는 생각지도 못한 모습이었기에 그 말이 저절로 입으로 흘러 나왔고, 갑작스런 이드의 말에 전방을 주시하던 일행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드에게로 돌아갔다.
가만히 전방의 카논측 진영을 바라보던 녀석이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가슴이라는 말을 하니 궁금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런 의문은 지아의 입을 통해 바로 밖으로 흘러 나왔다.
“갑자기 무슨 말이야? 가슴이라니…. 뭐, 가슴 달린 남자라도 있니?”
순간 지아에게서 나온 우습지도 않은 농담에 일행들의 시선이 잠시 지아를 향해 돌아갔지만 이드는 그런 건 전혀 상관없다는 듯이 전방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게 아니구요. 저기, 남자처럼 꾸미고 다니는 여자… 귀족인지 기사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그런 여자가 있어서…”
“남자…처럼 꾸미고 다니는 여자?”
이드의 말에 일행들이 이드의 시선을 따라 전방으로 돌려졌다. 500m 멀다면 멀고 가깝다면 가까운 거리지만 그 정도 떨어져 있는 사람의 모습을 정확하게 볼 정도의 거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의 일행 중에 그런 상황에 속하는 사람은 샤벤더 백작과 카리오스, 두 사람뿐… 나머지는 모두 소드 마스터의 실력에 검을 사용하며 다져진 안력 덕에 별다른 무리 없이 바라볼 수 있었고 곧바로 이드의 말을 확인한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일행 중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의외라는 반응을 보이는 인물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차레브 공작이었다.
“저 아이가… 왜….?”
이드는 본지 삼일밖에 되지 않았지만 항상 철벽의 포커 페이스를 유지하던 차레브가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고 말하는 걸 들으며 그 남자 같은 여자와 차레브 공작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저기… 아시는 여… 레이디 이신가요?”
이드는 여자라고 말하려다 그래도 차레브 공작이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급히 레이디라는 말로 바꾸어 물었다.
하지만 이드는 자신의 물음에 대한 답을 들을 수는 없었다. 단지 어느새 자신의 페이스를 찾아 상대를 굳혀버리는 말투의 짧은 대답뿐이었다.
“음… 그건 좀 있다가 설명해주지. 우선은 이 일이 먼저다.”
이드는 마치 고문을 해도 말을 안겠다는 태도로 대답하고는 미처 뭐라고 말할 순간도 주지 않고 다시 외치는 차레브의 목소리를 들으며 어느새 웅성거림이 잦아져 조용해진 카논 진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본인의 이름은 카르티오 나우 차레브, 영광스런 카논 제국의 삼대 공작 중의 한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