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마록 말세편 2권 14화 – 때는 임박하도다 4 : 우연의 일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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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마록 말세편 2권 14화 – 때는 임박하도다 4 : 우연의 일치


우연의 일치

“시오니즘?”

현암은 놀란 나머지 자신도 모르게 큰 소리로 외쳤다. 시오니 즘은 워낙 유명한 역사적 사실이어서 현암도 대강은 그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 시온 의정서 사건에 언급된 그 시오니즘 말입니까?”

“맞습니다.”

백호가 약간 더듬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시오니즘…………… 내 보고서에는 시오니즘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 같은데요?”

“아뇨, 언급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게, 어떻게 그렇듯 세계적으로 퍼진 겁니까?”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 보고서가 인터폴에 제출되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아직 검 은 편지 결사와 관련된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만, 인터폴 에서는 그 일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지요. 그래서 각국에 조사를 요청하는 협조 공문을 보낸 겁니다.

그런데 한국에서 보낸 보고서는 백호 씨의 보고서를 거의 인 용한 것이었어요. 우리 이단 심판소가 그렇듯, 아마 검은 편지 결사 같은 자들도 각국의 정세를 간단히 알려면 인터폴 같은 곳 에 끄나풀을 심는 것이 가장 간단한 방법일 겁니다. 그러니 그들 에게도, 우리에게도 모두 알려진 거죠.”

“제길! 난 그냥 국내에서 이용되는 보고서인 줄 알았는데!” 현암은 그런 것이 필화(禍)라고 말하려다가 백호의 기분을 생각하고 입을 다물었다. 화가 난 듯 백호는 급히 몸을 일으켜 압둘을 가두어 둔 서재로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후 자신이 쓴 보고서를 가지고 나왔다.

현암은 백호와 함께 그 부분을 찾아보았다. 그 보고서에는 다 음과 같은 부분이 있었다.

검은 편지 결사는 신의 뜻에 따라 어그러진 세상을 정화하려는 목적을 가진 광신적 종교 집단으로 시오니즘과 유사한 정신적 배 경을 가지고 있음. 물론 검은 편지 결사 사건이 있었던 것은 시온 의정서 사건보다 훨씬 전이지만 시온 의정서 사건 또한 고대부터 면면히 이어진 ‘세계 개혁’ 논리의 일환이라는 점에서 판단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임. 검은 편지 결사가 부활한 것, 또는 어느 집단 이 그 이름을 다시 사용하게 된 것은 시오니즘적인 사고관을 가 진 자들이 세기말, 세기 초로 이어지는 변혁기에 다수 나왔음을 의미하는 것임.

그리고 시오니즘과 시온 의정서의 주석 부분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주) 시오니즘, 시온 의정서: 유대 민족은 로마의 지배 아래 있 을 때부터 세상의 근본적인 혁파를 원해 왔다고 전한다. 예수가 새로운 메시아로 떠올랐을 때 그를 앞장세워 세상(당시의 세계관 으로는 로마와 유대 땅만을 의미하지만)을 혁파하려던 열성 당원 들의 사고관도 그러하였다. 예수의 열두 제자 가운데 시몬과 유 다는 확실히 그러한 열성 당원이었으며, 유다가 예수를 밀고한 것도 열성 당의 사주를 받은 것이 아닐까 하고 추측되고 있다.

그러나 이후 기독교가 전 세계에 퍼짐에 따라 유대인은 오히려 예수를 죽인 민족으로 인식되어 천대받게 되었으며, 그들만의 독 자적인 선민관과 세계관에 그러한 심층적인 이유가 더해져 유럽 각지에서 탄압을 받게 되었다. 급기야는 유럽에서 드러나지 않게 재계를 휘어잡고 있던 유대인을 탄압하기 위해 시온 의정서가 조 작되었다. 시온 의정서는 ‘유대인이 비밀리에 세상을 전복하여 자신들만을 선택받은 민족으로 자리 잡고자 한다’는 것을 골자로 하는 것으로, 그 진위가 의심스러움에도 불구하고 대대적인 호응 을 받았다. 이로 인해 유대인은 각지에서 엄청난 탄압을 받았다.

나치에 의해 자행된 유대인의 대학살에도 그러한 의식이 반영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내용이 뭐가 문제가 된다는 것입니까?”

백호는 어이가 없다는 듯 아우구스티노 수사에게 말했고 현암은 좀 더 차분한 어조로 수사에게 물었다.

“혹시………… 검은 편지 결사의 근본적 모태가 시오니즘은 아닙니까?”

“우리도 그러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수사가 말하자 백호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렇지만 이 정도의 추측만으로 왜 사람을 암살하려 합니까? 세상에 이런 생각을 가진 학자나 조사원은 얼마든지 있을 텐데 요!”

“문제는 하나 더 있습니다. 백호 씨는 평범한 분이 아니에요.”

“무슨 소리입니까?”

“백호 씨 자신은 이런 종류의 종교적 힘이나 초능력을 가진 분 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과 가장 가까운 분이 아닙니까? 과거 백호 씨는 많은 기이한 사건들을 대단한 능력자들을 시켜 서 해결했던 일이 있지 않습니까? 한국에서도 여러 번 그러했고, 세계 각국에서도 그랬고 말입니다.”

“제길!”

백호는 거칠게 내뱉었다. 과거에는 잘하려고 한 일이었지만,

무슨 일이건 지나치게 튄 자취는 평생이 지나도 없어지지 않는 법이다. 더구나 지난번의 홍수 사건까지 이르면 백호는 여전히 요주의 인물로 부각되어 있을 터였다.

“그런 전적을 가진 상태이니만큼 검은 편지 결사가 백호 씨의 작은 발언에 대해서도 직접적인 반응을 보이는 거겠지요. 검은 편지 결사는 전 세계를 상대로 하는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이니 만치 정상적인 방법으로 활동해서는 그들에게 승산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들이 추종하게 될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상상할 수 없 는 초자연적인 힘 쪽으로 기울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런 만큼 그 러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에 대한 경계심을 지니고 있겠지요. 그 들도 과거 백호 씨의 전력에 대해서는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만하십시오. 됐습니다.”

백호가 피곤한 듯, 화난 듯 말했지만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말 을 멈추지 않았다.

“제가 미스터 백을 찾은 두 번째 이유도 거기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번 한국의 한 여인이 나이트 템플러의 블랙 나이트인 키건을 물리쳤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키건만이 아니라 삼사십 명이나 되는 완전 무장을 한 차이나 마피아들도 함께 말입니다. 우리 세 븐 가디언을 비롯하여 우리가 아는 그 누구도 그런 정도의 능력은 상상조차 하지 못한 것입니다. 더구나 그 여인은 동료가 있다고 말했다는데.”

그러면서 수사는 잠시 현암을 바라보았으나 현암은 모르는 척 그 날카로운 눈길을 태연하게 받아넘겼다.

“…… 좌우간 그 여인과 그 여인의 동료들과 미스터 백 사이 에는 아무래도 연관이 있을 것 같아서… 도움을 요청하기 위 해 제가 온 것입니다. 이것은 교황청의 요청이기도 합니다.” 

그 말을 하면서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날카로운 눈으로 현암을 바라보았다. 현암은 말없이 가라앉은 눈빛으로 시무룩하게 백호 를 보고 있을 뿐이었지만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면, 저는 이단 심판소의 세븐 가디언 중의 한 사람입니다. 악마의 일이나 그런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조용히 처리하는 특이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 중 하나지요. 그런 데 저는 여기 이분의 능력이 나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것 을 직접 내 눈으로 보았습니다. 이분은 미스터 백 밑에 있는 분 이라 하셨고요. 정말 놀랐습니다.”

현암은 속으로 투덜거렸다. 물에 빠진 사람 건져 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격이 아닌가? 물론 그렇다고 구해 주지 말았어야 할 걸 그랬다는 생각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좀 더 조용히 일을 처리 해야할 것을 그랬나보다 싶기는 했다.

“이것은 정말 기대 밖의 일입니다. 검은 편지 결사나 어새신같은 사악한 무리들을 상대하자면 당신과 당신이 알고 있는 사람들의 도움이 꼭 필요합니다. 힘을 모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자 백호가 굳은 얼굴로 물었다.

“무엇을 위해서 말입니까?”

“무엇을 위해서라뇨? 그들의 어두운 음모를 분쇄하고 희생자를 줄이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아가서는…………….”

“나아가서는요?”

백호가 되묻자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입을 다물었다. 백호가 굳은 얼굴로 대신 말했다.

“말세를 대비하자는 것이겠지요?”

“아멘. 도움을 주시기를 바랍니다. 위험한 일이기는 합니다 만………… 이미 위험은 시작되었습니다. 백호 씨만 보아도 벌써 위 험한 지경에 빠졌다고 하지 않습니까? 차라리 모두 힘을 합쳐서 근본적인 위험을 없애는 편이 더 나은 것 아닐까요?”

백호는 고민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느닷없이 현암이 끼어들 면서 말을 가로막고 나섰다.

“안 됩니다.”

현암의 말이 너무도 단호하여 아우구스티노 수사뿐만 아니라 백호조차도 흠칫 놀랐다.

“오오, 이런 무슨 이유입니까?”

“간단합니다. 당신들은 당신들이 믿는 방식으로 행동할 것입니다. 그러나 나나………… 내 동료들은 그 방법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건 무슨 말인가요? 위험할까 봐 그러는 것입니까?”

“벌써 위험하죠. 수사님이 알려 준 대로라면요. 하지만………….”

현암은 말을 끊고 백호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말을 이 어 나갔다.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는 방향과 수사님의 방향은 일치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단정 지어 말씀하실 수 있습니까? 그리고 이건 저 혼 자만의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노가 놀란 빛을 보이자 현암은 백호를 툭 치면서 조금 빠른 말투로 이야기했다. 그러자 백호가 현암의 말을 중간 에서 통역해 주었다.

“그러면 제가 그쪽의 뜻을 대신 이야기해 볼까요? 교황청에 서 근간으로 삼는 것은 아마도 성경이겠지요? 그것도 아마 묵시 록일 가능성이 큽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적그리스도를 찾아내어 적그리스도가 힘을 발휘하기 전에 모종의 조치를 취한다는 것이 당신들의 계획 아니겠습니까?”

“꼭 같지는 않습니다만 비슷하다고 해 두지요. 그런데요?”

“그것은 절대 교황청 전체의 뜻이 아닐 겁니다. 그것 또한 일 부 소수의 의견에 불과한 것이겠죠. 아니, 좀 심하다고 생각하실지는 모르지만 화내지 마시길. 우리는 당신들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그런 말을!!”

아우구스티노 수사는 정말로 화가 난 듯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그러자 현암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당신은 교황청에서 나온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야 말로 성당 기사단의 일원이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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