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2권 13화 – 때는 임박하도다 3 : 교황청의 밀사
교황청의 밀사
“어엇?”
남자는 순간 놀란 소리를 질렀다. 분명 자신의 망치에 맞고 정 신을 잃은 줄 알았던 현암이 칼로 찔리는 순간에 몸을 빙글 돌리 면서 남자의 손목을 꽉 움켜잡았던 것이다.
“거기 숨어 있었군그래?”
현암이 빙긋이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는 타격을 받기는 했지 만 쓰러질 정도로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니었다. 현암은 자신과 겨 루던 남자가 허상인 것을 알고 진짜를 끌어내기 위해 연극을 했던 것이다.
그와 동시에 현암은 남자의 몸을 장난감처럼 벽에 내던졌다. 남자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걸레짝처럼 벽에 처박혔지만 현암은 남자의 손을 놓지 않았다. 그리고 다시 남자의 몸을 끌어당겨 이번에는 바닥에 메어꽂았다.
“아악!”
현암은 몸을 일으키면서도 두세 번이나 남자의 몸을 빙빙 돌 리면서 사방에 메어꽂았고 남자는 더 견디지 못하고 그만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면서 기절해 버렸다. 코피가 터진 것은 물론이 고 이빨도 몇 대나 부러진 것이 분명했다.
남자가 축 늘어지자 현암은 일어나면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저쪽 벽에는 쓰러진 남자와 똑같이 생긴 남자가 아직도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가 쓰러진 남자가 정신을 잃자 어느덧 스르르 사라졌다. 현암이 백호 쪽을 보니 백호는 몹시 아픈 표정을 지었 지만 그래도 괜찮다는 듯 손을 저어 보이며 혼자 일어났다.
그 모습을 보고 현암은 일단 안심을 하며 남자가 휘두르던 금 색 망치를 집어 들어 보았다. 크기도 컸지만 무게도 대단한 것으 로 보아 정말 금으로 만들어진 것 같았다. 아무리 공력으로 몸을 보호했다지만 현암도 등판이 얼얼할 정도였으니 대단한 위력을 지닌 물건인 듯했다.
“보통 사람이 이걸 맞으면 무사하지 못하겠군.”
현암은 쓰러진 남자가 자신에게 했듯이 이번에는 반대로 남자의 가슴께를 밟고 서서 말했다.
“이봐, 정신 차려.”
그러나 남자는 눈을 꼭 감고 숨만 희미하게 쉴 뿐이었다.
“의식을 잃은 것 같은데요?”
백호가 퉁퉁 부은 얼굴로 간신히 말하자 현암은 미소를 지으 면서 금 망치를 들어 남자의 얼굴을 향해 쾅 내리치려 했다. 그 러자 남자는 누운 채로 황급히 고개를 돌려 망치를 피했다. 그 모습에 현암이 웃으면서 백호에게 말했다.
“의식을 잃었다면 심장이 이렇게 벌떡벌떡 뛰지 않겠죠.”
그러고는 다시 남자를 향해 말을 건넸다.
“너 참 머리가 나쁘구나. 내 앞에서 쇼를 하다니. 돌머리 같은 데, 이 망치하고 네 머리하고 어느 게 단단한가 어디 한번 볼까?”
그 말에 남자는 겁먹은 얼굴을 할 뿐 뭐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현암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저어 보였다.
“말이 안 통하는 것 같은데요?”
백호가 나서서 영어로 남자에게 말을 걸어 보아도 남자의 얼 굴은 변하지 않았다. 때마침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백호의 아파 트로 들어섰다. 그는 난장판이 된 집안의 모습과 쓰러진 남자, 그리고 현암과 백호를 번갈아 보더니 말했다.
“오……. 저런, 괜찮습네까?”
현암은 아우구스티노 수사에게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쓰러진 남자를 보더니 현암에게 말했다.
“이자, 이자를 잡았군요! 오오! 드디어!”
“아는 사람입니까?”
“이자는 압둘입네다. 압둘 다 야 아지즈. 오랫동안 나를 노리고 있던 자입네다.”
현암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예? 이놈이 수사님을 노리고 있었다고요? 백호 씨가 아니구요?”
“그럴 겁네다. 미안합네다.”
현암은 다소 얼빠진 기분이 되었다. 그렇다면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그야말로 골칫덩이를 안고 온 사람이 아닌가? 백호가 조 금 눈치를 보다가 영어로 물었다.
“그런데 그쪽은 누구십니까?”
“나는 아우구스티노 수사라고 합니다. 그쪽이 미스터 백 맞습 니까?”
“맞습니다. 내가 백호입니다. 그런데 어디서 오신 분입니까?”
“저는 교황청의 명을 받고 당신을 만나러 왔습니다. 미리 연락 도 없이 불쑥 찾아온 것, 죄송하게 생각하며 사과드립니다. 하지 만 중요한 일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습니다.”
“중요한 일? 대체 교황청에서 나에게 무슨 중요한 용건이 있다는 겁니까?”
“그건…….”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조금 말끝을 흐리자 보고 있던 현암이 물었다.
“이 사람의 이름이 압둘이라고 하셨는데, 아랍계 사람 아닌가요?”
“맞습네다.”
“그렇다면 이자도 어새신에 속하는 자 아닌가요?”
“어새신? 어새신에 대해 아십네까?”
“조금은 압니다. 맞는지 아닌지만 대답해 주십시오.”
현암의 다그침에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고개를 저었다.
“아닙네다. 이자는 아랍인이지만 크리스찬입네다.”
현암이 연이어 물었다.
“그렇다면 검은 편지 결사인가요?”
그러자 수사는 조금 생각해 보다가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아닙네다.”
“그럼 도대체 이자는 어디에 속한 자입니까?”
“이자는…………… 나이트 템플러의 하수인입네다…………”
“나이트 템플러? 그렇다면 성당 기사단!”
현암의 안색이 굳어지자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이 동양인이 그런 비밀 조직들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많이 알고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듯한 눈길로 현암을 바라보았다. 그때 백호가 승희를 부축하여 소파에 눕히고 수사에게 말했다.
“일이 너무 복잡하게 된 것 같은데, 차근차근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현암이 압둘을 보면서 말했다.
“먼저 이자부터 처리해야 하지 않을까요?”
“우선 묶어서 옆 서재에 둡시다. 엿듣지 못하도록 하고요.”
압둘을 묶고 귀를 막아 서재로 쓰고 있는 옆방에 넣고 난 다음 에도 승희는 깨어나지 않았다. 현암은 승희가 깨어나지 않자 은 근히 걱정이 되었다. 백호에게 승희가 다친 것이 아니냐고 물었 지만 백호는 승희가 다만 압둘의 분신술에 놀라서 기절한 것뿐 이라고 말했다.
셋은 한참 동안 그간의 일들을 이야기하며 짜 맞추었다. 이야 기가 좀 심각해지자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영어로 이야기를 했고 언어 실력이 약간 달리는 현암은 간간이 백호의 보충 설명을 들 으면서 대화를 이어 갔다. 결국 앞뒤를 맞추어 보니 이렇게 정리 가 되었다.
맨 처음 백호를 암살하려 한 것은 검은 편지 결사였고 그것을 실행에 옮긴 것은 아랍의 조직인 어새신이었다. 그리고 교황청 에서는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밀명을 받고 백호를 만나러 온 것 인데, 그를 기습하려고 마녀 협회와 성당 기사단이 대기하다가 재수없게도 현암과 마주쳐서 일을 그르친 것 같았다.
“결국.”
잠시 침묵이 흐른 다음 백호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일은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야겠군요. 저를 노린 검은 편지 결사와 어새신, 그리고 수사님을 노린 마녀 협회와 성당 기사단. 그러나 지금으로서는 그들의 목적이 무엇인지 저는 전혀 모르겠 습니다. 검은 편지 결사가 왜 저를 노리고, 마녀 협회 등이 왜 수 사님을 노리는지 말입니다. 그것에 답을 해 주실 수 있는 분은 수사님뿐인 듯하군요.”
그러면서 백호는 아우구스티노 수사를 쳐다보았다. 아우구스 티노 수사는 비록 현암이 자신을 구해 주었지만 현암의 앞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좀 껄끄러운 듯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백호는 현암이 자신의 동료이니 이야기하라고 주장하여 마침내 수사의 입을 열게 만들었다. 물론 백호는 세심하게 현암의 이름을 수사 에게 알려 주지 않고 그냥 자신의 동료라고만 했다.
“일단 제 이야기부터 하겠습니다. 마녀 협회와 성당 기사단이 저를 노리는 것은 제가 가지고 있는 이 점토판 때문입니다. 여기 이분…………은 이미 보셨겠지요? 그런데 당신의 이름을 무엇입니 까?”
현암은 수사가 이름을 묻자 알려 주기 싫어서 둘러댔다.
“그보다는 먼저 하던 이야기부터 계속 들읍시다.”
그러자 수사는 한숨을 한 번 쉬고 말했다.
“이 점토판은 아주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저는 교황 청 산하 이단 심판소에 있는데, 거기서는 이 점토판을 찾는 데 심혈을 기울이고 있지요. 이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 나온 것으로 일곱 조각으로 나뉘어 있고 제가 찾아낸 것이 네 번째 것 이지요.”
“그런데 그것이 무엇이기에 마녀 협회나 성당 기사단이 그토 록 눈독을 들이는 것입니까? 중요한 예언이라도 들어 있나요?” “맞습니다. 여기에는 말세에 대한 예언이 들어 있지요. 더이 상은 묻지 마십시오.”
‘또 예언인가?’
현암은 한숨을 쉬었다. 왜 이렇게 말세에 대한 고대의 예언이 자꾸 나오는 것일까? 『해동감결』, 그리고 승희가 들었다던 이집 트의 토트의 예언, 거기다가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까지. 너무 공교로운 일이 아닌가? 정말로 때가 되어서 이런 것들이 나오는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현암이 이런저런 생각에 잠긴 사이 백호가 아우구스티노 수사에게 물었다.
“그런데 수사님은 저를 왜 만나러 오신 겁니까? 그리고 혹시…….”
“혹시 뭐지요?”
“그냥 짐작입니다. 수사님이 저를 만나러 오신 이유와 검은 편지 결사가 저를 노리는 이유에 뭔가 공통점이 있지는 않을까 하 는 추측으로 말씀드린 겁니다.”
백호가 눈을 빛내면서 이야기하자 수사는 흠 하며 한숨을 내 쉬고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예리하시군요. 검은 편지 결사가 미스터 백을 노리 고 있다는 이야기는 여기 와서야 들었지만 분명 그런 것 같습니 다.”
“그렇다면 수사님은 왜 저를 만나러 오신 겁니까? 저같이 아 무런 힘도 없고 종교에도 문외한인 사람을요. 그리고 왜 연락조 차 없이 불쑥 찾아오신 것입니까?”
“거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두 가지 이유라고요?”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잠시 쏘는 듯한 눈빛으로 현암을 쳐다보더니 천천히 말했다.
“제가 백호 씨를 찾게 된 첫 번째 이유는 보고서 때문입니다.”
“보고서라뇨? 무슨…….”
“백호 씨가 제출했던 조사 보고서 말입니다.”
백호는 ‘어?’ 하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물었다.
“왜 그러십니까?”
현암도 백호에게 물었다.
“무슨 보고섭니까?”
“전에 말씀드렸던 대로 어새신과 검은 편지 결사에 의한 암살 사건이 최근에 늘고 있어 그에 대한 보고서를 제출하라는 지시 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별로 아는 것이 없어서 그냥 대강 조사하여 작성한 것뿐인데.”
그러면서 백호는 아우구스티노 수사에게 당황한 듯 물었다. “그런 보고서가 도대체 무슨 중요성이 있기에 ……………. 나는 그 들의 역사적 유래를 조금 조사했을 뿐이지, 그들에 대해서는 하 나도 알지 못합니다. 그런데.”
그 말에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흠. 정말입니까?”
“그럼요.”
“그렇다면 기막힌 우연의 일치로군요. 백호 씨, 백호 씨는 그 보고서에서 아주 큰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당신의 보 고서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도 바로 그 때문이며, 어새신 등의 집단이 당신을 노리게 된 것도 그 때문일 겁니다.”
백호는 당황하여 할 말을 잊은 것처럼 보였다. 현암도 도대체 무엇 때문에 이런 난리가 벌어진 것인지 궁금해서 아우구스티노 수사의 입만 바라보았다. 그러자 수사가 느릿느릿 말을 건넸다. “백호 씨, 당신은 보고서에서 검은 편지 결사를 시오니즘과 동일시하고 있었어요. 그것이 문제가 된 것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